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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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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7월. 나는 25살의 나이로 죽었다.

         

       사인은 과다출혈.

         

       묻지 마 칼부림이었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있던 미친놈이 주머니에서 식칼을 꺼내 주위 사람들에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원래 정의로운 성격은 아닌데 그때 왠지 모르게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고….

         

       푸욱-.

         

       “커헉…, 허억….”

         

       그 미친놈의 식칼은 내 복부를 정통으로 찔렀다.

         

       툭, 챙그랑.

         

       “아, 아파? 난 더 아팠어! 괴로웠다고!”

         

       “저, 저 미친놈 잡아!”

         

       그 미친놈은 나를 찌르자마자 실성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더니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녀석이 칼을 놓친 걸 보고 주위 장정들이 달려들어 녀석을 제압하긴 했지만….

         

       “으윽…, 흐으….”

         

       이미 내 배에서 피는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봐, 젊은이. 괜찮아…? 조금만 버텨. 119불렀으니까.”

         

       “…흐으, 아, 안 될 것 같은데….”

         

       점점 꺼져가는 시야 속에서 한 아저씨가 내 상처를 꾹 눌러 지혈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 이건 죽었다….’

         

       나는 내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부모 없는 고아로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얼마나 열심히 버텼는데.

         

       “허억…, 허억….”

         

       나는 의식이 사그라드는 와중에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생이 있다면 부디 좋은 부모를 만나서…, 행복하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외롭지 않게….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툭.

         

       그것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응애애애애애-!!”

         

       …기적이 일어났다.

         

         

         

         

         

         

       **

         

         

         

         

         

       놀랍게도 나는 두 번째 생을 얻게 되었다.

         

       보통 웹소설같은 거 보면 이럴 때 판타지 이세계에서 다시 살아나지만 나는 한국의 아기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로 나이.

         

       본래 1997년생이었던 나는 두 번째 생에서는 2005년생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두 번째가….

         

       “후우….”

         

       내가 거울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거울 속 조금 차가워 보이는 미소녀가 마찬가지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다.

         

       이전 생과 다른 두 번째 것.

         

       나는 전생에 남자로 살았던 거와 다르게…, 이번에는 여자로 태어났다.

         

       그것도 한 번 보면 그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미소녀로.

         

       갑작스레 바뀌어 버린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웠던 나는 무뚝뚝하고 소심한 성정을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여자가 된 것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전 생과 다른 세 번째 것.

         

       고아였던 전생과 다르게 이번 생의 나에게 드디어 부모라는 존재가 생겼다.

         

       하지만….

         

       ‘예린아! 아빠 한 번 믿어 봐-! 이번에 따서 그동안 빚진 거 다 갚을 테니까-!’

         

       ‘예린아, 이게 예뻐, 아니면 이게 예뻐? 아니다, 그냥 다 사야겠다.’

         

       새로운 엄마 아빠는 무척이나 무책임한 사람들이었다.

         

       일도 안 하는 백수들인 주제에 아빠는 스포츠 도박 중독, 엄마는 낭비벽과 사치 중독이 있었으니까.

         

       “예린아-! 8번 테이블 치워줘-!”

         

       “예-!”

         

       부모님들이 일을 안 하셨기에 나는 2023년 고3이 되었음에도 알바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예린아, 알바비 들어왔니? …아빠 믿지? 따서 갚을게.’

         

       ‘예린아, 혹시 알바비 들어왔니? 엄마 가방 좀 사려는데 얼른 입금해주지 않을래?’

         

       물론…, 법적 보호자라는 명분으로 아빠, 엄마가 내 알바비를 몽땅 갈취해 갔지만 말이다.

         

       “오늘도 수고했어, 예린아. 계좌 확인해봐, 월급 들어갔을 거야. 이번에도 부모님한테 뺏기지 말고!”

         

       “…예, 감사합니다. 사장님.”

         

       학교를 마치고 가장 먼저 카페, 그다음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라는 강행군을 마치고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전생에서도 고아였기에 알바는 도가 텄다. 하지만 이번 생의 난이도는 전생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 이번에는 뺏기지 않게 잘 지켜보자.”

         

       처음 알바비를 받았던 날 코인 계좌를 만들었지만 아빠가 이를 어떻게 알고 돈을 빼갔다.

         

       몰래 샀던 주식이 30% 떡상하기 전날 엄마가 주식 계좌를 해지하고 그 돈으로 백화점을 갔다.

         

       이번에도 알바비가 입금된 걸 알자마자 엄마, 아빠가 빼앗으려 들 텐데 이를 어떻게 지켜야 할까.

         

       내가 그것을 고민하며 길을 걷던 그때였다.

         

       “저, 저기요!”

         

       “…네?”

         

       준수한 외모의 한 남자가 머리를 쭈뼜대며 내게 다가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 모습만 보고도 그가 무슨 의도로 말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일이 있는데 모를 수 있을 리가.

         

       “제가 원래 이런 거 물어보는 사람이 아닌데…, 혹시 번호나 인별 아이디 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아…. 혹시 이유라도….”

         

       “이성 만날 때가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그,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내가 연신 차가운 표정을 짓자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뻘쭘해하다가 도망치듯 떠났다.

         

       “화 난 건 아니었는데….”

         

       평소 내 표정이 너무 무표정하다 보니 줄곧 이런 오해를 사곤 한다.

         

       나는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다시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내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는 낡은 빌라촌.

         

       그중에서도 가난이라는 단어가 한가운데에 떡하니 써져 있는 듯한 곳,

         

       그런데….

         

       “…응?”

         

       낡은 빌라인 우리 집 앞에 어울리지 않는 웬 검은색 승용차들이 줄 세워 서 있었다.

         

       …왠지 익숙한 차들이었다.

         

       “서, 설마…!”

         

       그걸 보자마자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고….

         

       “예, 예린아-! 호에에에에엥-!!”

         

       “이, 이제 저희 딸이랑 얘기하시면 돼요…! 아시다시피 저희 집 가장이라….”

         

       …내 예상이 맞았는지 우리 안에는 울고 있는 부모님들과 양복을 입은 검은 장정들이 가득했다.

         

         

         

         

         

         

       **

         

         

         

         

         

       후우우우-!

         

       “오랜만이구나.”

         

       “…예,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우리 집에서 별다른 허락도 없이 담배를 뻑뻑 피우는 이 아저씨의 이름은 강형만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채업자고…, 우리 엄마, 아빠가 이 아저씨한테 자주 돈을 빌려서 안면식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강형만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저희 부모님이 또 돈을 빌렸나요?”

         

       “그래.”

         

       시발.

         

       혹시나는 무슨. 역시는 역시다.

         

       나는 순간 현기증이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강형만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아저씨, 저도 담배 한 대만요.”

         

       “…뭐?”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기겁을 한 것은 우리 부모님들이었다.

         

       “뭐어어어어?! 담배?!”

         

       “예린아-!! 그게 무슨 소리니!! 담배라니!! 남자들은 담배 피우는 여자 싫어해! 그리고 너는 나중에 부잣집으로 시집가야 하는데 담배를 피면…!!”

         

       우리 부모님의 꿈이 나를 재벌집으로 시집 보내서 인생 피는 거였다.

         

       근데 시발 그러면 담배가 안 마렵게 처신을 하시던가.

         

       이렇게 빚을 지는 게 도대체 몇 번째냐고!

         

       툭.

         

       “……?”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머리를 부여잡는데 이를 가만 보던 강형만 아저씨가 내 앞에 무언가를 건네었다.

         

       “…네 선택이니 존중하마. 정 피고 싶다면 펴라.”

         

       그것은 한 까치의 담배와 라이터였다.

         

       “그래도 나는 추천하진 않는다. 담배를 핀다고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

         

       나는 그것을 들고 불을 붙일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기껏 깨끗한 폐를 가지고 다시 태어났는데 고작 이런 일로 다시 담배를 피우기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 잘 선택했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고개를 숙이자 강형만이 담배를 가져가고 내 앞에 다른 종이를 놓았다.

         

       “…이건 뭐죠?”

         

       “너희 부모가 빌려간 돈의 차용증이다.”

         

       시발.

         

       나는 곧바로 이번엔 엄마, 아빠가 얼마를 빌렸는지부터 확인했다.

         

       200,000,000원.

         

       “2천만원인가요…? 하아…, 이 돈을 또 언제 갚….”

         

       “2천만원이라니, 잘못 본 것 같은데.”

         

       “…예?”

         

       “다시 한번 금액을 확인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기겁하는 것과 동시에 차용증을 들고 다시 금액을 읽었다.

         

       ‘공이…, 하나, 둘…, …….’

         

       아.

         

       2천만원이 아니라 2억이었구나.

         

       툭.

         

       그 현실감 없는 금액에 나는 차용증을 떨어뜨리고 부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둘 중 누구에요? 2억이나 빌린 사람이…?”

         

       “…헤헷, 한 명이 빌린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같이 빌렸단다.”

         

       “같이 돈을 빌리셨다고요? …왜요? 아직 돈은 남았죠? 예? 2억이나 되는 돈을 다 쓰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내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외치니 아빠와 엄마가 머쓱 웃다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게 말이다….”

         

       스윽-.

         

       그것은 코인 계좌였다. 그것도 잔고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엄마가 텅 비어 있는 코인 계좌를 가리키며 머쓱한 듯 헤헷 웃었다.

         

       “네 외삼촌이 무조건 뜨는 종목이라고 해서 넣었더니 상장폐지를 해 버린 거 있지.”

         

       “그래서 다 날렸다. 아하하,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 그래도 네 외삼촌을 너무 미워하지는 마려무나.”

         

       “…….”

         

       나는 그 말대로 외삼촌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빠, 엄마가 존나게 미웠다.

         

       ‘2억을…, 도대체 어느 세월에 갚….’

         

       덜덜.

         

       얼굴은 새파래지고 손은 벌벌 떨린다.

         

       스윽-.

         

       그런 내게 아빠와 엄마가 다가와 양쪽 어깨를 강하게 안아 주었다.

         

       “걱정 마렴, 예린아. 그 어떤 시련이 닥쳐도 우리 가족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가족의 허물은 원래 서로서로 덮어 주는 법인 거 알지? 그래서 말인데….”

         

       엄마가 덜덜 떨리는 내 손을 부여잡고 귀에다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 월급날인데 알바비 들어왔지? 우선 급한대로 그것부터 빚 갚는데 쓰자꾸나.”

         

       “아저씨, 저 그냥 담배 주세요. 아, 안 피곤 못 버티겠어요…!”

         

       “담배는 절대 안 돼-!!”

         

       여고생이고 뭐고 깨끗한 폐고 뭐고 담배 없이 못 참을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엄마, 아빠는 하나뿐인 딸이 담배 피는 걸 필사적으로 막았다.

         

       “담배 같은 거 피면 재벌가로 시집 못 간다니까-!!”

         

       “알지?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미성년자인 딸이 담배에 손대도록 놔두는 정신 나간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 방면에서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빌어먹을 정도로 참 부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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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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