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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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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불문 게임 공략 전문, 100만 뮤튜버 김공략.

         

       내게 따라붙는 수식어, ‘재능충’.

         

       사실 이 뒤에는 피나는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그걸 토대로 연습하고, 성공하기까지 반복한다.

         

       공략을 찍기 위해 잠도 줄여가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게임에만 몰두. 이러면 일주일 이내에 공략 영상이 하나 완성된다.

       

       이것이 나의 일이다.

         

       “후우. 이번 것도 됐네.”

         

       이번에도 무사히 별 탈 없는 공략 영상을 하나 찍어 올렸다. 최근에 나온 인기 게임이라 정보가 그다지 없어 힘들었는데, 시간을 때려 박아 넣으니 어찌저찌 가능했다.

         

       ‘반응은 밥 먹으면서 봐야겠다.’

         

       나는 음식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플라스틱 포장 용기에 들은 뜨끈한 음식을 먹으며 댓글을 확인했다.

         

       [와, 이걸 이렇게 하는구나.]

       [아니, 버그 활용을 이렇게 한다고?]

       [제작사 개억울할 듯 ㅋㅋ]

       [잘 봤습니다.]

       [이 사람처럼 게임 할 수 있으면 재밌겠네.]

       [출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깸?]

       …

       …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화제의 인기 게임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반응은 괜찮았다.

         

       “후우.”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네.

         

       뮤튜브를 시작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반응은 언제나 무섭다. 잘못하면 한순간에 몰락해버리는 게 이쪽 업계니까.

         

       언제 흥할지 모르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업계.

         

       이런 위험한 뮤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게임 공략 뮤튜브는 내게 천직이었다.

         

       다만 천직이라고 해도 모든 게 즐거운 건 아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독자들의 반응은 언제나 두려웠고, 나이를 먹고 난 뒤가 걱정되어 불안감에 휩싸인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어, 벌써 다 먹었네.”

         

       잡생각에 빠져서 무의식적으로 젓가락질을 했더니 금세 다 먹어버렸다. 나는 빈 용기를 적당히 씻어 봉투에 버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댓글 반응이나 더 확인해볼까.’

         

       [김공략 님, 혹시 다음으로 하실 게임이 있으신가요? 없으시다면 ‘로맨스 판타지 소미레 편’이라는 게임 공략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로맨스 판타지 소미레 편?”

         

       이름부터 뭔가 이상하다. 미연시 같은 게임인가?

         

       “후원해주시는 분이네?”

         

       원래라면 게임 이름만 들어도 이상한 느낌이라 넘길 테지만, 후원까지 하시는 구독자님이니 뭐…….

         

       ‘검색이라도 해볼까.’

         

       나는 규글에 검색했다. 일단 후기나 정보라도 찾아보기 위해서.

         

       “음…….”

         

       이 게임은 여성 유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남자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역하렘 게임. 거기에 따라오는 독특한 개성과 수려한 외모.

         

       ‘인기가 있을 만도 하네.’

         

       남성 유저인 내가 봐도 괜찮은 게임인데 여성 유저들은 오죽할까.

         

       ‘로맨스 판타지 소미레 편’의 갤러리, 일명 ‘로소갤’의 반응을 살폈다. 정보를 얻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으니.

         

       들어가자 보이는 글들은.

         

       [이 게임 난이도 왜 이럼?]

       [역하렘 게임 하러 왔는데 죽고만 있다.]

       [미연시인 줄 알았는데 그냥 미친 게임임.]

       [제작자 미친 거 아님?]

       [힘들어도 남주들 줍는 재미는 있다. 성취감이 장난 없음 ㅋㅋ]

       [마지막 엔딩 본 사람 아직도 없지?]

       [프란체 데카르트 또 죽였어 ㅋㅋ]

       [프란체 데카르트만 100번은 죽인 거 같다.. 최종 엔딩은 언제 볼 수 있냐..]

         

       “응?”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그냥 평범한 미연시가 아니었던 건가? 나는 더 알아보기 위해 수팀에서 ‘로판소’를 검색했다.

         

       “뭐야.”

         

       ‘로판소’라는 이름과 역하렘이라는 키워드와는 전혀 관계 없는 소울라이크 장르였다. 죽으면서 배우고, 또 죽으면서 클리어해야 하는 게임.

         

       그것도 모자라서 남캐들을 파티원으로 들여가며 같이 공략을 진행하는 기괴함까지.

         

       소위 말해서 근본이 없는 게임이었다.

         

       ‘아니, 여성 유저들을 타깃으로 잡은 게임인데 소울라이크?’

         

       소울라이크 장르는 남자들도 기겁한다. 난이도가 극도로 어려울뿐더러,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고 나서야 클리어할 수 있는 장르다.

         

       요컨대 이런 느낌이다. 남주들을 줍기 위해 죽고, 남주들과 엮이기 위해 죽고, 역하렘을 만들기 위해 또 죽는다.

         

       왜 그 구독자분이 이 게임의 공략을 요청했는지 알 것 같다. 캐릭터들은 수집하고 싶은데 난이도가 너무 극악이라 엔딩을 직접 못 보는 게 억울했던 거겠지.

         

       지금까지 온갖 장르의 게임을 마주하며 공략을 했다. 즐거웠던 초심과는 다르게 이젠 그저 일한다는 생각으로 공략 영상을 찍었다. 그런데 이 기괴한 게임을 보니 왠지 호승심이 생겼다. 마치 날고기처럼 생생해진 기분.

         

       “오랜만에 초심이 떠오르네.”

         

       나는 곧바로 ‘로판소’를 구매했다. 가격은 5만 5천 원. 설치하면서 갤러리에 들어가 여러 정보들을 수집했다. 이 게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히든피스는 어디서 구하는지, 등등.

         

       다행히도 기존 유저들이 파훼한 정보들과 클리어 영상 같은 게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설치가 끝났다.

         

       “가볼까.”

         

       이 기괴한 게임을 클리어하러. 이 사람들을 위해 공략 영상을 찍으러.

         

         

       * * *

         

         

       ‘로판소’를 플레이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째.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고 밥도 먹지 않았으며 휴식도 취하지 않았다.

         

       이 게임은…….

         

       [YOU DIED]

         

       다른 소울라이크 게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웠다.

         

       “미치겠네.”

         

       기존 소울라이크와는 달리 더 까다롭고 생소한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인지, 마냥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다행히 기본 루트들의 보스인 프란체 데카르트를 죽이는 데 성공해 영상으로 만들었다만, 최종 진 엔딩이 문제였다.

         

       최종 진 엔딩의 조건은 등장하는 모든 남주를 살려야 하고, 숨겨진 서브 퀘스트들도 전부 클리어해야 하며 모든 히든피스까지 얻어야 한다. 거기에 새로운 보스의 등장.

         

       ‘이렇게 어려운 게임은 진짜 오랜만인데.’

         

       오랜만에 벽을 느껴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임성만 따져보면 개씹똥좆망겜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최악이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 여기까진 다 좋아. 생소한 시스템. 엔딩을 보기 위한 난이도 높은 조건. 이런 건 백 보 양보해서 괜찮다, 이거야. 근데…!

         

       “아오, 제발!”

         

       파티원으로 고용된 제국의 황태자. 그리고 소 공작이라는 놈들이 진짜 욕 나올 정도다.

         

       ‘로판소’의 핵심은 파티다. 플레이어의 캐릭터인 주인공, 소미레는 서포팅 밖에 못하기 때문에 딜러와 보조 역할을 맡아주는 남주들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파티의 핵심인 황태자와 소 공작이 오더는 안 듣고 제멋대로 움직이니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다.

         

       “와, 공략 영상 찍으면서 이렇게 막혀본 적은 진짜 오랜만이네.”

         

       집중력이 떨어져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스읍.”

         

       후, 하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나며 뿌연 연기가 모니터를 가렸다.

         

       “내가 놓친 게 있나?”

         

       혹시나, 싶어 갤러리로 들어가 지금까지 밝혀진 캐릭터들의 특성을 확인했다.

         

       첫 번째로는 망나니 미친놈 황태자를 확인하자.

         

       +

         

       이름: 레제프 페델리안

       소개: 제국의 황태자

       전투 랭크: A

       직업: 소드 마스터

       패널티: 다혈질, 광란, 열등감

         

       +

         

       “이러니 그 지랄을 했던 거구나.”

         

       패널티에 다혈질, 광란, 열등감이 섞여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고 있다. 생긴 것도 머리에 라면을 박아 넣은 듯한 노란 곱슬머리라서 비호감이었는데 패널티를 보니 더 비호감이 되었다.

         

       “하아…….”

         

       다음은 버러지 소 공작이다.

         

       +

         

       이름: 카서스 페르시아

       소개: 공작가의 후계자

       전투 랭크: A

       직업: 소드 마스터

       패널티: 집착광, 소시오패스, 광란

         

       +

         

       이 새끼도 이럴 줄 알았다. 버러지 소 공작과 망나니 황태자 듀오. 그냥 단순하게 미친 새끼들이었어.

         

       버러지와 망나니. 누가 지은 별명인지 몰라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참고로 내가 지었다.

         

       이런 캐릭터들을 가지고 대체 어떻게 최종 진 엔딩을 보라는 건가.

         

       실제로 이 게임을 오래 해온 유저들이 많은 갤러리에서도 최종 진 엔딩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쯧.”

         

       일일이 캐릭터성에 관해서 뭐라 할 필요는 없지. 특성도 확인했겠다, 나는 그냥 공략만 하면 되는 거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공략을. 아마도 이건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엔딩일 거다.

         

       게임을 재개하려던 그때.

         

       “아.”

         

       새로 등장한 최종 보스의 특성을 확인하지 않았다. 미친 난이도를 가진 보스.

         

       나는 그의 특성을 확인해봤다.

         

       +

         

       이름: 진 바렌베르크

       소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망국의 왕자

       전투 랭크: S

       직업: 분노로 이성을 잃은 소드 마스터

       패널티: 없음

         

       +

         

       “와.”

         

       어쩐지. 괜히 어려운 게 아니었다.

         

       수백 가지의 패턴. 아무리 때려도 줄지 않는 체력. S급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전투력. 여기에 모자라서 패널티도 없다.

         

       “제작자가 그냥 또라이네.”

         

       진짜 이걸 여성향 역하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거냐…?

         

       “후.”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았다. 한 번 깨기로 마음먹은 이상, 끝을 봐야 풀리는 성격이니까.

         

       ‘정신 차리자. 모든 게임은 클리어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법이야.’

         

       특성도 확인했겠다,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공략을 완성하는 것뿐.

         

       게임을 재개했다. 세이브 포인트는 최종 보스 직전인가.

         

       나는 곧장 황태자와 소 공작이 흥분해서 뛰쳐나가도록 유도했다. 예정대로 둘이 같이 달려들었다.

         

       그들에게 모든 서브 남주들을 붙여 보조하도록 만들고, 본대는 성녀인 내 캐릭터 혼자만 남겨둔다.

         

       최종 보스를 노리고 달려든 남주들이 숫자로 밀어붙이고 있다. 상황이 좋다. 이대로만 가면 클리어다. 꼴깍. 긴장감에 침이 무겁게 넘어가 돌덩이를 삼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주변에서 달려드는 잡몹의 모든 공격을 피하는 것. 컨트롤에 의지하는 공략 방식이라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건 패턴과 반응해야 할 점을 알려주면 해결될 거다.

         

       타닥. 타닥. 탁. 타닥. 타다닥.

         

       키보드에 올려진 왼손과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휘두르는 검을 구르기로 피하고 날아오는 화살을 보호막으로 막는다.

         

       본래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구르기란, 잘만 사용하면 무적의 기술인 법. 나는 방금 구르기와 기본 스킬인 보호막만으로 모든 공격을 흘려냈다.

         

       앞에서는 남주들이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최종 보스와 싸우고 있다. 이대로 내가 모든 패턴을 피해가며 서포팅만 해준다면 클리어할 수 있을 거다.

         

       “제발, 제발!”

         

       과도한 집중력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 손가락과 손목은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CLEAR!]

         

       마침내 최종 보스를 잡았다.

         

       “나이스, 나이스!”

         

       온갖 춤사위를 벌이며 공략에 성공했다는 것에 심취했다. 나는 이 게임의 유저들 중에서 유일하게 최종 진 엔딩을 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음?”

         

       클리어한 직후 시나리오 영상으로 나오는 최종 보스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모니터를 뚫고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 그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찾았다.」

         

       실제로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 일순 소름이 돋아 팔을 매만졌다. 닭살이 올라와 있었다.

         

       “뭐야…?”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최종 진 엔딩을 처음으로 클리어한 플레이어입니다.]

       

       [숨겨진 루트 개방.]

         

       [도전하시겠습니까?]

         

       방금까지 지옥 같은 마지막 엔딩을 보는 데만 그 고생을 했는데 숨겨진 루트까지 플레이하라고?

         

       “안 해.”

         

       숨겨진 루트는 개뿔이. 나중에 영상 올리고 사람들이 요청하면 유튜브 홍보 겸에 해보지 뭐.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게임을 종료했다. 어차피 공략도 성공했겠다, 잠 좀 자려고 했건만.

         

       “뭐야?”

         

       컴퓨터가 말을 안 듣는다.

         

       “게임을 너무 오래 켜놔서 과부하 걸렸나?”

         

       이 망할 게임은 컴퓨터까지 과부하 시킨다. 그냥 켜놓고 자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피곤했기에.

         

       “마지막으로 편집자한테 영상만 보내고…….”

         

       녹화한 영상을 편집자들에게 보냈다. 이걸로 내 역할은 끝. 나머지는 편집자들이 작업을 끝내고 영상을 올려줄 거다.

         

       “어우.”

         

       풀썩. 침대에 머리를 박았다. 스르르. 점점 눈이 감겨왔다…….

         

       […….]

         

       지이잉.

        

       [응답이 없어 자동으로 숨겨진 루트에 진입합니다.]

         

       [플레이어의 캐릭터 – 진 바렌베르크]

         

       [난이도 – 극악무도]

         

       [한 번 죽으면 끝이라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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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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