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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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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셰. 반복적으로 남용되어 더 이상 흥미롭거나 창의적이지 않은 개념, 스토리, 아이디어.

         

        혹자는 클리셰가 진부해서 싫다고 하지만, 나는 클리셰 범벅인 영화나 소설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다.

         

        오로지 아이디어 계의 베스트셀러들만 살아남아 클리셰가 될 수 있으니까.

         

        클리셰가 될 때까지 남용된 아이디어로 가득한 작품이란, 반대로 생각해보면 최소한의 퀄리티는 보장해주는 작품이다.

         

        그러니 마왕에게는 특색이 정해진 사천왕이 있어야 하고, 사이버펑크 세계에는 묘하게 퇴폐적이면서 아름다운 여자 안드로이드가 나와야 하며-

         

       TS가 되면 당연히 미소녀여야 하고, 별 생각 없이 시작한 방송은 대박이 나야 하며,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한다.

         

        “아.”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나레이션과 함께 검은 망토를 휘감은 캐릭터가 허물어지듯 쓰러진다. 평소라면 절대 죽을 각이 아니었는데.

         

        이게 다 몸이 달라진 탓이다.

         

        컴퓨터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든 김에, 길게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어깨를 풀어준다. 가져보긴 커녕 솔직히 본 적도 없는 크기의 거대한 무게추가 두 개 생긴 후, 어깨 결림이 치유불가 상태이상처럼 붙어있는 기분이다.

         

        [입털면던짐(성기사): 도적 어디 삼?]

        [입털면던짐(성기사): 진짜 궁금해서 그래]

        [입털면던짐(성기사): $@(! 진짜 그냥 너 같은 !$*(!들이 사는 고아원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그런다니까?]

        [솜사탕(사제): 성기사님 진정하세요 아직 괜찮아요]

         

        나는 클리셰대로 미소녀가 되었다. 하지만 인생은 소설도 영화도 아니기에, 내 삶에 다른 클리셰는 적용되지 않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처음보는 여자가 되어 버린지 6개월.

         

        나는 방송을 하지도, 외출을 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3평짜리 방의 주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입털면던짐(성기사): 아니 @$*( 도적 이제 탈주까지 했네 진짜 이 * 같은 질병겜]

        [솜사탕(사제): 우리 아직 해볼만해요…]

        [입털면던짐(성기사): 해볼 만한 건 도적 ㅇㅁ고]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생각한 걸까.

       

        성기사가 패드립을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이트 오브 나이츠 – 줄여서 나오나 – 유저는 화가 나 있다. 5명이 모이면 1명이 쓰레기라는데, 나오나 12명이 모이면 2명은 쓰레기고 2명은 분노조절장애며 2명은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다.

         

        우리 팀의 성기사가 패드립만으로는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싸우다 말고 본진의 첨탑으로 돌아가서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전체) 입털면던짐(성기사): 오픈요]

         

        살짝 눈을 올려보니 스코어는 10킬 대 27킬.

         

        아직 오픈할 정도는 아니다.

         

        팀원들을 다독여줄 타이밍. 나는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따먹(도적): 흠…그 정돈가?]

        [아크(마법사): 저거 진짜 정신병잔가]

         

        수상할 정도로 화가 난 사람들의 대열에 마법사가 합류했다.

         

        나오나를 하다보면 화가 나는 건 흔한 일이라지만, 굳이 나한테 화를 내는 이유는 알기 어렵다.

         

        나는 총 27데스 중 고작 2데스를 했고, 도적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범인이 될 이유는 없다.

         

        이게 다 도적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겨우 28데스 중 3데스를 한 도적부터 욕하고 시작하다니.

         

        이거 도혐이에요 도혐.

         

        [항복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 ■ ■ ■ ■ □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5명의 열띤 의지에 의하여 게임이 종료되었다. 우리 성채에 꽂혀 펄럭이던 깃발이 비참하게 불타고, 첨탑이 붕괴하는 장면을 끝으로 화면이 멈춘다.

         

        =패배=

         

        [아크(마법사): 아따먹 너 진짜 어디 사냐 !$*@]

        [아크(마법사): 얘 주소 100만원에 삼]

        [아크(마법사): 전번도 50만원에 삼]

         

        성기사는 게임에서 쌓인 화를 채팅으로 시원하게 풀었는지 바로 다음 게임을 돌리러 떠났지만, 나름 조용히 있었던 마법사는 아직 화가 남아있는지 결과창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게임을 진 건 나도 안타깝지만, 이번 게임 패배에 내 지분은 5%도 되지 않는다. 29데스 중 겨우 4데스를 했기 때문 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게임이 망한 건 성기사가 제 화를 못 이겨서 혼자 적진으로 돌격하며 우리 진영을 붕괴시킨 시점부터이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영역이 무너져서 우리 궁수가 포지션을 잡을 수 있는 지역이 좁아졌고, 마법사는 캐스팅을 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상대방 광전사가 노마크로 우리 사제를 탈탈 털어먹을 수 있게 된 건 덤이고. 

         

        물론, 스쳐 지나가는 팀원들에게 굳이 이걸 다 설명할 이유는 없다.

         

        나는 다시 한번 어깨를 스트레칭하고, 물을 들이키며 가득 들어온 친구추가 요청들을 삭제했다.

         

        [아따먹(도적): 지지요]

         

        그리고 우리 팀원들과 상대에 대한 예우를 표한 뒤, 책상 위에 뒤집어 두었던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검은 화면에 설핏 비치는 여성은 어딘가 나른해보인다. 살짝 내려간 눈꼬리와, 작고 앙다물어진 입술 탓일까.

         

        검은 화면에서조차 티가 날 정도로 창백하게 흰 피부와, 칠흑처럼 어두운 머리카락의 대비 탓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무표정하고 피로해보이는 모습조차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낼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소위 ‘굴욕 각도’여야 할 각도임에도 탄성이 나올 정도의 미모.

         

        이제는 이 얼굴이 나라는 게 적응될 법도 한데, 아직도 가끔은 흠칫 놀란다. 처음엔 화장실에서 한참을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나는 작게 미소지으며 핸드폰 화면을 켜고, 볼륨을 올렸다.

         

        * * *

         

        “아니 이거 진짜 미친놈이라니까요?!”

         

        두 눈을 희번뜩 거리는 한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기어를 집어던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이 분 왜케 화났나요?』

        『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흠…그 정돈가?』

         

        “저 진짜, 진심, 나오나고 방송이고 다 접고 얘 죽이러 갈 거예요. 신상 아시는 분 아무나 제발 제보주세요.”

         

        『아 ㅋㅋㅋ 이게 대저방부* 중 ‘저’의 힘?』

        『스트리머의 무게를 견뎌라 아크..! 스트리머의 무게를 견뎌라 아크..! 스트리머의 무게를 견뎌라 아크..! 스트리머의 무게를 견뎌라 아크..! 스트리머의 무게를 견뎌라 아크..! 스트리머의 무게를 견뎌라 아크..!』

         

        “아니 나도 스트리머니까 저격 어느 정도 있는 거 당연히 견뎌. 근데 이건 너무하잖아아아악!”

         

        『ㅋㅋㅋㅋㅋㅋ아따먹은 좀 악질이긴 해』

        『아따먹 저격 벌써 5개월째 아님?』

        『아따먹 전적 검색했는데 5개월동안 아크 저격 말곤 겜도 안 함ㅋㅋㅋㅋㅋㄹㅇ 또라이새끼임 저거』

         

        씩씩거리며 머리를 헝클어트리던 아크가 한숨을 푹 내쉼과 동시에, 방송 화면이 스르륵 바뀐다.

         

        아크의 (보정이 상당히 들어간) 사진들이 순차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방종용 화면이다.

         

        “아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오늘 방종합니다.”

         

        『아』

        『ㄴㄴㄴㄴㄴㄴㄴㄴ』

        『아 제발 나 방금 치킨 시켰다고』

        『나』

        『어제도 휴방했는데 오늘 1시간만에 런한다고?』

        『락』

        『나』

        『락』

         

        “죄송합니다. 저 진짜 지금 나오나 큐 돌리면 컴퓨터 부숴버릴 거 같아요오오……. 대신 내일 꼭 일찍 킬게요.”

         

        한숨섞인 아크의 목소리가 어느새 반쯤 울먹거리고 있었는데도, 시청자들의 『나』『락』『나』『락』행진은 끊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름 준수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여자 스트리머들과는 달리 시청자들과의 매운맛 티키타카를 유도하며 이를 주 재미로 삼던 아크의 방송 기조 탓이었다.

         

        도저히 진압 기미가 보이지 않는 채팅창이 대환장 파티로 이어지던 그 때.

         

        =쿵=

         

        『???』

        『?』

        『??』

        『방금 큐 잡히는 소리 아님??』

        『아 ㅋㅋㅋㅋㅋ 방장 갈수록 연기 실력만 느네』

         

        “속았지, 아따먹 이 개 같은 놈아! 내가 방종할 때 하더라도 너 없는 게임 한 판은 하고……어?”

         

        * * *

         

        [아먹따: 도적 지하갈게요]

        [아크: 아]

        [아크: 아 진짜]

        [아크: 님 저한테 진짜 왜 그러세요]

        [아먹따: ??]

        [아크: 진짜 제발 저격 그만 하면 안 돼요?]

        [아먹따: 저격 안ㅣ에요]

        [아크: ??? 아니 여기가 챌린저도 아니고 하루에 6 번은 만나고 있는데?]

        [아먹따: 신기하네요]

         

        큐를 돌리지 않는 척을 하며 큐를 잡는 건 시청자 참여를 회피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화면을 가리고 큐를 돌리든, 자리를 비운 척을 하든, 방종하는 흉내를 내든 상관 없다.

         

        초보적인 수단에 변형을 조금 준다고 해서 초보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오랜 시간 함께 게임을 즐겨온 내게 아크의 심리와 행동은 손에 잡히듯 보이니까.

         

        이럴 땐, 부계정들을 동원하여 시간 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큐를 잡으면 그만이다.

         

        다시 한 번 찌뿌둥한 어깨를 스트레칭하고, 마우스를 잡았다.

         

        이번엔 이겨야지.

         

        이제는 아득한 전생처럼 느껴지는, 남자였던 시절부터 나는 나오나에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저방부 : 대리, 저격, 방플, 부캐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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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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