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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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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신교의 교인은 수년 만에 나를 만났음에도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불평도 불만도 없었다. 그저 신교에 머무르던 때처럼 정중할 뿐.

       

       

       “왜 왔느냐.”

       

       인사 대신 물음을 던졌다. 용건만 말하고 꺼지란 의미였다. 교인은 서운하지도 않은 듯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담담히 답을 꺼냈다.

       

       

       “천마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은거를 택하고 지겹도록 들은 말이었다.

       

       자신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 돌아와 달라. 당신의 존재가 필요하다.

       

       주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개새끼들 마냥 달라붙는 교인들의 존재는 나에게 귀찮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째서 내가 필요하지?”

       “천마신교에 천마님께서 없어선 안 되니까요.”

       “아해야. 천하의 육존이 내 손에 스러졌고. 구파일방과 사대문파의 최고수들이 내 손에 명을 달리했다. 지금 무림에 남은 것이라곤 내가 두려워 도망친 겁쟁이와 나에게 다가오지도 못한 반푼이들 뿐. 그런데도 내가 필요하더냐?”

       “바라는 건 도움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입니다. 천마시여.”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저들이 어찌 생각하던 간에 난 신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 곳에서의 추억은 내 오랜 악몽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들 뿐이었으니.

       

       

       “돌아가거라.”

       “그럴 수 없습니다.”

       “천마의 직위가 필요하다면 주겠다.”

       

       모든 은원을 마무리한 지금. 나에게 천마라는 이름은 짐덩이에 불과했다.

       

       

       “아시잖습니까. 이 세상의 천마는 단 한사람. 당신 뿐입니다. 그 누구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래서 신교의 교인이 싫다. 저들은 무림의 무인이 아니라 천마라는 신을 믿는 광신도였다.

       

       내가 막 전생했던 그 날부터 신교는 나에게 완전무결한 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어떤 일 앞에서도 태연하고. 누구보다 강인하고 지혜로운. 자신들을 하늘로 이끌어 줄 신을 만들고자 했다.

       

       저들의 광기에 희생된 입장에서 말하자면 저들은 지금 천마신교가 남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 내 어느 장로에게 입은 은혜만 아니었더라면 신교부터 박살을 냈을 테니까.

       

       

       “고개를 들어봐라.”

       

       눈앞의 교인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이 남자가 화경의 고수라한들 나를 감당할 순 없으니.

       이 날파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더 이상 피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묻겠다. 천마신교의 일원칙이 무엇이더냐.”

       “…강자존입니다.”

       “굳이 네 뜻을 관철하고 싶다면 덤비거라.”

       

       *

       

       싸움의 여파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숲을 보다 한숨을 내뱉었다.

       

       또 은거지를 옮겨야 하겠구나. 내 자취를 감추려 그토록 노력을 하거늘 어찌 저리 잘 찾아내는 걸까.

       

       집착이 무섭구나. 무서워.

       

       머릿속으로 내가 여태 가지 않았던 장소를 떠올려 보았다. 숨을 만한 곳은 다 건드려 본 것 같은데.

       

       이렇게 된 이상 신선 놈들의 거처라도 빌릴까. 그 놈팽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역겹긴 하다만 한 번 싹 쓸어버리고 나면 좀 조용해지겠지.

       

       아니다. 그랬다간 괜히 소란이 나서 내 존재가 알려지겠지.

       

       하아. 방법이 마땅찮구나.

       

       고민을 하며 숲을 나아가던 중 저 멀리서 걸어오는 형체가 보였다.

       

       인간은 아니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자신의 검은 줄무늬를 과시하는 짐승.

       

       호랑이라. 내 곰은 많이 보았다만 호랑이를 보는 건 오랜만이군. 날 보고 도망치지 않는 짐승을 보는 건 더 오랜만이고.

       

       평범한 생물은 아닐 터. 영물 같은 종류이려나.

       

       거 덩치도 두툼하고 털도 보슬보슬한 것이 쓰다듬는 맛이 있을 것 같구나.

       

       “백아라. 맞나?”

       

       영물의 입에서 사람의 말이 흘러나왔다.

       

       참으로 세상은 넓구나. 내 하다하다 사람 말을 하는 짐승을 보게 될 줄이야.

       

       심지어 짐승이 입에 담은 것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전생의 이름이었다.

       

       여자 같단 이유로 싫어했었던. 이제는 안 쓴지가 백 년이 넘어가서 뜻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그립고도 희미한 내 이름말이다.

       

       “다시 묻지. 백아라 맞나?”

       [맞네. 너무 오래된 이름이라 떠올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무림에 떨어진 지 너무 오래라 한국말조차 잊었나.”

       

       한국말? 그제 서야 깨달았다. 영물이 쓰는 언어가 무림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미안하다. 일이 많이 꼬여서 늦어버렸군.”

       [무슨 소리지?]

       “지금이라도 널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주겠다.”

       

       이해했다. 그러니까 나를 무림에 보낸 원흉이 이 놈이라는 거구만.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영물은 내 미소를 호의로 받아들인 듯 설명을 이으려 했으나 내가 그걸 가로막았다.

       

       [아마. 내가 천마의 딸이 되고서 1년이 지나기 전이었다면 자네를 반겼을 걸세.]

       

       영문도 모른 채 무림에 떨어져서는 온갖 극악한 수련을 받을 무렵이었다면.

       

       천마의 딸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모두가 소리쳤기에. 하지 않으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되면 고통 속에 내던져졌기에. 억지로 지옥 같던 하루를 살던 시절이었다면.

       

       하소연 할 데가 없어서 이불 속에 틀어박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던 때였다면 나는 분명 이 영물을 두 팔 벌려 환영했을 것이다.

       

       그 땐 정말 전생을 그리워했으니까. 평온하고도 평화로워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고대하던 그 시절을.

       

       [허나 지금은 너무도 긴 시간이 흘렀어.]

       

       많은 일이 있었다. 집을 그리워하던 여자아이는 천마가 되었고. 두 손에 무수한 죄와 원한을 담았다.

       

       허송세월로 하루를 보내던 남자아이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도 긴 시간이 말이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거절은 받지 않겠다. 이건 정해진 일이다.”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순 없네. 설령 하늘일 지라도.]

       

       내기를 끌어 올렸다.

       

       눈앞의 영물이 무얼 숨기고 있는지는 모른다. 차원을 넘나드는 괴물이니 가히 신에 가까운 존재일 가능성도 높다.

       

       강하겠지. 분명 강할 터지만 상관없다. 무엇이 도사리고 있건 간에 힘으로 깨부수면 그만인 것을.

       

       

       “싸울 생각인가?”

       [자네가 이기면 내 자네 말을 듣지. 마음대로 하게나. 허나 내가 이긴다면 나도 내 마음대로 하겠네.]

       “어리석군.”

       [하하. 화풀이라 생각하게. 솔직히 말해. 자네들 때문에 영 고생을 한 건 사실이지 않은가.]

       

       발을 앞으로 내딛자 뒤따라 붙은 강기가 모든 걸 짓눌렀다.

       

       나무가 꺾이고. 바위가 부서졌고. 대지가 진동했다. 세계에 금을 내는 압도적인 힘 속에서도 영물은 네 다리로 꿋꿋이 서 있었다.

       

       아예 짓눌러 형체조차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거늘. 대단하구나.

       

       

       “이건 대체.”

       [천마의 발걸음은 세상 위에 새겨지는 법이라네.]

       “…천마군림보.”

       [정답일세. 자네 무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모양이군.]

       

       자아. 그럼 그 지식이 어디까지 닿는지 시험을 해 볼 시간이로구나.

       

       

       *

       

       눈을 뜨자 하얀색 천장이 보였다.

       

       여기는.

       

       비틀거리다 푹신한 감촉에 굳었다.

       

       몇 번인가 내가 누웠던 자리를 꾹꾹 눌러보고 이게 뭔가 싶어 시선을 내렸다.

       

       허여멀건한 시트가 씌워진 침대. 아. 그래. 현대로 보내졌지.

       

       이것 참 오랜만이다. 무림에 간 후로 침대라는 걸 써 본 적이 없다. 대개 내 잠자리는 흙바닥이거나. 나무 혹은 돌이거나. 사정이 좋을 적에도 솜이불이 한계였다. 심지어 그 이불도 그리 푹신하진 않았지.

       

       그에 반해 이 침구들은 마음에 든다. 동면하기 전의 짐승을 껴안으면 이런 기분이었지. 그것들은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라서 보드랍고 따뜻하고 푸근했으니까.

       

       잠이 달아나니 주변의 모습이 보였다.

       

       티 하나 없이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하얀색 벽. 무림의 가장 위대한 장인이 만든 것과 비슷한 가구들. 천장 한 가운데 설치된 전구와 여러 백색가전들.

       

       그리운 고향의 풍경이었다.

       

       내가 상대했던 영물은 무인보단 신선에 가까운 존재였다. 가만히 서서 세상의 법칙을 뒤흔드는 그는 분명 강했다. 어지간한 이들이 봤다면 신이 강림했다며 떠들었을 테지.

       

       다만 그는 강했을 뿐 나를 놀래키지는 못했다. 내 어디 사술을 쓰는 이를 한 둘 만나보았고, 신선이랍시고 뻗대는 놈팽이를 한 둘 보았겠는가.

       

       여느 때처럼 그 싸움의 승리자는 나였다.

       

       패한 후 영물은 바란다면 나를 무림에 남겨주겠다고 말했다. 허나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영물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현대에 오리라 마음 먹었기에.

       

       생각해보라. 현대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벽한 은거의 장소 아닌가.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차원을 넘을 순 없으니 교인들은 날 찾지 못한다. 생활환경은 무림보다 훨씬 풍족하고 편안하다. 즐길 거리? 그걸 말로 설명을 해야 하나.

       

       그럴 거면 그냥 수긍하고 오면 되지 왜 싸움을 걸었냐고? 그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무림과 현대는 다르다.

       

       두 곳 모두 대개의 일을 힘으로 해결할 수야 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무림에선 어떤 죄를 저질러도 힘만 있다면 고개를 빳빳히 들고 나댈 수 있지만 현대에서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면.

       

       피를 흘리고 또 흘린 끝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르겠으나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은원을 쌓는 건 질릴 만큼 해봤다. 이젠 그저 평온을 되찾고 싶을 뿐이다.

       

       느긋한 삶을 위해선 몇 가지가 필요했다.

       

       우선은 신분. 그리고 살 곳. 마지막으로 얼마간 놀고먹고 살 수 있을만한 돈.

       

       이러한 기반이 없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해야 한다. 현대의 사회는 이름 없는 이방인에게 친절하지 않으니까.

       

       – 젠장. 그런 게 필요했으면 말로 하라고! 어차피 줄 거였는데!

       

       내 제안을 들은 영물은 제 꼬리로 땅을 쳐대며 짜증을 냈다.

       

       그럼 처음부터 말을 그리 했어야지. 제가 말을 아껴놓고 왜 성을 낸단 말이더냐. 이래서 제가 초월자라 생각하는 것들이 문제다. 저들이 우위에 서는 걸 당연하다 여기니 원.

       

       뭐어. 내 잘못이 없진 않다. 말을 꺼내는 대신 주먹을 휘두른 건 사실이니까. 그치만 말이다. 내가 무림에 떨어진 후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 정도 화풀이는 해도 되는 것 아니냐.

       

       어쨌건 서로 합의 끝에 계약을 맺었으니. 현대로 돌아온 지금 영물이 준 선물을 확인해 봐야겠지.

       

       방 한켠에 있는 탁자 위엔 보란 듯 신분증과 지갑. 그리고 스마트 폰이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 깔린 종이는 영물이 남긴 편지로 보였다.

       

       [네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남긴다.]

       [이 집은 네 명의로 되어있다. 그러니 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돈은 네 명의 계좌에 넣어 뒀다. 비밀번호는 신분증의 생일이니 확인해 보도록.]

       [그 안에 든 것이 평생 쓸 정도로 많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합법적>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길 바란다. 부디 다시 개입할 일이 없도록.]

       [스마트 폰은 네 지문으로 열 수 있다. 사용법은 기억하겠지?]

       

       그럼 기억하고 말고.

       …아마도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천마. 귀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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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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