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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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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우리 이만 헤어져.”

       

       가슴을 후벼파는 날카롭고 차가운 말이 날아왔다.

       차디차고 냉랭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을 던진 것이었다.

       완전히 마음이 없다는 듯한 영혼없는 말투였다.

       

       S급 1위 달성을 축하하며 한껏 들떠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기뻐하고 있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채로 수현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채수현.

       

       이제 막 대한민국의 S급, 아니 모든 헌터의 정점에 올라선 아이.

       나와 수년을 산전수전을 다 하며 끝내 S급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S급의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게 된 날.

       

       그런데 그 축하의 현장에서 말도 안되는 말을 꺼낸 것이다.

       

       “무슨 소리야? 헤어지자니?”

       “말 못들었어? 헤어지자고. 이제 우리 남남하자고.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겠어. 구질구질한 건 싫어서 말이야. 오빠도 구질구질한 건 싫지?”

       

       분명 S급 1위가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낌새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느 커플이나 어느 정도 권태기는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혹은 S급 1위에 다가갈수록 점점 하드해지는 난이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미 앞서있던 S급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다들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부터는 이상증세를 보였다.

       각종 정신병을 달고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덕분에 수현이는 치고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늘 결국에 S급 1위를 달성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

       엄밀히 말하자면 나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보통의 헌터들과는 다른 희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헌터 활동으로 얻은 포인트를 타인에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던전에서 주어지는 퀘스트를 깨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포인트를 자신의 스텟에 분배를 하는 것.

       이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통용되는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사이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던전들로 인해 시작된 헌터의 시대.

       당연히도 스텟은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타인에게도 분배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 상태창 만의 이상한 특징이었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에 꽤 애 먹었었다.

       아무리 찾아보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에? 포인트를 남에게 줘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남한테 왜 줘요? 내가 열심히 했는데? 그리고 주고싶다고 줄 수 있나…?’

       ‘에휴.. 게임 안해보셨어요? 스텟을 어떻게 남에게 줘요. 무슨 돈 같은 것도 아니고.’

       ‘에이. 그런게 되면 부자들이 돈주고 스텟 다 사모을 거 같은데요? 될 리가 있나…’

       ‘게임도 그런 게임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죄송하지만 아직 헌터 협회에 그런 특성이 보고된 적은 없는 것 같네요.’

       

       당연히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헌터 협회 직원까지.

       

       ‘아니. 씨… 이게 진짜 뭘까.’

       

       내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연구 해보고 실험해보면서 익혀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에? 포인트를 남에게 투자할 수 있다고요?’

       

       그랬던 내가 수현이를 만났던 것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던 아이.

       

       그녀의 눈이 반짝였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 오빠… 그럼요. 그거 받는 쪽은 더 빠르게 성장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게임은 잘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엄청 좋은 특성 아닌가…?’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던 아이었다.

       내가 말을 하자마자 바로 이것저것 척척 계획을 세웠으니 말이다.

       

       ‘오빠앙… 그럼 있잖아요. 우리 같이 팀 할래요? 저랑 사귀어요! 오늘부터 1일!!!’

       ‘이거 있잖아요. 우리 둘이 같이 던전다니면서 포인트를 잽싸게 모으는 거에요. 그런 담에 오빠가 저한테 몰아주기 해주시면 제가 2배로 성장하는 거죠!’

       ‘아잉. 오빠.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가 2배속으로 성장해서 빠르게 S급이 된 다음에 오빠를 이끌어주는 거죠. 그럼 오빠는 그 때부터 편하고 빠르게 성장하시는 거고요. 어떠세요?’

       ‘아 오빠. 저 못 믿으세요? 저 수현이잖아요. 채수현.’

       ‘오빠. 저한테 호감있던 거 다 알아요. 몇 년동안 따라다니셨잖아요. 그쵸? 이제 꿈을 이루시는 거예요. 헤헤…’

       

       헤어지자는 말을 듣자마자 과거의 일들이 엄청나게 빠르게 머리 속에 스쳐지나갔다.

       

       ‘하… 어이가 없네…’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여자에 팔려서 좀 많이 멍청한 짓을 했나. 시발…’

       

       “뭐해? 대답 해줘야 할 거 아냐?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뭐 대답 안할 거면 나는 그냥 갈게. 그냥 예의상 대답 기다려주려고 했을 뿐이야. 어차피 오빠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 밖에 없잖아?”

       

       잠시간 상념에 잠겨 있던 도중에 정신을 확 들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야. 원래부터 이게 목적이었냐? 어?”

       

       표정을 잔뜩 구긴 채로 따지기 시작했다.

       

       “뭘? 뭐가 목적이야? 어이가 없네. 헤어지는 데에도 목적이 있어야 해? 나 그냥 오빠가 싫어졌어. 나랑 안 맞아.”

       “뭐?”

       “그리고 오빠. 나 이제 S급이야. 그릭고 오빠는 아직도 E급이고. 우리 급이 맞지 않아. 그리고 언제 올려? 지금까지 개고생했던 걸 또 해야된다고? 어휴. 나는 좀 힘드니까 이제 즐기고 살래. 쉴 거야.”

       

       몸을 휙 돌리더니 그냥 가버리려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야. 장난하냐? 지금까지 내 포인트 받아먹어서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해놓고 이젠 헤어지자고? 장난해?”

       

       나는 좀처럼 화를 내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간의 노력과 추억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는 중이었으니까.

       

       “어휴. 남자가 쪼잔하게. 그깟 포인트 좀 줬다고 유세떠는 거야? 뭐 나보고 어쩌라고? 헤어지니까 줬던 거 다시 내놓으라고 하려는 거야뭐야? 어휴.”

       

       뒤돌아 나가려다 말고 나를 흘깃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봐. 뭐 어떻게 가져갈 건데? 다시 가져가는 방법은 없다며? 어휴. 좀 마음 좀 넓게하고 살아. 지금까지 유세떠는 거 참아주느라 나도 정신적인 피해가 하나 둘이 아냐.”

       “뭐? 정신적 피해?”

       “가져가. 가져가. 어휴. 가져가든가 말든가. 뭐 어쩌라는 건지. 어쨌든 나는 할말 다 끝났어. 나 이제 너무 바쁘거든. 지금까지 포인트 모으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이것저것 외부 요청 다 거절해왔잖아? 그거 앞으로 소화하려면 엄청 바빠질 거야. 어차피 자연스럽게 오빠랑은 멀어질 수 밖에 없었고.”

       

       표정을 찡그리며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을 하는 것이었다.

       

       ‘와. 어이가 없네?’

       

       살면서 이런 뒤통수는 처음 맞아보는 중이었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여도 이런 식의 배신은 당해볼 수 없을 것이다.

       

       사회에서 모든 기본 원리는 주고받기 아닌가?

       이 년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도 못한 년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 원 참.

       

       ‘오빠… 힘들지… 좀만… 힘내… 내가 곧…D급이 될 거니까…’

       ‘오빠… 나 이제 곧 C급이야.’

       ‘휴.. 나 이제 S급까지 얼마 안남았어!! 힘 좀 더 내줘. 오빠~’

       

       ‘하… 시발… 그 달콤한 말들. 나를 가지고 놀았던 거였냐.’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백한 기만행위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저 년 말대로 포인트를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도 모자라서 지금까지 쌓은 포인트도 고스란히 털린 셈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빈털털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나에게 남겨진 것은 E급 헌터라는 최 하위 레벨.

       

       지금까지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인가.

       

       “야. 이 시발. 이 좆같은 사기꾼 년아.”

       “뭐?”

       

       내 말을 듣고는 곧바로 잔뜩 찌푸렸다.

       곧장 반응이 왔다.

       아주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한테 지금까지 사기치느라 고생 했겠네. 아주 고생이 많으셨어. 근데 말야. 너랑 좆같았던 과거,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누구랑 쿵짝이 맞았는 지는 모르겠는데 너랑 끼리끼리인 사람일 테니까 언젠가 너도 이 좆같은 짓 되돌려 받길 바란다. 이 시발년아.”

       

       좀 더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 내 머리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저것 밖에 없었다.

       차라리 상대가 남자라면 힘차게 패기라도 했을 텐데, 여자인데다가 S급이라 무리다.

       싸움을 걸면 오히려 내가 쳐맞겠지.

       

       ‘하. 진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드디어 정점에 도달했다는 해방감과 함께 행복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시원하게 욕을 박아버리는 것.

       평소에 저 년의 성깔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면 어떻게 나올 지 뻔히 알고 있었다.

       

       ‘뭐. 쳐맞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마지막이니까.’

       

       채수현은 내가 뱉은 욕지거리를 듣고는 주먹을 쥔 채로 부들거리고 있었다.

       아주 무섭게 노려보는 표정과 함께.

       

       “어휴 찌질해. 그러니까 차이는 거야. 내가 참아준다. 참아줘. 대신 이거로 말끔하게 끝내. 다시는 연락하지도 마. 차단할거니까.”

       

       어이없는 말과 함께 홱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뭐야. 시발년.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냐?’

       

       분명 나를 한대 칠 법한 상황이었는데도 잘 참아내고는 그냥 가버렸다.

       그렇게나 미련이 없었나?

       

       ‘하… 시발… 어쩌다 이렇게 끝나버렸냐…’

       

       한동안 허탈해져서는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채수현이 나가버리고 시간이 꽤 흐르고 나자 드디어 상황이 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거야?’

       ‘저딴 년한테 꼬라박으려고?’

       ‘하…내 포인트… 시발. 차라리 내 스스로에게 투자했더라면 최소 B급은 되었을 텐데. 시발.’

       

       승승장구하고 있는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헌터로 간 녀석도, 취업을 한 녀석도 모두들 잘 살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하… 나는 이제 뭐하냐…’

       

       힘이 빠져서는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던져보았지만 허탈한 마음을 메울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어? 뭐지…?”

       

       그 동안 상태창이 스스로 빛난 적은 없었다.

       보통은 이용자가 확인을 해야만 켜지는 편이었으니까.

       

       [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타인에게 투자한 포인트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

       [ 회수하시겠습니까? ]

       

       회수라고 써진 빨갛고 커다란 버튼이 눈 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엥? 이게 회수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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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배신당했지만 괜찮습니다ㅎㅎ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he one who boosted your rank. Yet you stabbed me in the back? Fine. Goodbye. I'm taking it back. You're finished now. Thanks to you, I now have an abundance of skill points for a prosperous hunter life. But... after spending some of those points, the S-Ranks are starting to get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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