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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커버접기

        

         “와, 씨발… 카오스 포인트 이 씹새끼들도 진짜 독하다 독해!! 업적엔 세이브 완전 초기화, 수집품엔 업적 초기화 전용 물품??”

         

         치익!!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정신이 혼미 해져서 캔 콜라를 거칠게 땄다.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음료가 꽤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맑아진 머리가 앞으로 진행해야 할 회차와 거기에 소요될 시간을 얼추 계산하자 마우스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짜… 진짜 미친 새끼들아! 뭘 그렇게 꽁꽁 감춰 놓은 건데…!!”

         

         네오 헤이븐이라는. 카오스 포인트 개발사에서 만든 세기의 우주갓겜이자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좆망겜이 있다.

         우주갓겜이면서 동시에 좆망겜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무려 게임 보유자나 게임 평론가의 평가도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고. 커뮤니티 종합 평가도 그에 걸맞게 ‘복합적’을 달성한 상태.

         

         

         닉네임 : 기스하와도

         평가 : 추천

         플레이 타임 : 3,782시간

         내용 : 아직 어떻게하는지 잘모르겠어서;; 좀만 더 해보고 다시 적으러옴 ㅇㅇ.

         

         

         닉네임 : 도전과제완벽주의자

         평가 : 비추천

         플레이 타임 : 10,335시간

         내용 : 씨발개씹썅정신병자새끼들아!!!!!! 이러다나속터져뒤진다고제발…!!! 전체달성률이99.97%에서안움직여!!!!

         

         

         닉네임 : 겜안풀리면짖는개

         평가 : 비추천

         플레이 타임 : 14,627시간

         내용 : 으르르르르르으르르렁컹컹커어커어커걱커엉왈왈왈왈왈왈왈ㅁ어멍머엄ㅇ멍멍푸르르르륵릉꺠갱깽깽깽!

         

         

         닉네임 : 망겜무새처단자6974호

         평가 : 추천

         플레이 타임 : 1,234시간

         내용 : 겜좀어렵다고 찡찡대면서 비춬ㅋㅋ. 난 플탐 맞췄으니까, 나중에 네오헤이븐2 나오면 다시킨다ㅅㄱ.

         

         

         닉네임 : 망겜무새처단자6974호

         평가 : 비추천

         플레이 타임 : 12,345시간

         내용 : doal.

         

         

         ……게임이 출시된 지 좀 오래되긴 해서 그런지, 출시 무렵에 올라왔던 부정적 리뷰들이 하드코어 RPG의 매운맛에 당해서 비추천을 남겼다면. 지금은 오히려 인생을 갈아 넣은 사람일수록 더 발작하는 추세로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리뷰와 토론 게시판, 네오 헤이븐 커뮤니티까지 싹싹 찾아보고나서 존나 안심했다.

         마의 벽, 네오 헤이븐 전체 달성률 99.99%를 찍고. 최후의 여정을 위해 다시 내려온 건 오직 나뿐인 모양이었으니까.

         

         딸깍…! 타닥타닥….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해 캐릭터에 내장된 사이버웨어를 가동시켰다. 이 미친 게임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유저 인터페이스조차 없었다. 필요한 정보를 팝업 시키고 싶다면 그에 맞는 사이버웨어를 깔아줘야 하고, 사이버웨어를 사용하려면 맞는 임플란트를 박아줘야 하고, 임플란트를 박으려면 게임 머니인 크레딧을 벌어야 하고….

         

         게다가 게임 배경은 무슨 대전쟁이 지나간 이후의 기업이 지배하는 미래 세계관인 주제에, 캐릭터 스펙이 모자라면 순수 에임 실력에 따라 전투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갈리기까지.

         

         “하…….”

         

         생각하다 보니 살짝 현자 타임이 와서 맥이 풀렸다. 하지만 온갖 개고생 끝에 발견한 건축물의 청사진을 보니 다시금 가슴이 벅차 올랐다.

         

        [ 차원 균열 간섭기 ]

        [ 재료 : 공허 광물(0/10), 탄소 나노 튜브(0/200), 에나마 사의 개조인간표본(0/20), 엑사테크 사의 연산회로판(0/500), ……… ]

         

         뭐가 필요한지는 아주 잘 알았다. 모으기 거지 같은 재료들이 좀 눈에 밟히긴 해도, 그거야 엔딩까지 진행하면서 천천히 모으면 되니까. 지금 내가 거슬리는 건… 두번의 초기화로 인해 걸레짝이 된 내 네오 헤이븐 전체 달성률.

         

         “어디 보자… 메가 코프 별 정복 엔딩 이랑 카르마에 따른 무법자 엔딩… 또 그레이트 유니온 엔딩….”

         

         장장 10년 동안, 전세계 게이머들을 괴롭힌 악마의 게임의 대단원을 내는 건데. 가장 확실한 증명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100% 올 클리어.

         

         “좋아…! 난 할 수 있드아아!!”

         

         식량? 컵라면 3박스는 보기만 봐도 숨이 턱 막힌다.

         식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위해 편의점에서 큰 페트로 종류별로 담아왔다.

         수면? 의자 바로 뒤에 침대가 있다. 방이 좁은 게 이럴 때는 참 편리하다.

         배변? 당연히 화장실은 그냥 다녀와야지….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네오 헤이븐을 계속 공략하기 전. 진행하던 회차를 끝낸 나는 캐릭터 프로필을 하나 새로 만들기 위해 잠깐 메인 메뉴로 돌아갔다.

         

         “으음… 솔직히 후반에 임플란트로 맥스까지 찍을 수 있는 신체 관련 스탯은 최소한으로만! 대신 카리스마나 행운을 빵빵하게 올려주고? 실험실 태생 특성으로 지능이랑 임플란트 적합도를 최대로 받게 해주면…… 됐다!”

         

         모든 NPC들의 기본 우호도와 대화 설득률, 동료 풀을 늘려주는 카리스마.

         랜덤 인카운터와 치명타, 확률형 이벤트에 긍정적 보정을 주는 행운.

         마무리로 여러가지 특성을 골라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했으니, 나보다 플레이 타임이 긴 고인물이 봐도 흠잡을 건 없으리라.

         

         능력치 분배와 캐릭터 배경설정을 끝내자, 외형 설정 탭이 튀어나왔다.

         이미 모든 스토리와 퀘스트의 공략법, 모든 수집품을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다해도 한달은 족히 걸릴 대장정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진짜 지겹도록 볼 건데… 처음에 커스터마이징을 기깔나게 해 놓으면? 플레이 도중에 괜히 외형을 바꿀 필요도 없고? 내 의욕도 솟구치니 최고 아닐까…?

         

         ……룩딸은 존나 중대사항이다.

         

         “역시, 남캐가 엑소-스켈레톤 슈트 핏이 더 쩔긴 하지…! 음음!!”

         

        딸깍!

         

         남캐를 골라야 할 아주 합리적이고 유일한 이유를 떠올린 나는 바로 인생 여캐 커스터마이징에 돌입했다.

         

         캐릭터 배경에 맞춰서 선택 가능해진 임플란트 타투나 홀로그램 홍채는 기본. 살짝 와일드한 숏컷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바닥을 기는 신체 스탯 대신 조금이나마 회피 보정을 받으라고 키까지 조금 줄이고 나니… 지극히 개인적으로 완벽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이걸로 게임을 클리어하고 인증까지 하게 되면 불특정 다수에게 취향이 노출될 것 같았지만… 어차피 게임 업계는 여캐충이 지배한다.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캐릭터 이름은… 예쁘면서 의미 있는게… 어디… 아.”

         

         깜빡이는 빈 칸에, 다소 길지만 유명한 이름을 집어넣었다.

         아나스타샤, 그 뜻은 부활.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엔딩을 보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끝을 향해 달려갈 내 분신.

         

         

         그렇게… 네오 헤이븐 폐인과도 같은 생활이 몇주간 이어졌다.

         

         오랜만에 진행하는 퀘스트나 시나리오에서는 실수도 조금씩 하고, 개발사에서 죽어라 숨겨놓은 이스터에그나 수집품들을 다시 일일이 모으면서 진 엔딩을 나름대로 추리해보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모든 히로인 우호도를 맥스 직전에 멈춰 놓고, 세이브 로드 신공으로 연달아 깰 때는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게임의 통렬한 억까를 무지막지한 행운빨로 넘길 때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신나게 박수를 쳤고, 모든 동료를 희생하는 엔딩에선… 벌써 10번은 본 것 같은데도 눈물이 찔끔 흘렀다.

         

         “역시… 인생 게임인 데는 이유가 있어…!!”

         

        [차원 균열 간섭기를 설치 하시겠습니까? (Y/N)]

         

         에메랄드 시티에 뿌리를 둔 모든 거대 기업들을 플레이어의 주도하에 하나로 합치는 그레이트 유니온 엔딩 시나리오. 거기서도 필수 재료와 함께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 정거장에 올라와서야 비로소 설계도가 활성화되었다.

         

         잠시 감상에 젖어 조작을 멈추자,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둔 아나스타샤가 주변을 확인하고 사이버웨어 작동을 확인하는 모션을 취했다.

         

         망설임은 필요 없었다.

         

         딸깍.

         

         “Y!!”

         

        [정말로 차원 균열 간섭기를 설치 하시겠습니까? (Y/N)]

         

         “……엥?”

         

         장엄한 종막을 기대하고 녹화 프로그램까지 돌리고 있는 사람한테 선택지를 또 물어보다니? 범지구적 엿 먹이기의 달인인 카오스 포인트 답다.

         

         다시 한번. 헛수작부리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키보드를 강하게 눌렀다.

         

        [진심으로. 차원 균열 간섭기를 설치 하시겠습니까? (Y/N)]

         

         “…씨발.”

         

         다다다다닥!!

         

         키보드 버튼을 그냥 연타했다. 인생겜에 대한 예우가 없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자 긴장이 풀려서 피곤해 죽겠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보고 뭐라고 물어 본건지 체크 해야지.

         

         

        – 네오 헤이븐 프라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스 아나스타샤 🙂 –

         

         

         처음보는 단어가 스쳐 지나간 것 같지만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인벤토리에 있던 코드와 정거장에 쌓여 있던 재료들이 사라지고, 국가와 정부가 남아있던 시절에 설치된 3D 프린터가 미친듯이 작동했다.

         

         처먹은 재료 만큼이나 거대한 기계가 화면 전체에 꽉 차게 나타났다. 이대로 엔딩까지 보여줄 것처럼, 조작에서 멋대로 벗어난 카메라는 뒤로 서서히 물러나 화면 쪽을 돌아보는 아나스타샤의 모습을 담더니… 그대로 암전 됐다.

         

         “…….”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과 축하한다는 듯이 하단에 뜬 달성률 100% 메시지를 보던 내 의식도 깜깜해졌다.

         

         씨발 이런 개똥쓰레기겜을 여태 찬양하고 청춘을 갈아 넣었다니…! 물론 할 때는 재밌었지만, 이렇게 되면 녹화한 동영상을 투고해서 구멍 난 생활비를 메꾸려던 원대한 계획은…!!

         

         

         

         

         

         

         

         – 프로젝트 아나스타샤를 폐기합니다.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모든 연구원들은 침착하게, 파견된 기동 제압 타격대(QROF)의 지시에 따라 대피&*%(%^…… –

         

         불분명한 의식속에서 어렴풋한 파노라마가 상영되었다.

         시험관 속 소녀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새하얀 연구실 풍경은 그다지 역동적이지 않았지만, 노란 방호복을 껴입은 사람들이 검은 타격대의 명령에 따라 구석에 정렬하고 그대로 총격 당하는 광경엔 깜짝 놀랐다.

         

         기업 소속 군사부대가 나타났다는 건, 남은 걸 싹 지워버리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는데 그들은 뭘 하고 있던 걸까.

         

         “너희들은…… 절대…!! 그녀를 회수 못할 거다!! 실패작? 초기 불량품?! 우리들의 여신을 모욕한 놈들에겐 그라운드 제로도 넘겨주기 아깝지…!”

         

         살포된 생화학 가스를 입에 문 에어 필터 하나만으로 버텨낸 한명이 발작하듯 붉은 패널을 터치하자, 눈부신 섬광이 그들을 집어삼켰고.

         

         “아……?”

         

         나는 아나스타샤의 몸으로. 연구소 폐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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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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