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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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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우리는 제국의 앞잡이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침.

     “왕국을 배신하고 제국에 전향하기로 했다.”

     나의 아버지, 지브롤터 변경백은 말했다.

     “더 이상 우리는 왕국의 변경백 가문이 아니다. 전쟁이 끝난 뒤, 제국의 백작가로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가문이 될 것이다.”

     

     포크로 스테이크를 자르며 무심히 하는 말에,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그래, 나의 아들아.”

     “저희는 왕국의 변경백 가문입니다.”

     “그래. 제국과 왕국의 사이, 지브롤터 협곡을 지키는 왕국의 방패지.”

     나의 가문은 오랫동안 왕국의 방패로서 역할과 의무를 다했다.

     왕가의 방패.

     왕국의 보루.

     제국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최전선.

     “제국에게 왕도로 가는 협곡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면 제국은 왕도까지 일직선으로 진군할 수 있겠지.”

     “어째서 배신하는 겁니까?”

     “어째서? 어째서냐고? 그야 당연한 것 아니냐.”

     지브롤터 변경백은 나를 책망했다.

     “이 나라는 답이 없다. 먼저 탈출하는 게 답이야.”

     “그래서 제국에 빌붙는 겁니까?”

     “떠오르는 태양이다.”

     “제국은 수백 년 전부터 왕국을 핍박해왔습니다. 그들이 저희를 잘 대해 줄 리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제국의 사람이 되기로 한다면, 제국의 백작이 되지 못할 것도 없지.”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잔을 들거라.”

     나는 특별한 재능도 없었고, 아버지만큼의 정치력이나 결단력도 없었다.

     “나라를 배신하고 적국의 첨병이 될 것이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대대손손 번영할 우리 지브롤터 가문을 위하여.”

     나는 그저 가문의 모든 사람과 함께, 지브롤터 가문의 일원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렸고, 아버지는 어른이었으니까.

     “제국이 칼을 빼 드는 날, 협곡을 지키는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배신의 날.

     제국은 전쟁을 일으켰고, 아버지는 성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달.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지브롤터 협곡을 무혈입성하여 왕국의 영토에 들어온 제국군이 왕도를 점령하여, 제국의 깃발을 내건 시간이 불과 한 달이었다.

     왕국은 그렇게 망했다.

     * * *

     “지브롤터 백작의 판단이 백번 옳았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 경.”

     제국은 승리했다.

     지브롤터 가문은 제국에 충성하는 백작가가 되었고, 나는 제국 백작가의 장남이자 후계자로서 많은 이들과 사교계에서 교류했다.

     “좋은 아버님을 두셨습니다. 후후.”

     “변경백이 과감한 결단을 내린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여기에 모여 와인을 들 수 있지요.”

     “하하.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지브롤터 협곡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면 변경백 가문을 그렇게 무시하지 말 것이지…쯧쯧.”

     사교계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무능한 왕국을 물어뜯기 바빴다.

     “지브롤터 협곡이 열리면 왕도까지 일직선인 걸 뻔히 알면서, 정작 협곡을 지키는 백작가에는 충성만을 요구했다고 했죠?”

     “심지어 변경백을 집 지키는 개라고 모욕하기까지 했죠. 쯧쯧. 왕이라는 자가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협곡이 열리고 제국군이 진격할 때는 또 어땠습니까? 변변찮은 방어도 제대로 한 적 없이, 그대로 왕도까지 정복당하지 않았습니까.”

     험담하는 이들 중에는 나처럼 전 왕국 출신 귀족들도 있었으나, 그들의 말에 반박할 생각도 이유도 의리도 없었다.

     왕국은 무능해서 멸망했다.

     왕국은 부패해서 멸망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자들이 왕족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있었으니, 왕국을 배신한 건 결코 잘못이 아니었다.

     “왕국의 부활을 외치는 자들…’레지스탕스’였던가요? 하하. 그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제국을 향해 고개를 숙였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더 강한 자에 붙은 게 아니라, 더 정의로운 이에게 충성하기로 했다는 것을!”

     “썩어빠진 왕국이 부활하면 뭐 바뀐답니까? 이 나라는 처음부터 글러 먹은 나라였습니다. 멸망하는 게 답이었죠. 흐흐흐.”

     그렇게 생각해야, 우리 ‘배신자들’의 행동은 정당했다.

     “축하드립니다. 그레이 지브롤터 도련님. 이제 가문을 물려받으면 지브롤터 백작이 되는 거군요?”

     “지브롤터 백작이 우리 ‘웨폰마스터’ 황제 폐하의 초청을 받았으니, 분명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하하하!”

     “이거, 겹경사로군요. 그러고 보니, 황녀님께서 그레이 경에게 모종의 시선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제 분수에, 감히.”

     제국이 내려다 주는 따뜻한 꿀물의 달콤함에 취해, 왕국은 당연히 멸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 어서 잔을 듭시다. 이번에 파티가 끝나고 나면, 다 같이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가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제법 재미있는 사냥감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오, 혹시 옛 왕가의 기사들을 말하는 겁니까?”

     “아시는군요! 예. 사슬에 묶여있어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원래 위험한 짐승을 잡는 것이야말로 사냥의 스릴 아니겠습니까.”

     제국의 귀족으로서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새로운 권력을 움켜쥔 영광이 영원하리라 믿었다.

     “자. 잔을 듭시다. 모두 다 함께.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들끼리.”

     “으하하! 우리가 매국노입니까! 하긴, 망한 왕국의 입장에서는 죽여 마땅한 매국노나 마찬가지겠군요!”

     “우리 매국노들의 정점, 매국의 으뜸! 지브롤터 가문의 대표이신 그레이 경이 한마디 해주시겠습니까?!”

     멸망한 왕국을 조롱하며.

     “…잔을 듭시다.”

     찬란한 제국에 협력한 영광을 즐기며.

     “삼가, 망국에 애도를.”

     매국의 영광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며 마신 축배는.

     “……커헉?!”

     독이 든 잔이었다.

     * * *

     배신자들이 죽어 나간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은 감옥에 하나둘 갇혀 고문당했다.

     처음에는 망국의 후예들이 저지른 암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충성하기로 한 매국의 대상, 제국의 짓이었다.

     -한 번 주인을 배신한 개는 다시 배신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왕국이 멸망하고 10여 년 가까이 제국의 귀족으로서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나는 제국이 배신자들을 전부 처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 진작 처단하지 않았을까.

     왜 왕국이 멸망된 지 10년 가까이 지난 순간에서야 배신자들을 죽이기 시작한 걸까.

     고통과 비명만이 가득한 감옥 속에서 나는 답을 찾아냈다.

     뎅ㅡ겅.

     매국의 첨병, 아버지 전 지브롤터 변경백의 목이 광장에서 효수가 되는 걸 감옥 창살 너머로 보며.

     

     그 사형을 집행하던 존재인 황제를 보며, 나는 우리가 왜 죽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황제의 옆.

     제국에서 각 가문에 보낸 행정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귀족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매국노들을 보좌했으나, 그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죽어가는 걸 무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아.

     그렇구나.

     

     10년.

     제국이 왕국을 완전히 집어삼키기까지의 시간이었구나.

     제국의 땅이 된 곳에 새로운 귀족이나 관리자들이 뿌리를 내려, 황제의 사람들이 그곳을 지배하기 위했던 준비시간.

     전쟁 이후 멸망한 왕국의 국민이 나라의 멸망에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구나.

     왕국 구석구석을 살펴 온전히 제국의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했구나.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제국의 귀족으로서 방탕하게 생활해도 내버려 둔 건, 나라를 팔아먹은 것에 대한 공을 생각하여 내어준 유예기간이었구나.

     황제는 처음부터 매국노들을 죽일 생각이었다.

     왕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먹을 자들을 처음부터 혐오했으나, 황제는 그들마저도 왕국을 집어삼키는 무기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것도 모른 채 파티가 열릴 때마다 황제 폐하 만만세를 불렀으니, 저들은 뒤에서 얼마나 우스웠으랴.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나의 것이 되세요. 그레이 경.”

     “…….”

     나를 찾아온 황녀에게.

     “순순히 나의 것이 된다면, 그대의 목숨만은 살려드리겠어요. 그대는-”

     “거절합니다.”

     목숨을 걸고 반항 한 번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어째서…?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 황녀라고요! 나의 것이 된다면, 다음 황제는…!”

     “…….”

     거절의 이유는 단지 한 순간의 치기와 반항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아남아 봐야, 어차피 다른 이유로 죽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

     “황녀님의 뜻은 황제의 뜻입니까, 아니면 독단입니까?”

     “그, 그건! 아버지는 제가 설득하면 돼요! 그러니까…!”

     “…….”

     황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황녀가 살려줘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황녀님. 저는-”

     콰ㅡㅡ앙.

     감옥이 폭발했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정신이 드나?”

     “…….”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나는 폐허와 다를 바 없는 어느 귀족 집안의 건물에서 그녀와 만났다.

     한쪽 눈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금발의 여인.

     피부는 푸석하고, 자잘한 상처가 가득하고, 옷도 남자처럼 투박하게 입고 있던 여인.

     “공, 주님…?”

     하지만 그런 그녀가 내가 어려서부터 첫눈에 반했던 여인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잘도 말하는군. 지브롤터가.”

     “…….”

     “너를 구한 게 아니다. 마지막 지브롤터기 때문이지. 왕국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지브롤터가 필요하다.”

     공주는 나를 구했다.

     나라는 인간이 아닌,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살아있는 인간을.

     “몸이 많이 망가졌군. 고문으로 망가진 것보다도 더.”

     “…….”

     “하지만…상관없다. 이런 몸이라고 해도, ‘그것’의 봉인을 푸는 건 문제 없을 테니.”

     그것. 봉인.

     공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나를 치료해줬다.

     “여왕님. 저 매국노를 어째서….”

     “여왕 폐하만 아니라면, 자는 사이에 확…!”

     “지브롤터가 배신만 하지 않았어도, 왕국은 아직…!”

     레지스탕스, 왕국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 나를 모욕하고 경멸했으나, 공주는 꿋꿋하게 나를 치료해줬다.

     “그레이. 기억하느냐.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한 번은 어느 날 그녀가 너무나도 피곤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을 때.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로, 그녀는 나를 향해 원망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너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 * *

     눈을 뜬다.

     강렬한 폭발 속에서, 매캐한 연기와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한 전장 속에서.

     “…….”

     그녀는 죽어가고 있다.

     예식복과도 같은 하얀 드레스는 붉은 피로 물든 채, 날카로운 쇠말뚝에 몸이 꿰뚫렸다.

     “결국, 한 줌이었던 건가.”

     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의 힘이 있었다면, 왕국을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조하면서도, 결국 나에게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으나.

     “공교롭군. 하필 내가 죽는 장소가 네 고향, 왕국 멸망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인 지브롤터 협곡이라니.”

     황제의 군대에 추격당하면서도, 굳이 그녀는 나를 지브롤터 협곡까지 데리고 왔다.

     “나는-”

     푸ㅡ욱.

     소설 속에서는 뭔가 마지막까지 말을 남기고 떠나고는 했지만, 그녀는 말을 다 잇지도 못한 채 수많은 무기에 찔렸다.

     “찾았다.”

     폭연의 너머.

     피가 가득한 쇠말뚝의 사이.

     “귀찮게.”

     심드렁한 얼굴의 중년인은 나를 향해 엄지를 내렸고, 곧 나는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화살비를 볼 수 있었다.

     “…….”

     죽음의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지막 한순간만큼은, 나 스스로 그녀를 위해 몸을 던졌다.

     다음이 있다면.

     그때는, 다를 거라고 맹세하며.

     그다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쓰러진 그녀를 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오늘부터, 우리는 제국의 앞잡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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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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