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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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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노예였다.

         

       태어났을 적, 3살이 채 안 되었을 무렵 부모가 날 노예상에게 팔았다.

       원망은 하지 않는다.

       …아니, 정정하자면 부모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말문이 막 열릴 무렵에 팔렸는데 부모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랴.

         

       손가락이나 쪽쪽 빨며 노예상을 쫄래쫄래 따라갔던 게 유일하게 선명히 기억나는 광경이었다.

         

       어린 노예는 상당히 잘 팔렸다.

       주문쟁이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인체실험을 위해 잘 팔린다고 했던가?

       그도 아니면 신전의 욕심 많은 돼지들 취향이 어린아이가 취향이라 잘 팔린다고 했던가?

       아무튼 썩 잘 팔리는 편이었다.

         

       난 그중 주문쟁이에게 팔렸다.

       노예상은 ‘운도 없는 놈’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늙은이들 추잡한 욕망에 어울리는 것보단 마법사에게 팔린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소소하게 반론하여 본다.

         

       주문쟁이, 마법사의 노예가 된 지 10년.

         

       난 팔려온 노예 백 명 중 살아남은 세 사람, 아니 실험체 세 마리 중 하나가 되었다.

       마법사의 실험은 마물의 세포를 추출하여 인간의 몸에 이식하는 것이었고, 인체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포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대로 몸이 터지거나, 인간도 마물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 소각로에 빠지는 게, 연구실에선 당연시 여겨졌다.

       당시 난 몸은 약했지만, 아무래도 의지가 좋았다.

         

       살고자 하는 의지.

         

       나에겐 그게 있었다.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 잘 모를 어린 나이임에도 난 생존을 갈망했고, 필사적으로 실험을 견뎌내며 어느 정도 마법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시작했다.

       마물 중 인견(人犬)과 식인귀, 이 두 마리 마물의 유전자에 대한 적응력을 선보이며 마법사는 기뻐했다.

         

       …그리고 마법사는 날 해부하려고 들었다.

         

       퍼억!

         

       “…어?”

         

       콰직, 사람의 머리가 저토록 쉽게 터질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첫 살인이었다.

         

       노예는 원래 주인을 죽일 수 없지만, 공격의지가 없다고 판명되면 노예각인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고, 내가 살의가 없이 그저 반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다 툭 친 것만으로 마법사는 죽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우연과 행운이 겹친 기적의 결과물.

         

       …마법사의 실수도 더해진 결과물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도 그럴 게 식인귀, 그러니까 트롤의 유전자를 가지게 된 나다.

       어린아이의 힘이 아니라, 마물의 힘을 가지게 된 애를 해부한답시고 칼부터 들이미는 게 어디 정상인가?

       마법사가 주문쟁이라고 멸시당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하나같이 머리가 맛이 간 인종.

         

       어쨌건, 주인이 죽으며 자동적으로 난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것 봐라, 재밌는 게 있네?”

       “…아.”

         

       안타깝게도 난 빠져나가지 못했다.

       조금 더 잽싸야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마법사를 후원하는 어느 조직이 방문하는 날 마법사는 죽고 말았고, 그 광경을 난 들키고 말았다.

         

       “얘, 선택지를 고르렴. 날 따라올래?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을래?”

       “…따라갈게요.”

       “똑똑하네.”

         

       마법사를 후원하는 조직.

       그들은 다름 아닌 [검은 달]이라 불리는 암살조직이었다.

         

       나이 열 셋.

         

       난 암살자가 되었다.

         

       * * *

         

       암살조직은 강력한 병사를 원했다.

       마물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암살 능력도 뛰어난 강력한 병사를 말이다.

       듣기론 어느 왕국을 전복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겨우 암살자들 따위가 왕국을 전복시키려 들다니, 이제 생각해 보면 세상이 참 말세다 싶었다.

         

       뭐, 그런데도 쓸모가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난 암살자로써 키워졌고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았다.

       비록 매일 같이 독 내성을 키우기 위해 독을 먹거나 고문을 당하며 고문 내성을 키우는 등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당하였지만.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고, 잠다운 잠을 잘 잠자리가 있다는 것만 해도 ‘인간답다’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암살조직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약 5년, 내가 전문적인 암살자로 키워지는 데 공들여진 시간이었다.

         

       “임무를 준비해.”

       “알겠습니다.”

       “9호랑 10호도 같이 움직일 거야. 8호 네가 잘 챙기고.”

       “…예에.”

         

       당시 내 이름은 8호였다.

       즉, 내 위로 7명이나 더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당연한 얘기이기도 했다.

       암살조직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고, 왕국 전복을 위해 겨우 마법사 하나만 믿었을까?

       후원한 주문쟁이들이 제법 있었는지, 나와 같은 특이한 신체능력이나 신비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조직에는 제법 있었다.

         

       참고로 9호와 10호는 나와 같이 실험을 받던 중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사이는 몹시도 안 좋았다.

       아무래도 조직 특성상 사이가 좋아질 수 없는 구조인 것도 있지만, 자기들보다 나이가 어린 내가 더 높은 번호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유치한 녀석들이다.

         

       허나, 유치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일까.

         

       “죽어라, 8호!”

       “너만 없으면…!”

         

       상당히 열등감이 심했던 9호와 10호가 날 공격했고, 나 또한 살기 위해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상당한 혈전이었으나, 나는 우위를 점했다.

       이놈들은 알아야 했다.

         

       “번호를 높이고 싶으면 나보다 노력을 했어야지.”

         

       푸확!

         

       “커헉!”

       “어, 어떻게….”

       “내가 번호가 높은 이유가 뭐겠어. 다음 생엔 제발 똑똑해지길 바란다.”

         

       아무렴, 내가 번호가 높은 이유는 놈들보다 명확히 강하기 때문이다.

       놈들은 그 이유도 모르는 머저리가 분명했고.

         

       “후우, 그런데 이거 어떡하냐?”

         

       놈들을 모두 죽이는데 성공은 했지만, 그다지 기쁘진 않았다.

       도리어 살인이란 게 이토록 허무하고 씁쓸한 것인데, 기뻐한다면 난 그때부터 미친놈이란 증거이리라.

       그러나 정작 씁쓸함 뒤에 찾아오는 감정은 걱정이었다.

       나름 조직에서 귀하게 키운 인재들인데, 이렇게 죽였으니….

       조직에서 날 죽이려 들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얼레?”

         

       조직에 복귀하니, 조직은 처참하게 망해버렸다.

       왕국 전복 계획이 들키면서 왕국의 군세가 출진한 것이고, 암살 조직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믿기 힘들었다.

       조직의 힘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아니까.

       그렇기에 조직의 안가를 비롯하여 알고 있는 모든 곳을 다 둘러보고 조사했으나, 하나같이 불에 타버리듯 소각된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저 양반들 갈 때까지 끝내주게 가시네.”

         

       조직의 교관들과 간부들이 모조리 목이 잘린 채 창대에 매달린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아, 조직은 망했구나.

         

       당시 나이 18세, 드디어 난 진정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 * *

         

       그 뒤로 2년.

         

       제2의 인생을 위해 타국으로 이적하고 새 출발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나, 그동안 확실히 깨우친 게 있다면 세상은 무정하다는 것이고, 조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험악하다는 것이다.

       이게 세상 이치란 것일까?

         

       “개 같네.”

         

       내가 처음 배운 저속한 욕설을 항상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돈 버는 것부터 시작하여, 인간관계 유지. 일자리를 찾는 것 등등.

         

       결국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결국 배운 게 칼질이라고, 난 내가 제일 잘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막내야, 너무 느리다.”

       “네, 지금 갑니다!”

         

       난 용병이 되었다.

         

       정확히는 어느 중소규모를 자랑하는 용병대의 막내가 말이다.

         

       “넌 어디서 뭐하다 온 녀석이냐?”

       “그냥 뒷골목 전전했어요.”

       “그래? 딱 발걸음이 암살자 같은데.”

       “제가요?”

       “…쩝, 아닌가? 미안하다. 내 착각인갑다.”

       “에이, 그게 뭐라고 사과하세요, 하하.”

         

       …귀신같은 양반들.

         

       용병 이 인간들, 그냥 하루살이 인생인 줄 알았는데, 제법 눈치도 좋고 감도 좋다.

       하긴, 이러니 칼밥 먹고 사는 거겠지.

       그때부터 난 암살자의 자세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걸음걸이나 습관 등을 버린 것이다.

         

       물론 필요한 것은 남겨두었다.

       기술이나 필요한 습관은 언제든 유용하게 사용해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용병 생활을 하며 막내 티를 벗어나고, 전쟁터 몇 곳을 돌아다니며 칼밥 먹고 살길 4년.

         

       퍼억!

         

       “커헉!”

       “이 개놈의 자식들이!!”

         

       이놈의 인생 진짜.

       의뢰주 새끼한테 뒤통수를 맞으며 용병단은 돌팔매질을 제대로 당했다.

       난 머리에 제대로 돌을 맞으며 그대로 쓰러졌고, 눈앞이 흐릿해질 따름이었다.

         

       ‘…죽은 척해야지.’

         

       사실 이 정도로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렴 이 몸이 어떤 몸인데!

       돌 좀 맞는다고 죽을까?

         

       ‘이건 못 이긴다.’

         

       숨기고 있던 실력과 수를 모두 드러낸다고 가정해도, 잘 훈련된 병사들을 소수 인원이 이기는 건 안 될 말이다.

       그렇기에 죽은 척을 하며 때를 보는 게 가장 좋을 터였고, 난 내가 가진 강한 재생력과 튼튼한 몸을 믿으며 돌팔매질과 군화의 발길질을 견뎠다.

       다른 사람 다 죽어가는 데 그래도 되겠냐고 하지 마라.

       내가 비누 주울 때마다 이상한 시선을 주던 것을 얼마나 참았는데, 내 손으로 안 죽이는 것만 해도 많이 봐주는 거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기합리화와 함께 뒤통수가 지끈거리던 순간.

         

       ‘…아, 콜라 먹고 싶다.’

         

       난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이번 생의 기억이 아니라, ‘전생의 기억’이었다.

         

       나이 24살, 내가 환생자임을 깨달았다.

         

       ‘…환생 특전 없냐?’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후 다섯 시간가량 상태창을 다양한 방법으로 불러봤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더라.

         

       “…개 같네.”

         

       이럴 거면 기억이나 떠올리지 말걸.

         

       * * *

         

       용병단이 전멸하고, 살아남은 내가 의뢰주의 배신을 알리자 용병총합은 곧장 응징에 나섰다.

       아무리 무정하고,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백정 새끼들이라 불리는 용병이지만, 의뢰만큼은 확실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의뢰인이 뒤통수를 때린다면 절대 가만 두지 않는 것이 용병 업계의 절대 규율이었다.

       돈 몇 푼 좀 아끼겠다고 배신을 때린 것이니, 피의 보복만이 있을 뿐이었다.

         

       용병총합에 의해 의뢰주가 다스리던 영지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고, 모든 게 약탈되고 빼앗겼다.

       특히 의뢰주의 혈연들은 노예로 팔려가거나 자결했다.

       노예가 된 삶을 버틸 수 없다 판단한 것이겠지.

         

       ‘…은퇴해야겠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해서일까.

       과거에는 애써 넘겼던 약탈 같은 잔혹한 과정들에 조금 거부감이 생기고 만 것이다.

       사소한 거부감이었고 못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난 이 거부감이 없어지는 순간 인간성이 마모될 거란 직감이 들었다.

         

       미묘한 감수성이란 놈일 것이다.

         

       “공무원이나 되자.”

         

       은퇴를 결정하고 난 공부를 시작했다.

       글을 읽을 수만 있어도 어느 영지 병사가 되는 건 쉬웠으니까.

       하지만 용병총합에게 밟혀버린 영지를 봐서일까.

       난 기왕이면 망할 일이 없을 왕국 병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지방 공무원보단, 역시 수도 공무원이지!”

         

       참고로 난 지역차별을 하는 게 아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어쨌건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시험을 준비했고 마침내…!

         

       “호오, 자네 제법이군.”

       “네에?”

       “자네 같은 인재가 병사라니, 다른 놈들도 눈이 삐었군, 자넨 오늘부터 기사단으로 출근함세.”

       “…?”

         

       난, 병사가 아니라 늦깎이 기사가 되었다.

         

       “뭐, 이런….”

         

       나이 27세. 기사 이한의 탄생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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