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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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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악 변태!”
   “으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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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로 여자의 치마를 들치고 변태 같은 표정을 짓던 남자가 여자의 주먹 한 방에 하늘을 날아가 버렸다. 휘리릭 날아가던 남자는 행복한 표정으로 남의 집 천장을 뚫고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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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세계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선 가능하다. 그야 이곳은 ‘개그 애니 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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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늦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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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이 있든 없든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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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오늘 팬티 별로 안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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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포인트에 눈물짓는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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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하하하하! 나는 이 세계 최고의 사나이다!”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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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중력을 무시하고 떠오른 채 눈동자 동공이 불꽃 모양인 체육 선생님과 그 뒤를 따르는 빡빡머리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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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게 당연한 세계에서 난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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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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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카맣게 먼지가 눌어붙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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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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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입에 담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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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 꼭 해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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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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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삐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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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워있던 곳은 푹 내려앉은 곰팡이 핀 침대였다. 방은 사람 두 명이 겨우 누울 법한 좁은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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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누명 쓰고 일주일 동안 지냈던 감옥이 생각나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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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MAX 세계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침대에서 다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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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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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다리 길이보다 훨씬 짧아진 느낌에 그제야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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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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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연하게 줄어든 길이에 당황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 높이를 봐선 13살쯤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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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하다 하다 어려지기까지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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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슨 코X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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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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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진짜 감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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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칙한 회색빛 방 위쪽에 자리 잡은 작은 창문에 창살이 처져 있는 걸 보자 정말 감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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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주변을 뒤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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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구석 뒤질 필요도 없었다. 방 안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책상엔 서랍장조차 달려있지 않아 찾을 수 있는 건 낡은 책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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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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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젖었다가 마른 종이처럼 빳빳하고 낡은 책을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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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운 핏줄을 타고나 노예가 된 나를 구원해주신 오딜님은 나의 신이자 구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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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소리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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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줄이 적힌 내용은 오딜이란 흑마법사를 찬양하는 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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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풉, 무슨 이름이 오딜이래? 어제 내가 읽었던 소설에도 이런 이름이 나왔었는데. 설마 이런 이름이 있겠어 – 했는데 진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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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오디가?”라는 말에서나 쓰일 것 같은 말에 비웃음을 흘리다가 몸이 덜컥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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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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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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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급하게 책을 던져두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았다. 머리 뒤쪽에 낡은 끈으로 묶인 머리카 풀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새 하얀 머리카락을 눈에 담자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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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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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카락을 콱 움켜잡으며 울컥한 심정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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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언제 5800자의 장편 댓글을 달았어?! 아니면 작가와 단둘이 연재가 끝날 때까지 함께했어?! 난 그냥 유행하는 소설책 대충 읽다 잠든 죄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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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밖으로 소리치지 못한 건 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세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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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의를 해도 하필 다크 판타지 소설 속 악역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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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클리셰와 달리 내가 빙의한 몸은 귀족 집안 자식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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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이건 꿈이야. 그래 꿈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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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비틀거리며 침대 위에 누워 두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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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님 제발 꿈이라고 해주세요. 제발제발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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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질끈 감은 채 속으로 중얼중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는 슬쩍 실눈을 뜬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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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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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일도 없었다.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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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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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꿈이다. 그래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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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세뇌하듯 중얼거리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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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어쩌면 진짜 꿈일지도 몰라.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던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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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애니 세계에서 ‘if 세계관’ 보여주려고 꿈을 이용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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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죽어볼까? 그러면 눈을 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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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쩍 창문 쪽을 바라보곤 뛰어내리는 건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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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헛!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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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호통 소리에 몸이 벌떡 일어났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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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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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과 함께 처음 보는 낯선 기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몸 주인 ‘리안’의 기억이었다. 슉슉 지나가는 장면을 보니 대충 부모에게 학대당하다가 도망을 쳤고, 노예 상인에게 붙잡힌 것 같았다. 이후 흑마법사 실험실에 실험체로 팔려 와 열심히 흑마법사의 개노릇을 한 덕분에 노예 관리를 맡게 되었다는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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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 소설에서도 봤지만 진짜 쓰레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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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들을 그저 실험재료로 보는 흑마법사가 어째서 리안을 관리자로 맡겼을까? 간단한 이유다. 이 새끼 인성이 악마도 감탄할 만큼 썩어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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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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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짜증 섞인 호통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늦으면 마법에 지져질 수 있었기에 후다닥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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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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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문을 열고 나오자 긴 복도가 이어졌다. 호통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방이었다. 리안은 흑마법사의 전속 시종, 노예 뭐 그런 거라서 바로 맞은편에 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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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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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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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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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빼빼 마른 남자가 예민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구린 냄새가 훅 맡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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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기 좀 하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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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론 굽실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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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와서 이것들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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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마법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한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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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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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가리킨 건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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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내가 살던 세계가 맞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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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애니 세계는 어디까지나 전체이용가였다. 수위를 넘는 무언가가 나오면 이런 식으로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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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탈의실까지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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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묘하게 떨어지는 수건과 뿌연 안개를 떠올리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땐 훤히 볼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물론 한 번도 경험이 없기에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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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잠시 일이 있으니 깔끔하게 청소해놔.”
    “예! 위대한 오딜님! 다녀오십시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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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이 방을 빠져나가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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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사역마가 감시 중이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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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 묘사에선 분명 그랬다. 멍청하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생각을 버리고 방 한쪽에 놓인 낡은 자루를 끌고 와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를 잡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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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질척하고 뜨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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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이크 덩어리를 자루에 다 집어넣은 후 입구를 꽉 잠갔다. 벽 쪽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무언가를 넣는 공간이 생겼다. 안에 자루를 넣고 닫자 자루가 벽 안쪽 공간을 따라 어딘가로 내려가 버렸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소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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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이 방 너무 더럽네. 먼지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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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바닥과 벽이 꽤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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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엄마랑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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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은 하나도 못 하지만 마음만큼은 커다란 엄마를 떠올리다가 실험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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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흔적도 깔끔하게 정리해놔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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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이크가 있던 장소에 피 웅덩이 같은 게 남아있었다. 그것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야 일이 끝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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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레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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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방으로 내려가 한쪽에 놓인 청소 도구함을 열었다. 안에서 청소 도구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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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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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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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를 가볍게 닦으며 방 안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방은 묵은 때를 벗긴 덕분에 말끔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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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만 닦는다는 게 본능적으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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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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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왔 -….뭐야 이게?!”
    “아, 다녀오셨어요.”
    “어,어째서 내 방이 빛이…?! 네 녀석 신성력을 이용했구나?!”
    “네,네? 아니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 방이 이렇게 빛이 날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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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얼굴에 열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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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니이. 뭐 그렇게까지 반짝거리는 건…”
   “허어, 내 수정구가 원래 이런 색이었다고? 아니,아니야! 이건 분명 정화를 당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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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표정이 헤벌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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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녀석..! 좋게 좋게 봐줬더니?!”
   “어어?! 자,잠깐 진정하세요!”
    “진정? 감히 배신을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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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지팡이 끝에 보석을 번쩍거리며 당장이라도 마법을 날리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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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득, 횃대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까마귀가 날아올라 오딜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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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아아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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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이 울음을 흘리며 제 주인에게 어떠한 뜻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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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그냥 깨끗하게 청소한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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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덕끄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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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청소로 이 정도까지 깨끗해질 수 있다고…?”
    “크흠,큼.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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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살 기회가 지금뿐이라는 걸 알고 바로 입을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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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사용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의지가 불타올라서….기분 나빠하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전부 제가 너무 오딜님을 존경한 탓입니다.”
    “그,그렇지.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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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받지 못하고 산 세월이 긴 오딜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칭찬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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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오딜님! 흑 마법사의 자랑! 마족들조차 경악하고 감탄하며 부러워할 흑마법사십니다!”
    “뭐,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 응. 다음부터 청소는 적당히 하도록”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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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휙 돌린 순간, 그의 사역마 까마귀가 날아올라 횃대에 돌아갔다. 나는 조용히 까마귀에게 엄지를 올려주었다. 그러자 까마귀가 날개를 엄지손가락처럼 슬쩍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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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의 간식을 먹인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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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고픈 듯 꼬르륵거리는 모습이 가여워 오딜이 먹으려고 사다 둔 견과류를 몰래 바친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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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잘 부탁드립니다 :D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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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변태!”

“으헉!”

실수로 여자의 치마를 들치고 변태 같은 표정을 짓던 남자가 여자의 주먹 한 방에 하늘을 날아가 버렸다. 휘리릭 날아가던 남자는 행복한 표정으로 남의 집 천장을 뚫고 쓰러진다.

평범한 세계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선 가능하다. 그야 이곳은 ‘개그 애니 속’이니까.

“이런 늦겠다.”

그런 일이 있든 없든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

“정말..오늘 팬티 별로 안 예쁜데..”

이상한 포인트에 눈물짓는 여학생.

“음하하하하! 나는 이 세계 최고의 사나이다!”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머리가 중력을 무시하고 떠오른 채 눈동자 동공이 불꽃 모양인 체육 선생님과 그 뒤를 따르는 빡빡머리 학생들.

이 모든 게 당연한 세계에서 난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살아가고 있었다.

***

새카맣게 먼지가 눌어붙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낯선 천장이다.”

그 말을 입에 담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올랐다.

‘이 말 꼭 해보고 싶었는데!’

그리 생각하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끼이,삐걱.

내가 누워있던 곳은 푹 내려앉은 곰팡이 핀 침대였다. 방은 사람 두 명이 겨우 누울 법한 좁은 방이었다.

‘예전에 누명 쓰고 일주일 동안 지냈던 감옥이 생각나네, 하하.’

개그 MAX 세계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침대에서 다리를 내렸다.

“응?”

원래 다리 길이보다 훨씬 짧아진 느낌에 그제야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어어?”

확연하게 줄어든 길이에 당황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 높이를 봐선 13살쯤 되어 보였다.

“이젠 하다 하다 어려지기까지 하네.”

내가 무슨 코X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감옥이야?’

칙칙한 회색빛 방 위쪽에 자리 잡은 작은 창문에 창살이 처져 있는 걸 보자 정말 감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변을 뒤져보자.’

구석구석 뒤질 필요도 없었다. 방 안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책상엔 서랍장조차 달려있지 않아 찾을 수 있는 건 낡은 책 하나뿐이었다.

“어디..”

물에 젖었다가 마른 종이처럼 빳빳하고 낡은 책을 펼쳐보았다.

[ 더러운 핏줄을 타고나 노예가 된 나를 구원해주신 오딜님은 나의 신이자 구원이다. ]

“뭔 소리야 이게?”

줄줄이 적힌 내용은 오딜이란 흑마법사를 찬양하는 말이 전부였다.

“풉, 무슨 이름이 오딜이래? 어제 내가 읽었던 소설에도 이런 이름이 나왔었는데. 설마 이런 이름이 있겠어 – 했는데 진짜 있네?”

“오빠 오디가?”라는 말에서나 쓰일 것 같은 말에 비웃음을 흘리다가 몸이 덜컥 굳었다.

“…소설?”

이런 미친.

나는 다급하게 책을 던져두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았다. 머리 뒤쪽에 낡은 끈으로 묶인 머리카 풀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새 하얀 머리카락을 눈에 담자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아니, 이건 아니지!”

머리카락을 콱 움켜잡으며 울컥한 심정을 토해냈다.

‘내가 언제 5800자의 장편 댓글을 달았어?! 아니면 작가와 단둘이 연재가 끝날 때까지 함께했어?! 난 그냥 유행하는 소설책 대충 읽다 잠든 죄 밖에 없다고!’

입 밖으로 소리치지 못한 건 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세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빙의를 해도 하필 다크 판타지 소설 속 악역인 건데?!’

흔한 클리셰와 달리 내가 빙의한 몸은 귀족 집안 자식도 아니었다!

‘아냐 이건 꿈이야. 그래 꿈일 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침대 위에 누워 두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눈을 감았다.

‘신님 제발 꿈이라고 해주세요. 제발제발제발.’

눈을 질끈 감은 채 속으로 중얼중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는 슬쩍 실눈을 뜬 채 말했다.

“…상태창.”

…아무일도 없었다. 씨바.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이건 꿈이다. 그래 꿈이야.”

자기 세뇌하듯 중얼거리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어쩌면 진짜 꿈일지도 몰라.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던 것도 아니고.’

개그 애니 세계에서 ‘if 세계관’ 보여주려고 꿈을 이용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차라리 죽어볼까? 그러면 눈을 뜨지 않을까?’

슬쩍 창문 쪽을 바라보곤 뛰어내리는 건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은 순간.

“리안!”

“….헛! 예!”

커다란 호통 소리에 몸이 벌떡 일어났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통증과 함께 처음 보는 낯선 기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몸 주인 ‘리안’의 기억이었다. 슉슉 지나가는 장면을 보니 대충 부모에게 학대당하다가 도망을 쳤고, 노예 상인에게 붙잡힌 것 같았다. 이후 흑마법사 실험실에 실험체로 팔려 와 열심히 흑마법사의 개노릇을 한 덕분에 노예 관리를 맡게 되었다는 기억이었다.

‘이 새끼 소설에서도 봤지만 진짜 쓰레기네.’

어린아이들을 그저 실험재료로 보는 흑마법사가 어째서 리안을 관리자로 맡겼을까? 간단한 이유다. 이 새끼 인성이 악마도 감탄할 만큼 썩어있었기 때문이다.

“리안!”

“예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짜증 섞인 호통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늦으면 마법에 지져질 수 있었기에 후다닥 방을 빠져나갔다.

철컹.

쇠문을 열고 나오자 긴 복도가 이어졌다. 호통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방이었다. 리안은 흑마법사의 전속 시종, 노예 뭐 그런 거라서 바로 맞은편에 방이 있었다.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와!”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빼빼 마른 남자가 예민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구린 냄새가 훅 맡아졌다.

‘환기 좀 하고 살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론 굽실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와서 이것들 치워.”

흑마법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한쪽을 가리켰다.

‘으엑.’

그가 가리킨 건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였다.

‘역시 내가 살던 세계가 맞나보네.’

개그 애니 세계는 어디까지나 전체이용가였다. 수위를 넘는 무언가가 나오면 이런 식으로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여자 탈의실까지 그랬지.’

절묘하게 떨어지는 수건과 뿌연 안개를 떠올리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땐 훤히 볼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물론 한 번도 경험이 없기에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일이 있으니 깔끔하게 청소해놔.”

“예! 위대한 오딜님! 다녀오십시오!”

“그래.”

오딜이 방을 빠져나가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분명 사역마가 감시 중이라고 했었지.’

소설 속 묘사에선 분명 그랬다. 멍청하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생각을 버리고 방 한쪽에 놓인 낡은 자루를 끌고 와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를 잡아넣었다.

‘으으, 질척하고 뜨끈해.’

모자이크 덩어리를 자루에 다 집어넣은 후 입구를 꽉 잠갔다. 벽 쪽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무언가를 넣는 공간이 생겼다. 안에 자루를 넣고 닫자 자루가 벽 안쪽 공간을 따라 어딘가로 내려가 버렸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소일 터였다.

‘그나저나 이 방 너무 더럽네. 먼지도 많고.’

방바닥과 벽이 꽤 더러웠다.

‘우리 엄마랑 비슷하네.’

집안일은 하나도 못 하지만 마음만큼은 커다란 엄마를 떠올리다가 실험실을 빠져나왔다.

‘나머지 흔적도 깔끔하게 정리해놔야겠지.’

모자이크가 있던 장소에 피 웅덩이 같은 게 남아있었다. 그것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야 일이 끝날 터였다.

‘걸레가 분명.’

주방으로 내려가 한쪽에 놓인 청소 도구함을 열었다. 안에서 청소 도구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후우 -, 다했다.”

이마를 가볍게 닦으며 방 안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방은 묵은 때를 벗긴 덕분에 말끔해져 있었다.

“바닥만 닦는다는 게 본능적으로 그만..”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다녀왔 -….뭐야 이게?!”

“아, 다녀오셨어요.”

“어,어째서 내 방이 빛이…?! 네 녀석 신성력을 이용했구나?!”

“네,네? 아니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 방이 이렇게 빛이 날 리가 없어!”

그 말에 얼굴에 열이 몰렸다.

“아,아니이. 뭐 그렇게까지 반짝거리는 건…”

“허어, 내 수정구가 원래 이런 색이었다고? 아니,아니야! 이건 분명 정화를 당한 거야!”

쏟아지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표정이 헤벌쭉해졌다.

“네 녀석..! 좋게 좋게 봐줬더니?!”

“어어?! 자,잠깐 진정하세요!”

“진정? 감히 배신을 해놓고?!”

그가 지팡이 끝에 보석을 번쩍거리며 당장이라도 마법을 날리려는 순간.

푸드득, 횃대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까마귀가 날아올라 오딜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까아아악 – !

녀석이 울음을 흘리며 제 주인에게 어떠한 뜻을 전달했다.

“뭐? 그냥 깨끗하게 청소한 것뿐이라고?”

끄덕끄덕 -.

“고작 청소로 이 정도까지 깨끗해질 수 있다고…?”

“크흠,큼. 사실 -..”

나는 살 기회가 지금뿐이라는 걸 알고 바로 입을 털었다.

“오딜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사용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의지가 불타올라서….기분 나빠하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전부 제가 너무 오딜님을 존경한 탓입니다.”

“그,그렇지. 크흠.”

인정받지 못하고 산 세월이 긴 오딜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칭찬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역시 오딜님! 흑 마법사의 자랑! 마족들조차 경악하고 감탄하며 부러워할 흑마법사십니다!”

“뭐,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 응. 다음부터 청소는 적당히 하도록”

“예!”

오딜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휙 돌린 순간, 그의 사역마 까마귀가 날아올라 횃대에 돌아갔다. 나는 조용히 까마귀에게 엄지를 올려주었다. 그러자 까마귀가 날개를 엄지손가락처럼 슬쩍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딜의 간식을 먹인 가치가 있었다.’

배가 고픈 듯 꼬르륵거리는 모습이 가여워 오딜이 먹으려고 사다 둔 견과류를 몰래 바친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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