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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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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님, 신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선각자께서 얘기해 주셨어요.
     
   모두가 다른 신을 섬기지만, 그 모두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신님은 분명 저희 모두를 지켜보고 계시겠죠?
     
     
   게이트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게 무서워졌지만….
     
   이건 저의 잘못을 혼내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다 저 때문이래요.
     
   반성할게요.
     
   반성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돌아가신 엄마 아빠가 천국에 가 계셨으면.
     
   저를 원망하는 다른 사람들은 저 같은 슬픔을 겪지 않았으면.
     
   저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졌을 때, 그때는….
     
   저도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도 되겠죠?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 저는 오늘도 죽을 때까지 봉사할게요.
     
     
     
   기도하던 소년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물빛처럼 푸른 머릿결에 가려 있던 얼굴이 드러나고, 동굴처럼 텅 빈 두 눈에서 주르륵 피눈물이 쏟아진다.
     
   사지가 없어 몸뚱이만 덜렁 의자 위에 있는 꼴이었는데 어디서 이만한 피가 나왔나 싶을 정도의 출혈이다.
     
   “오! 오오! 지, 진짜로 내가 젊어지다니…!”
     
   소년이 고통스러워할수록, 맞은편에 앉은 노인의 얼굴이 점차 밝아진다.
     
   눈 그늘이 걷히고, 회백색의 탁하던 눈빛이 선명해지고, 자글자글하던 주름이 사라진다.
     
     
   “허리! 이제 허리 통증이 안 느껴지는구나!”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회춘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인간들이 온갖 능력을 얻었음에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금단의 영역.
     
   세월을 되돌린다는 기적이 바로 이 자리에서 실현된 것이다.
     
   “허, 허허허! 이럴 게 아니지! 이보게, 내 바로 다음 기도도 구매하겠네!”
   “죄송하지만, 다음 차례는 영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셔서….”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
     
   아니, 청년이 펄쩍펄쩍 뛰며 발을 굴려봐도 통증은 전무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던 몸이었건만.
     
   이런 힘이라면 천금. 아니, 억만금이라도 아깝지 않았다.
     
   “그다음이라도 괜찮네. 내가 누구인가! 돈이라면 자네가 도시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마련해 줄 수 있네. 언제든 연락해 주게.”
   “그럼 자세한 내용은 확인한 뒤 찾아뵙겠습니다.”
     
   “암! 자네들이라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네!”
     
     
   터벅터벅-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빠져나가는 두 사람.
     
   쿵-!
     
   그런 둘의 뒤로 가녀린 소년이 쓰러져 내리는 건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만한 기적을 아무 대가도 없이 일으켰을까.
     
   노인은 이 한 번의 기적을 위해 여러 루트를 통해 세탁한 미 국채를 30억 달러나 내놓아야 했다. 한화로 4조 원쯤 되는 돈이었다.
     
   죄책감?
     
   상호 계약으로 체결한 계약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소년이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피 웅덩이 속에서 익사해 가던 때였다.
     
   “가자. 뭘 이 정도로 엄살이냐. 네 부모님은 이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셨을 건데.”
     
   다른 방에서 찾아온 양복쟁이가 소년의 목과 연결된 사슬을 끌어당긴다.
     
   도축 당하기 직전의 짐승처럼 질질 끌려가는 꼴이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혀가 없어서 대답하려야 대답할 수 없었다.
     
   “다음 손님은 정말 중요하니, 허투루 하지 말아라. 이번에는… 음. 자제분께서 각성자가 되길 원하신다는구나. 가능하겠지?”
     
   소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몸은 이미 한계였지만, 죽음이 두렵진 않다.
     
   애당초 뭔가를 희생해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기적부터가 신께서 내려주신 힘.
     
   이렇게 죽는다는 건 결국 속죄를 마쳤다는 뜻이니 오히려 기쁠 따름이다.
     
   이 기적으로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하게 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며칠이나 흘렀을까.
     
   “…쯧. 이젠 진짜 한계인가.”
   “예, 뭐. 사실 포션이랑 마약까지 써서 살려두긴 했는데. 살아있는 게 기적일 정도죠.”
     
   “한 번조차 더 못 쓰나?”
   “중간에 의식이 끊기면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젠장. 뒷감당을 생각하면 그냥 폐기하는 게 낫겠군.”
   “예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소년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서울 구석의 폐가 한 채를 선물로 받았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소파 위로 눕혀졌다.
     
   남은 몇 시간의 삶만큼은 마음껏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알던 조직원들이 이만한 배려라니.
     
   그간의 노고로 그들이 그나마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보람찼는지.
     
   소년은 슬그머니 미소 짓는다.
     
   “미친 새끼.”
     
   그리고 욕을 들어 먹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내가 진즉 경고했지? 그렇게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다가 결국 비참하게 뒤질 거라고.”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비참하게 죽는다니, 누가?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오히려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었기에 더 악착같이 많은 사람을 위할 수 있던 거였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였다면 그의 체력, 한계, 상태 따위를 신경 쓰느라 아무것도 못 했겠지.
     
   덕분에 약속했던 대로 부모님이 계신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됐으니까….
     
     
   “뭐라고 중얼대는 거야, 병신이. 말 하고 싶었으면 혀는 놔뒀어야지.”
     
   그러나 소년이 속으로 아무리 대답해봤자 소용없다.
     
   소녀는 뛰어난 각성자였지만, 남의 속내를 듣는 능력은 아니다.
     
   그래서 소년이 뭐라고 반응하건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이어간다.
     
     
   “하여튼, 이제 넌 죽을 거고. 난 약속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렸어.”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욕을 달고 사는 그녀였지만, 약속을 지켰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네가 죽으면 약속은 끝이잖아? 나도 이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스릉-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년이 움찔 목을 떨었지만, 눈이 없어 소리의 원인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그에 소녀는 친절하게 차디찬 칼날을 소년의 홀쭉한 복부에 들이민다.
     
     
   “느껴지지? 환도야. 내가 쓰던 무기라서 강철도 쉽게 자르는 거거든.”
     
   그래서?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소년이 영문을 몰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푸른 머릿결이 흘러내리며 소녀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 하여튼 이 꼴이 돼서도 왜 이렇게 예뻐서는….’
     
   소녀는 애써 이를 악물고 칼을 들어 올렸다.
     
     
   “자, 난 지금부터 이걸로 자살할 거야.”
   “……?!!”
     
   자살이라니!
     
   그건 죄악이다.
     
   부모를 잡아먹은 소년조차 용서해 주신 자비로운 신이셨지만.
     
   자살만큼은 용서하지 않으니,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소년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악을 쓰며 난리를 부렸지만.
     
   “그런데 넌 눈이 없어서 그걸 보지도 못하고, 팔이 없어서 말리지도 못하네? 그냥 거기서 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 들을 수밖에 없겠네?”
     
   오뚝이보다 못한 꼴에 소녀가 제 할 말을 멈출 일은 없었다.
     
     
   “그러니 약속대로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대체 무슨 소원이기에 이런 협박을 벌이는 걸까.
     
   세계가 멸망하기라도 바라는 건가?
     
   한편으로는 두려운 소년이었지만, 고개를 주억거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하게 믿을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상대.
     
   그런 그녀가 자살로 지옥에 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소년의 다급한 고갯짓에 소녀가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지금부터 기도해. 넌 내 몸을 차지할 거야.”
   “…!!”
     
   “네 몸이 죽어가니까, 내 몸으로 오라는 거야. 그럼 살 수 있잖아.”
     
   소년이 고개를 젓는다.
     
   소녀는 들으라는 듯 칼을 들어 휘두른다.
     
   “싫으면 자살이나 해야지~ 손목을 쓱싹 그어버릴까? 아니면 할복? 네 위에 앉아서 배를 그으면 장기가 다 쏟아지니 볼만 하겠네?”
     
     
   너무나도 끔찍한 협박이다.
     
   그에게 눈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팔 한쪽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거나.
     
   그녀의 자살을 지켜보거나.
     
   이 죽음의 선택지에서 소년이 고를 방향이라고는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소년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들었던,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노래 섬집아기.
     
   언제나 엄마의 따스한 품을 느낄 수 있는 노래였건만, 오늘만큼은 처절함만 가득했다.
     
   “옳지. 그래야지.”
     
   낯선 손길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내린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매번 머리를 내려치던 건 딱딱한 막대기뿐이었던 탓인지, 괜히 눈물이 비집어 나왔다.
     
   주르륵- 핏물 섞여 분홍빛이 된 눈물이 볼을 타고 뚝, 뚝, 바닥을 적신다.
     
   “날 원망해. 하지만, 난 원망 당하더라도 널 그냥 죽게 두고 싶지 않거든.”
     
     
   원망? 내가 널 어떻게 원망할까.
     
   기도하며 허밍 하던 소년이 쿨럭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심장과 뇌, 위 등.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을 대가로 바쳐야 하는 탓에 시작된 반향이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던 소년이 끝내 허물어지던 때.
     
   “죽지 마. 포기하지 말고. 이건 내 몸이니까 네 맘대로 쓰지 마. 이를 악물고 아껴줘. 나라고 생각하고 대하란 말이야.”
     
   소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자장가처럼 자그마한 목소리.
     
   “죽지 마. 내 몸을 아껴줘.”
     
   소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소년의 의식이 완전히 꺼지고, 마지막 숨결을 내뱉을 때까지.
     
   그렇게 그녀 자신의 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병신. 이렇게 착하니까 맨날 당하고 있기만 하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소녀가 다급히 챙겨왔던 동그란 캡슐을 깨뜨렸다.
     
   곧장 반투명한 기운이 일어나 그녀의 몸 주위를 둘러쌌고.
     
   물보다 투명한 액체가 차오르며 몸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이러면 깨어날 때까지 남이 건드릴 일은 없겠지.
     
     
   이걸로 된 거다.
     
   대외적으로 소년은 죽었고, 소녀는 살았다.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거다.
     
   제 몸이 아니니 함부로 희생하겠다고 날뛰지도 못할 테고.
     
   소년은 10년 만에 제 삶을 살 수 있겠지.
     
   “헤, 이렇게 헤어지고… 나중에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점차 의식이 멀어진다.
     
   마치 수면 마취하듯, 순식간에 몽롱한 기운이 뇌리를 잠식한다.
     
   “나중에 봐….”
     
   의식이 뚝 끊긴다.
     
   소녀의 몸이 축 늘어지며 액체 위로 둥둥 떠 오른다.
     
   파스스-
     
   구체가 희미해지더니 소녀의 몸과 함께 사라진다.
     
     
   완벽한 죽음이었고,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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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님, 신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선각자께서 얘기해 주셨어요.

모두가 다른 신을 섬기지만, 그 모두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신님은 분명 저희 모두를 지켜보고 계시겠죠?

게이트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게 무서워졌지만….

이건 저의 잘못을 혼내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다 저 때문이래요.

반성할게요.

반성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돌아가신 엄마 아빠가 천국에 가 계셨으면.

저를 원망하는 다른 사람들은 저 같은 슬픔을 겪지 않았으면.

저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졌을 때, 그때는….

저도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도 되겠죠?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 저는 오늘도 죽을 때까지 봉사할게요.

기도하던 소년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물빛처럼 푸른 머릿결에 가려 있던 얼굴이 드러나고, 동굴처럼 텅 빈 두 눈에서 주르륵 피눈물이 쏟아진다.

사지가 없어 몸뚱이만 덜렁 의자 위에 있는 꼴이었는데 어디서 이만한 피가 나왔나 싶을 정도의 출혈이다.

“오! 오오! 지, 진짜로 내가 젊어지다니…!”

소년이 고통스러워할수록, 맞은편에 앉은 노인의 얼굴이 점차 밝아진다.

눈 그늘이 걷히고, 회백색의 탁하던 눈빛이 선명해지고, 자글자글하던 주름이 사라진다.

“허리! 이제 허리 통증이 안 느껴지는구나!”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회춘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인간들이 온갖 능력을 얻었음에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금단의 영역.

세월을 되돌린다는 기적이 바로 이 자리에서 실현된 것이다.

“허, 허허허! 이럴 게 아니지! 이보게, 내 바로 다음 기도도 구매하겠네!”

“죄송하지만, 다음 차례는 영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셔서….”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

아니, 청년이 펄쩍펄쩍 뛰며 발을 굴려봐도 통증은 전무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던 몸이었건만.

이런 힘이라면 천금. 아니, 억만금이라도 아깝지 않았다.

“그다음이라도 괜찮네. 내가 누구인가! 돈이라면 자네가 도시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마련해 줄 수 있네. 언제든 연락해 주게.”

“그럼 자세한 내용은 확인한 뒤 찾아뵙겠습니다.”

“암! 자네들이라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네!”

터벅터벅-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빠져나가는 두 사람.

쿵-!

그런 둘의 뒤로 가녀린 소년이 쓰러져 내리는 건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만한 기적을 아무 대가도 없이 일으켰을까.

노인은 이 한 번의 기적을 위해 여러 루트를 통해 세탁한 미 국채를 30억 달러나 내놓아야 했다. 한화로 4조 원쯤 되는 돈이었다.

죄책감?

상호 계약으로 체결한 계약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소년이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피 웅덩이 속에서 익사해 가던 때였다.

“가자. 뭘 이 정도로 엄살이냐. 네 부모님은 이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셨을 건데.”

다른 방에서 찾아온 양복쟁이가 소년의 목과 연결된 사슬을 끌어당긴다.

도축 당하기 직전의 짐승처럼 질질 끌려가는 꼴이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혀가 없어서 대답하려야 대답할 수 없었다.

“다음 손님은 정말 중요하니, 허투루 하지 말아라. 이번에는… 음. 자제분께서 각성자가 되길 원하신다는구나. 가능하겠지?”

소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몸은 이미 한계였지만, 죽음이 두렵진 않다.

애당초 뭔가를 희생해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기적부터가 신께서 내려주신 힘.

이렇게 죽는다는 건 결국 속죄를 마쳤다는 뜻이니 오히려 기쁠 따름이다.

이 기적으로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하게 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며칠이나 흘렀을까.

“…쯧. 이젠 진짜 한계인가.”

“예, 뭐. 사실 포션이랑 마약까지 써서 살려두긴 했는데. 살아있는 게 기적일 정도죠.”

“한 번조차 더 못 쓰나?”

“중간에 의식이 끊기면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젠장. 뒷감당을 생각하면 그냥 폐기하는 게 낫겠군.”

“예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소년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서울 구석의 폐가 한 채를 선물로 받았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소파 위로 눕혀졌다.

남은 몇 시간의 삶만큼은 마음껏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알던 조직원들이 이만한 배려라니.

그간의 노고로 그들이 그나마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보람찼는지.

소년은 슬그머니 미소 짓는다.

“미친 새끼.”

그리고 욕을 들어 먹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내가 진즉 경고했지? 그렇게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다가 결국 비참하게 뒤질 거라고.”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비참하게 죽는다니, 누가?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오히려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었기에 더 악착같이 많은 사람을 위할 수 있던 거였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였다면 그의 체력, 한계, 상태 따위를 신경 쓰느라 아무것도 못 했겠지.

덕분에 약속했던 대로 부모님이 계신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됐으니까….

“뭐라고 중얼대는 거야, 병신이. 말 하고 싶었으면 혀는 놔뒀어야지.”

그러나 소년이 속으로 아무리 대답해봤자 소용없다.

소녀는 뛰어난 각성자였지만, 남의 속내를 듣는 능력은 아니다.

그래서 소년이 뭐라고 반응하건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이어간다.

“하여튼, 이제 넌 죽을 거고. 난 약속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렸어.”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욕을 달고 사는 그녀였지만, 약속을 지켰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네가 죽으면 약속은 끝이잖아? 나도 이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스릉-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년이 움찔 목을 떨었지만, 눈이 없어 소리의 원인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그에 소녀는 친절하게 차디찬 칼날을 소년의 홀쭉한 복부에 들이민다.

“느껴지지? 환도야. 내가 쓰던 무기라서 강철도 쉽게 자르는 거거든.”

그래서?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소년이 영문을 몰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푸른 머릿결이 흘러내리며 소녀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 하여튼 이 꼴이 돼서도 왜 이렇게 예뻐서는….’

소녀는 애써 이를 악물고 칼을 들어 올렸다.

“자, 난 지금부터 이걸로 자살할 거야.”

“……?!!”

자살이라니!

그건 죄악이다.

부모를 잡아먹은 소년조차 용서해 주신 자비로운 신이셨지만.

자살만큼은 용서하지 않으니,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소년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악을 쓰며 난리를 부렸지만.

“그런데 넌 눈이 없어서 그걸 보지도 못하고, 팔이 없어서 말리지도 못하네? 그냥 거기서 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 들을 수밖에 없겠네?”

오뚝이보다 못한 꼴에 소녀가 제 할 말을 멈출 일은 없었다.

“그러니 약속대로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대체 무슨 소원이기에 이런 협박을 벌이는 걸까.

세계가 멸망하기라도 바라는 건가?

한편으로는 두려운 소년이었지만, 고개를 주억거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하게 믿을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상대.

그런 그녀가 자살로 지옥에 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소년의 다급한 고갯짓에 소녀가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지금부터 기도해. 넌 내 몸을 차지할 거야.”

“…!!”

“네 몸이 죽어가니까, 내 몸으로 오라는 거야. 그럼 살 수 있잖아.”

소년이 고개를 젓는다.

소녀는 들으라는 듯 칼을 들어 휘두른다.

“싫으면 자살이나 해야지~ 손목을 쓱싹 그어버릴까? 아니면 할복? 네 위에 앉아서 배를 그으면 장기가 다 쏟아지니 볼만 하겠네?”

너무나도 끔찍한 협박이다.

그에게 눈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팔 한쪽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거나.

그녀의 자살을 지켜보거나.

이 죽음의 선택지에서 소년이 고를 방향이라고는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소년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들었던,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노래 섬집아기.

언제나 엄마의 따스한 품을 느낄 수 있는 노래였건만, 오늘만큼은 처절함만 가득했다.

“옳지. 그래야지.”

낯선 손길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내린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매번 머리를 내려치던 건 딱딱한 막대기뿐이었던 탓인지, 괜히 눈물이 비집어 나왔다.

주르륵- 핏물 섞여 분홍빛이 된 눈물이 볼을 타고 뚝, 뚝, 바닥을 적신다.

“날 원망해. 하지만, 난 원망 당하더라도 널 그냥 죽게 두고 싶지 않거든.”

원망? 내가 널 어떻게 원망할까.

기도하며 허밍 하던 소년이 쿨럭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심장과 뇌, 위 등.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을 대가로 바쳐야 하는 탓에 시작된 반향이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던 소년이 끝내 허물어지던 때.

“죽지 마. 포기하지 말고. 이건 내 몸이니까 네 맘대로 쓰지 마. 이를 악물고 아껴줘. 나라고 생각하고 대하란 말이야.”

소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자장가처럼 자그마한 목소리.

“죽지 마. 내 몸을 아껴줘.”

소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소년의 의식이 완전히 꺼지고, 마지막 숨결을 내뱉을 때까지.

그렇게 그녀 자신의 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병신. 이렇게 착하니까 맨날 당하고 있기만 하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소녀가 다급히 챙겨왔던 동그란 캡슐을 깨뜨렸다.

곧장 반투명한 기운이 일어나 그녀의 몸 주위를 둘러쌌고.

물보다 투명한 액체가 차오르며 몸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이러면 깨어날 때까지 남이 건드릴 일은 없겠지.

이걸로 된 거다.

대외적으로 소년은 죽었고, 소녀는 살았다.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거다.

제 몸이 아니니 함부로 희생하겠다고 날뛰지도 못할 테고.

소년은 10년 만에 제 삶을 살 수 있겠지.

“헤, 이렇게 헤어지고… 나중에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점차 의식이 멀어진다.

마치 수면 마취하듯, 순식간에 몽롱한 기운이 뇌리를 잠식한다.

“나중에 봐….”

의식이 뚝 끊긴다.

소녀의 몸이 축 늘어지며 액체 위로 둥둥 떠 오른다.

파스스-

구체가 희미해지더니 소녀의 몸과 함께 사라진다.

완벽한 죽음이었고,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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