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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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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긴 복도에 울려 퍼진다. 선물 받은 구둣발 소리를 내며 콧노래 부르고 있을 무렵. 저 멀리에서 나를 발견한 조직원 두 사람이 뻣뻣하게 굳는다.

     

   숫제 산책 중인 사단장을 발견한 이등병 같은 태도다. 조직원들은 곧장 제 자리에 멈춰서서 손을 들어올리고 구호를 외쳤다.

     

   “하일 이블스! 안녕하십니까 과학자님!”

   “어- 좋은 아침.”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자, 재빠르게 나를 지나쳐 가는 조직원들을 보자 한숨이 절로 튀어나온다. 처음 조직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았던 거 같은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내가 이 세상에 처음 떨어졌을 때 보스를 만난 게 문제였으리라.

     

   * * *

     

   처음 이 도시에서 눈을 떴을 때, 잠든 사이에 납치라도 당한 거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럴 수밖에.

     

   너무나도 현대적인 양식의 건물들. 굳이 따지자면 뉴욕 시티 같은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져 서 있었으니까.

     

   이걸 보고서 이세계로 왔다느니, 다른 세계에 떨어졌다느니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성급한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뒤집어진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에 달리는 수인. 멈추세요.]

   “핫하-!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시지!”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가 두 발로 달리는 사람을 힘겹게 쫓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이다.

     

   말도 가볍게 제칠 수 있을 경찰차가 고작 인간 하나를 따라잡지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더라면 이런 곳에서 경찰이나 따돌리고 있는 게 아니라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모조리 쓸어버렸을 것이 분명하거늘.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를 잠시, 빌딩에 내걸린 전광판에서 긴급 뉴스 속보가 터져 나왔다.

     

   [속보입니다. 지금 G 시에서 빌런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였습니다. 인근 도시에 살고 계시는 시민들은 지금 즉시 대피소로 이동하시길 바라며…….]

     

   “……빌런? 테러?”

     

   화면 속에는 손에서 폭발을 뿜어내고 있는 빌런과, 그런 빌런을 상대하는 쫄쫄이 입은 히어로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내가 납치당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 추측했던 것들 중 하나는 비슷했다.

     

   미국스러운 양식의 건물이라고 했었던가. 그렇다. 여기는 미국 코믹북에서나 볼 법한 히어로물 세계였다. 히어로와 빌런, 초능력과 아인종이 실재하는 판타지 세계…….

     

   여기서 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개 일반인에 불과했다.

     

     

   * * *

     

     

   미국 코믹북스러운 세계답게 사람들은 검은머리에 동양인인 나를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지 대뜸 다가와 눈을 찢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기야 인간 아닌 종족도 있는 마당에 피부색 조금 다르다고 인종차별을 벌이는 건 이상한 일이리라.

     

   덕택에 별다른 사고 없이 도시를 둘러볼 수 있게 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는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현금이요 카드도 쓸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곧장 일자리부터 찾아야 된다는 걸 직감했다. 집도, 돈도, 심지어는 신분도 없는 빈털털이가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한지는 족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겠네…….’

     

   미국 코믹북스러운 세계답게 사람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 같은 건 없겠지만, 경찰쯤 되는 행정 조직이라면 신분을 알아내는 시스템 정도는 있는 게 당연했다.

     

   운 좋게도 말이야 통한다지만, 이 세계에서 내 신분을 증명해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무척이나 큰일이었다.

     

   경찰이 과연 집도 신분도 없는 나를 친절하게 대우해줄까? 아니. 불법체류자라고 여기고 감옥에 쳐박거나 해외로 추방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뭐, 일자리가 없겠냐. 일할 사람이 없겠지.’

     

   여차하면 막노동이라도 해야지- 그런 생각에 일자리를 구한다는 가게란 가게는 모조리 들렸다. 일을 구하러 왔단 말에 사장들도 사람 좋은 미소를 피우며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네왔다.

     

   “그래, 우리 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자네는 무슨 능력을 갖고 있지?”

   “……예? 그런 거 없는데요.”

   “나가.”

     

   아쉽게도 이 세상엔 인종 차별 대신 다른 차별이 뿌리 박혀 있었다. 무능력자 차별. 지구에서 떨어져 초능력 없는 나는 이 세계에선 편의점 알바도 불가능한 불가촉천민에 가까웠다.

     

   그렇게 열댓 개가 넘는 가게에서 거절당하고 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해질녘. 개와 늑대의 시간. 내게 다가오는 이가 도움을 주러 오는 선량한 시민인지, 나를 해치러 다가오는 빌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구석탱이에 앉아 사람과 추위를 피했다.

     

   ‘미친 세상…… 무능력자는 뭐해 먹고 살라고?’

     

   무능력자에 신분도 학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막노동도 그러했다. 신체 강화 능력이 없는 일반인은 쓸모가 없다나 뭐라나.

     

   모든 것들이 초능력자를 위해 존재하는 이 도시에서 무능력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쭈그리고 앉아 공포에 떠는 일을 제외하고선…….

     

   “─혼자 앉아서 궁상을 떨고 있구나.”

     

   또각-.

   그리고 그때, 기척도 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손바닥이 머리를 헝클고, 뒤따라온 우유향이 내 코를 간질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그곳엔 웬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평범한 아이는 아닌 듯 했다. 소녀 뒤에 선 정장 입은 경호원들이 이를 증명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실례했다는 듯 손을 떨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사람이랑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족히 알고 있었으므로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려했다.

     

   그러나 나를 찾은 아가씨께선 자신이 찾은 장난감을 놓아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딜 가느냐?”

   “컥-!”

     

   에잇-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내 목덜미를 잡아 다시금 땅바닥에 앉혀놓은 소녀는 가볍게 허리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원체 키가 작았기에 그리 많이 굽힐 필요는 없었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위엄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도, 정체도 모르거늘 미국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꿀꺽- 침을 삼킨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이신가요?”

   “이런 곳에 웬 시커먼 남정네가 혼자 울먹이고 있으니, 궁금해질법도 하지 않느냐?”

   “운 적은 없는데요…….”

   “여에겐 다 보인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소녀는 그리 말하며 자신에게 고민을 말해보라 종용했다. 아까 느껴졌던 위압감은 어디론가 싹 사라지고,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이 전신을 감싼다. 처음 보는 이에게, 그것도 어린아이에게 비밀을 말한다는 거부감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내 비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는…….”

     

   이 세계가 아닌 지구에서 왔습니다.

     

   능력도 뭣도 없는 무능력자입니다.

     

   집도 돈도 신분도 나를 책임질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

   ……

   ……

     

   “─응응. 그렇구만.”

     

   “……어?”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 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내 운명은 최악이었다. 그녀가 내 말을 믿는다면 어딘가 실험체로 잡혀갈 수도 있는 것이었고, 믿지 않는다면 길거리에 웬 정신병자가 돌아다닌다고 경찰에 넘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소녀는 그 어떤 예상과도 다른 말을 꺼내놓았다.

     

   “갈 곳이 없는 게로구나. 그렇다면 우리 집으로 가자꾸나!”

   “예? 그게 무슨…….”

   “무얼- 걱정하지 말거라. 여의 집에는 빈방이 아주 많으니까! 그 중 하나를 사용한다면 된다! 사양할 생각은 하지 말거라!”

     

   소녀는 씨익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는 네게 궁금한 게 많으니까.”

     

   그렇게 나는 소녀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소녀의 집으로…….

     

   “아, 말하는 걸 깜빡했구나. 여의 이름은 레갈리아. 편하게 리아라고 불러도 좋다.”

     

   이제 이름은 안다.

     

   ***

     

   성명 : 레갈리아Regalia

   초능력 : 왕의 위엄

   설명 : 왕과 같은 카리스마를 발현한다.

     

   ***

     

   “여긴…….”

   “이곳이 바로 여의 집이노라!”

     

   리아의 차를 타고 도착한 저택은 지구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크기의 대저택이었다. 정말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건물.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는 건 대충 눈치챘지만 설마 이런 집에 살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나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후후- 그렇게 놀랐느냐? 여의 집에는 남는 방이 아주 많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니,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키티. 방으로 안내해주도록. 아- 식사는 했나?”

   “……식사도 아직 못 하긴 했는데.”

   “간단히 먹을 것도 같이.”

     

   소녀는 그리 말하며 손 흔들며 사라졌다. 키티라 불린 여인을 바라보며 리아가 어딜 가는지 묻자, 이번에도 정말 상상도 못 할 답변이 돌아왔다.

     

   “아가씨께선 주무시러 가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열 시가 되기 전에 침대에 누워야 키가 잘 크니까요.”

   “아…… 혹시, 아가씨 나이가.”

   “그게 왜 궁금하시죠? 쓸데 없는 건 묻지 마시길.”

   “……죄송합니다.”

   “따라오세요. 식사는 방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괜스레 한소리 들은 뒤 방으로 이동했다. 방은 겉으로 볼 때와 똑같이 엄청 호화로운 방이었다. 침대는 구름마냥 안락했고 이불에선 좋은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잠시 후,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온 키티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늦은 저녁이라 제대로 된 식사는 아닙니다만.”

   “아뇨,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그녀가 가져온 카트 위에는 스테이크가 놓여져 있었다. 이게 제대로 된 게 아니라고? 제대로 된 식사는 대체 얼마나 호화롭길래…….

     

   놀라 감탄하기도 잠시, 나는 스테이크를 썰어 집어먹기 시작했다. 어설픈 나이프와 포크질을 본 키티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은 아가씨의 호의로 묵을 곳을 찾으셨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가씨의 흥미가 다 떨어지면 똑같이 노숙자가 되실 테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아가씨께 도움이 될만한 능력을 입증하던가, 아니면 아가씨의 흥미가 가시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해서 생각해내시든가. 둘 중 방법을 찾으시길 빌겠습니다.”

     

   단호한 한 마디를 내뱉은 키티는 그렇게 방을 나섰다.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등 따숩게 잘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레갈리아의 호의. 일시적인 흥미로 인한 호의에 불과했으니까.

     

   이곳에서 더 있고 싶다면 내 능력이 그녀에게 쓸모 있다는 걸 입증해야만했다. 무능력자는 불가촉천민만도 못 한 취급을 받는 이 세계에서 말이다.

     

   ‘……그런 게 가능할까.’

     

   다행히도 그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다 됐습니다.”

   “오오-!”

     

   레갈리아는 움직이는 장난감 로봇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끼익끼익 움직이는 로봇을 보며 기뻐하는 리아를 본 나도 따라 웃었다.

     

   고작 이 정도로 이렇게나 기뻐할 줄이야.

     

   ‘어린애라서 그런가.’

     

   겨우 눈에서 빔이 나가는 로봇을 만들어줬다고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작입니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작품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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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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