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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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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세계 종(種) 보관소
     
     
     
     
     
     
     
   – 저, 저게 뭐야?
   – 타다당! 드르르르륵!
   – 철수! 전원 퇴각!
   – 콰아앙!
   – 팀장님!
     
   ‘……’
     
   – 심장이 뛴다! 아직 살아있어! 어서 옮겨!
   – 소령님. 정신 드십니까?
   – 테러 진압 작전은 실패했네.
   – 한강호 소령. 기적입니다. 수술 성공입니다.
     
   ‘……’
     
   – 한 소령. 또 거절할 걸 알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하네. 자네가 꼭 가줬으면 해.
   – 사령관님. 가겠습니다. 세계 종(種) 보관소.
     
   ‘……’
     
   한강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겨운 환청.
   2년이 지났는데 매일 꿈에서, 그리고 시도 때도 없는 환청으로 그때 그 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강호의 환청을 걷어내 주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여의사는 잠깐 한강호의 표정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고 있던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진단과 처방,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정보 열람 동의를 요청드렸는데,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강호는 별말 없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미 열일곱 살 때부터 많은 세계 명문대학에서 특별 대우를 약속했는데, 다 뿌리치고 육사를 지원한 이유라도 있나요?”
   “……”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한강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사 박사님. 제 증상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상담했고, 중요한 얘기는 다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그런데, 사고와는 무관한 과거의 일을, 그렇게까지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는 건가요?”
     
   금발의 매력적인 여성 의사는 온화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가만히 한강호의 눈을 마주 봤다.
     
   “네. 필요합니다.”
     
   단호한 의사의 말에 한강호도 괜한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군인이셨습니다. 작전 수행 중 순직하셨죠.”
     
   강호는 셔츠 안에서 목에 걸고 있는 인식표를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전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제복을 보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훌륭하네요.”
     
   리사는 빈말이 아님을 전하려는 듯 정확히 남자와 눈을 맞춰주고는 다시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말대로라고 해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 부분이 있었다.
     
   ‘보통 이정도 천재는 국가 인재로 분류해 관리하지 않던가?’
     
   한강호의 각종 기록을 보면 그는 대내외적으로 꽤 유명한 IQ 180의 과학 천재였다.
   실제로도 고등학생 때 이미 국제 학술지에 정식 논문을 등재하기도 했다.
     
   ‘수학식 증명과 어셈블리어 탐색 알고리즘 두 건이나.’
     
   그런 천재를, 단지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겠다고 육사를 지원하게 그냥 놔뒀다?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인지, 리사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육사 수석 졸업, 임관 후에도 계속 공적 쌓고, 전례 없이 7년 만에 최단기 소령 진급하고. 군도 적성이 맞았나 봐요?”
     
   그녀는 눈앞에 앉아 있는 186cm에 85kg의 아주 건장하고 잘생긴 30대 초반 한국 남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나저나, 정말 잘생겼네.’
     
   리사 박사는 지극히 사적인 감상을 털어내고 한강호의 이후 이력에 다시 집중했다.
   하지만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환자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근황 얘기를 꺼냈다.
     
   “요즘도 재난 매뉴얼만 계속 본다면서요.”
   “… 네. 그거라도 봐야 속 매스꺼운 게 없으니까요.”
     
   리사는 그의 활자 중독 증세에 대해서도 더 묻지 않았다.
   1년 넘게 성경보다 더 방대한 양의 재난 매뉴얼을 닳도록 보는 그의 심경이 오죽할까 싶었다.
     
   ‘재미로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뭐라도 읽지 않으면 호흡 곤란에 식은땀까지 나니까.’
     
   그렇기에, 세계 종 보관소에 입소한 모두에게 재래식 서적으로 제공되는 재난 매뉴얼을 본 사람은 아마 그가 유일할 것이다.
     
   리사는 한강호의 과거 증상과 처방 내역, 그리고 호전도 등을 더 살피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일단 이곳에서는 사고나 범죄 등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요양한다고 생각하고 편히 지내요.”
   “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러고 있습니다.”
     
   여의사는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상담 내용 등을 입력하고 다음 방문 일정을 잡았다.
     
   “혹시 내가 알아야 할 게 더 있을까요? 새로운 증상이라던가, 힘든 것들.”
     
   늘 하던 대로 마지막 추가 질문이었고, 강호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 아뇨. 없습니다.”
     
   의사는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 많이 하고, 명상도 꾸준히 하세요. 잠도 충분히 잘 자야 해요.”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한강호는 진정성 느껴지는 잔소리에 감사를 전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리사는 멀어지는 사내의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유쾌하거나 쾌활하지는 않아도 내향적인 건 아니야.’
     
   PTSD 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우울감도 없다.
   또, 차분하고 냉소적인 면은 있지만, 그건 그가 기본적으로 지적 우월성을 갖기 때문에 나타나는 천성 같은 것이었다.
     
   한강호처럼 견고한 자존감을 형성하고 자의식에 논리적 근거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공황장애에 걸리지 않는다.
   물론 그는 특수한 경우였다.
     
   “하긴, 몰살 현장에서 혼자 반죽음 상태로 살아서 기적처럼 회복했으니, 무리도 아니지.”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모니터에 펼쳐진 마지막 문서로 시선을 옮겼다.
     
   [이름]: 한강호.
   [소속]: 경비청 / 경비 B팀
   [직급]: 경비원.
   [신상 정보] : …
   [이력] : …
   [입소 승인]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추천.
   […]: …
     
   여러 항목 중, 유독 ‘경비원’이라고 적힌 항목에서 괜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2050년 인류의 최첨단 미래 과학 기술이 집약된 세계 종 보관소.
   이곳에 입소한 대부분은 과학과 의학 분야의 연구자들이었다.
     
   그런 곳에, 한때 과학 천재였던 사내가 연구원이 아닌 경비원으로 입소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육군 대 테러 특수부대의 영관급 장교였던 뛰어난 군인이 말이다.
     
   “꼭 회복됐으면 좋겠어.”
     
   리사는 진심으로 그가 다시 웃음을 되찾기를 바랐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극비사항]: 특수 혈청 주입 / 최초 실험체 – 유일한 성공 사례.
     
   마지막 항목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 * *
     
   한강호는 병원 앞 공원 벤치에 앉아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세계 종 보관소에 입소한 지도 벌써 1년.
   지하 10층의 연구시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웅장한 풍경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거의 지하 세계라고 해도 될만한 엄청난 규모였다.
     
   후우우.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걸며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삶에 의욕이 없던 건 아니었다.
   전사했어야 할 상황에서 현대의학의 힘과 과학의 혜택을 받아 기적처럼 살았고, 회복 후 몸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물론 일반인들은 누릴 수 없는 특혜였다.
   정부는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공로를 높이 사 한강호를 살리고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 특수 혈청 주입으로, 오히려 기본 신체 기능이 더 향상됐습니다.
   – 뇌와 심장에 나노 칩을 이식했습니다.
   – 지금껏 보지 못한 완벽한 생착률을 보여 무척 고무적입니다.
   – 군이 아닌 연구진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겁니다.
     
   당시 담당 의사가 수술과 회복 과정을 설명하며 협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강호는 국가를 상대로 지루한 소송을 진행했다.
     
   – 정보 공개 청구 소송.
     
   이유는,
   어떻게 자신보다 먼저 철수한 부대원들 모두가 사망했는지, 진실을 알아야 했다.
   그거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때 그 괴물, 꼭 좀비 같은 존재의 정체.’
     
   한강호는 회복 후 가장 먼저 당시 사건 기록을 살펴봤다.
   인질, 테러범 할 것 없이 건물 안에 있던 모두가 사망했다.
   그럼에도 괴생명체에 관한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그렇다고 꿈을 꾼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환청에 시달리는 마당에 환각 증세로 몰려 정신과 치료만 더 받게 될 터였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비가 출몰했다는 얘긴 어디서도 들어보질 못했다.’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어 조용히 이것저것을 알아봤다.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인베이젼의 연구소에 테러범들이 침입했다. 뭘 노리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인베이젼이 설립한 유전자 연구소와 최대 투자처인 세계 종(種) 보관소.’
     
   몇 가지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번번이 거절했던 세계 종 보관소 입소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입소시킨 박충식 사령관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 같은 분이었는데….’
     
   꽤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군가 다치는 일이구나. 멈춰야 하는 일이었어.’
     
   전원 사망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산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면, 그게 과연 정의일까?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멈췄고, 목적을 잃었다.
     
   그 때문일까.
   그날 이후 한강호는 ‘나는 왜 사는가’를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착잡한 마음을 털어내듯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고 길게 내뱉을 때였다.
     
   크르르르르.
     
   “……?!”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트라우마 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휙 돌아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안녕하세요.
[재난 매뉴얼을 외워버렸다] 쓰고 있는 로스티플입니다.

첫 작품으로 Ilham Senjaya님께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휴재 없이 완결까지 꾸준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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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세계 종(種) 보관소

– 저, 저게 뭐야?

– 타다당! 드르르르륵!

– 철수! 전원 퇴각!

– 콰아앙!

– 팀장님!

‘……’

– 심장이 뛴다! 아직 살아있어! 어서 옮겨!

– 소령님. 정신 드십니까?

– 테러 진압 작전은 실패했네.

– 한강호 소령. 기적입니다. 수술 성공입니다.

‘……’

– 한 소령. 또 거절할 걸 알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하네. 자네가 꼭 가줬으면 해.

– 사령관님. 가겠습니다. 세계 종(種) 보관소.

‘……’

한강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겨운 환청.

2년이 지났는데 매일 꿈에서, 그리고 시도 때도 없는 환청으로 그때 그 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강호의 환청을 걷어내 주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여의사는 잠깐 한강호의 표정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고 있던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진단과 처방,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정보 열람 동의를 요청드렸는데,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강호는 별말 없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미 열일곱 살 때부터 많은 세계 명문대학에서 특별 대우를 약속했는데, 다 뿌리치고 육사를 지원한 이유라도 있나요?”

“……”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한강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사 박사님. 제 증상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상담했고, 중요한 얘기는 다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그런데, 사고와는 무관한 과거의 일을, 그렇게까지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는 건가요?”

금발의 매력적인 여성 의사는 온화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가만히 한강호의 눈을 마주 봤다.

“네. 필요합니다.”

단호한 의사의 말에 한강호도 괜한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군인이셨습니다. 작전 수행 중 순직하셨죠.”

강호는 셔츠 안에서 목에 걸고 있는 인식표를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전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제복을 보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훌륭하네요.”

리사는 빈말이 아님을 전하려는 듯 정확히 남자와 눈을 맞춰주고는 다시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말대로라고 해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 부분이 있었다.

‘보통 이정도 천재는 국가 인재로 분류해 관리하지 않던가?’

한강호의 각종 기록을 보면 그는 대내외적으로 꽤 유명한 IQ 180의 과학 천재였다.

실제로도 고등학생 때 이미 국제 학술지에 정식 논문을 등재하기도 했다.

‘수학식 증명과 어셈블리어 탐색 알고리즘 두 건이나.’

그런 천재를, 단지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겠다고 육사를 지원하게 그냥 놔뒀다?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인지, 리사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육사 수석 졸업, 임관 후에도 계속 공적 쌓고, 전례 없이 7년 만에 최단기 소령 진급하고. 군도 적성이 맞았나 봐요?”

그녀는 눈앞에 앉아 있는 186cm에 85kg의 아주 건장하고 잘생긴 30대 초반 한국 남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나저나, 정말 잘생겼네.’

리사 박사는 지극히 사적인 감상을 털어내고 한강호의 이후 이력에 다시 집중했다.

하지만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환자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근황 얘기를 꺼냈다.

“요즘도 재난 매뉴얼만 계속 본다면서요.”

“… 네. 그거라도 봐야 속 매스꺼운 게 없으니까요.”

리사는 그의 활자 중독 증세에 대해서도 더 묻지 않았다.

1년 넘게 성경보다 더 방대한 양의 재난 매뉴얼을 닳도록 보는 그의 심경이 오죽할까 싶었다.

‘재미로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뭐라도 읽지 않으면 호흡 곤란에 식은땀까지 나니까.’

그렇기에, 세계 종 보관소에 입소한 모두에게 재래식 서적으로 제공되는 재난 매뉴얼을 본 사람은 아마 그가 유일할 것이다.

리사는 한강호의 과거 증상과 처방 내역, 그리고 호전도 등을 더 살피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일단 이곳에서는 사고나 범죄 등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요양한다고 생각하고 편히 지내요.”

“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러고 있습니다.”

여의사는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상담 내용 등을 입력하고 다음 방문 일정을 잡았다.

“혹시 내가 알아야 할 게 더 있을까요? 새로운 증상이라던가, 힘든 것들.”

늘 하던 대로 마지막 추가 질문이었고, 강호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 아뇨. 없습니다.”

의사는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 많이 하고, 명상도 꾸준히 하세요. 잠도 충분히 잘 자야 해요.”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한강호는 진정성 느껴지는 잔소리에 감사를 전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리사는 멀어지는 사내의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유쾌하거나 쾌활하지는 않아도 내향적인 건 아니야.’

PTSD 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우울감도 없다.

또, 차분하고 냉소적인 면은 있지만, 그건 그가 기본적으로 지적 우월성을 갖기 때문에 나타나는 천성 같은 것이었다.

한강호처럼 견고한 자존감을 형성하고 자의식에 논리적 근거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공황장애에 걸리지 않는다.

물론 그는 특수한 경우였다.

“하긴, 몰살 현장에서 혼자 반죽음 상태로 살아서 기적처럼 회복했으니, 무리도 아니지.”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모니터에 펼쳐진 마지막 문서로 시선을 옮겼다.

[이름]: 한강호.

[소속]: 경비청 / 경비 B팀

[직급]: 경비원.

[신상 정보] : …

[이력] : …

[입소 승인]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추천.

[…]: …

여러 항목 중, 유독 ‘경비원’이라고 적힌 항목에서 괜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2050년 인류의 최첨단 미래 과학 기술이 집약된 세계 종 보관소.

이곳에 입소한 대부분은 과학과 의학 분야의 연구자들이었다.

그런 곳에, 한때 과학 천재였던 사내가 연구원이 아닌 경비원으로 입소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육군 대 테러 특수부대의 영관급 장교였던 뛰어난 군인이 말이다.

“꼭 회복됐으면 좋겠어.”

리사는 진심으로 그가 다시 웃음을 되찾기를 바랐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극비사항]: 특수 혈청 주입 / 최초 실험체 – 유일한 성공 사례.

마지막 항목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 * *

한강호는 병원 앞 공원 벤치에 앉아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세계 종 보관소에 입소한 지도 벌써 1년.

지하 10층의 연구시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웅장한 풍경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거의 지하 세계라고 해도 될만한 엄청난 규모였다.

후우우.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걸며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삶에 의욕이 없던 건 아니었다.

전사했어야 할 상황에서 현대의학의 힘과 과학의 혜택을 받아 기적처럼 살았고, 회복 후 몸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물론 일반인들은 누릴 수 없는 특혜였다.

정부는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공로를 높이 사 한강호를 살리고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 특수 혈청 주입으로, 오히려 기본 신체 기능이 더 향상됐습니다.

– 뇌와 심장에 나노 칩을 이식했습니다.

– 지금껏 보지 못한 완벽한 생착률을 보여 무척 고무적입니다.

– 군이 아닌 연구진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겁니다.

당시 담당 의사가 수술과 회복 과정을 설명하며 협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강호는 국가를 상대로 지루한 소송을 진행했다.

– 정보 공개 청구 소송.

이유는,

어떻게 자신보다 먼저 철수한 부대원들 모두가 사망했는지, 진실을 알아야 했다.

그거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때 그 괴물, 꼭 좀비 같은 존재의 정체.’

한강호는 회복 후 가장 먼저 당시 사건 기록을 살펴봤다.

인질, 테러범 할 것 없이 건물 안에 있던 모두가 사망했다.

그럼에도 괴생명체에 관한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그렇다고 꿈을 꾼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환청에 시달리는 마당에 환각 증세로 몰려 정신과 치료만 더 받게 될 터였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비가 출몰했다는 얘긴 어디서도 들어보질 못했다.’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어 조용히 이것저것을 알아봤다.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인베이젼의 연구소에 테러범들이 침입했다. 뭘 노리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인베이젼이 설립한 유전자 연구소와 최대 투자처인 세계 종(種) 보관소.’

몇 가지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번번이 거절했던 세계 종 보관소 입소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입소시킨 박충식 사령관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 같은 분이었는데….’

꽤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군가 다치는 일이구나. 멈춰야 하는 일이었어.’

전원 사망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산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면, 그게 과연 정의일까?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멈췄고, 목적을 잃었다.

그 때문일까.

그날 이후 한강호는 ‘나는 왜 사는가’를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착잡한 마음을 털어내듯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고 길게 내뱉을 때였다.

크르르르르.

“……?!”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트라우마 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휙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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