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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커버접기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뜨니 메시지 창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십시오.]

   [성공 시 : ??]

   [실패 시 : 게임 오버]

   

   안 잊었어. 안 까먹었다고.

   

   그러니까 나와서 독촉하지 마. 나한테 심란한 마음을 달랠 시간을 달란 말이야.

   

   메시지 창을 내리고 몸을 일으키니 방 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만 장소에 프릴이 달려 있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화려한 방.

   

   마음 같아선 저 프릴을 모두 다 떼어서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저택의 사람들에게 ‘우리 아가씨 완전히 돌아버리셨나봐.’ 같은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참고 있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평판이 바닥인데 이 아래에 더한 바닥이 있다는 걸 알고 싶지는 않아.

   

   “실례하겠습니다. 아가씨.”

   

   침대 옆에 있는 종을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시녀 하나가 트레이를 끌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빙의했을 때는 이걸 몰라서 무작정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었는데.

   

   그 때 이 시녀의 경악한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황해선 어찌할 줄을 몰라 하다가 무작정 대가리를 박길래 왜 이러나 싶었지.

   

   오늘도 시녀의 얼굴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나의 앞에 와서는 벌벌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기침하셨습니까?”

   ‘네.’

   “허접 시종. 보면 몰라?”

   

   그녀를 달래기 위해 편한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내가 깃든 몸은 제멋대로 입을 움직여 날 선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고개를 숙인 시녀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메스가키]스킬. 또 지랄이네.

   

   내가 [메스가키]라는 스킬을 선택했을 무렵엔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 스킬에는 특수한 부가효과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그건 바로 사용자에게 메스가키스러운 어투와 행동을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간에 나는 언제나 건방진 어투와 고압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얼굴 드시죠.’

   “흐흥. 계속 땅만 보고 있으려고?”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황해서 눈동자를 가만 두지 못하는 시종을 보다가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랬네.

   

   “죄송합니다! 머리부터 빗어 드리겠습니다!”

   

   별 생각 없이 한 나의 행동마저도 질책으로 받아들인 듯 시종의 목소리엔 다급함이 묻어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려던 나는 다급히 손으로 입을 가로막은 후 화장대 앞에 앉았다.

   

   화장대의 거울에 내가 만든 캐릭터인 루시 알른 영애의 모습이 비쳤다.

   

   기다란 짙은 분홍 색 머리카락에 장난기 가득한 눈매.

   

   도발적인 미소가 어울릴 것 같은 꼬맹이는 내가 커스터마이징 창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꼬맹이 본인만 아니었어도 순수하게 예쁘다고 감탄을 했을 텐데.

   

   정작 본인이 되니까 좆같다는 생각 이외에 아무것도 들지 않아.

   

   내가 루시 알른이라는 여자아이가 되고 나서 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던 나머지 온갖 기행을 저질렀던 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은 그럭저럭 진정이 된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우선은 루시 알론이란 꼬맹이는 내가 빙의하기 전부터 이미 저택 내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야 [메스가키]스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지만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꼬맹이였던 우리 백작 영애께서는 자기 부친이 지닌 권력을 자신이 지닌 권력이라 착각하고 저택의 폭군으로 행세하셨다.

   

   전속 시종이 갈아치워진 수만 해도 열 번이 넘는데다가 이 꼬맹이의 괴롭힘에 견디지 못해 저택에서 도망친 사람만 해도 수십 명.

   

   그녀를 가르치는 교사는 이미 네 번이나 바뀌었고 지금 있는 교사도 항상 사직서를 품 안에 넣고 다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망나니라는 표현도 정중한 표현이지. 그것보다는 개 같은 썅년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루시의 부모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자식 교육을 잘 시켰겠지만 외동 따님을 아주 귀하게 여기는 루시의 아버지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날에 내가 여러 기행을 저질렀다고 했잖아?

   

   근데 그걸 눈으로 보면서도 허허 웃으면서 오냐오냐 해주더라니까?!

   

   아무리 딸이 귀해도 그렇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루시가 메스가키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커보였다.

   

   오냐오냐하는 부모의 아래에서 제멋대로 자란 꼬맹이라니.

   

   진짜 극혐이다. 현실에서 만났으면 험한 말이 튀어나왔을 거야.

   

   그런데 그게 나네? 씨부럴. 인생 진짜.

   

   어쨌건 본래 몸의 주인께서 하도 개짓거리를 하고 다닌 탓에 내 평판은 최악.

   

   귀족이라는 작위가 없었더라면 언제 레볼루숑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란 소리다.

   

   상황이 이러니 저택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내 평판은 바닥을 찍고 있겠지.

   

   아직 사교계 같은 데 나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루시 알른 영애의 악행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 않을까.

   

   소울 아카데미에서 귀족 스타트를 하는 이유 중 팔 할 이상이 이 평판 때문인데 이걸 나락을 찍고 시작하다니.

   

   내가 정말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네.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온갖 비난을 듣게 되겠지?

   

   소울 아카데미의 캐릭터들은 선 성향이나 귀족의 의무 같은 걸 중시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여러 히로인들의 경멸하는 시선이라니… 이건 좀 좋을지도?

   

   아니. 아냐. 그것도 화면 너머로 보니까 괜찮은 거지 현실이 되면 마음이 쓰릴 게 분명해.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불투명하다는 것.

   

   평판이니 뭐니 하는 거야 내 마음이 아픈 걸 뺀다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카데미 입학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소울 아카데미는 아카데미의 학생인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난 아카데미 입학 시험이 어떤 식으로 치러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난 저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바로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소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뉜다.

   

   필기 총 400점에 실기 총 200점.

   

   총합 600점의 점수가 나오는데 보통 합격의 커트라인이 427점이고, 여태 아카데미 시험 중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을 때가 453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있잖아. 작중 캐릭터 대사에서 언급되기로 주인공이 속한 기수가 역대 최고의 기수라서 커트라인 최고치를 갱신했다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최소한 453점 이상.

   

   작중에서 호들갑 떨던 걸 생각해보면 460점 이상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커트라인이 높건 말건 시험을 잘 치면 그만 아니냐고 그러겠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울 아카데미의 모든 설정을 꿰고 있던 나다. 필기시험이 아무리 어려워봐야 조금 공부하면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설정.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내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내가 솔라딘 왕국 세 번째 왕의 업적을 어떻게 아냐?

   

   또 뭐더라? 메스케디나 화염마법 방정식?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외에도 아카데미 시험에 나오는 여러 과목들이 있었는데 그건 하나 같이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내 살다 살다 수학수식이 반가울 줄은 몰랐다. 그건 그나마 익숙하긴 했거든.

   

   물론 익숙하다고 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난 문과였고 수학 공부 때려 친 지 십 년이 넘게 지났다.

   

   뭔 개소리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이건 나 같은 빙의자가 아카데미 시험까지 남은 세 달 동안 공부해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 머리가 있었으면 내가 후속작 소식도 없는 게임을 만 시간 넘게 붙잡고 있었겠냐고…

   

   그에 반해 실기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것이었다.

   

   과목은 두 개. 대련과 아카데미에서 만들어 낸 던전의 탐색.

   

   이건 소울 아카데미 게임에서도 지겹도록 해 본 일이었다.

   

   그렇다고 만만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본 적 없는 일반인이다. 그런 내가 싸움을 잘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는가.

   

   닭잡는 것도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했던 내가 다른 사람과 장병기를 맞대고,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니.

   

   말이 쉽지. 실전에 들어가면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못할 게 뻔하다.

   

   하아.

   

   사실 저 메시지 창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쫓길 이유는 없었다.

   

   귀족의 딸이 된 이상 반드시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아도 잘 살 방법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렇지만 메시지. 특히 저 실패 시 게임 오버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게임에서 게임오버라는 것은 높은 확률로 죽음을 의미했다.

   

   내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높은 확률이라고 한 거지 사실상 게임 오버란 곧 사망이다.

   

   영문도 모른 채 메스가키 몸에 빙의당한 것도 꼴 받는데 이렇게 살다가 세 달 뒤에 허무하게 뒈지라고?

   

   그렇겐 못하지. 절대로.

   

   아무리 급박하다 한들 정상적인 수단으로 합격하는 게 불가능하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노력의 끝에서 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실기 우수자 특별 전형.

   

   소울 아카데미 실기 시험에서 특히나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세 사람을 필기 성적과는 무관하게 합격시켜 주는 제도다.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똑같다.

   

   아카데미 시험을 치러 오는 다른 이들은 몇 년 동안 아카데미 시험을 준비한 이들이다.

   

   당연히 나보다 훨씬 더 전투에 익숙하겠지

   

   그렇지만 하나. 단 하나만큼은 난 다른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던전 탐색.

   

   내가 누구? 소울 아카데미 1만 3천 시간의 고인물!

   

   아카데미 시험에 나오는 던전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는 다 외우고 있다.

   

   눈을 감고서 지도를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빠삭하게!

   

   최소한의 전투 능력만 확보된다면 던전 탐색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아카데미 시험까지 남은 삼 개월 동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지는 명확했다.

   

   스펙업.

   

   내가 아무리 싸우는 데에 서투르다 할지라도 그 모든 걸 커버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스펙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내가 자신 있는 분야였다.

   

   내가 소울 아카데미를 몇 년 동안 붙잡고 있으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뭐였을 것 같아?

   

   정답을 스포일러 하자면 바로 스펙을 키우는 부분이다.

   

   어떤 캐릭터를 하던, 어떤 플레이를 하던 간에 게임을 클리어 하기 위해선 스펙을 키우는 게 필수적이니까.

   

   아직 아카데미 입학을 하지 못했기에 여러 수단이 제한되긴 하지만 상관없다.

   

   여전히 스펙을 키울 수단은 차고 넘쳐나니 말이다.

   

   “아가씨. 끝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 머리를 다듬는 일이 끝나 있었다.

   

   벌써?

   

   루시 알른의 머리카락은 무척이나 길다.

   

   아무리 루시의 체구가 작다 해도 그녀의 허리춤까지 오는 머리가 어디 가볍겠는가.

   

   허나 시녀는 그 머리카락을 빠른 시간 내에 말끔하게 정리한다는 위업을 성공시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내 머리카락을 건드릴 엄두도 못 냈는데 말이야.

   

   ‘정말로 대단하네.’

   “나쁘지 않네. 허접 시종치고는 말이야.”

   

   무의식중에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큰일이 났다 싶었지만 다행히 메스가키치곤 부드러운 언행이 튀어 나왔다.

   

   이번엔 겁 안 먹었겠지? 라고 생각을 하며 뒤편을 바라보자 시녀가 굳은 얼굴로 내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이번에도 어투가 좀 그랬나?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녀는 이내 표정을 다잡더니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

   

   식사를 마친 나는 그 즉시 내 장대한 계획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루시의 아버지가 있는 집무실 문 앞에 섰다.

   

   나의 존엄을 걸어야 하는 막중하고도 어려운 일을 앞에 두어서 그런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내가 스펙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이거였으니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바보 아버님~”

   

   작전명. 메스가키식 애교부리기 시작이다.

   

   씨발. 내가 말하고도 토할 것 같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한 화씩 올라올 예정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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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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