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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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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골목이다.

   

    “으윽….”

   

    내가 어제 술을 먹었던가? 아닌데…. 뭐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쓸데없이 하늘이 푸르다.

   

    “…이게 뭔 냄새야?”

   

    코를 찌르는 악취에 몸을 일으켰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깨달았다.

   

    “아, 씹.”

   

    이게 내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고? 어제 술을 진탕 처먹고 잤는데 그 기억마저 날아가버린 건가?

   

    갑자기 불안해져 기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이름, 이서준. 나이, 스물넷.

   

    어제가 며칠이었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깨달았다.

   

    ‘내가 언제부터 날짜를 외우고 다녔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외로 몸이 가볍다. 확실히 어제 술을 마신 컨디션은 아니다.

   

    “뭐야.”

   

    그런데 이제 보니 옷이 이상하다. 우리 집에 이런 펄럭거리는 옷이 있었나? 심지어 잔뜩 더러워져 누가 줘도 안 입을 것처럼 생겼다.

   

    슬슬 머리가 이상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전부터 깨달아가던 사실을 이제서야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웠다.

   

    “진짜로…?”

   

    서준은 멍하니 앞에 보이는 골목의 모퉁이로 걸어갔다. 우선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소설 속에 떨어졌든 이세계에 떨어졌든 뭐가 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모퉁이를 돌았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고년 참 앙칼지네.”

    “확 배때지에 구멍 뚫어버리기 전에 얌전히 있으라고!”

    “꺄아악…!”

   

    굳어버린 목을 돌렸다. 빌어먹게도 범죄 현장이 한눈에 딱 들어왔다. 더 안타까운 건 그 범죄자들과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이다.

   

    “뭐야? 저리 꺼져라 꼬마야.”

    “아, 옙.”

   

    후딱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범죄자들은 자비롭게도 가여운 민간인의 삥을 뜯는 대신 무사히 보내주기로 한 모양이다.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에서 멀어지던 서준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잡았다.

   

    ‘뭔 씹 저만한 칼을 들고 다녀?’

   

    칼이 무슨 사람 팔뚝보다 크다.

   

    심지어 범죄자들이 입고 있던 옷은 아무리 봐도 현대가 아닌 훨씬 이전 세대의 것.

   

    무협지에 나오는 놈들이 딱 저렇게 입고 다니지 않을까 싶은 옷이다.

   

    자신이 납치당했다 눈 뜬 곳이 사극 촬영장이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뜻하는 바는 뻔했다. 

   

    소설 속인지 이세계인지는 몰라도 어딘가에 떨어졌다. 보아하니 배경은 무협. 혹시 몰라 읽었던 소설들을 떠올려봤지만 읽은 무협지만 백몇 개쯤 돼서 감이 안 온다.

   

    아니지. 그냥 개꿈인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비명 소리가 귓가를 찌른다.

   

    – 꺄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모퉁이에서 멀어지던 서준이 몸을 멈춰세웠다. 찢어지는 비명이 발길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지랄 진짜.”

   

    칼 든 놈들을 무슨 수로 이기려고? 미친 짓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하나 구하겠다고 목숨을 버려?

   

    그래, 미친짓이다. 이건 미친짓인데….

   

    “하아…, 씨발!”

   

    당당히 어깨를 펴고 소리쳤다. 어느새 움직인 몸이 모퉁이에 서있었기에 당연하게도 범죄자 친구들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래, 용사 힘멜이라면 이렇게 했겠지. 꿈자리 한 번 지랄맞네.

   

    “새끼가. 보내줘도 알아서 다시 오네.”

    “머리가 좀 아픈 거 같은데?”

   

    두 사내가 헛웃음을 짓는다. 그 사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인지 옷이 반쯤 벗겨진 여인이 질질 기어와 서준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소, 소협…! 제발 저 좀…, 아악!”

   

    뻐억-!

   

    서준의 무릎에 얼굴을 얻어맞은 여인이 기절했다. 그러자 사내들이 오히려 황당한 듯 서준을 쳐다봤다.

   

    “진짜 너 뭐 하는 놈이냐?”

    “이봐 친구들, 여자는 믿으면 안 돼. 구해줬다 뒤통수 맞으면 좆되거든.”

   

    정확히는 싸우다 뒤에서 칼 꽂히면 진짜 큰일 난다. 저 여자가 이놈들과 한 패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구해준 뒤 사과하면 서로 좋은 일이다. 

   

    이쪽은 진짜로 등에 칼 꽂히는 걸 직관했던 사람이라, 저 여자를 그냥 등 뒤에 두기에는 영 불안했다. 

   

    “허참, 이거 그냥 순 미친놈이었구만?”

   

    지 팔뚝만 한 칼을 든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서준은 가빠지는 숨을 애써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당연하지만 무공 같은 걸 알 리는 없고, 어디선가 본 듯한 복싱 자세다.

   

    “별 희한한 놈을 다 보겠네.”

   

    사내가 도를 휙 휘둘렀다. 보인다. 저 위에서 떨어지는 칼날이 몸통을 반으로 쪼개놓겠지.

   

    그 모든 광경이 느릿하게 보여서, 스스로도 신기한 심정으로 몸을 움직였다.

   

    촤아악-!

   

    “어…?”

   

    다만 몸이 생각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뱃가죽이 갈라져 내장이 줄줄 쏟아져내린다.

   

    “어, 어어….”

   

    원래는 두 동강 났어야 할 몸이 붙어는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

   

    불쑥 다가온 땅에 얼굴이 처박히고, 타는 듯한 고통에 몸이 발작을 일으킨다.

   

    “끄으으….”

   

    존나 아프다. 그 단편적인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꿈일 텐데. 꿈이어야 할 텐데.

   

    애먼 곳을 헤매던 의식이 끊겼다.

    

   

    *

   

   

    “…지랄맞은 꿈이네.”

   

    낯선 천장이다. 역시 아까는 꿈이었나? 하긴, 느닷없이 무림에 떨어지는 건 말도 안 되지.

   

    허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끄으윽……!!”

   

    진짜 존나 아프다. 뱃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동시에 미친듯이 바닥을 굴렀다.

   

    “하아…. 뭐 이런 바보가 다 있어?”

    “으윽…, 뭐, 뭐야.”

    “미련한 짓 하지 말고 누워있어. 너 상처 터지면 이번에는 진짜 죽는다?”

   

    고통에 깜빡거리는 시야를 들어올리니 자그마한 인영 하나가 보인다. 열두 살 열세 살쯤 돼 보이는 꼬맹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뒤지는 줄 알았네….”

   

    질질 흐른 침을 대충 문질러 닦고 꼬맹이를 눈으로 훑었다.

   

    “…꼬마야, 넌 누구니?”

    “뭐? 이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꼬맹이가 발끝으로 몸을 살짝 찔렀다.

   

    “으윽…!”

   

    서준이 몸을 비비 꼬았다. 상처를 직접 건든 것도 아닌데 통증 때문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 뭐!”

    “아오….”

   

    낑낑대며 몸을 바로했다. 구멍 뚫린 천장 사이로 새카만 밤하늘과 눈이 마주쳤다.

   

    ‘하늘?’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니 폐가가 따로 없다. 툭 치면 무너질 것처럼 생긴 건물 호소체 안에 누워있으려니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냐?”

    “내 집.”

    “니 집이 어디에 있는 건데.”

    “너 쓰러져 있던 데 근처.”

   

    애새끼가 쯧쯧 혀를 찼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내가 너를 뭐 얼마나 멀리 들고 오겠냐? 여기까지 오는 데도 무거워 죽는 줄 알았구만.”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도 너 힘 좀 센가 보다? 어린애가 다 큰 남자 끌고 오긴 쉽지 않았을 텐데.”

    “뭐어? 풉!”

   

    애새끼가 실실 웃더니 본격적으로 비웃기 시작했다.

   

    “다 큰 남자? 너 거시기에 털은 났냐?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는 게 뭐라는 거야.”

    “뭐? 저런…. 어린 나이에 벌써 노안이니?”

   

    서준은 별생각 없이 자신의 몸을 살폈다. 물론 거시기에 털이 났는지 살펴본 건 아니고, 저 꼬맹이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나 손 정도만 내려다봤다.

   

    “뭣.”

   

    작다. 그리고 짧다. 

   

    완전히 어린아이의 그것은 아니었지만, 성인이 된 후로 봐오던 손과는 확실히 크기 차이가 났다.

   

    “어이가 없네. 무슨 코난도 아니고.”

   

    몸은 어려졌어도 두뇌는 그대로! 진짜 지랄이 났다.

   

    “모르겠다 씨발.”

   

    인생. 뭐 어련히 되겠지.

   

   

    *

   

   

    어련히 안 되더라. 

   

    열흘 정도가 지나 서준은 이리저리 굳은 몸을 풀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문 건 아니지만 거의 다 나았다 봐도 될 정도 회복됐다. 비정상적인 속도다.

   

    애초에 어떻게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살가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삐져나왔던 내장은? 그걸 다시 주워 넣는다고 살 수 있나? 보통 감염돼서 죽지 않나?

   

    고민하던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모르겠다. 애초에 어려진 게 더 말이 안 되지.”

   

    중얼거린 말에 춘봉이 답했다.

   

    “또 그 소리야? 지겹지도 않냐?”

    “아니, 진짜 어려진 거 맞다니까?”

    “헛소리도 그 정도면 정성이다.”

    “닥쳐 춘봉아.”

    “…….”

   

    어떻게 사람 이름이 춘봉이? 나름 목숨의 은인인 꼬맹이를 바라보자 그가 울그락불그락 얼굴을 붉혔다.

   

    “…그냥 버리고 올걸.”

   

    한숨을 내쉰 춘봉이가 툴툴거렸다.

   

    “아무튼 헛짓거리 하지 말고 얌전히 누워있어. 그거 진짜 열흘 만에 나을 상처는 아니었으니까.”

    “다 나았잖아.”

    “그러게. 신기하단 말이지.”

   

    자신의 몸을 빤히 쳐다보는 춘봉을 뒤로하고 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신기한 건 내가 더 신기한데.’

   

    열흘 간 춘봉이와 대화를 나누며 확신했다. 이건 꿈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었고, 무림이었다.

   

    ‘근데 또 이상하단 말이지.’

   

    사흘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심심해서 춘봉이의 옆구리를 발가락으로 찌르고 있으니 그가 소리쳤다.

   

    ‘아 좀! 열두 시가 다 됐겠구만! 잠 좀 자자!’

   

    이게 무슨 화산파가 파이어볼 쓰는 소리도 아니고. 열두 시? 미친 건가? 상식인이 쓴 무협지라면 자시子時라는 말을 두고 열두 시라는 표현을 쓰진 않는다.

   

    ‘그딴 무협지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그러면 소설 속이 아닌가? 그냥 어디 이상한 사이비 무림에 뚝 떨어진 거라고?

   

    “야, 이서준.”

    “왜.”

    “뭘 왜야. 일어났으면 이제 밥값 해야지.”

   

    춘봉이가 반쯤 무너진 문 앞에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따라와, 누…, 형이 뒷골목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마.”

    “근데 너 진짜 남자 맞냐?”

    “…너 이 새끼.”

   

    춘봉이가 후다닥 물러나 제 몸을 가렸다. 오해다. 그런 오해는 정말 곤란하다.

   

    “아, 엉덩이 안 딴다고!”

    “수상해.”

    “됐으니까 가자. 뭐 얼마나 잘 빌어먹나 보자.”

   

   

    *

   

   

    “그러고 보니까 나 쓰러져 있던 데 다른 건 없었냐?”

   

    서준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호호 불어먹으며 물었다.

   

    “없었는데?”

    “그래? 영 찝찝하네.”

   

    그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작게 명복을 빌며 만두를 한 입 더 베어물었다.

   

    “근데 진짜 고기만두는 없냐?”

    “…이게 배가 불러터져가지고.”

    “맛대가리가 없네 이거.”

   

    일단 이름은 만둔데 속이 없다. 그냥 밀가루 덩어리라는 소리다.

   

    “하! 그럴 거면 다음부터는 니가 훔쳐. 망은 내가 볼 테니까.”

    “그럴까?”

    “그럴까는 무슨 그럴까야! 그냥 닥치고 처먹어!”

   

    한 대 얻어맞았다. 꼬맹이 주제에 손이 맵다. 이게 무림 현지인의 손맛?

   

    “아, 어디 무공 하나 하늘에서 안 떨어지나? 그 친구들 다시 만나면 진짜 두드려패줘야 되는데.”

   

    푸념하며 남은 만두를 죄다 입에 밀어넣자 춘봉이가 얼굴을 빤히 쳐다봐왔다.

   

    “웨, 머.”

    “무공 알려줘?”

    “케흛…!”

   

    켁켁! 목에 걸린 만두를 땅에 뱉어냈다. 그걸 아깝다는 듯 쳐다보는 춘봉이의 두 볼을 찰싹 붙잡고 물었다.

   

    “진짜!?”

    “별건 아닌데. 그냥 삼재검법이야.”

   

    뒷골목 꼬맹이 주제에 어떻게 무공을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타이밍.

   

    “감사합니다 사부님!”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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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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