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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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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발.”

     

   한 남성이 욕설을 내뱉었다.

   욕을 안 하고는 배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몸에는 여기저기 얼룩진 저주의 문양이 보였다.

     

   그의 오른쪽 눈은 저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맛이 가버렸다.

   더군다나 몸의 절반은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크라슈 발하임.

   발하임 가문의 수치로 불리던 남자였다.

     

   ‘수치는 개뿔이.’

     

   그러나 그런 수치라는 말도 옛말이었다.

   세계 침식이라는 멸망에 맞서 싸운 창공의 세대 중 한 명이었으니까.

     

   언제나 반푼이 취급하던 가문에서도 꽤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목말랐던 인정 욕구 때문에 그는 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눈앞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며 세계가 멸망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최흉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이다.

     

   크라슈는 그런 멸망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옆에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이제 콜록, 어쩔 거냐…….”

     

   크라슈는 저주로 인해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질타만은 확실히 느껴졌다.

     

   “어쩔 거냐라.”

     

   그러자 태양과 같이 눈부신 백금발의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이 멸망해 가고 있음에도 우수에 찬 그의 얼굴은 반칙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잘생겼다.

     

   창공의 세대 중 가장 뛰어난 이이자 영웅왕이라 불리던 아서 그라말테.

   제국이 자랑하는 영웅왕의 말로는 실로 웃겼다.

     

   왜냐하면 그의 주위를 3명의 여자가 제각기 둘러싸 그를 위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영웅왕이 아니고, 하렘 왕이었다.

     

   “세상은 멸망했다. 끝이지.”

     

   아서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를 앞으로 보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음에도 저런 말투였다.

     

   마치, 멸망 따위는 자기와 관여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말이야? 콜록, 너 하나 믿고 대체 몇 명이나……!”

   “크라슈, 닥쳐요! 아서도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러는 순간 바다 같은 머리색을 지닌 여성이 소리쳤다.

   크라슈는 눈살을 팍 찌푸렸다.

     

   그녀의 이름은 시그린 에파니아.

   제국 에파니아의 셋째 황녀이자 아서를 에파니아의 황제 후보 자리까지 올린 장본인이었다.

     

   아서에게 푹 빠져 눈이 멀어버린 황녀.

   하지만 검술만큼은 아서와 겨룰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였다.

     

   “씨발, 콜록콜록! 시그린 님, 눈 한쪽이 안 보인다며 엉엉 울던 것을 겨우겨우 두 눈 뜨고 다니게 해줬더니. 닥쳐요? 그게 말입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크라슈는 날이 선 언사를 내뱉었다.

   그러자 시그린은 크라슈를 향해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보였다.

     

   “지금 감히 저 시그린의 앞에서 그게 무슨 언사죠? 당신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

   “후환? 후환!”

     

   크라슈는 입에서 핏물을 토해내며 양손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세계가 멸망했는데 후화안?! 씨발 년아! 널 아끼던 에파니아는 옛 저녁에, 콜록, 컥, 망했어!”

     

   시그린은 그 말을 듣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잔뜩 차올랐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 크라슈는 오히려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황족이라는 것을 믿고, 아서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막대하던 그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크라슈는 취급은 좋지 못했다.

     

   가장 주된 이유는 크라슈가 스타론 왕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카데미 때부터 지랄이란 지랄은 다 해놓고!”

     

   그녀와 지독한 악연은 라헬른 아카데미 때부터 시작되었다.

     

   타고난 검술의 재능으로 모든 이에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시그린.

     

   그에 반해 스타론 왕국이 자랑하는 발하임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뭣하나 잘하는 것 없는 반푼이 막내아들 크라슈.

     

   그저 비교만 당했다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아카데미 내의 제국파 수장이었던 시그린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왕국파를 깔아뭉개고자 크라슈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 덕에 크라슈는 제국파의 무시는 더불어.

   같은 왕국파에게도 수치라며 따돌림을 당했다.

     

   가문을 넘어 왕국의 수치라는 말은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크라슈는 참았다.

     

   자신은 재능 없는 반푼이가 맞았고.

   그녀는 세계를 구할 창공의 세대에 꼭 필요한 이였으니까.

     

   “눈 잃으니까 아주 내게 옘병을 하더니!”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세계는 멸망했고, 제국은 세계 침식 때문에 증발해 버렸으며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증오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손으로 짓눌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저 미친년의 눈에 걸린 저주를 훔쳐 오지도 않았다.

     

   “훔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쓰레기가!”

     

   그러자 시그린도 눈이 돌아갔다.

     

   그녀는 백룡의 이빨이라는 백선의 검을 뽑았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는 금방이라도 크라슈를 얼어 붙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크라슈는 코웃음 쳤다.

   훔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쓰레기라.

     

   “그래, 콜록콜록, 그 말 대로지.”

     

   크라슈는 자기 능력이 싫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기껏해야 훔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 스킬 · 블랙 후드 ]

   대상이 가진 것을 훔친다.

     

   *조건

   1. 대상이 가진 것의 가치는 대상이 정한다.

   2. 대상이 판단하는 가치 여하에 따라 훔치는 조건이 정해진다.

   

     

   그와 계약을 맺어준 신이 준 스킬이자 정말 말 그대로 도둑질만 하는 능력이었다.

   대상이 소중하게 여기면 여기는 것일수록 훔치기 까다로워지는 이상한 능력.

     

   하지만 딱 하나 이 능력에는 장점이 있었다.

     

   ‘세계 침식에서 발생하는 저주조차도 훔쳐 올 수 있다.’

     

   세계에서 날고 기는 해주사들 조차도 풀지 못하는 저주를 훔쳐 온다.

   이 엄청난 장점 때문에 크라슈는 창공의 세대와 함께했다.

     

   그 결과 그에 몸에 쌓인 저주는 무려 세자릿수.

     

   그중 한 저주가 저주로는 죽지 않는 대신 잠을 영원히 자지 못하게 되는 저주라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지.

   진작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숫자였다.

     

   ‘얼마 안 가서 네자릿수 달성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더니.’

     

   안타깝게도 그걸 달성하는 것보다 세상이 먼저 멸망해 버렸다.

     

   어쨌든 크라슈의 몸에 있는 모든 저주는 창공의 세대에게서 훔쳐 온 것들이었다.

     

   아서의 공포장악이라는 저주.

   시그린의 암막이라는 저주.

   성녀의 패악선의라는 저주.

   염제의 악의근원이라는 저주 등등.

     

   지금은 죽은 녀석들의 저주까지 몽땅 크라슈가 지니고 있었다.

     

   저주는 대상에게 가장 가치 없는 존재다.

   그렇다 보니 크라슈의 블랙 후드가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니들은 나 없었으면 여기까지도 못 왔어…….”

     

   크라슈의 한쪽 눈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안 그렇냐? 콜록, 아벨라.”

     

   그가 돌아본 장소에는 아까부터 아서의 품에 안긴 채 울고만 여성에게로 향했다.

   왜소한 덩치를 지닌 그녀는 손에는 별들이 새겨진 지팡이를 쥐어져 있었다.

     

   마탑이 낸 최고의 인재이자 같은 창공의 세대인 붉은 마녀 아벨라.

   그녀 또한 아서와 함께 여기까지 온 동료였다.

     

   “아서 님, 아서 님, 어떡해요.”

     

   그러나 그녀는 들은 척조차 안 했다.

   세계가 멸망한 직후부터 그녀가 하는 거라곤 아서의 옆에 달라붙어 엉엉 우는 것밖에 없었다.

     

   ‘하긴, 원래 그랬지.’

     

   그녀는 원래도 자기 말 따위 들은 척도 안 하며 무시로 일관한 여자였다.

     

   몸이 찢기는 듯한 저주의 통증이 너무 괴로워 진통제를 얻으러 마탑으로 갔더니.

   마탑에 들어오지도 못하도록 문전박대 했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수모를 겪은 건 그것만이 아니긴 했지만.

   그때부터 이미 그녀에게서 모든 정을 떼었다.

     

   “목소리를 잃는 저주 때문에 마법을 못 쓰게 됐다더니. 콜록, 콜록, 쳐 우는 건 잘하네.”

     

   그럼에도 꼬박꼬박 저주는 훔쳐 달라는 꼴이 얼마나 가증스럽던지.

   지금도 성대가 쇠로 긁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고, 이 통증에 기침이 나오는 것은 그녀의 저주 탓이었다.

     

   “구차하니 그만하시죠.”

     

   그러는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서의 등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여성.

     

   그녀는 에파니아 제국의 창이자 시그린을 지키는 최강의 기사 메리 다이아나였다.

     

   흑색의 새까만 머리카락과 큰 키에 어울리는 글래머스한 체형을 지닌 매력적인 그녀였지만.

   크라슈에게는 같잖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닌 저주 중 상당수는 저 등신 같은 여자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강의 창은 개뿔이.

   자존감만 더럽게 높아서 당장 후퇴해야 하는 세계 침식을 상대로도 기어코 머리를 들이밀어 저주를 가져오는 꼴이 얼마나 역겹던지.

     

   “구차? 지랄, 아서에게 품은 마음을 안 들키고 싶어서 모든 걸 다 말하는 저주에 걸려 나에게 훔쳐 달라 염병하던 건 기억 안 나냐?”

     

   그런 주제에 저주를 푼 다음 날.

   시그린, 아서와 함께 같은 방에 들어가던 모습은 참 기가 찼다.

     

   그 덕분에 자신은 그날 약속했던 첫 데이트도 못 나갔다.

   이제는 데이트고 자시고, 죄다 뒤져서 부질없지만.

     

   “당신은 입만 열면 그딴 말밖에 못 지껄이는군요.”

   “못 지껄이지! 콜록콜록, 네 저주가 아직도 일부 남아 있으니까!”

     

   저주끼리 제멋대로 상쇄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말을 내뱉을지 몰랐다.

     

   “하다못해. 세상이라도 구하지, 그랬냐.”

     

   크라슈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듯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아서를 돌아보았다.

     

   가장 문제는 아서, 이 녀석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던 아서다.

   그는 언제나 미래를 아는 것, 마냥 모든 것을 척척 해냈으니까.

     

   그러나 끝에 와서 허둥지둥하더니 이제는 이렇게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크라슈는 아서와 함께했다.

     

   아서의 주위에 있는 녀석들은 죄다 머저리들 뿐이었다.

   하지만 아서는 최소한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말해주던 이였다.

     

   물론 크라슈에게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딱히 만류하지 않았던 아서였지만.

   크라슈가 이 꼴이 되며 창공의 세대 곁에 남아 있어 줬던 것은 자신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서였다.

     

   “너는 할 수 있는 녀석이었잖냐.”

     

   크라슈는 아서가 멸망하는 세계를 보며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끝났군.」

     

   마치, 연극 하나가 끝났기라도 했다는 양.

   그가 덤덤하게 내뱉은 그 말은, 지금까지 크라슈가 해온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래,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실패했더군.”

     

   그 사이 아서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가슴팍 아래에는 진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벨라가 그에게 달라붙어 계속 울고 있는 이유도 그거였다.

   왜냐하면 아서는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의 멸망을 막지 못한 것은 결국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번, 에도?”

     

   하지만 크라슈가 방금 아서가 내뱉은 말을 곱씹으며 의문을 보였다.

   이미 한 번 이 상황을 겪어 봤다는 양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이번에는 달랐다. 기억 전승이라는 카드를 얻었으니까.”

     

   그를 보던 여성진 세 명의 표정이 변했다.

   그 표정은 이미 오래전에 그와 무언가 약속을 나눈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기이하게 보던 크라슈가 서서히 눈살을 찌푸렸다.

     

   “아서,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 나만 이해 못한 거야?”

   “크라슈, 나는 멸망이 이번이 처음 아니다. 이 세계는 몇 번이고 멸망하고 있으니까.”

     

   아서의 담담한 말은 크라슈를 더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몇 번이고 멸망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아서가 마지막에 와서 미쳐버린 걸까.

     

   “하지만 괜찮다. 나는 되돌아가면 되니까.”

   “그게, 그게, 뭔 헛소리냐! 아서! 시그린, 아벨라, 메리, 너희들 뭔가 알고 있지!”

     

   크라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아서 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직 세계에는 아서 뿐만이라는 듯이 말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야기는 해주마.”

     

   그러자 드디어 아서가 그 답을 해주었다.

     

   “회귀다.”

     

   회귀?

   크라슈의 한쪽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가 아서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세 사람은 이미 그의 회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회, 귀?”

     

   그와 함께 크라슈는 모든 퍼즐이 짜 맞춰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왜냐하면 아서가 미래를 아는 것처럼 행했던 행보들이 모두 이해됐기 때문이었다.

     

   아서의 눈은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로 회귀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회차에는 기억 전승을 얻었다. 이 기억 전승이 있다면 시그린과 아벨라, 메리의 기억도 내가 회귀한 시점으로 전승 가능하지.”

   “그렇게, 회귀해서 다시 시작하겠단 거냐?”

     

   혼자 힘으로 막지 못했던 멸망이라면 다른 이들도 함께 회귀시켜 막으면 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크라슈의 한쪽 눈이 커다랗게 떠지기 시작했다.

     

   그런 거라면 정말로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비록 이번 회차는 실패했더라도 인성은 빻았어도 실력은 되는 저 세 사람과 함께 한다면 그 가능성이 훨씬 올라갈 테니까.

     

   한순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멸망으로 막막해졌던 세계의 빛이 말이다.

     

   “그래, 모두와 다시 시작할 거다.”

     

   그러다 문뜩 크라슈는 모두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옆에 있는 세 사람은 이미 진작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창공의 세대들이 다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모두의 저주를 훔쳐 가면서까지 견뎌온 자신은?

     

   “기다려. 아서.”

     

   그렇기에 크라슈는 묻기로 했다.

   너만은 나를 인정하지 않았었냐고.

     

   “……나는?”

     

   떼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열며 그가 질문한 순간이었다.

   아서는 처음과 같이 가만히 크라슈를 보다가 이내 처음으로 그가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흣.”

     

   갑작스러운 그의 박장대소를 듣고, 크라슈가 얼이 빠진 순간 아서는 아벨라가 닦아준 눈물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금색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크라슈, 몸은 물론 정신도 걸레짝이 되어버린 네 기억을 전승시켜 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러냐.”

     

   아서는 멍하니 있는 크라슈를 내려다보며 그리 말했다.

     

   “걱정 마라. 난 널 꽤 좋아하니까. 네가 없으면 창공의 세대는 여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저주를 훔치는 네 능력은 쓸모가 많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네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 내가 필요한 건 깨끗한 정신으로 나를 따라와 줄 너니까.”

     

   지금 그 말은 마치, 자신을 도구처럼 취급하는 말이었다.

   그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적인 도구.

     

   회귀 때마다 필요하긴 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도구 말이다.

     

   “또 보자. 크라슈.”

   

   

   

   

     

   그 말과 함께 아서의 몸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서가 회귀를 쓰기 시작했음을 깨달은 크라슈는 당황한 표정으로 일어서다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쪽 다리가 저주로 맛이 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진흙탕 속을 구르며 크라슈는 아서를 향해 피를 토한 채 외쳤다.

     

   “기다, 기다려! 기다려! 아서! 나도 데려가라고! 씨발 새끼야! 가려면 나도 데려가!”

     

   하지만 그럼에도 아서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처음부터 크라슈는 아서의 인생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그를 인정해준 척한 이유도 어디까지나 그가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뿐.

   그를 동료로서 인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과연,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을까.

     

   ‘그런 건 이미.’

     

   사실 오래전에 깨닫고 있지 않았나.

   창공의 세대의 일원이 자신을 무시하며 모멸적인 짓을 저지를 때 아서는 그저 아무런 말 없이 보고만 있었다.

     

   마치, 그런 자신의 취급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동료로 여겼더라면 진작 만류하고, 함께 했을 텐데.

   자신의 공적을 인정하기는커녕 그 또한 같이 도구 취급했었다.

     

   ‘난 그저.’

     

   마음속으로 홀로 자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창공의 세대에 도움이 된다면서,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면서, 가문에서부터 결여 되었던 자존감을 그런 식으로 채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대로.

   이대로 정말로 끝이라고?

     

   정말로?

     

   크라슈의 정신이 아득해지던 순간이었다.

   크라슈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멸망하는 세계.

   떠나가는 아서.

   대상이 지닌 것을 훔치는 능력.

     

   이미 애저녁에 저주로 망가진 몸이라 생각도 안 했던 부분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늘 가지던 의문이 있었다.

   과연 자신은 스킬이라고 훔치지 못할까.

     

   물론 스킬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일 테니 쉽게 훔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크라슈의 손이 아서를 향해 들어 올려졌다.

   과연 아서의 지난 회차 속에서도 자신은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

     

   성공했다면 이번 회차의 자신도 똑같이 회귀했었겠지.

   하지 못했다는 건 실패했다는 것일 거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거라도 안 하면 어차피 멸망한 세계 아래, 모든 게 무의미해질 테니까.

     

   “씨바알!”

   

   

   

   

     

   한마디 욕설과 함께 크라슈의 뻗은 손이 빛난 그 순간.

   크라슈는 환한 빛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어?”

     

   환한 빛이 사라지고 외마디 의문이 한차례 울려 퍼졌다.

   멸망을 위해 쏟아지는 유성우 속, 한 사람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그럼과 함께 그는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는 그 눈을 서서히 크게 뜨기 시작했다.

     

   “이, 이게?”

     

   분명히 회귀를 해야 했을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가.

   거기에 의문을 가졌을 때쯤, 그는 머리 위에 쏟아지는 유성우에 깔려 생각이 끊겼다.

     

     

   본래라면 회귀를 해서 10회차를 맞이 해야 할 9회차 아서 그라말테.

     

     

   그가 진정으로 죽은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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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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