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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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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발을 맞췄다. 건물 내부는 예상한 대로 추웠다. 삭막하고, 가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제법 넓다는 것. 방 사이사이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일부는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딱딱해서 말라비틀어진 빵.

         

       먹을 게 없는 건가.

         

       노인이 멈춰 섰다.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성흔을 지녔다고, 모두가 사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일정한 의식을 갖추어야만 가능하지.”

       “의식이요?”

       “통과의례라고 보면 된다. 네 성흔이 진짜인지를 감별하는 의식이야.”

         

       나는 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초라한 건물 안 유일하게 밝은 곳. 아직 지지 않은 태양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추어진다. 다른 곳은 전부 허물어지거나, 교회의 역할을 못 하는 곳이지만…이곳만큼은 다르다.

         

       잘 닦여진 의자들이 각을 맞춰서 세워져 있다. 햇빛은 찬란히 부서져서 여러 색깔로 나뉘고,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람은 새어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곳. 겨울의 변경 도시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난방이 제대로 되어 있었다.

         

       …아니지.

         

       이게 그 태양신 라의 힘인가.

         

       “이쪽으로 오거라.”

         

       노인이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의자에 나를 앉힌 뒤, 안쪽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다시 나온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작은 그릇과 안에 담긴 물.

         

       “아이야.”

         

       노인이 내 앞에 앉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자하드 발튼이에요.”

       “성이 있구나. 혹시 귀족의 자제냐?”

       “몰라요. 어머니가 가르쳐주시기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힘든 시기를 보냈구나.”

         

       노인은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내 이름은 미어칸트다. 편하게 사제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아이야. 의식에 앞서, 너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제시해주고 싶구나.”

       “어떤 길이요?”

       “신의 위광은 인간을 떠났고, 우리는 가난에 찌들었단다. 그 어떤 믿음도 현실 앞에서는 무너지기 마련이지. 강철같은 정신과, 태양 같은 불꽃도 결국엔 고통 속에 시들어버리니…신에게 부르짖던 자들은 떠났고, 우리에게 남겨진 건 사람들의 멸시뿐이란다.”

       “…사람들의 멸시요?”

       “여기는…태양신 라의 교단의 지부 중 하나다.”

         

       이미 들었던 것을 한 번 더 들으니 그 절망감이 배나 된다.

         

       그래. 뭐든 내 뜻대로 풀려나갈 리가 없지. 아무리 다 망해가는 교단이라도 본부 하나만큼은 멀쩡하기 그지없으니까. 이 망할 게임이 또 제멋대로 설정을 약간 비틀고, 로그라이크 게임답게 제멋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나 보군.

         

       “태양신 라를 모시는 교단 본부는 남쪽의 도시에 있단다.”

         

       지나쳤다고?! 하씨!

       진작 알았으면 그냥 교단 본부로 직행해서 이곳은 나중에 들렸을 텐데…!

         

       “그, 그렇군요…”

       “아이야. 희망을 품고 북쪽까지 걸어온 네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태양신교의 사정은 네가 보는 것보다 더 좋지 못하단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교단 본부에서는 거리낌 없이 신의 위광을 팔고 있단다. 장사치처럼 돈을 버는 데 집중해, 제국 뒷면의 몇몇 세력과 결탁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으니…교단에게 있어 더없이 치명적이다. 불법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교단이 운영된다는 소문이 들리자 우리들의 위신은 다른 교단보다도 더 밑으로 추락했단다. 현실에 굴복한 사제들이라 불리며 외면받기 시작했지. 돈에 신앙을 판 더러운 위선자라는 소리와 함께.”

         

       미어칸트가 쓸쓸히 웃었다.

         

       “그리고 이 지부는 한 번 타락했다가 불태워지기까지 했단다. 그래서 남은 정식 사제도 나뿐이고…거느린 견습 사제도 둘에 그쳤으니…한 번 박힌 인상을 바꾼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저지를 때는 쉬워도, 그 오명을 벋기 위해서는 몇십 배는 더 노력해야만 한단다.”

       “…아니. 왜.”

       “아이야. 안다. 네 동화 같은 이야기가 깨졌다는 걸.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현실이란 잔혹하고, 때로는 사람을 갉아먹는단다.”

         

       아니 뭐.

       이왕 할 거면 안 들켰어야지. 멍청한 새끼들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화만 났다.

         

       돈으로 바꿔먹을 수 있으면 다 바꿔먹고 시치미를 뗐어야지! 눈에 띄게 나쁜 짓만 안 한다면 가진 힘으로 돈 바꿔 먹는 게 무슨 상관?

         

       어휴. 성직자들이란. 이왕 하는 거 제대로도 못해서 완전 망해버렸나보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이야. 네가 교단에 입문하면, 온갖 불편한 시선들이 널 따라다닐 것이다. 때로는 몰매를 맞기도 하겠지. 네가 저지르지 않은 짓으로 비판받고, 네가 저지르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교단의 일원이라는 이름 아래, 저지른 죄를 같이 갚아나가야 하겠지.”

       “그렇군요…”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면, 일을 소개해주는 기관이 하나 있다. 세례를 받기 전에 네게 더 나은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구나.”

         

       나라고 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가진 스킬이 이 교단이랑 관련되어 있는데.

         

       살아남기 위해 가장 빠르고 분명한 길이 눈앞에 있는데 기약 없는 광부질이나 하라니.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눈을 감고 진심으로 신을 믿는 자처럼 속삭였다.

         

       “인생에 더 편한 길이 있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지 않을까요.”

       “…아이야. 다시 한번 생각을…”

       “태양신이 저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눈을 뜨고 미어칸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부르시니,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미어칸트가 눈물을 흘렸다.

         

       “신이시여…어찌 이리 신실한 아이를…!”

         

       의식이 이어졌다. 성흔을 확인하는 순서는 빠르게 끝났다. 물이 묻은 성흔은 빛이 났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이야. 그 힘을 기억하거라. 빌려온 신의 위광일지니. 어둠이 앞을 가로막아도 앞길을 밝혀줄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네가 할 일을 내일부터 말해주마.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테니, 들어가서 쉬거라. 오른쪽 방을 쓰면 된다. 머무른 아이들은 모두 심성이 곱고 착하니, 어렵지 않게 녹아들 수 있을 게 다.”

         

       미어칸트는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핼쑥한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자리 잡았다.

         

       “태양신교의 아이야. 네 입교를 진심으로 축복하마.”

       “…감사합니다. 사제님.”

         

       나는 문을 열고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의문이 떠올라 발길을 멈췄다.

       미어칸트를 돌아보았다. 그는 꺼내든 책에 무언가 적고 있었다. 아마도, 네 입교와 관련된 서류를 정리하는 것이겠지.

         

       “…사제님.”

       “뭔가 더 필요한 게 있느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째서 제 입교를 거부하려 하신 거예요? 교단의 입장에서는, 한명의 신자라도 더 중요하잖아요?“

         

       견습 사제란, 사제에게 있어 일꾼이나 다름없다. 사제가 되려 노력하는 이들이니, 아무리 일을 얹어도 도망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월급을 바라지 않는 일꾼이 몰려드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기에 이해가 가질 않았다. 굳이 제 발로 기어들어 온 노예를 왜 거절하지?

         

       미어칸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나를 향해 작게 웃었다.

         

       “하나의 신도보다는, 하나의 생명이 굶주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

       “…….”

         

       그 말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저 양반…

         

       뼛속까지 성직자군.

         

         

         

       . . .

         

         

         

       미어칸트의 말대로 복도를 나가서 첫 번째 오른쪽 방에 들어갔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는 대여섯.

       나를 쓱 쳐다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 빈 침대 하나를 차지하자 덩치 큰 소년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너 뭐야?”

         

       텃세네.

         

       쓱 성흔을 보여줬다. 내 앞에 선 소년은 코웃음을 쳤다.

         

       “누가 그걸 물어봤어? 그 자리 내 자리니까 비키라고.”

       “아. 쏘리.”

         

       쓱 궁둥이를 옮겨서 다른 빈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소년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 자리도 내꺼다.”

       “여긴?”

       “그 자리도.”

       “…여기는?”

       “하 시발. 너 병신이야?”

         

       소년이 으르렁거렸다. 쾅 하고 옆의 이층 침대를 내리쳤다.

         

       “네 자리는 여기 없어. 그러니까 꺼지라고.”

       “사제님이 여기 있으라고 했는데.”

       “그딴 늙은이 말을 누가 들을 거 같아? 한 마디만 더 뱉어 봐. 평생 음식도 못 먹을 정도로 만들어버릴 테니.”

         

       전형적인 기싸움이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근육을 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신성을 몸에 휘감았다.

         

       스킬 축복.

         

       [기분이 좋아집니다.]

         

       크으. 멘탈케어에 이만한 게 없지.

         

       “그래라. 그럼.”

       “…뭐?”

       “다른 방 쓰라는 소리 아니야?”

         

       쓱 일어나 그대로 방을 나갔다. 욕지거리가 들려오지만 무시했다. 그대로 비어있는 방으로 쓱 들어갔다.

         

       그나마 있던 베개와 이불조차 없는 황량한 방. 나는 딱딱한 이층 침대에 몸을 실었다. 따라 들어온 소년이 나를 노려봤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왜 또. 해달라는 거 다 들어줬는데.”

       “이 시발 새끼가.”

         

       덩치는 컸지만, 나이는 나랑 비슷한 듯 했다. 험악하지만 앳된 얼굴.

       일단 덩치 차이로 밀리니까…음. 싸우면 진다. 분명 지겠지.

         

       …좋아.

         

       좋은 생각이 났다. 잠깐 아픈 대신, 이참에 히든피스를 만져볼까.

         

       “야. 이름이 뭐냐?”

       “가르쳐줄 거 같아?”

       “이름도 없는 개새끼는 아닐 거 아니야.”

       “개새끼가!”

         

       쾅!

         

       주먹이 내리꽂혔다. 시야가 팍 틀리고, 한순간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프다. 이 새끼. 제법 주먹 좀 쓰잖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다. 얼굴이 빨개져야 맞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니.

         

       나는 가구를 쾅쾅 쳤다. 보란 듯이 뒹굴며 비명을 내질렀다. 눈앞의 소년이 움찔할 정도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사람 죽네!!”

       “뭐, 뭐하는 거야?!”

       “아이고! 아이고!”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미어칸트 또한 섞여 있었다. 바닥을 뒹구는 나와 소년을 마주 보더니 이내 고함을 내질렀다.

         

       “헥토르!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성질을 죽이라고!”

       “하, 하지만 이 새끼가 먼저…!”

       “닥쳐라! 네 만행은 더 못 봐주겠구나! 당장 징벌방에 들어가라! 내가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아라!“

       ”시, 싫어!“

       ”이곳에서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널 내보낼 수밖에 없다! 당장 징벌방으로 들어가거라!“

         

       미어칸트가 나를 안았다. 나는 죽기 직전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 사제님…”

       “오자마자 험한 꼴을 보았구나. 내 가르침이 부족했던 탓이다.”

       “괘, 괜찮아요…하지만…저 녀석뿐만 아니라…다른 녀석들도 절 방관해서…”

         

       미어칸트가 불같이 화를 냈다. 쓱하고 돌리는 시선이 불처럼 타올랐다.

         

       “이 못난 것들! 불의에 참으라고 내가 가르쳤더냐!”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움찔했다. 나는 미어칸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방에…묵는 게…무섭습니다…”

       “다른 방에 들어가게 해주마.”

       “똑같은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서…사제님…실례가 안 된다면…기도실에서 잠을 청해도 괜찮을까요?”

       “뭐?”

         

       미어칸트가 슬쩍 나를 밀어냈다.

         

       “그건 안 된다. 규칙은 규칙이다. 기도실에서 잠을 청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적응할 때까지만 있게 해주세요.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동안 저도…다른 아이들과 친해지려 노력할테니…사제님…도와주세요…이곳에서 잘 지내보고 싶어요…”

         

       허벅지를 쥐어뜯어 일부러 눈물을 글썽인다.

         

       ”신이 함께한다면…놀란 마음이 진정될 거 같아요…“

         

       마음 약한 사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 되는 건 안…”

       “사제님…”

       “내가 지금 말하고 있지…”

       “상처가 너무 아픕니다…태양신이 그립습니다…”

       “…그러니까 규칙은 규…”

       “아아…또다시 맞는다면…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파요…”

       “…….”

         

       미어칸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이다. 그 이상은 안 된다. 교리에 어긋나는 짓이니, 더 있겠다고 떼를 써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빠르게 적응하거라. 내가 언제까지고 너를 지켜줄 수는 없으니. 주변과 친해지는 것도, 태양신의 가르침 중 하나다.”

         

       당연하죠.

       일주일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테니.

         

       나는 쓱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다 두고 보자. 일주일이면 다 뒤졌다.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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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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