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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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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오크노디Oknodie>

     

    피지컬이 딸려도 운빨로 이득을 보고 싶다.

    운빨이 가혹해도 피지컬로 멋지게 극복하고 싶다.

    플레이어들의 니즈needs에 힘입어 탄생한 게임 중에는 악명높은 가상현실게임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도 있었다.

     

    ‘하… 무슨 이딴 게임을 몇천시간 해가지고는.’

     

    주지육림 시뮬레이션을 했으면 지금쯤 누구랑 하렘을 꾸릴지나 고민하고 있을 텐데.

    친구가 야겜 하라고 할 때 야겜이나 할 걸.

    돌연사를 겪기 전에 해야 할 게임을 잘못 골랐다.

     

    이것도 아주 최악은 아니다.

    세상에는 <잠입><액션><암살><요괴판타지> 같은 장르태그가 줄줄이 따라붙는 극한의 피지컬을 요구하는 냉혹한 실력망겜 반요곡 같은 게임도 있다.

    물론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도 그리 만만한 게임은 아니다.

    피지컬과 뇌지컬, 행운.

    삼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는 이 게임은 고인물인 나도 방심할 수 없다.

    운이 좋으면 정말 쉽게 풀리지만 운이 없으면 게임이 어떻게 억까를 하고 살을 날릴지 알 수 없거든.

     

    ‘조금이라도 운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리세마라였는데.’

     

    그 리세마라를 하다가 이세계에 왔다.

     

    “세이브. 강제종료. 로그아웃. 상태창.”

     

    정신병자처럼 허공에 대고 말해도 시스템메시지가 출력되지 않는다.

    현실이 된 게임세계.

    요컨대 현실성 패치라는 녀석이다.

    이왕 게임을 본딴 이세계에 빙의당할거면 평소에 하던 근육떡대남캐라도 돌려줄 것이지, 난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자그마한 소녀의 몸이 되었다.

     

    -근데 넌 남캐만 하잖아.

    -이것보다 딜 좋은 빌드가 없으니까 그렇지.

    -그으래애? 딜만 좋으면 여캐여도 괜찮다 이거지? 근육도 없고 키도 엄청 작은데다가 피부는 막 하얗고 하는 짓은 불쌍해 보이는 그런 여캐여도?

    -당연하지!

     

    흥청망청 술에 취해 소꿉친구 시아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이겠지.’

     

    확실히 이 몸은 근육도 없고 키도 엄청 작고 피부는 막 하얗지만, 하는 짓이야 나 하기에 달리지 않았나.

    고인물이 불쌍해 보인다니.

    억지로 불쌍해 보이려고 노력해도 힘들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 싸매기도 잠시.

    나는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우중충하게 있어서야 정말로 불쌍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되지 않겠나.

     

    <튜토리얼 이벤트>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풍운의 꿈을 품고 수도로의 상경길에 나선 당신! 당신이 머무르던 여관방에 아버지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버지가 당신을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요? 편지를 열어서 확인해보세요!

     

    희소식도 있다.

    마냥 먹통이라 여겼던 시스템메시지도 특정 사물을 육안으로 포착하니 활성화되었다.

    게임에서 본 것과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튜토리얼 안내문구다.

     

    ‘어떻게든 게임과 같은 스토리라인은 따라가겠군.’

     

    이건 희소식이다.

    이 게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와 수많은 고인물테크닉은 정말 엄청난 자산이다.

    막말로 평범한 평민으로 게임을 시작해도 억까만 당하지 않으면 아카데미를 졸업할 즈음에는 한 나라의 대귀족과 어깨를 견줄 정도!

     

    ‘문제는 평범한 평민만도 못한 시작이 있다는 거지.’

     

    현실이 된 게임의 첫 관문이 지금 눈앞에 떠오르는 튜토리얼 이벤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랜덤파파편지로 통하는 이벤트다.

    첫 관문의 랜덤요소는 편지를 주는 주체인 아버지.

    아버지가 매 게임마다 랜덤으로 변화한다.

    주인공은 농노의 자식일수도 있고, 산을 벗 삼아 자란 사냥꾼의 자식일수도 있고, 전쟁고아로 기사에게 거두어진 기사의 종자일수도 있다.

     

    <1금화>

    <희미한 잡음의 소라고동>

    <후견인 : 없음>

     

    예를 들어 돌연사 당하기 직전에 떴던 결과물.

     

    지원금 1금화, 하층민.

    바다필드 관련 아이템, 어부.

    후견인 없음, 연고 없는 혈혈단신.

     

    뭣 모르는 초보자 시절에는 악으로 깡으로 게임을 하며 키웠을 캐릭터지만 리세마라를 알게 된 뒤로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갈아버리는 스펙이다.

     

    <50은화>

    <낡은 테디베어 가죽투구>

    <후견인 : 푸줏간의 가축도살자 닉>

     

    이런 스펙도 애매하다.

     

    지원금 1금화 미만, 고아.

    동물가죽 방어구, 사냥꾼 마을 출신.

    후견인 도축꾼, 사냥 및 도축 관련 성장속도 빠름.

     

    사냥과 도축의 성장속도?

    그딴 건 이미 옛적에 졸업한 지 오래다.

    없어도 잘하는 걸 생색내면서 줘봤자 아무 쓸모도 없다는 말이다.

     

    잘못 걸리면 힘들지만 잘 걸리면 풍족한 시작이 되는 첫 운빨의 기로.

    도움이 되는 스펙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원물품과 버프도 대부분은 플레이어 본인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소소한 수준이다.

     

    ‘보통은 이렇겠지.’

     

    인권이 보장된 노말엔딩을 보려면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한다.

    성공이 보장된 해피엔딩을 보려면 최우수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한다.

    열등생은 잘 풀려도 영지행정관 겸 첩 신세, 개판나면 파티 모험가들한테 배신당해 성노예 신세. 속된 말로 배드엔딩이다.

    퇴학?

    그건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게임세계관이 현실이 된 이세계에서 깨어난 지금, 퇴학은 곧 죽음, 데드엔딩이다.

    튜토리얼은 인권과 성공, 폭망과 죽음을 가르는 최초의 분기점.

    운명을 점치는 타로카드와도 같다.

     

    60% 확률의 평민아버지. 배드엔딩.

    30% 확률의 고아. 데드엔딩.

    9.9% 확률의 성공한아버지. 인권보장.

    0.1% 확률의 귀족아버지. 여기에 성공이 있다.

     

    ‘고인물인 나야 고아만 아니어도 감지덕지지만.’

     

    축캐. 출세. 상위성적졸업.

    그 삼박자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바로 귀족이다.

    그렇지만 0.1%가 어디 그리 흔한가?

    굳이 귀족까지 갈 것도 없다.

    성공한 아버지, 아니 평민아버지라도 좋다.

    고아만 아니면 아주 작은 보상으로도 효율을 극한으로 쥐어짜낼 자신이 있으니까.

     

    잘그락.

     

    여관방 테이블 위에 놓인 돈주머니.

    지원금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함박웃음을 지으려다가 멈칫했다.

    돈주머니 내용물의 많고 적음도 랜덤이기는 하지만, 그게 어떤 동전인지도 랜덤이다.

     

    아직 방심할 때가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600 대 300 대 99 대 1의 법칙을.

     

    이 안에 금화가 들었는지(0.1%), 은화가 들었는지(9.9%), 동화가 들었는지(60%), 돌멩이가 들었는지(30%)는 열어봐야만 아는 것이다.

     

    스르륵

    주머니를 조인 끈을 풀자 보이는 색체.

    그 영롱한 빛깔은 금빛이었다.

     

    ‘금화다!’

     

    1금화 미만이 고아.

    1금화 이상 10금화 미만이 하층민.

    10금화 이상 100금화 미만이 중산층이라면.

    100금화 이상은 성공의 보증수표, 귀족 아버지를 얻는 티켓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받은 지원금은 100금화.

    귀족 당첨이다.

     

    ‘럭키♪’

     

    지원금과 함께 딸려오는 지원물품도 대박이다.

    무려 보석이 딸린 목걸이가 주어졌다.

    보석장신구는 아티펙트일 가능성이 높고, 만일 아티펙트가 아니라도 그 자체로 값진 지원물품이다.

     

    치직

     

    인장을 뜯고 편지를 열었다.

    편지에는 고급스러운 편지지 한 장과 호루라기 하나가 동봉되어 있었다.

    귀족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편지.

    뭐라고 써져 있을까?

    기대와 달리 그 내용은 삭막했다.

     

    xxxx년 xx월 xx일

    아카데미 입학시험 접수일

     

    편지를 뒤집어보았다.

    뒷장에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램프에 비춰보았다.

    불에 비쳐지는 숨겨진 글자도 없었다.

    뭐지?

    아빠가 입학심사관인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짧은 내용에서는 부정父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절그럭.

     

    그런 건 돈주머니에 들어있거든.

    든든한 돈주머니에서 부정을 실감했다.

    구구절절 귀찮은 말이 없는 것도 좋다.

    훗날 가문의 일로 번거롭게 하는 귀족아버지 전용 이벤트가 덜 발생한다는 뜻이니까.

    문제 아닌 문제가 있다면 오크노디라는 이름의 유래가 멍청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걸까.

     

    ‘애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름을 지었담?’

     

    괜찮아 안 죽어.

    보통의 아버지라면 자식에게 짓지 않을 이름이다.

    낯선 이름 못지않게 낯선 몸도 심란하다.

     

     

    목의 티를 늘려서 내려다본 가슴은… 겉으로 보기보다는 볼륨감이 있다.

    티셔츠를 등 뒤로 죽 당기면 드러나는 전투력이 심상치 않다.

    내 가슴이 전투력을 숨김.

    시답잖은 생각도 잠시, 금방 우울해졌다.

    아무리 전투력을 숨긴 가슴이라도 그게 내 가슴이면 마냥 심란하기만 할뿐이다.

     

    ‘에휴 모르겠다.’

     

    거울부터 보고 생각해야지.

    다행히도 편지에는 호루라기가 동봉되어 있다.

    게임에서도 극히 드문 확률로 등장하는 인맥아이템.

    집사호출의 호루라기다.

    생필품 자동수급 및 전리품 자동매각 기능을 지닌 집사는 후견인계의 SSS급까지는 아니어도 S급은 되는 굉장한 아이템!

    오크노디는 지원금, 지원장비, 지원인맥 모두 축캐의 요소만을 전부 타고났다.

     

    ‘호출되기에는 공간이 조금 좁으려나.’

     

    게임에서 호루라기를 사용하면 펑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연기가 터지면서 집사가 소환됐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책상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침대 위에 테트리스 하듯이 차곡차곡 쌓고는 침대의 남는 자리에 올라갔다.

    다행히도 능력치 분배까지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땀이 나거나 지치지는 않았다.

     

    삐이익.

     

    호루라기를 불자 똑똑 소리가 들렸다.

    출입문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허공에서 펑 하고 터지는 연기와 함께 나타나는 대신 출입문을 열고 나타난 집사.

    그 평범한 등장에 묘한 정적이 이어졌다.

    사람 머쓱하게 왜 거기서 나와요?

     

    “저기요. 그…”

     

    정통집사복이라 불리는 연미복 차림의 집사.

    옷깃의 뻣뻣함만큼 날카롭게 힘을 준 올빽머리의 헤어스타일.

    집사가 아니라 마피아가 아닌지 의심되는 무섭게 생긴 얼굴과 살벌한 눈매.

    그의 가슴팍에는 명찰이 달려있었다.

     

    [조나 와이히엠하이]

     

    이상한 이름.

    오크노디의 유래를 떠올리면 방심할 수 없다.

    이세계식 표기법을 따라 읽어보았다.

     

    Jonna wiheomhae.

    존나 위험해.

     

    “…….”

    “불안증세가 도지신 모양이군요.”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약이 필요하십니까?”

    “아, 아니요. 손거울을 조금…….”

     

    사람 이름이 <괜찮아 안 죽어>일수는 있다.

    부모가 씩씩한 딸을 원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어떻게 집사 이름이 <존나 위험해>일 수가 있지?

    말없이 내려다보는 시선.

    집사치고는 묘하게 섬뜩한 분위기가 숫제 반사회적 테러리스트, 빌런을 앞둘 때의 긴장감이 든다.

     

    “잠시 말씀 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네? 아, 네.”

    “편지를 읽으셨다면 아실 겁니다. 주인님께서는 아가씨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인님? 파파가요?”

    “파파……?”

     

    지금은 게임이 아닌 현실.

    실제로는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는 걸까.

    집사가 심각한 위화감을 느낄 정도의 호칭은 아니었는지 그냥 넘어갔다.

     

    “아가씨의 입학시험의 합격을 위한 훈련을 준비했습니다. 귀찮게 사냥을 나가며 모험가들과 함께 구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거울도 전신거울이 있죠.”

     

    집사의 시선이 침대 위로 쌓인 탁자, 의자, 그밖의 온갖 잡동사니들로 향했다.

    사람이 누울 자리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은 침대에 허락된 공간이라고는 고작해야 가구에 기대 간신히 서있기만 할 수 있는 공간.

    침대에는 사람이 누워서 자며 생길법한 흔한 눌린 흔적조차도 없었다.

     

    “여관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마음 놓을 수 있는 환경일 겁니다.”

     

    수면의 흔적이 없는 침대.

    정상인의 방처럼은 보이지 않는 광경.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자각했다.

     

    “오해에요.”

    “아무 말씀 않으셔도 됩니다.”

     

    살벌한 이름이나 생김새와 달리 묘하게 이쪽을 딱하게 여기는 기색.

    어디선가 저런 눈을 본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길 잠시.

    마침내 떠올랐다.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사람의 손을 피해 구석에 처박혀있는 모습을 보는 TV프로그램 패널들의 표정이었다.

     

    “…….”

     

    저 인간, 나를 엄청나게 불쌍한 아이로 여기고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불쌍한(?) 여자(?)아이(?)

    5월1일수정사항 – 내용을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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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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