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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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면만큼 야겜에 충실한 장르도 없다.

        수많은 야겜을 섭렵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평범한 야겜이면 공략이니 뭐니 해야 할 게 많지 않은가.

        미연시 같은 건 아예 몇천 개로 분기가 나뉘고.

        

        그리고 난 모든 수집 요소나 엔딩을 보기 전엔 절대 게임을 내려놓지 않는 주의.

        그런 류의 게임들은 결국 바지 올리고 하게 되더라고.

        야겜이란 말이 무색하게.

        

        반면, 최면물은?

        그저 ‘딸깍’ 한 번이면 끝.

        게임으로선 실격일지 몰라도, 야겜으로선 합격.

        10점. 10점이요.

        

        때문에 난 야겜을 하고 싶어질 때면 매번 최면물을 찾았다.

        

        …어느 날, 쓸데없이 고퀄리티 동인 게임과 만나. 

        결국 거기 빙의될 때까지.

        

        

        ‘수상할 정도로 전투 시스템이 구체적이다 싶었는데… 당했구나!!!’

        

        

        아직도 빙의 첫날 느낀 어이없음이 선명했다.

        

        최면물 치고 쓸데없이 잘 만든 게임이 있어서, 거의 1천 시간은 그 게임만 파고들었는데…

        이게 빙의각이었을 줄이야.

        웹소설에서 자주 보던 전형적인 수법에 당했다는 게 너무 어이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기왕 빙의한 거, 난 온 힘을 다해 이 세상을 즐겼다.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와, 누가 절 빙의시킨 건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플레이어, 즉 내가 가진 최면 능력으로 이런저런 짓도 많이 하고.

        

        

        “대단해요, 유진 님!! 어떻게 저 강적을 이리 쉽게….”

        ‘게임에서 쟤만 백 번은 잡았거든.’

        

        

        몬스터도 때려잡고, 악당들도 무찌르고.

        

        

        “큿, 죽여….”

        “아, 응.”

        ‘게임에선 최면 걸고 능욕도 가능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300살은 조금. 닭장이잖아.’

        

        -서걱.

        

        

        최종 보스라 불리는 녀석도 이리저리 고생한 끝에 토벌 완료.

        해피 엔딩이었다.

        

        그러나,

        

        

        ‘그럼 이제 신 같은 게 나오나? 웹소설 같은 데선 뭔가 고맙다고 사례를….’

        “…….”

        ‘그런 거 없네?’

        

        

        게임의 모든 컨텐츠가 끝났음에도 불구.

        스탭롤은 올라가지 않았다.

        게임은, 내 빙의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난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신 같은 존재를 만나는 일도 없이.

        플레이어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세계에 남겨졌다.

        

        …내가 이리저리 함락시킨 히로인들과 함께.

        

        

        “유진? 이제 싸움은 다 끝난 거지?”

        “으, 응? 아, 응.”

        “그럼 이제….”

        “결혼식을 올려야겠구나. 제자야♡”

        “……네?”

        

        

        졸지에 품절남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이후로는 잔잔한 일상이 이어졌다.

        

        난 S급 1위이자, 세계를 구원한 영웅.

        가진 건 막대한 부와 명예. 압도적인 능력과 최면.

        옆에는 날 사랑하는 아내들.

        

        끝나지 않는 커튼콜 같은 삶이었다.

        

        

        “너, 조금 살찌지 않았어?”

        “나도 이제 아저씨잖아. 그럴 나이도 됐지.”

        ‘교배 아저씨네, 진짜.’

        

        

        평화 속, 몸에 군살이 붙었다.

        야겜에 주로 나오는 ‘교배 아저씨’처럼.

        

        하는 짓도 교배 아저씨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물 마를 날 없는 나날이었으니 말야.

        

        즉, 빙의하고 15년이 흐른 지금.

        난 어엿한 ‘최면 교배 아저씨’가 되었다.

        평화로운 세상 속, 그저 즐겁게 삶을 만끽하는.

        

        

        ‘그런데 난 왜 빙의했던… 에이, 착하게 살아서 복받았나 보지.’

        

        

        ———내가 왜 빙의했는지, 왜 최면이라는 강력한 능력이 주어졌는지 고민도 하지 않고서.

        

        날 빙의시킨 자는 그게 보기 싫었던 걸까.

        어느 날 문득, 그는 내게 신벌을 내렸다.

        

        

        “왜 이리 하늘이 어두운… 음?”

        ‘…몬스터?’

        

        

        내가 35살이 된 날. 돌연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기괴한 괴물들.

        

        그들은 불합리한 힘으로 이 세상을 유린했다.

        

        

        -챙!!

        

        ‘…공격이 안 통해!? 어째서!!?’

        

        

        아무리 검에 마나를 쏟아부어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괴물들.

        

        내가 장난스레 쌓은 힘 따위 전혀 닿지 않았다.

        

        

        “너, 팔이…!!!”

        “…목숨이라도 건진 게 어디야. 스승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죽었을걸.”

        

        

        오히려 나도, 스승님도 팔 한 짝씩 나란히 날려먹었을 뿐.

        나름 S급 1위와 2위인 우리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 대군이 무려 몇만. 아니. 몇십, 몇백만.

        

        하늘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괴물들 덕에, 인류는 하루하루 멸망의 길로 나아갔다.

        

        

        ‘내가 더 노력했다면 달랐을까.’

        

        

        디스토피아가 펼쳐진 세상 속, 그저 후회했다.

        

        왜 현실에 안주했을까.

        빙의자인 나라면 더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왜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이 뱃살 때문에 둔해진 몸만 아니었어도, 적어도 스승님까지 팔을 잃진 않았을 텐데.

        

        왜…

        

        

        “유, 유진. 저희 엄마가. 아니, 가족들이 전부….”

        “…미안.”

        “죄송하실, 거… 없잖… 흐윽….”

        “…….”

        ‘내가 미안해. 전부 나 때문이야.’

        

        

        사랑하는 아내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걸까.

        

        절망해 술만 마시는 나날이 계속됐다.

        곧 찾아올 멸망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 * *

        

        

        …분명 그랬을 텐데.

        

        

        [지난 습격에도 불구, 펜타곤 아카데미에서 변함 없이 신입생을 모집해 논란….]

        

        ‘뭐야, 이 철 지난 뉴스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눈 앞에 띄워져있었다.

        

        뭐, 습격? 아카데미? 

        세상 다 망해가는 중인데 뭐라는 건지 원.

        

        게다가 날짜를 보니 15년 전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술김에 옛날 방송 돌려보며 정신 승리는 조금…

        

        

        -멈칫.

        

        ’15년 전? 잠깐. 어?’

        

        

        문득 든 기시감.

        얼른 기억을 더듬었다.

        

        15년 전. 즉, 내가 이 게임에 빙의했을 당시.

        눈 뜨고 제일 처음 봤던 게 저 뉴스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그게 눈 앞에?

        

        내가 저런 뉴스를 굳이 찾아 틀었을 리가 없잖아.

        아내들이 틀었을 리도 없고.

        

        영문을 몰라 눈을 끔뻑이다,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

        ‘꿈인가? 팔은 붙어있고, 몸에 살은 쫙 빠지고.’

        

        

        잘린 팔이 다시 자라있었다.

        두둑하던 뱃살도 싹 사라졌다.

        단련해 강해졌던 힘도 일반인 수준으로 돌아왔다.

        

        즉. 이건 꿈이거나, 아니면…

        

        

        ’15년 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 같네.’

        

        

        ———회귀.

        애타게 바라면서도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기적.

        

        잠시 망설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15년 전, 빙의 당시 눈떴던 좁고 더러운 기숙사가 눈에 들어왔다.

        

        

        -꽈득.

        

        “…손가락 꺾으니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닌데.”

        

        

        잠깐의 현실 부정.

        

        빙의에 이어 회귀까지?

        내가 뭐라고 그런 기적을 두 번이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지만…

        

        

        ‘진짜 돌아온 건가?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내 나태함으로 덧없이 잃어버린, 그 불합리한 멸망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칠 기회가.

        

        말없이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

        눈에는 환희가 흘러내리고, 입가는 기쁨으로 부들댔다.

        

        

        “…다들, 기다려.”

        ‘노력할 테니까. 너희들이 이번엔 안 울도록.’

        

        

        다짐했다.

        어떤 존재가 날 이리 굴려먹는 건진 모르겠지만, 기꺼이 굴러주겠다고.

        15년간 동고동락한, 나만을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을 위해.

        

        …아내들은 나와 함께한 기억 따위 없겠지만.

        

        

        ‘휴대폰이 묵묵부답이니까 말이야.’

        

        

        업무에 쓰는 휴대폰이 몇 개 있었지만, 개인용 번호는 바꾸지 않았단 말이지.

        그녀들이 나와 같이 회귀했다면 곧바로 내게 통화했을 거야.

        그렇지 않다는 건…

        회귀한 건, 그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거고.

        

        

        ‘목표가 늘었네.’

        

        

        덕분에 한 가지 더 깨달았다.

        

        내 목표는 15년 후를 대비해 강해지는 것과…

        다시 한번 아내들과 이어지는 것.

        이 두 개로 좁혀진다는 걸.

        

        다만, 후자는 회귀 전보다 조금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내들한텐 절대 쓰지 말아야지. 최면.’

        

        

        회귀 전, 아직 이 세상이 게임이라 믿고 있던 시절.

        난 아내들과 최면으로 맺어졌으니까.

        하렘조차 최면으로 납득시켰고.

        

        물론 나중에 크게 후회하고 다 실토했지만.

        아내들은 별 신경 안 쓴다고, 오히려 더 써달라고 했지만…

        이번엔 떳떳하게 그녀들과 이어지고 싶었다.

        최면 같은 거 쓰지 않고.

        

        

        ‘1회차보다 훨씬 더 멋진 남자가 되어야겠어.’

        

        

        머릿속에 계획이 착착 들어찼다.

        빠르게 강해지고, 동시에 그녀들과 다시금 친해질 계획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진 오래 걸리진 않았다.

        

        

        -벌떡.

        

        ‘걔네 만나기 전에 징그러운 짓부터 먼저 끝내둬야겠네. 알면 다들 기겁할 테니까.’

        

        

        기숙사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가위 몇 개와 커피포트가 전부인 주방.

        

        하지만 지금 내겐 저걸로도 충분했다.

        

        

        -덥썩.

        

        “후우….”

        

        

        우선, 가위를 두 쪽으로 분리하고.

        

        

        “…나, 서유진은 최면 해제 전까지 통각을 느끼지 못한다.”

        

        -띠링!

        [정신 방벽 판정… 성공. 대상이 ‘완벽하게’ 최면에 걸려듭니다.]

        

        

        통각도 잠시 꺼뒀다.

        사서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가위를 높게 들어서……

        

        ———푹.

        

        

        

        

        -띠링!

        [반복된 경험으로 패시브 스킬 ‘관통 내성 Lv. 1’, ‘출혈 내성 Lv.1’, ‘고통 내성 Lv.1’을 획득합니다.]

        

        -푹, 푹. 푹.

        

        [반복된 경험으로 숙련도를 획득합니다. 패시브 스킬 ‘출혈 내성 Lv.1’이 ‘출혈 내성 Lv.2’로….]

        

        -푹푹푹. 푹.

        

        [반복된 경험으로 숙련도를 획득….]

        

        -푹.

        

        [3개 스킬의 레벨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각 스킬들이 ‘오우거의 가죽 Lv.1’, ‘트롤의 피 Lv.1’, ‘정신 오염 면역 Lv.1’로 진화합니다!]

        

        -푹, 푹.

        

        [반복된 경험으로….]

        

        -우두둑. 콰직. 콰드득.

        

        [스킬 ‘골절 내성 Lv.1’이….]

        [반복된 경험….]

        [잦은 부상으로, 상태 이상 ‘PTSD’, ‘날붙이 공포증’, ‘공황장애’, ‘정신 분열’을 획득….]

        [스킬 ‘완전최면’의 효과로, 부정적 상태 이상의 획득을 무시합니다.]

        

        -콰드드득.

        

        [반복된 경험으로….]

        

        ………

        

        ……

        

        …

        

        -띠링!

        

        [‘오우거의 가죽’, ‘트롤의 피’, ‘정신 오염 면역’, ‘강철의 뼈’, ‘화속성 내성’ 등 17개 스킬의 레벨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숙련도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관련 스킬들의 상위 호환이 존재. 17개 스킬이 모여, 특성 ‘불굴’로 진화합니다!]

        

        [히든 업적 달성!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당신의 영혼이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칭호 – ‘백절불요百折不撓’를 획득합니다. 최초 획득 보너스로, 모든 능력치가 0.5 상승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먼치킨 아카데미물일 예정임니다
    잘 부탁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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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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