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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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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을 두 번째 다니고 있다.

         

       나의 하루는 아카데미 교정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 어여쁘신 교수님께서 출퇴근하시는 길에 낙엽 한 줌이라도 떨어져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어젯밤 폭우가 쏟아졌던 탓에 회랑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자연이 내려 준 소중한 선물이 바닥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물을 접착제 삼아 땅바닥과 탄탄한 유대관계를 쌓은 낙엽은 도무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녀린 팔로 바닥을 힘겹게 쓸어내리던 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에 빗자루를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못해먹겠네 진짜.”

         

       우스갯소리로 노예라는 말을 듣는 실제 대학원생들도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청소하진 않잖아? 그런 건 청소업체에 맡기는 게 정상일 텐데.

         

       아, 난 노예 겸 대학원생이었지. 자꾸 원래 세계 기준에 맞추려고 하니까 위화감이 드는 거였다.

         

       꼬르륵.

         

       배고프다. 오늘 일어나서 아무것도 못 먹고 청소만 했어. 과장 좀 보태서 아사할 것 같아.

         

       안 되겠다. 잠깐이라도 쉬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한다.

         

       리넨으로 벤치의 물기를 닦은 뒤 엉덩이를 붙였다. 척추 관절이 으드득, 하며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소리조차 쿰쿰하게 느껴졌다. 뼈마디에 습기가 들어찬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뭐 얼마나 했다고 쉬고 있어요?”

         

       이야, 그런 때가 있지. 어릴 적 방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쉴까?’ 하고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순간, 딱 그 순간에만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때가. 안타깝게도 그 타이밍에 걸려든 모양이다.

         

       앉자마자 일어나면 오히려 피로가 누적된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기립하지 않으면 화염구가 날아올 것만 같았다.

         

       서둘러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런 내 앞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데 모인 미간 아래로 알비노를 연상시키는 붉은 눈동자가 한 쌍.

         

       대개 저런 눈 색깔을 지닌 사람들은 성격이 불같기 마련이었다. 화염 정령의 축복을 받아서 그런가?

         

       “여전히 청소는 꽝이네요. 3년이나 지났으면 요령이 생길 법도 할 텐데.”

         

       일단 대가리부터 박았다.

         

       “죄송합니다.”

       “알면 더 분발하세요.”

         

       클라이스 하스펠트 교수를 상대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초창기부터 제국을 이끌어 온 하스펠트 공작 가문의 후계자에게 조금이라도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할 테니까.

         

       나는 교수님의 눈치를 보며 발치에 놓여있던 빗자루를 주웠다. 개 같은 북서풍이 그새 또 나뭇가지의 잎새들을 흔들어놓았다. 덕분에 기껏 쓸어놓은 복도가 다시 엉망이 되었다. 그 와중에 낙엽 하나는 내 정수리에 안착했고.

         

       “바깥 복도가 어지럽네요. 이래선 재학생들이 이동하는데 방해가 되겠죠.”

       “…….”

       “뭐해요? 마저 쓸지 않고.”

         

       이런 씨이바아아알!

         

       마음 같아선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나무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내 모가지도 같이 뽑히겠지? 개중엔 귀족이나 황족이 기증한 것도 있었으니까.

         

       “어휴.”

       “어휴?”

       “날이 정말 좋네요.”

         

       나는 주린 배를 잡아가며 연구동과 교사를 잇는 직선거리 200m짜리 회랑 사이에서 탭댄스를 추었다.

         

       저 멀리에선 내가 닦아놓은 벤치에 앉아 내 헛짓거리를 관람하고 있는 하스펠트 교수가 있었다.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에 내 뇌혈관도 같이 꼬이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도 이 정도 쓸었으니 아침밥은 주겠지?

         

       “이쯤 하면 됐어요. 마무리하고 연구실로 따라오세요.”

       “저기…. 조식은요?”

       “오늘 끼니는 거를 겁니다. 급히 할 일이 생겼어요.”

         

       아. 진짜 염병하네.

         

       **

         

       [TIP: 모든 마법을 익히기 전까진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 진행도]

         

       [화계마도 : 836/1048]

       [수계마도 : 234/992]

       [지계마도 : 351/1005]

       [공계마도 : 112/824]

       [미분류 : 0/148]

         

       “…….”

       “에테르.”

       “네 교수님.”

       “비품실에서 마전지 좀 챙겨와요.”

         

       선반에서 마전지 몇 장과 마석이 담긴 주머니를 챙겨 비품실을 나왔다. 하스펠트는 창문을 닫아둔 채 입에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연 뒤 그녀가 건네주는 마력초 한 개비를 받아들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육체노동을 하고 나면 그 뒤부턴 조금 편해진다. 적어도 저녁 먹을 때까진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갈 테니까.

         

       지금부턴 정신노동을 하는 시간이다.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보단 칼로리 소모가 덜하겠지. 정오 넘도록 물 한 모금 입에 못 대는 건 고통스럽겠지만.

         

       “어젯밤 북방 전선에서 마수가 범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그러니 당분간 하던 연구는 중지입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앞으로 일주일은 스크롤 작성에 몰두해야 해요.”

         

       쉽게 말해 군수물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2차대전 때 연합국의 수많은 대학 연구실에서 핵폭탄을 만들기 위한 분할작업을 진행하던 것처럼.

         

       하스펠트 교수의 전공은 화염마도. 그중에서도 그녀는 마전지에 마법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발동하면 알아서 상대를 족쳐주는 화염계 스크롤을 작성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기사단에서 주문한 만큼 수량을 맞춰야 해요. 오늘은 3백 개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문제는 그 스크롤 작성의 기반 작업을 내가 혼자서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이 좀 많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 지는 거다. 애초에 대학원에서 정상적인 업무량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건 원래 세계에서부터 배웠던 진리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감은 없잖아 있다. 이게 그 가스라이팅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는 입에 마력초를 물었다. 불을 붙이기 전부터 알싸한 냄새가 후각세포를 찌르며 들어왔다.

         

       마전지를 작업대 중앙에 올려놓고 그 곁엔 마석을 둔다. 마지막으로 매고 다니는 힙색에서 두꺼운 양장본을 하나 꺼냈다.

         

       <마법과 물리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 부제 : 판타지 세계를 여행하는 물리학자를 위한 마도안내서(초급)

         

       “…….”

         

       생각해보면 이 새끼 때문이다. 이 책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색이 바래가는 기억.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논문 하나를 읽고 있었다.

         

       워낙 이상한 제목이었던 데다가 분량조차 말이 안 되어서 읽기 꺼려했던 논문이었다. 하지만 저자로부터 돈을 받았던 탓에 어쩔 수 없이 피어 리뷰를 해야 했던 나는….

         

       그 논문을 대차게 까버렸다. 단 몇 장도 읽지 않고서.

         

       그야 당연했다. 초장부터 마법이 어쨌느니, 과학으로 초자연을 설명할 수 있느니 하는 개쌉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에. 형식만 논문이지, 판타지 소설과 다름없었던 졸고를 반려하는 데에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교신저자는 그걸 두고 내가 심사비를 날먹했다고 생각했는지, 한 소녀를 나에게 보내 항의하게 했다.

         

       사금을 녹여 놓은 듯한 눈동자가 이색적인 소녀였다. 그 외에 특징이라고는 두꺼운 로브를 입고 있었다는 것. 어딜 봐도 현대 사회에서 입고 돌아다닐 만한 복식은 아니었다.

         

       – 누구세요?

       – 너요.

       – 네?

       – 너라고요. 이거 받으면 알게 될 거야.

         

       그 소녀가 나에게 양장본 하나를 건넸다. 받기 싫었지만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바람에 결국 그 책을 받아들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내가 그 소녀가 된 채로 이 세상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니 개연성이고 핍진성이고 죄다 말아먹었네. 

         

       어쨌건 저쪽 세상에서 유사과학만도 못한 것이라고 까댔던 흉물이 이쪽 세상에선 진리를 담은 논문으로써 버젓이 쓸 수 있었다. 그 유용성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라이트 애로우부터 완성하세요. 그쪽부터 출고해야 하니까.”

       “넵.”

         

       촤라락.

         

       [중급화염마도 – 라이트 애로우(Light Arrow)]

         

       [빛으로 된 화살을 쏘아보내는 화계마도. 관통력이 우수한 대신 비거리가 짧다.]

         

       [▶ 이 마법을 스크롤 작성하는데 필요한 과학적 지식]

         

       [■ 필수]

       [열역학 제1법칙(조건 충족)]

       [열역학 제2법칙(조건 충족)]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조건 충족)]

         

       [□ 선택]

       [리에나르-비케르트 전위(조건 충족)] — 비거리 증가회로 작성 시 필요

       [사이클로트론 기초 이론(조건 충족)] — 회전 출력 증가 시 필요

       [보어-조머펠트 양자화 조건(조건 충족)] — 관통력 증가 시 필요

         

       “흐음.”

         

       그 아래로는 스크롤을 작성하는 대략적인 방법과 도표가 나열되어 있다. 하스펠트 교수 밑에서 3년을 있었던 탓인지 이 정도는 눈대중으로도 짜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스크롤 작성은 전기회로를 다루는 것과 비슷하다. 빵판 비슷하게 생겨먹은 마전지에 필요한 마석과 도선을 깔아놓고 그 위에 여러 마도소자를 장치하면 끝난다. 어떤 방식으로 회로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발현되는 마법의 종류가 달라질 뿐이지.

         

       “관통력을 최대한 높이라고 부탁받았어요. 못 하는 건 아니겠죠?”

       “문제없습니다.”

         

       라이트 애로우가 화염속성 마도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루는 대상은 빛.

         

       빛살을 따라 진행하는 마소가 적의 외피를 뚫고 터널링하도록 만들면 된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스무 개가 넘는 작품을 완성했다.

         

       “쓰으읍.”

         

       한 세트 끝낸 뒤에는 마력초 한 모금. 몸에 억지로 마력을 돌게 한 뒤 스크롤에 살짝 쏟아부어 폐회로가 잘 완성되었는지 확인한다.

         

       이른바 불량품 확인 작업이다.

         

       좋아. 문제 될 건 없네.

         

       “엇.”

         

       가져온 마석이 다 떨어졌다. 지금 게 마지막일 텐데.

         

       “교수님, 마석을 다 써버렸는데요.”

       “밖에 나가서 구해오세요.”

       “얼마나 사 올까요?”

       “돈 아깝게 하급 마석을 왜 사요? 뒷산에서 주워오면 되지.”

         

       그러니까.

         

       아침 점심 전부 거른 연약한 소녀보고 마수를 때려눕힌 뒤 재료를 채집해오라는 소리지?

         

       “지체하면 저녁도 굶는 수가 있어요.”

       “다녀오겠습니다.”

       “오후 5시까진 돌아오세요.”

         

       쾅!

         

       그래. 까라면 까야지.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노예시장에 되팔아지고 싶진 않다.

         

       그래도 하스펠트가 여자라서 다행이잖아? 경매에서 색욕에 찌든 변태가 날 낙찰했으면 어떻게 됐겠어. 그걸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편한 수준이지. 안 그래?

         

       그렇지?

         

       “왜 그래? 얼굴이 완전 똥 씹은 표정인데.”

       “……?”

         

       연구동으로 내려오니 챙이 긴 모자를 쓴 여인이 나를 쳐다보며 시시덕거렸다.

         

       겉에 두르고 있는 로브를 보니 학생은 아니었고, 하스펠트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교직원이다.

         

       나는 단박에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헤를라인 교수님.”

       “오랜만이야, 에테르.”

         

       메리가 헤를라인. 하스펠트 교수와 함께 틸레트 아카데미에서 미모로 쌍벽을 이루는 교수.

         

       그녀가 날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누가 땅법 아니랄까 봐 자기 몸보다 두 배 가까이 큰 골렘을 호위로 붙이고 다니는 게 특징이었다.

         

       “하스펠트 교수님을 뵈러 오신 건가요?”

       “아니, 걔는 연구에만 미쳐 살아서 보는 맛이 없어. 오늘은 널 만나러 온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요? 왜요?”

         

       헤를라인 교수가 나에게 관심을 두는 건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래도 가끔가다 그렇다는 티만 냈을 뿐, 뜬금없이 화계마도 연구실 앞까지 찾아와서 날 기다리던 적은 없었는데.

         

       “클라이스 밑에서 일하는 거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

       “…….”

       “나 여기 졸업하기 전까진 평민이었던 거 알지? 귀족이 되었다고 해도 사람 본질은 잘 안 바뀌더라. 너 같은 애들 상대로 형식 차리는 것도 귀찮고 말이야. 그러니까 응? 편한 언니라 생각하고 마음에 있는 거 털어놓아도 돼.”

       “정말 괜찮습니다.”

         

       사람은 말이에요. 그 무엇보다도 입 간수를 잘해야 하는 법이랍니다.

         

       헤를라인 교수님, 절 액면가로만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몸은 이래도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당신이랑 나이가 비슷하니까요.

         

       “그래? 잘 지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네. 정 못 버티겠다고 말했으면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입학하는 걸 도와줬을 수도 있었는데.”

         

       어?

         

       방금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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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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