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

       

    커버접기

       이 세계는 쓰레기다.

       

       단언하겠다. 이 빌어먹을 중세 판타지 세계는 쓰레기같은 세계다.

       

       현대인 천재론, 문명 예찬, 끔찍한 위생관념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세계는 마법 문명이 발달한 세계였고, 나름의 종교적 합리 아래에 위생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들도 퍼져있었다. 클린 마법처럼 현실의 손소독제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편리 또한 존재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진짜 재미없네….”

       

       

       재미가 없었다.

       

       괴물 서커스나 마법 공연처럼 나름의 화려한 볼거리가 존재했지만, 그런 아웃도어 취미는 결국 한정된 시간에만 즐길 수 있는 유희거리였다.

       

       조금 더 정적인 취미…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이 세계에는 부족했다.

       

       내가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 같은 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인터넷도 없는 세계고.

       

       전생에 나름 독서가 취미라고 자부하던 사람인만큼, 괜찮은 문학 작품 몇 개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쏘시개같은 소설이 지금 수도에서 유행하는 작품이라고?”

       “그렇습니다, 에드 도련님.”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최소한의 요망조차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

       

       아니 씨발, 통속 소설이라고 존재하는 게 다 괴상한 묘사로 가득 찬 야설 아니면 어디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기사 문학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통속적이지 않은 문학을 찾으면 이게 퍼즐인지 시인지 이해하기조차 힘든 이상한 글줄을 만나게 된다.

       

       

       “이 쓰레기 소설 당장 태워버리고, 십자말풀이나 가져와.”

       “알겠습니다.”

       

       

       그래.

       

       나는 지금 심각한 소설 불감증에 걸려있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지 못한지 너무 오래되었다. 처음 기사문학을 읽었을 때는 장황하기는 해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는데, 똑같은 내용에 사람 이름만 바꾼 기사문학을 수십개씩 읽었더니 이제는 첫 문장만 봐도 토를 하며 뱉어낼 지경이다.

       

       

       “하…. 인생 진짜 재미없네.”

       

       

       나름 명문이라 불리는 귀족가에서 태어난 덕에 부족함 없는 유년기를 보냈지만….

       

       사람은 빵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독자는 읽을 소설이 없으면 영혼이 죽어버린다.

       

       그런데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똑같은 내용의 기사 문학이 전부였다. 만약 이 세계에 저작권법이 존재했다면 전부 판매 정지를 당했을 그런 소설들 말이다.

       

       그 내용도 눈에 훤해서 나보고 써보라고 하면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짜 한번 써봐?”

       

       

       생각난 김에 십자말풀이 하던 펜을 들고 쓱쓱 적어나갔다.

       

       레이디를 지키고 종교적 의무를 수호하는 고결한 기사. 특별한 태생과 운명. 그런 영웅에게 예언을 전해주는 마법사와 영웅이 되기 위해 이겨내야할 시련.

       

       적다 보니 허탈해져서 펜을 내려놨다.

       

       이런 거 쓰면 뭐하냐. 그냥 저 많은 불쏘시개들 위에 새로운 불쏘시개가 하나 더 늘어날뿐이지.

       

       

       “…아니, 아니지?”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고 허무함을 곱씹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세계에 다른 소설을 베낀 똑같은 소설밖에 없다면.

       

       참조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늘려주면 그만이다. 내가 직접 장르문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그런 ‘창의성’이 있지는 않지만….

       

       

       “참조할만한 레퍼런스라면, 내 머릿속에 전부 들어있잖아.”

       

       

       나는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수백편의 명작들을 알고있다.

       

       그 명작들을 ‘표절’해서 이 세계에 풀어버린다면?

       

       

       “이게 현대인 치트지…!”

       

       

       이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지구의 문학을 알고있었다.

       

       .

       .

       .

       

       원래 세계의 작품을 표절한다고는 해도, 내가 완전 기억 능력자여서 모든 작품을 똑같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하는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릴 것이요, 찾으면 구할 것이니. 마침 이 시대는 ‘기사문학’이 유행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나는 기사문학이 유행하던 시기에 나온 위대한 명작을 하나 알고있었다.

       

       

       “…도련님, 말씀하신 기사문학 작품들을 가져왔습니다.”

       “아아, 거기에다 둬.”

       

       “기사문학은 질리신 것 아니셨습니까?”

       “질린 건 맞지.”

       

       

       돈키호테는 기사문학을 비판하는 소설이었다.

       

       돈키호테의 기본적 서사 구조는 기사문학을 그대로 따른다. 단지, 기사문학의 주인공이 미쳐버린 영감탱이이며, 주변 사람들이 보는 그 모습이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는 점이 다를뿐이다.

       

       고결하고 기사도를 아는 기사─를 숭앙하는 기존의 기사문학과는 달리.

       

       이 소설은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허풍스러운 기사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욕하는 것도 제대로 알고 욕해야하는 법이더라고.”

       “…그렇군요.”

       

       

       미치광이 돈키호테의 세상 속에서, 돈키호테는 기사도를 아는 명예로운 기사다.

       

       그러니 이 소설을 쓰려면 우선 기사문학에 대해 잘 알아야했다.

       

       그게 내가 수도에서 이름 높은 기사문학을 전부 사오라고 한 이유다. 시종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시종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너무 많은 통속 소설을 구입하신 탓에, 마님께서 조금 화나셨습니다. 어쩌면 도련님께 들어가는 용돈이 몇 달 정도 끊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

       “어차피 읽을만한 책은 전부 다 읽었는데, 용돈을 끊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지?”

       

       “…그건, 그렇군요.”

       

       

       내 용돈은 전부 도서 구매에 들어간다.

       

       다른 것이라고 해봤자 책갈피와 책장 정도다. 책이 나름 비싼 물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중세처럼 무지막지하게 비싼 편은 아니었다.

       

       마법공학으로 만들어낸 인쇄 기술 덕분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도서정가제와 물가 상승을 직격으로 맞은 대한민국의 양장본 정도?

       

       

       “그리고, 책 팔면 돈이 꽤 될 테니까.”

       “결국 읽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직접 출판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다 쓰면 산초 너도 보여줄게.”

       “제 이름은 산초가 아니라 시온입니다.”

       

       “다 읽으면 너도 산초라고 불리고싶을걸.”

       

       

       산초도 돈키호테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니까.

       

       기사도와 용기로 가득 찬 돈키호테가 환상이라면, 겁 많고 능력있는 산초는 현실이다. 현실이 있기에 환상이 빛나며, 환상이 있기에 현실이 무게를 가진다.

       

       환상과 현실은 서로를 완성시킨다.

       

       

       “…에드 도련님께서 그렇게 자신하시니, 호기심이 생기긴 하는군요.”

       “가장 먼저 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굉장한 행운으로 느껴질 거다.”

       

       “기대하겠습니다.”

       

       

       말과는 달리 별로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고, 기사문학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기사문학을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불쏘시개 취급하는 저 기사문학들과 그리 다를 게 없는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하겠지.

       

       

       “…뭐, 불쏘시개라고는 해도 재미는 있지. 재미는.”

       

       

       양산형 소설이 양산형인 이유는 끊임없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사문학에 물린 나같은 사람들은 결국 기사문학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누구보다 기사문학을 사랑하기에 오히려 기사문학을 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돈키호테의 주제 또한 이와 같았다.

       

       얼핏 보면 기사문학의 허황됨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그 이상으로 기사문학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소설이 바로 돈키호테였다. 시간을 들여 진득하게 기사문학의 단점 100가지를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기사문학에 정성스러운 사람이라는 뜻 아니겠나.

       

       그러니 돈키호테는 단순히 기사문학을 욕하는 소설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사문학의 매력을 그 어떤 기사문학보다도 정성스러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해야만 한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서로를 완성시키듯이, 환상과 현실이 서로를 완성시키듯이.

       

       돈키호테 또한, 기사문학을 완성시키는 소설이어야만한다.

       

       

       “어디, 한번 눈이 빠질 때까지 읽어볼까….”

       

       

       읽을 책들은 많다.

       

       읽은 책들도 많다.

       

       이제부터 저 모든 기사문학들을 안 보고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읽어야만한다.

       

       그래야만 돈키호테가 저 책들을 불태울 수 있을 테니까.

       

       .

       .

       .

       

       

       어느날, 수도에서 하나의 소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돈키호테.

       

       평소 기사문학을 신랄하게 비평하던 평론가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이름을 알린 이 기사문학은, 몇몇 기사문학 애독자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수도에서 그 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 되었다.

       

       겨우 책 하나 때문에 아카데미 기사학과의 입결이 폭등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미치광이 노친네에 불과한 돈키호테를 보며 ‘기사도’를 꿈꿨다.

       

       

       “그것이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그리고 이 소설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평소 교양과 부유함을 자랑하던 귀족들이었다.

       

       기사문학을 통속적이고 깊이가 얕다 무시하던 귀족들조차 돈키호테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교계에서는 돈키호테를 흉내내어 종이로 만든 투구를 쓰고 편력기사 복장을 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개중에는 정말로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철혈이라고 불리는 나이 든 공작 한 명이, 대뜸 기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 공작령의 행정이 마비되고 부랴부랴 공작의 아들이 아버지를 대리해 권한을 행사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소설 하나가 사회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 소설을 쓴 작가인 에드는.

       

       

       “돌겠네.”

       

       

       [기사 키호테 드 라만차]

       

       [풍차를 용으로 착각한 기사 동키호]

       

       

       돈키호테를 대놓고 표절한 해적판들을 보며 이마를 두드리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