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

       

    커버접기

       

       다시 태어난 나의 일상은 상당히 충실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쭉쭉 체조 한번 갈겨주고, 바로 발성 연습에 들어갔다.

       거기에 추가로 TV를 보며 이런저런 연기를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굳이 연기를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바람직한 RP를 위해서였다.

       

       RP가 무엇이냐, 함은 말하자면 버튜버로서 활동하는데 쓸 가면이자 컨셉.

       즉, 버튜버 캐릭터가 가진 설정이라 할 수 있었다.

       버튜버 중에는 이 RP를 잘 지키는 부류도 있었고, 잘 지키지 않는 부류도 많았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엔 RP를 지키지 않는 버튜버를 보면 팍 식는 경향이 있었다.

       이게 그냥 스트리머랑 뭐가 달라.

       

       ‘이렇게 말은 해도 정작 버튜버는 많이 본 적 없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이라 자주 볼 수는 없었고, 보더라도 쇼츠나 클리퍼들이 올려둔 영상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때 좀 열심히 봐둘걸.’

       

       지금은 업계도 제대로 만들어지기 전이라, 뭘 해야 할지 막막한 부분도 있었다.

       우선 중요한 건 발성과, 연기 정도.

       

       거기에 스트리머를 하려면 끼는 당연히 있어야 할 테고…….

       

       ‘방송 스킬은 해보지 않는 한 감을 잡기도 어려우니.’

       

       여러모로 난항이었다.

       자고로 스트리머든, 버튜버든 컨텐츠를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법.

       그나마 지금부터 미리미리 구상해두면, 미래에 빌빌 거릴 일은 없을 것이다.

       

       ‘게임은 어련히 잘하겠지?’

       

       자고로 빙의한 육체는 반사신경이 어나더 레벨인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난 게임과 관련된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근데 RP를 한다면 뭐가 좋을까.’

       

       뭐 대충 그런 식으로 버튜버 컨셉을 생각하는 부분도 여러모로 즐거운 일이었다.

       내년에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와 같은 시간도 줄어들 터라, 미리미리 해두는 게 좋았으니까.

       

       ‘흠, 생각해보면 버튜버라면 남자의 모습으로도 할 수 있겠군.’

       

       아직 남성의 자아가 더 강했기에, 그런 부분도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기껏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런 식으로 장점을 망치는 건 멍청한 짓이겠지.

       

       그렇게 내가 매일 같이 충실히.

       전생의 나라면 한 달도 지쳐 못 했을 일과가 습관이 되었을 무렵.

       

       “우리 딸, 아역 배우 오디션 해볼 생각 없니?”

       

       어머니는 갑작스레 그런 말을 해왔다.

       

       ***

       

       “아무리 공개 오디션이라지만, 내참…….”

       

       캐스팅 디렉터 김형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CF에 필요한 아역을 구하기 위해, 마련한 오디션이었지만 아무래도 실수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냥 좀 이름있는 아역을 쓰는 게 편하지 않았을까요?”

       

       한 스태프의 말에 김형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쉽겠어요? 예산이 그만치 안 됩니다, 안 돼요.”

       “뭔 광고주가 그리 짠지…….”

       

       스태프들은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대기업 광고도 아니었고, 작은 중소기업에서 준 일감이었다.

       

       캐스팅 디렉터에 일을 꽤 오래 해본 김형석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다.

       이런 경우 그냥 인터넷으로 광고를 돌리면 돌렸지, 굳이 없는 돈을 쥐어짜 CF를 찍으려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심지어 CF 감독으로 앉은 인간조차 아무리 봐도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입이지 않은가.

       

       ‘딱 봐도 낙하산이구만.’

       

       어림짐작할 것 없이, 실제로 어느 정도 연줄이 있지 않는 한 저렇게 젊은 사람이 CF 감독일을 맡기지 않는다

       

       죄다 싸게 싸게 처리한 구성이었다.

       가장 페이가 쌘 인물이 캐스팅 디렉터인 자신이라는 게 말이 되나?

       그나마 스튜디오라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 게 천운이었다.

       

       초짜 CF 감독도 그 사실을 아는지 먼저 김형석에게 인사를 해왔다.

       

       “하하, 그,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광고 디자인 쪽을 일을 하다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아, 예, 우선 광고주 쪽에 제가 전달 받은 바로는, 함께 좀 열심히 해보랍니다.”

       “아, 하하.”

       

       어설프게 웃는 남자의 모습에 김형석은 혀를 찼다.

       이름이 뭐였더라, 조민태였던가.

       물론 조민태는 김형석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아, 캐디님. 혹시 오늘 오디션에 참여한 아이들의 프로필은 확인하셨나요?”

       “프로필이요. 아, 예. 뭐 보긴 했는데…….”

       

       아역 배우 오디션에서 프로필 사진은 알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공개 오디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치아가 안 보여서 이거 참. 한 명씩 확인해봐야겠습니다.”

       

       특히 이번처럼 ‘식품류’ 광고를 찍을 때는 치명적인 부분이다.

       아이들 오디션의 경우, 치아가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광고가 예쁘게 나오기 힘들어 피하는 편이었다.

       

       “아, 연령은 대략 다섯 살부터 일곱 살 사이로 추려서 보셨죠?”

       “예. 아무래도 광고주가 원하는 연령대도 그 정도고…….”

       

       다섯 살 이하는 소통이 어렵고, 여덟 살 이상은 또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그런 이들 중, 김형석은 한 명 눈에 띄는 아이를 추려서 내밀었다.

       

       “혹시 이 아이, 오디션 장에 왔나요?”

       “어디보자……. 아직은 안 온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꼭 왔으면 좋겠는데.”

       

       아쉽다는 듯 말하는 조민태의 반응에 김형석은 힐끗 프로필을 확인했다.

       

       ‘나이는 다섯 살이고…… 얼굴은, 확실히 괜찮군.’

       

       눈 색깔이 묘하게 독특했다.

       갈색 같으면서도 색소가 빠져 얼핏 붉은색으로도 보였으니까.

       

       외모만 보자면, 솔직히 깜짝 놀랐다.

       조민태가 왜 이 아이의 프로필을 내밀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시겠지만, 예쁘기만 한 아이는 좋지 않다는 거 아시죠?”

       “아이고, 물론 알죠.”

       

       너스레를 떨며 말하는 조민태의 모습에 김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블라인드를 내려 막 오디션장에 들어오는 부모와 아이들을 보았다.

       

       저마다 자기 아이가 제일 예쁘다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들이었다.

       

       ‘경험자는 그리 없는 것 같으니, 오히려 치열하겠어.’

       

       그리고 그런 김형석의 생각처럼 오디션 안쪽에선 나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머, 미연이 어머님도 오셨네요.”

       “지난 오디션에도 뵈었던 것 같은데 또 뵙네요. 현수도 안녕~.”

       

       인사는 웃으면서 했지만, 나름 서로 칼침을 한 대씩 놓은 대화였다.

       

       ‘저번에도 떨어졌던 주제에 부끄럽지도 않은지 또 왔구나.’

       ‘그쪽이야 말로 이제 그냥 포기하지? 네 애는 그냥 안녕이라니까?’

       

       공개 오디션 창구를 찾는 이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매니지에서 연기 교습 받고 온 아이도 끼어있었다. 

       

       “우리 지연이는 저런 애들과 달라요. 알죠?”

       “네, 엄마.”

       

       이지연은 엄마의 말에 가슴을 쭉 피며 주변을 보았다.

       오들오들 떠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연은 제법 당당한 태도였다.

       

       ‘나는 이미 매니지먼트에도 속해 있으니까.’

       

       물론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연기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애들에 비해, 그녀는 나름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은 상태였다.

       

       ‘얼굴도 우리 지연이가 제일 예쁘네.’

       

       지연이의 어머니인 홍진희는 잠시 주변을 살핀 뒤 짧게 혀를 찼다.

       아이들 화장이 저게 뭔지.

       저 정도면 아역 배우가 뭔지 아예 이해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정도면 무난하게 캐스팅 될 수 있겠어.’

       

       우리 지연이의 첫 일감이다.

       딸이 속한 은하 엔터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연이 정도의 실력이면 이런 작은 오디션 정도는 가볍게 붙을 수 있을 거라고.

       경험 삼아, 그리고 작은 커리어 한 줄 만들 겸 참여한 오디션에 불과했다.

       

       덜컹.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마침 그 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홍진희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

       

       긴 흑발을 가지런하게 내린 귀여운 소녀였다.

       눈에 띄는 건 기이한 색깔의 눈동자.

       거기에 말간 얼굴과, 반듯한 외모는 홍진희가 엔터에서 보았던 어떤 아역보다 어여뻤다. 

       

       하지만, 단순히 외모만 눈에 띄었다면 홍진희가 이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분위기가 뭔가, 다른데?’

       

       묘하게 초탈한 느낌.

       배우들이 지니는 아우라와는 다르면서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지 알아요?’

       ‘내가 알겠어요?’

       

       비단 그런 느낌을 받은 건 그녀만이 아니었는지 대기실이 한층 소란스러워졌다.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 서연의 어머니, 수아는 생긋 웃었다.

       

       “어머나, 저기 친구들 있다, 서연아. 근데 엄마는 우리 서연이가 제일 예쁜 거 알지?”

       

       엄마로 추측되는 이의 손을 잡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게 묘하게 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저런 엄마의 말에 일반적인 아이라면 ‘진짜??’나 혹은 ‘에이 장난치지마~’라는 느낌의 귀여운 반응이 돌아올 법도 했는데.

       

       “네.”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지극히 단호했다.

       단순히 어머니의 눈에 예쁘다는 게 아닌, 이 오디션장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는 자신감이 담긴 ‘네’였다.

       

       덕분에 오디션장의 어머니들은 재차 저 아이가 누구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미 어딘가에서 배우 활동을 한 아이가 아닌지.

       다른 오디션에서 본 적이 있는지 서로 짤막하게 의견을 교환했지만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흠.’

       

       그런 이들을 보며, 서연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또한 경험인 것.’

       

       배우 오디션.

       솔직히 전혀 예상해본 적 없던 일이라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이건 좋은 기회였다.

       

       ‘이런 것도 연기긴 하지?’

       

       후에 버튜버에 데뷔할 때를 생각하면 이런 경험도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RP에도 도움이 될 테고, 사람과 대화도 많이 해봐야 입담이 늘지 않겠는가.

       

       ‘어렸을 적에 CF를 출연했다거나, 아역 경험이 있다거나 하는 썰을 살릴 수도 있고.’

       

       그러니 서연은 이번 오디션의 결과에 대해선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내가 제일 예쁘지만.’

       

       TS 된 외모는 무적이다.

       평범한 여자아이로는 감히 비빌 수 없지.

       

       그와 별개로 오디션이라는 게 외모만으로 뽑히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러니, 서연은 태연히 대충 빈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행동에는 평범한 아이라면 보일 일말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이런 오디션에 익숙한 아이인가?’

       ‘아니면…… 정말 매니지먼트에서 나온 아이일지도.’

       

       매니저는 보이지 않았지만, 보통 아역의 경우 어머니가 그 일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서연이 매니지, 혹은 대형 엔터에 속한 아역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우리 서연이 의연하기도 하지.’

       

       저마다 어머니와, 몇몇 관계자들이 쑥덕거리는 동안 서연의 어머니인 수아는 그저 서연의 둥근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냥 딸이 제일 귀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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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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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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