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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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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 아카데미.

       

        전세계의 능력자들이 모여드는 이곳은 대한민국의 최남단, 제주도에 세워졌다.

       

        아카데미의 설립 이유와 목적은 간단하다.

       

        언젠가부터 나타나, 인류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괴수와 빌런에 대항한다는 의의를 품고 설립된 곳이다.

       

        제주도… 아니, 이젠 ‘히어로 아카데미 특별 자치도’가 되어버린 아카데미는 나날이 번성했다.

       

        끊임 없이 몰려드는 전세계의 능력자들, 자연히 사람이 몰려드니 돈과 물류가 몰려든다. 

       

        그런 호황은 대한민국 유구의 관광지를 하나의 도시국가로 변모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암.”

       

        그런 아카데미의 주거 지구. 늦은 새벽, 편의점에 들른 나는 한가하게 푸드 코너를 돌아보고 있다.

       

        [ 참치마요 삼각김밥 : 2,500 원 ]

       

        “돈이 없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이였나.”

       

        살인적인 아카데미의 물가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이 세계의 이방인이다. 자연히 모아둔 돈 따위는 없었고, 아카데미 차원에서 지급되는 지원금으로 생활해야할 형편이란 뜻이다.

       

        ‘소설 속 세계라면 차라리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소설 속 세계라니, 그게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고?

       

        히어로, 아카데미, 괴수, 빌런.

       

        위 네가지 키워드를 조합해보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내가 읽던 ‘히어로지만 사랑할 수도 있잖아?’의 세계다.

       

        원작, ‘히어로지만 사랑할 수도 있잖아?’ 는 아카데미를 무대로 한 이능력 러브 코미디 소설.

       

        뭐,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거나 정당한 노동 전선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내가 목표로 하는 건 평화롭고 꿀 빠는 생활이다. 

       

        D급 능력자로서 받는 지원금이 적어도 꽤나 달달하단 말이지.

       

        “합계 16,500원 입니다.”

        “…….”

       

        물건을 바구니에 대강 담아 카운터로 향했다.

       

        깍듯한 알바생이 친절히 금액을 알려주었고,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내밀어 단말기에 갖다 댔다.

       

        삐익!

       

        HERO-PAY. 약칭 히페.

       

        아카데미의 전산망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설마하니 내가 이걸 대수롭지 않게 쓰는 날이 올 줄이야.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위이잉!

       

        봉투에 담은 음식들을 챙겨 편의점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덧 서늘해진 겨울 공기가 나를 반긴다. 그를 증명하듯 곧장 새하얀 입김이 나왔다.

       

        “어우, 추워.”

       

        소설 속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였다.

       

        나 역시 아카데미의 학생인 만큼, 아카데미 소속의 D급 학교에 재학 중인 몸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적응한 결과가 바로 지금이고.

       

        ……아카데미 소속이면서 또 무슨 학교에 재학 중인 거냐고?

       

        이 히어로 아카데미의 시스템이 원래 그렇다. 히어로를 양성하는 학교가 모여 아카데미가 된 것이지, 아카데미 자체가 학교를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

       

        아무튼.

       

        나는 이름도, 능력도, 얼굴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흔한 엑스트라 1이다.

       

        타고난 능력은 ‘현상 거절’ 이라는 놈인데, 대강 설명하자면… 나는 내게 관측된 모든 현상을 무위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

       

        “…….”

       

        꽤나 재미있는 능력이다.

       

        물론 히어로 랭킹의 최상위권을 장식하는 Z급 능력자에 비하면 심심한 것이 사실이지만, 나 스스로는 그들에게 꿀리지 않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 Z급 히어로, 한유리. 그녀의 ‘재창조’로 바라본 세상. ]

       

        “한유리?”

       

        한 손으로 봉투를 든 채, 반대쪽 손으로 열심히 핸드폰을 보는데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띠었다.

       

        Z급 히어로… 그러니까 랭커에 관한 기사다. 랭킹 6위 한유리. ‘창조’의 힘을 가진 그녀에 대한 짧은 칼럼이 기사에 실려있었다.

       

        [ Q. 당신은 어떤 이유로 아카데미로 오신 겁니까? ]

       

        [ A. 아무도 헐벗고 굶주리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

       

        “하하.”

       

        위선 가득한 기자와 한유리의 문답에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Z급, 재창조의 한유리.

       

        그녀는 평범한 히어로가 아니다. 단독으로 국가를, 세계를 전복시킬 힘이 있는 랭커가 바로 그녀다. 

       

        그뿐인가? 유구한 국제 기업 ‘일성’ 회장의 친손녀가 바로 한유리다. 그런 그녀가 가난을 논하다니 이게 무슨 궤변일까.

       

        더군다나 그녀는 학생으로서 오를 수 있는 권력의 정점, ‘아카데미 학생회’의 회장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바라본다니, 참 연극의 한장면 같은 일이 아닌가.

       

       

       

        그 뒤로.

       

        핸드폰을 보며 걷다보니, 예상보다 빨리 기숙사에 도착했다.

       

        내가 사는 기숙사는 D급이라는 랭크에 걸맞게, 오래된 건물을 증축해 만든 조악한 곳이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사실이었다.

       

        우우웅!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 방이 자리한 4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는데.

       

        “잠깐!”

       

        텁!

       

        새하얀 손이 닫히던 엘리베이터 사이로 불쑥 튀어나왔다.

       

        “휴, 늦는 줄 알았네요!”

        “……?”

       

        손의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어버렸다.

       

        추워죽겠는데, 이게 무슨 테러냐.

       

        천천히 그 주인공의 면상을 살폈다.

       

        “……?”

       

        어째서인지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그래, 아카데미 내의 전광판이나 핸드폰의 ‘히어로 아카데미’ 어플을 키면 항상 최상단에 보이던 얼굴이기도 했다.

       

        불과 조금 전, 핸드폰에서 보았던 얼굴이기도 했고.

       

        “한… 유리?”

        “저를 아시나요?”

        “당신을 어떻게 모를까. 아카데미에 여덟 밖에 없는 Z급 히어로인데.”

       

        우우웅!

       

        내 대답에 생긋, 미소로 대답한 한유리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는 운행을 시작했고.

       

        “저를 아신다니,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무슨 뜻이지?”

        “이 건물에 빌런이 나타났어요.”

       

        뭐?

       

        빌런?

       

        어이가 없는 소리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D등급이며, 이 건물 역시 D등급의 기숙사다.

       

        자연히 위협적인 빌런이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 D등급의 태생적인 한계이며, 하물며 빌런이 출몰한다고 해서 Z급 히어로가 움직일 이유는 현저히 낮다.

       

        “그러면…… 나는 자리를 피해야 하나?”

       

        생각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목소리가 내 입을 통해 나왔다.

       

        소설 속 캐릭터가 내 앞에서 살아 숨쉰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빌런? 랭커? 다 됐으니까 그냥 얌전히 지나가길 빌자.’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이 있었으니, 이런 피곤한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저 외에도 다른 S급 히어로가 세 명이나 있으니까요.”

        “……뭔가 위험한 일인 모양인데.”

        “맞아요. 학생회에 들어온 제보가 없었다면 알 수 없었겠죠.”

        “…….”

       

        그 유명한 학생회장이 제보로 움직여?

       

        아카데미 폼 다 죽었다. 

       

        명색이 Z급 히어로인 한유리가 고작 누군가의 빌런 제보로 움직인다니. 아니,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아카데미의 미래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띵!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4층에 도착했다.

       

        “……?”

       

        헌데,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한유리가 원인이었다.

       

        빌런을 사냥하러 간다더니 왜 엘리베이터의 층을 누르지 않은 거지? 설마… 내가 살던 4층에서 빌런이 탄생했다는 끔찍한 소리인가?

       

        ‘상상도 못했는데.’

       

        대화를 나누거나 한 건 아니지만, 같은 층에 사는 녀석들의 얼굴은 익혀두었다.

       

        내 예측이 맞다면 복도의 맨 끝, 항상 음침한 얼굴을 한 남학생이 빌런이 되지 않았을까.

       

        우우웅!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러자.

       

        “크아아아!”

        “미친!”

       

        대뜸 날붙이를 휘두르는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얼굴에 붉은 눈. 무슨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수냐고!

       

        “고개 숙이세요!”

       

        팡!

       

        놀라운 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생회장, 한유리의 작은 꿀주먹이 허공을 강타했다. 그러자 곧장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곳에서 커다란 철제 무기가 나타났는데…….

       

        ‘……철퇴?’

       

        내가 지금 보는 것이 맞나, 싶은 눈으로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았다.

       

        “에잇!”

       

        한유리가 곧장 그 무식한 무기를 전방에 휘두른다. 보아하니 커다란 외형과 달리 무게가 딱히 느껴지지 않는, 아주 가벼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파앙!

       

        철퇴를 얻어맞은 빌런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이를 드러냈다. 한유리 나름대로 비장의 수를 쓴 것 같은데, 효과는 미미했던 것이다!

       

        “고, 공간을 파괴하는 힘이 담긴 무기인데……!”

       

        급박한 상황 속, 한유리가 멍하니 소리쳤다.

       

        아마도 그녀가 휘두른 철퇴는 평범한 무기가 아닌 모양이다. 공간과 파괴를 운운하는 걸 보니, 그녀의 능력으로 특별히 빚어낸 ‘힘’이 담긴 듯 보였다.

       

        “크르르륵!”

       

        아예 이성이 사라진 빌런이 괴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도약했다. 마치, 한유리와 내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갈 기세로!

       

        “…….”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내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눈을 감는다. 이어서 진언을 읊는다. 내가 가진 능력은 <현상거절>. 이 세상의 법칙과 근간을 뒤흔드는 힘이 곧장 드리운 것이다.

       

        [ 현상거절, 현실 세계의 존재를 거절한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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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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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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