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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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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빙의한 히어로물 만화 《히로익 발키리아》는 미려한 그림체와 매력적이고 예쁜 주인공, 발키리 덕분에 인기가 많았지만 그만큼 욕도 많이 먹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발키리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이리뛰고 저리뛰는데도 딱히 보답받는 건 없고 오히려 그녀가 지키려던 것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다 서서히 망가지는 전개가 너무 많았기 때문.

       

       그러다 결국 발키리는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채 빌런으로 타락해 적이 되어버렸고, 그녀가 직접 가르친 후대 히어로들에게 죽었다. 

       

       그리고 그 후대 히어로들은 발키리를 이용해먹은 것들에게 똑같이 굴려진다.

       

       세대교체를 위해서였는지 뭔지 몰라도 인기가 굉장히 많은 주인공 발키리를 아예 악역으로 만들고 죽여버리기까지 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고, 나도 애정캐 발키리가 죽은 그 시점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하차했더니 지금 이런 상태다.

       

       발키리가 유명 스타 히어로가 되기 조금 이전의 시점, 막 떠오르는 신성일 때의 《히로익 발키리아》 극초반부로 온 것.

       

       정신줄을 잡고나서 천천히 확인해보니 나에게도 이능력은 있었다.

       

       분신술, 그리고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개문(開門) 능력.

       

       이런저런 제약은 있다지만 어쨌든 내게 주어진 2개의 이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본 결과.

       

       ‘이건 도둑질을 위해 있는 능력이야!’

       

       나는 히어로들이 지키려고 하는 세력… 그러니까 기업이나 정부같은 것을 위해 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현실에서도 어지간히 쓰레기같은 놈들이었지만 《히로익 발키리아》 세계관 속에서 기업들과 한국정부는 아주 속까지 썩어문드러진, 빌런보다 더한 놈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쓰레기들이 나의 소중한 발키리를 망가뜨리기 전에 벌을 주기로 했다.

       

       개문 능력을 활용해 아무리 철저한 보안이라도 손쉽게 뚫어 놈들의 금고에 접근했고, 분신술로 탈출하거나 알리바이를 만들어가며 자산을 털었다.

       

       그렇게 턴 재산은 기업이나 정부의 개짓거리 때문에 피해를 본 피해자들에게 다시 나누어주고… 그래도 남는 건 약간의 생활비로 챙기고.

       

       이것이 바로 의적의 삶!

       

       정의로운 도둑!

       

       그냥 털기만해선 멋이 안 사니 나는 스스로에게 코드명까지 부여했다.

       

       모 유명 탐정만화의 유명 도둑인 괴도 키드…를 너무 그대로 갖다쓰면 좀 그러니까 단어 순서를 좀 바꾸고 코드네임답게 축약도 해서 키드 G.

       

       약자들로부터 100을 갈취해 200을 만들어낸 놈의 재산을 털어 100은 다시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고 남은 100은 알아서 요긴하게 쓰는 정의의 도둑.

       

       그것이 바로 《히로익 발키리아》의 대한민국에서 살게 된 나의 정체였다.

       

       그리고 내가 키드 G로 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

       

       히어로 발키리, 본명 은설.

       

       – 그렇게나 정의롭고 고결하던 당신이 정부와 기업들, 우리 히어로 연합까지 적대하는 선택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발키리. 아니, 이제는 다크 발키리군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안되겠습니까?

       

       – 정신을 차려야하는 건 너희야! 그놈들은 내 헌신을 이용하기만 했어! 그 쓰레기들이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너희가 알아!

       

       – 상대가 어떻든 벌을 내릴 거라면 정정당당하게 법으로 심판받게 해야지 불법적인 수단으로 해결을 하려는 건 또다른 범죄자일 뿐… 이라고 당신이 우리에게 늘 그렇게 가르치셨죠. 스스로의 말까지도 부정하는 겁니까?

       

       – 풉… 아하하하하! 그래, 그렇게 순진했던 때가 있었지. 지금의 너희들처럼. 아니! 내가 틀렸어! 이 세상엔 법 위에 앉아서 그걸 가지고 노는 쓰레기들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아! 저것들은… 목에 직접 칼을 들이밀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 타락할대로 타락했군요, 다크 발키리. 당신을 동경하고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커온 히어로로써, 최소한 더 추해지기 전에 우리 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 그래, 빌어먹을 정부의 개로 남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마음 편하게 너희들을 죽이겠어!

       

       그리고 그 전투에서 발키리는 격전 끝에 그녀가 키워낸 차세대 히어로들에게 패배하고, 끝까지 정부와 연합을 원망하고 증오하며 죽었다.

       

       나의 소중한 발키리가 그런 일을 겪는 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발키리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현 시대에는 히어로 연합의 떠오르는 파릇파릇한 차세대 스타 히어로이자 한국 정부가 차후 간판으로 삼고자하는 정의감 넘치는 발키리를.

       

       그 후 나는 키드 G로서 활동하고 범행 예고장을 뿌린 뒤 도둑질을 했다.

       

       그때마다 발키리가 나를 막으러 왔지만 나의 능력을 아직 간파하지 못한 탓에 번번이 실패.

       

       발키리는 어떻게든 나를 잡아넣고 말겠다며 이를 갈았지만 탐정과 도둑이 나오는 만화나 소설이 다 그렇듯 그녀는 나의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어?! 너… 너 이 자식 키드 G! 잡았다!”

       

       3월 2일, 이능력자들이 다니는 서울 히어로 양성대학 입학식 당일에 웬 여자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붙잡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흑발의 여성이 내 팔목을 잡은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에 정열적인 붉은 눈동자.

       

       평소 부드러웠을 그 눈매는 굉장히 날카롭게 변해 나를 노려보는 중이었고, 그녀는 먹잇감을 잡은 맹수마냥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은설, 히어로명 발키리.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히로익 발키리아》 세계의 주인공.

       

       그녀는 나를 키드 G로 확신하며 나를 다그쳤다.

       

       “이 망할 자식, 드디어 잡았다! 절대 도망 못 가! 이대로 연합에 넘겨서 처벌을-”

       

       은설 정도 되는 이능력자라면 인식저해 칩의 효과도 많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기에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정체를 간파해버렸다.

       

       “당신 누군데 갑자기 이럽니까? 키드 뭐라구요? 그게 뭔데요?!”

       

       나는 심장이 내려앉을만큼 놀랐지만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고 속으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나는 발키리와 은설에 대한 모든 걸 알지만 그녀는 나에 대해 전혀 모른다.

       

       애초에 키드 G라는 빌런은 원작에 있지도 않았고.

       

       “이게 시치미를 떼?! 체형, 얼굴형, 목소리, 가면 밖으로 드러났던 이목구비까지 다 키드 G 그대로인데 누굴 속여!”

       

       아니… 보통 이런 만화 속 세계에서 탐정과 도둑이면 기본적으로 안면인식장애 있어서 눈앞에 뻔히 돌아다녀도 눈치 못채야하는 게 국룰인데?

       

       내가 본 만화의 괴도키드도 얼굴 가릴 생각도 없어보이는 안경가면만 쓰고있어도 아무도 못 알아봤단 말이야!

       

       나는 그래도 잡아뗐다.

       

       “아니 애초에 그 키드 G라는 게 뭔데요?! 누군데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이렇게 몰아가는 겁니까!”

       

       “이틀 전에 칠성건설 회장 수집품 털어간 게 너잖아!”

       

       옳거니, 빠져나갈 구멍을 스스로 만들어주는구나.

       

       나는 은설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이틀 전엔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하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자꾸 하시면 모욕죄로 경찰에 신고해서 고소장 접수할 거예요!”

       

       내가 범죄가 일어나던 시각에 집에 있었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고소까지 들먹이자 은설의 기세가 살짝 누그러졌다.

       

       “거… 거짓말 마. 그날 칠성건설 빌딩 옥상에서 내가 널 두 눈으로 똑똑히-”

       

       “게임 플레이 기록도 남아있는데 무슨 거짓말입니까!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누군데요? 누군데 다짜고짜 사람 팔을 쥐고 흔들면서 남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갑니까, 예?!”

       

       내가 키드 G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던 은설이었기에 이제는 슬슬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아직 대외적으로는 은설이 발키리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으니까.

       

       “나, 나는 그… 히어로 연합 인턴쉽 중이라 그때 현장에 있었어! 분명히 너…”

       

       “히어로 연합? 히어로 연하아아압? 아니 그럼 지금 히어로 연합 인턴이 대학 입학식 첫날부터 신입생보고 범죄자 몰이하면서 막 협박질했다는 겁니까?

       아주 권력이 깡패죠, 예? 아니, 권력도 아니지. 인턴 주제에 무슨 연합장이라도 된 양 갑질이 벌써부터 몸에 뱄네?

       나 이거 도저히 못 참아. 입학생 여러분! 입학생 여러분 여기 와서 이거 좀 보십쇼! 히어로 연합 인턴이라는 사람이 아주 생사람 잡으면서 사람을 범죄자 만드네 아이고 아이고!”

       

       “미, 미, 미쳤어?! 조용히 안해?!”

       

       “세상사람들 제가 억울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저보고 빌런이랍니다 빌런! 키드 뭐시기 그게 다 뭔데요? 나 이거 모욕죄로 고소장 접수할 겁니다.

       와서 이거 영상찍어! 언론에다가 다 연락해! 히어로 연합 인턴이 생사람 잡고 범인몰이한다고 인터넷에다 다 올려!”

       

       “이익… 조, 조용히 안해?! 이리 와 봐!”

       

       내가 일을 벌리기 시작하자 은설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다른 사람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 날 데리고 입학식 강당에서 잠시 빠져나갔다.

       

       

       

       

       

       모퉁이를 돌아 인적이 없는 곳으로 오자 은설은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는 조용히 내게 물었다.

       

       “너… 진짜 키드 G 아니야?”

       

       “아니 글쎄 키드 G가 누군데요. 왜 아까부터 혼자만 아는 소리 합니까. 혹시 씹덕이세요?”

       

       “무슨… 으극… 지, 진짜 아니야…?”

       

       “같은 말을 몇 번을 하게 합니까?”

       

       “으으… 아, 알았어.”

       

       명확한 물증이 없었기에 은설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면서 정말정말 마지못해 내 말에 수긍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나는 그런 은설을 뒤에서 불러세웠다.

       

       “저기요.”

       

       “…?”

       

       “생사람 잡고 빌런몰이 해놓고 사과도 안하고 그냥 갑니까?”

       

       “어…?”

       

       “불쾌했으니까 사과하세요, 빨리.”

       

       “아니 진짜로 너 아무리 봐도…”

       

       “어어? 사과 안할겁니까? 나 이거 진짜 다 인터넷에다 폭로해버려요?”

       

       “크윽… 미, 미,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요?”

       

       은설의 표정은 사진으로 못 남겨두는 게 아까울만큼 얼굴이 아주 걸작으로 일그러졌다.

       

       이게 다 널 위해서니까 좀 참으렴.

       

       “으큭… 그… 비, 빌런이라고 몰아가면서 혀, 협박… 한 거…”

       

       “알았으면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 이번만 봐드립니다.”

       

       화산폭발 직전이 된 얼굴로 은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갑작스런 은설과의 날벼락같은 조우를 마친 나는 꽉 쥐여서 빨갛게 변한 팔을 어루만지며 혀를 찼다.

       

       “쯧, 다짜고짜 생사람을 잡고 몰아가기나하고 말이야.”

       

       은설이 내 정체를 아는 거 자체는 문제될 게 없었지만 그녀가 날 잡아다 감옥에 처넣어버리는 건 문제가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키드 G임을 자백하면 그녀가 바로 날 연합 본부의 지하감옥으로 압송해버렸을테니까.

       

       보아하니 앞으로도 거의 매일 얼굴 볼 것 같고, 은설이 날 인지해버렸으니 예상보다 좀 빨리 내 정체를 그녀에게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감옥 안 가는 선에서.

       

       은설이 떠나고 나는 핸드폰으로 사회면 뉴스들을 보면서 다음 타겟을 물색했다.

       

       “천옥물류 이 쓰레기놈들, 정규직 전환 약속을 어기고 전부다 강제 권고사직을 때렸다고? 내일은 이놈들 털어야겠구만.”

       

       나는 갖고 다니는 예비용 대포폰으로 범행예고장을 천옥물류에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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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Villain and My Identity Was Immediately Discovered

I Am a Villain and My Identity Was Immediately Discovered

빌런인데 정체를 바로 들켰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lived as a villainous rogue in a heroic story, setting myself against the protagonist. … But then the protagonist caught on to my true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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