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폭발에 미친 연금술사가 수도를 불태우려 하는데…”
그 친구는 시도때도 없이 물어보지도 않은 소설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처음에는 흘려 들었지만, 점차 소설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봐 볼까.’
기사와 마법사들의 연대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던 제목이었기에, 바로 찾아 볼 수 있었다.
“음…”
몇화 읽어 봤지만,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인생 이었기에 이게 왜 재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법이고 칼이고 총만 있으면 다 해결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소설의 설정상, 총기가 등장하는 것이 말이 안된 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이 안되니 여러 잡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총기 덕후이기도 했고.
결국 재미를 느끼지 못한 나는 댓글을 달았다.
-7서클이고 소드마스터고 총과 포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 아님?
댓글을 남긴 후 앱을 껐다.
이따금 답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지만, 알림 내역으로도 보이는 살벌한 내용에 기겁하며 앱을 지웠다.
“뭔 소설이야. 게임이나 하자.”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셋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잊고 살았을 텐데…
“아.”
평소와 같은 일과.
업무를 마친 후 나무 그늘 아래서 쉬던 나는, 머리에 사과를 맞은 충격으로 전생이 기억 나 버렸다.
…아무래도 나, 소설 속 세계에 환생 해 버린 것 같다.
***
제국의 무기 연구개발 부서.
주 업무는 무기의 개량과 신무기 개발이다.
이름과 업무는 거창하다.
하지만 하는 건 별거 없다.
지금이 평화로운 시대인 것도 한 몫 하지만, 이 세계에서 중요한 건 신무기가 아니니까.
한 명의 기사를 제압하려면 적어도 100이 넘는 병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마법사의 마법 한번이면 한 중대를 쉽게 전멸시킬 수 있다.
홀로 2000명의 병사들을 막아낸 소드마스터급 기사나, 한 나라를 지도상에서 지운 9서클 마법사에 대한 기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즉, 전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것은 기사와 마법사이다.
그렇기에 여러 국가들은 뛰어난 기사와 마법사들을 육성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에 반해, 무기에 대한 개량과 신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소홀한 상황이다.
애초에 중세 냉병기를 개량한다고 해서 얼마나 발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무기 연구개발 부서에서 할 일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무기들의 내구도 개량, 소재 개발 정도.
이것도 우리 일 하고 있어요 식의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오전 9시에 출근 해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고 나면, 길어야 두시간이다.
나머지는 동료들과 이야기 하거나, 여유시간을 즐기는 것이 무기 개발개발의 일반적인 일과다.
그야말로 꿀의 직장이다.
워라벨의 균형, 적당한 봉급과 업무.
부서원들 중 누구 하나 모난 이 없으며, 여유로운 근무로 머리 부여잡을 일도 없다.
게다가 사고만 안 치면 정년까지 짤릴 걱정 없는 공무원 아닌가.
제국인들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하는 꿈의 부서이다.
이는 학생들의 희망 진로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팩트이다.
그런 부서에 내가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지 뭐.’
무기 연구개발 부서를 아직도 어떻게 붙은 건지 모르겠다.
능력은 몰라도 빽은 확실히 부족하다.
남작가의 자식인 나에게 빽이 얼마나 있겠나.
보통 국가직에 합격하면 꿀 부서는 빽있는 이들이 가고, 나같은 이들은 기피부서에 배치받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꿀 부서에 배정받게 되었다.
“뭐 좋은게 좋은거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부서 건물에 도착했다.
“오늘도 열심히…”
꿀 빨러 출근했다.
먼저 자리로 가서 업무를 정리하고 있으니, 부서원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오, 브라운. 일찍 왔네? 안 피곤해?”
“저는 괜찮습니다. 제임스 씨는 괜찮으세요?”
“피곤해 죽겠다. 나이 좀 드니 숙취가 오래가네. 확실히 젊은게 좋아.”
“좋은 아침.”
선임과 말을 하던 도중, 팀장과 다른 이들도 도착하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빨리 일하고 쉬자고.”
평소처럼 일과가 시작됐다.
***
업무를 마무리 하고 나니, 한시간 반 정도 지나 있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제임스 씨는 먼저 자리에서 잠들어 있었고, 다른 팀원들은 어디론가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쉬어야지.’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 건물 뒷편으로 향했다.
사람도 거의 안오고, 적당히 그늘지고 선선해 낮잠 때리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다.
평소처럼 적당한 곳에 드러누워 졸던 차였다.
“으앗!”
머리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옆에서 뭔가가 굴러가는 것이 보인다.
사과였다.
“하…씨…”
욱씬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던 도중, 이상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소한 기억이었지만, 동시에 익숙한 기억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멍하니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치기라도 했나?”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려 보지만, 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찜찜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부서로 돌아갔다.
“브라운씨, 마침 잘 왔어요. 부서장이 전 부서원 호출하셨어요.”
때마침 아르엔이 나를 보며 말한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몰라요. 긴급 회의라는데. 다른 팀원들은 먼저 갔어요. 얼른 가죠.”
“아, 네.”
회의도 분기마다 한 두번 할까 말까 한데, 갑자기 긴급회의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선임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부서원들이 대부분 모여있었다.
힐끔 바라본 부서장의 얼굴은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 있나.’
어떤 일이 있어도 온화한 표정을 풀지 않던 부서장이,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봐서는 큰 문제가 생긴 듯 했다.
조용히 부서원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찾아 앉으며 부서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자리가 거의 채워지고 난 뒤, 부서장이 입을 열었다.
“더 올 사람 있나?”
“다 온 것 같습니다.”
1팀장이 답했다.
“그럼 회의 시작하지. 부서 정리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 무기 개발연구 부서도 피해갈 순 없을 거야. 이유는 여러분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부서장은 잠시 회의실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일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 한번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봐. 부서 폐지를 막을 만한 걸로 말이야.”
‘부서가 폐지된다고?’
취업 했다고 기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다른 부서에서 하나 둘 아이디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무구에 마법진을 새기는 것은 어떨까요?”
“그건 몇개월 전에도 나왔던 기획이다. 이미 윗선에선 실현 불가라고 판단했고.”
“무구에 마석을 박으면 마력이나 오러와…”
“마석이 땅파면 나오나? 효율도 안 나와. 이미 몇년 전에 사장된 기획이다.”
“무구의 품질 개량 연구를 더…”
“품질을 여기서 얼마나 더 올릴 수 있다고? 무기 개량은 윗선에서도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윽고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던 부서장이 말했다.
“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다면, 한 달 내로 실현 가능한 걸로 준비해야 될 거야. 이만 회의 마치지.”
부서장이 떠난 뒤, 다른 부서원들도 일어서서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와 씨…큰일이네. 부서 폐지되면 그대로 실업자 되는 거 아냐?”
자리로 돌아가자, 제임스가 말했다.
“저 짤리나요? 앞으로 어쩌죠 그럼?”
아르엔이 제임스의 말을 듣고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부서로 가게 될 거야. 근데 여기만한 부서 없는데, 큰일이네.”
팀장이 이어서 말했다.
“내가 전에 있던 데가 재정부야. 거기는 정시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다른 동료들 말 들어보면 여기만큼 편한 곳 없어. 좋은 시절 다 갔지 뭐.”
“한 달 내로 좋은 기획서를…”
“실현 가능한 걸로 가져오래잖아. 한 달 내로. 여기서 뭘 더 바꾸라고. 차라리 연줄 최대한 알아봐서 좋은 데…”
팀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지 말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떠올랐던 기억들과 지금 상황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정말 소설 속 세계에 환생이라도 한 건가.’
기억 속 지인이 나에게 하던 말과 지금 상황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가 설명하던 소설 속에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또 하나.
전생의 병기에 관한 기억들도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생의 나는 무기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 기억을 활용한다면, 부서 폐지는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개발 기획서. 화승총.]
우선은 당장 만들 수 있는 것부터.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