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던 밤.
커다란 마차 한 대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숲속을 도망치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잘 닦인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조차 없는 숲길을 달리던 마차는 당연하게도 작은 나뭇가지부터 거대한 바위들까지 사정없이 부딫혀 덜컹거렸고, 앙상한 네 개의 바퀴는 악랄하게 튀어나온 나무뿌리들을 타 넘으며 쉴 새 없이 휘청거렸다.
마차가 숲길에서 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마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에겐 다른 방법을 떠올릴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마부는 장애물을 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으나, 비까지 오는 숲속의 밤은 그런 마부의 노력을 비웃듯 어둠으로 마부의 눈을 가려버렸다.
마부가 의지할 유일한 빛이라고는 오직 자그마한 랜턴뿐이었다.
하지만 마부석 옆에 매달린 채 정신없이 흔들리며 미약한 불빛을 사방에 계속 흩뿌리는 랜턴의 불빛은 바로 앞도 제대로 비춰주지 못했다.
심지어 마차를 이끄는 말들의 뒷발굽조차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너무나 좁은 시야 밖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나무 등의 장애물들 떄문에 겁에 질린 말들은 주춤거렸지만, 마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세게 채찍을 휘둘렀다.
얼굴을 두드리는 빗물을 닦아낼 여유조차 없는 마부는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불안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속하게도 방향을 알려줄 별 역시 비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큭,”
“꺄악!”
여기저기 부딫히고 찍혀 엉망이 된 마차의 겉모습만큼, 마차의 안쪽도 엉망진창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온갖 물건들이 쏟아지고 뒤엉킨 채 마구 흔들리는 마차의 안에서 나는 내 품에 안긴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여동생 라일라의 손을 꼭 붙잡아 주고 있었다.
나는 파르르 떠는 라일라의 머리를 품속에 꽉 끌어안았다.
이제 고작 열 살배기 밖에 되지 않은 그녀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라일라는 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울먹거렸다.
“오빠, 살려줘.”
“라일라, 눈 꼭 감고 있어. 곧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덜컹
“…흑,”
“…나만 믿어, 알겠지? 내가 지켜줄 테니까”
“너무… 무서워…”
마차가 쉴 새 없이 덜컹거릴 때마다 우리의 몸도 크게 들썩거렸다.
나는 충격에 울먹거리는 여동생을 끌어안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그저 도망밖에 칠 수 없어서, 겁먹은 여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안아주는 것밖에 없어서, 스스로가 너무나 무력하고 또 한심했다.
불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동생의 눈을 팔로 가려주며 나는 품속의 꼬마 숙녀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쿵!
“꺄악!”
마차가 몹시 크게 덜컹거렸다.
목재로 만들어진 마차의 몸체가 불길하게 끼익 거렸다.
“으, 오… 오쁘아…”
겁에 질려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여동생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이나 어린 여동생에게 차마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눈앞까지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목젖까지 차올라 몸이 바짝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덜컹!
안 그래도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마차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요동칠 때마다 라일라는 그 조그마한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라일라의 비명 사이를 비집고 들려오는 마차의 신음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끼익, 끼익,
튼튼하고 거친 짐마차도 조심하며 다니는 이런 험악한 지형을 귀족의 마차가 내달리는 것은 분명 미친 짓이었다.
너무나 급해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나와 라일라를 죽이기 위한 자객이 쫒아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질주의 끝은 오직 파멸뿐이라는 예감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점차 소름이 되어 피부로 삐져나왔다.
심지어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굵어져만 갔다.
거센 바람마저 휘몰아치는 것을 보니 폭풍이 다가오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세상을 전부 뒤덮어버린 빗소리 아래에서 힘겹게 덜컹거리던 마차는 자신의 끝을 선언하듯 앓는 소리를 흘렸다.
빡, 빠직!
그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린 순간 마부도 나도, 그리고 저 어린 라일라마저 자신의 끝을 짐작했다.
마부는 질끈 눈을 감았고, 라일라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심한 제 오빠의 가슴팍을 눈물과 침으로 적셨다.
나는 어떻게든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최대한 내 품속으로 품으려 애썼다.
우지끈!
주먹만 한 돌부리를 밟은 마차의 앞바퀴는 마침내 부러져 무너지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제동이 걸린 마차는 그 반동으로 크게 튀어 올랐다.
그리고, 이내 곧 천천히 옆으로 기울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들은 버둥거리며 버텨보았지만, 가속도가 붙어 더욱 육중해진 마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딸려 들어가 비탈 아래로 떨어졌다.
말들의 당혹스러운 울음소리가 섞인 뜨거운 숨결이 빗속으로 흩어졌다.
비명, 울음,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
그 중의 무엇도 우리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으아아악!”
“꺄아악! 애쉬 오빠!”
당연하게도, 그리고 잔혹하게도,
이런 숲속에 울타리 같은 것은 없었다.
마차는 산비탈을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
툭,
툭,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두드리는 감촉에 나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아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눈뿐만이 아니라 마치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작 눈꺼풀조차 자신의 의지로 들어 올릴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당황스러움 덕분에 점차 의식이 선명해지자 아랫배가 뭉근하게 달궈지는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 열기는 온몸으로 퍼져가며 점점 거세졌다.
온몸이 불에 데인듯 뜨겁다.
“욱,”
아니, 열기가 아니었다.
불에 달군 쇠몽둥이에 온몸을 얻어맞는 것 같은 두터운 통증이었다.
한참이나 바닥에서 그 고통에 시달리던 나는 촘촘하게 쏟아지던 빗방울이 굳게 닫힌 눈두덩이를 때리고 나서야 폐를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짜내며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커윽,”
앓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내 얼굴이 진흙에 처박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온몸의 뼈가 모조리 부러진 걸까. 아니면 모든 근육이 동시에 찢겨나가기라도 한 걸까.
인간의 말로는 차마 다 설명하기 힘든, 심지어 점점 더 심해져 가는 고통에 나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겨우 얼굴을 옆으로 돌려 간신히 얼굴을 진흙 속에서 뺴내었다.
“켁! 푸흐,”
연신 기침을 해대며 코와 입을 덮고 있던 진흙을 뱉어냈지만 피 섞인 진흙들은 그저 내 입가 근처에 힘없이 떨어질 뿐이었다.
나는 자꾸만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희뿌연 시야를 억지로 끌어올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깨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부석에 매달려있던 낡은 기름 램프가 옆으로 쓰러진 채 남은 기름을 태우며 미약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던 덕분에 나는 겨우겨우 주변의 사물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박살이 난 마차의 잔해 주위에 널브러진 말들의 사체는 비를 맞아 빠르게 식어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말들의 사체가 식어있는 것을 보면 꽤나 오랜 시간 기절해 있었나 싶지만, 진흙에 입과 코가 막혀있던 걸 보면 또 너무 오래 기절해 있던 건 아닐 터였다.
숨이 그렇게 오랫동안 막혔다면 이미 죽었을 테니 말이다.
하긴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가 지금 걱정해야 문제는 그 외에도 산더미처럼 많이 있었다.
자꾸만 시야가 어둠 아래로 가라앉고, 온몸을 두드리던 통증도 점점 둔하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 같다.
무겁고 거대한 추가 허리에 매달려 몸통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했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이대로 저 무게에 몸을 맡겨 땅바닥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다면, 나는 분명히 죽겠지.
퍼붓는 빗줄기에 자꾸만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여동생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때까지…
…여동생.
라일라!
몸을 일으키려 해 보았지만, 손가락 끝만이 간신히 움찔거릴 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럴 때 통증이 둔해졌다는 건 차라리 좋은 일이다.
“라… 라일라.”
죽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마차가 구르던 순간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가 튕겨 나갔던 그 소름이 끼치는 감촉과 기억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그녀의 비명도 함께 머리를 스쳤다.
“크, 크으윽!”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는 힘없이 떨어진다.
나는 되려 그것을 이용해 팔을 들어 올린 후, 떨어트려 그대로 땅을 짚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팔에 조금씩 몸의 무게를 실어보았다.
“칵, 아악.”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이 팔의 중심, 아마도 뼛속을 내달렸다.
나는 마른 호흡을 삼키며 얕은 비명을 질렀다.
상체를 1센티미터도 들어 올리지 못했는데, 양팔은 부들거리며 당장이라도 툭 하고 부러질 것 처럼 삐걱거렸다.
아무래도 사고의 충격에 팔은 이미 부러진 모양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숨을 들이켜며 몸을 뒤틀었다.
기합을 넣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이를 악물지는 않았다.
그럴 힘이 있다면 그조차 모조리 끌어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일 테니까.
나는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자기 상체를 굴렸다.
살짝 뜬 지면 아래 진흙이 유난히 더 묽고 검다.
아무래도 피를 많이 흘린 모양이었다.
애처롭게 부들거리던 가냘픈 양팔은 결국 균형을 잃고 진흙 위에서 미끄러졌다.
내 몸은 그대로 옆구리부터 떨어지고는 한쪽으로 툭 엎어졌다.
간신히 몸을 반바퀴 굴린 것이다.
“후…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팔과 마찬가지로 복근에도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몸을 일으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엎드린 상태에서 팔의 힘만으로 몸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지였다.
팔굽혀펴기보단 윗몸일으키기가 더 쉽지 않은가.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점점 정신이 또렷해진다.
그와 동시에 고통 역시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이제서야 이빨을 꽉 깨물었다.
*
고작 몸을 일으키는 데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쓴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나의 체감상으로는 적어도 몇시간 정도는 우습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빌어먹을 비는 여전히 퍼붓고 하늘 역시 여전히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나는 마차의 프레임이었던 기다란 나무막대 하나에 몸을 지탱해 서 있었다.
막대의 끝은 Y자로 구부러져 있었기에 끝에 램프를 걸어두었다.
물이 들어갔는지 거의 꺼져가는 불빛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일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라일라… 라일, 크악,”
조금의 압력이 가해지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기에 나는 큰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소리의 크기를 높이려 들면 그대로 비릿한 피 맛이 배인 기침을 비명과 함께 뱉어내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라일라가 만약 깨어 있다면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릴 터였다.
적어도 비명은 들릴 것이다.
그녀는 대체 어디까지 튕겨 나간 것일까.
많이 다쳤을까.
고작 열 살인 그 아이가 이 끔찍한 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미 라일라는…
나의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렸다.
아, 안돼, 라일라.
설마. 설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한계를 맞이한 나의 다리가 미친 듯이 후들거렸다.
일어난 것부터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이제는 그 기적마저 한계였다..
나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어깨를 기울여 커다란 나무에 머리부터 박으며 몸을 기댔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으면, 나는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죽는다.
살기 위해서 도망쳤건만, 여기서 이렇게 죽는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내 미련함은 나를 이렇게 고통받아가며 일어서게 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게 무엇인가.
라일라는 이미…
아아, 라일라.
마지막 남은 내 유일한 가족.
너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인생이 무척이나 허무했다.
온몸을 빼곡하게 채운 통증 사이사이의 작은 빈틈마다 무력감과 허탈함이 빈틈없이 들이차고 있었다.
램프를 걸어둔 막대가 손끝을 서서히 벗어났다.
쩅그랑.
이번에야말로 램프는 확실하게 깨져 산산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온 세상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휩싸였다.
라일라도 이 어둠 속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까.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 어둠이 자신의 고통마저 먹어 치워 주는 것 같다,
통증이 의식의 저편으로 흩어져 갔다.
어째선지 이 어둠이 포근하게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라일라. 오빠가 만나러 갈게.
나는 지면을 향해 쓰러지려 했다.
그 순간,
램프가 깨지고, 쓰러지려 했던 그 짧은 잠깐의 시간 사이.
잠시 들어 올린 나의 시야 끝에 무엇인가가 닿았다.
지금까지는 램프의 불빛이 너무나 가까워 미처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 집…?”
저 멀리 분명하게 불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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