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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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는 19금 야겜을 하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든 종류의 히로인이지만, 불과 20년 전쯤만 하더라도 종종 성적 학대를 당한 과거를 가진 히로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게 심지어 전연령판 게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런 장면을 실제로 보여주지는 않고, 그냥 ‘얘가 이렇게 불쌍한 애입니다’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보다가 각혈할만한 설정이라는 건 여전하다.

        

       단, 클레어 팬그리폰이라는 캐릭터는 등장인물 분류로는 분명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공략이 가능한 히로인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플레이했던 시리즈까지는 공략 루트가 없었다.

        

       아니, 공략이 문제가 아니라 살리는 것이 불가능한 캐릭터다.

        

       20년 된 시리즈이긴 했지만, 지금 진행되는 세계관이 시작된 것은 고작 5년 전의 일이다. 14편이 5년 전에 나왔고, 그 후로 총 세 편이 나왔으니까.

        

       그리고 2010년대 후반은, 그런 능욕계 캐릭터가 등장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대였다.

        

       캐릭터 성은 매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캐릭터 성도 있는 법이니까.

        

       어두운 과거를 가리려고 일부러 밝은 척을 한다거나, 또래보다 더 조숙한 캐릭터가 되었다거나, 강해보이기 위해 위악을 떤다거나, 지독하게 어두웠던 과거에서 구원받고 사이가 좋지 않던 의붓여동생과 화해하게 된다거나—

        

       —그런 설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런 어두운 과거는 굳이 ‘능욕’이 아니라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제작진의 취향인 건지, 아니면 20년 전 시나리오를 쓰던 시나리오 라이터가 계속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인지.

        

       클레어라는 캐릭터의 인기와는 별개로 그 자극적인 설정은 계속 캐릭터의 인기에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일본은 어땠는지 몰라도 국내 한정으로는 그 캐릭터의 과거를 가지고 지속해서 분탕을 치며 돌아다니는 유저가 몇 명 있어서 더 인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무튼 제작진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용도로 써먹을 캐릭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발매된 시리즈에서 이 캐릭터는 자기 의붓여동생, 그러니까 황제의 진짜 딸을 위해서 황제의 명도 거부하고 스스로 희생하게 된다.

        

       캐릭터 뒤에 따라오던 논란과 분탕은 어쨌건 그 스토리만큼은 아무도 까지 못했다. ‘죽는 순간까지 불행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원하는 결말을 맞이한’ 캐릭터라는 건 언제나 인기 있는 법이니까.

        

       “음…….”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지금 내 앞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이 클레어는 아직 ‘팬그리폰’이라는 이름도 얻지 못했고, 그렇게 우울한 과거를 가지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클레어는 고아원 원장이 돈 받고 사창가에 팔아버린 캐릭터다.

        

       아니, 애초에 그 고아원 자체가 사창가와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평범한 고아원인 척하면서, 사실은 고아들을 가려 받고 필요할 때마다, 그러니까 그 특수한 성벽을 위한 사창가의 고아가 하나씩 망가져서 버릴 때마다 부품을 교체하듯 하나씩 공급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아마, 얼마 전에 ‘입양’된 그 아이도, ‘그런 용도’로 팔려나갔던 거겠지.

        

       ‘특수한 성벽’에 따라 ‘구매’해가는 거니 당연히 성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고.

        

       사창가에서 구르던 여자애가 황제의 딸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이 클레어라는 캐릭터에게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능욕당하던 도중, 클레어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서 자신이 상대하던 ‘손님’을 죽여버리게 된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떡대들의 경동맥을 손에 들고 있던 포크 하나로 죄다 따버리고 나오는 도중에 실수로 오일램프를 깨뜨리고, 결과적으로 그 창관에 불이 붙어버린다.

        

       소화장치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인명에 대한 권리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세계관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허름한 사창가에서 시작된 불은 그대로 빈민가를 휩쓰는 대화재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제와 대적하던 수많은 귀족이 사창가에 있다가 그 화마에 휩쓸려 사망하는 바람에 귀족파에게 꽤 큰 피해를 주게 된다……라는 것이 뒷설정이었다.

        

       사건을 조사하던 중 클레어의 존재를 알게 된 황제는 그대로 그 클레어를 데려다가 자기 딸로 삼아버린다.

        

       황제의 아래에 있는 수많은 ‘자식’들은 그런 식으로 황제의 편이 되어 황제에게 충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황위를 계승할 권리 같은 건 없다. 그저 황제가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측근들일 뿐.

        

       클레어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최신작까지도 밝혀진 바가 없다. 차기작에서 친부모라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는 떡밥이 있었지만, 그뿐이다.

        

       아무튼 아직은 ‘팬그리폰’이 아니니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지금 있는 이 고아원이 그 정신 나간 창관과 연관이 되어있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 그 말은 이 애뿐만이 아니라 ‘나도’ 팔려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거울로 본 내 얼굴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자아이였으니까.

        

       내용물이 성인 남성이라면 또 어떻겠는가. 아이들을 사서 그런 짓을 하던 귀족들에겐 그건 오히려 하나의 유희 거리로 느껴질 거다.

        

       “좆됐다.”

        

       “조옷……?”

        

       “아.”

        

       내 중얼거림을 듣고 클레어가 따라 했다.

        

       그리고 나는 클레어의 그런 모습을 보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물론 뭔가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이 고아원에서 어떻게든 나가서 좀 제대로 된 곳으로 도망갈 생각 정도는 해 보았다.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곳도 알고 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몹시 성실하고 착한 녀석이다. 당연히 그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수도 안에서 대대로 살아온 나름대로 유서 깊은 남작가인데, 선한 가문이라는 설정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인지 그 가문에서는 제대로 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겉모습만 고아원인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고아원 말이다. 애들을 정말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성인이 되는 순간까지 제대로 책임져주는 곳.

        

       나는 지금까지 플레이한 모든 [아제르나 전기]의 콘솔판 플래티넘 메달을 땄고, 심지어 한국어판 정식 발매 전에 일어판을 사다가 일어사전 붙잡고 클리어하면서 공략까지 쓰던 사람이라 제도(帝都)의 지도 정도는 알고 있다. 만약 이 세계가 정말로 내가 알던 그 게임 속의 세계라면 내가 기억하는 그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의 스케일이다.

        

       정말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서양 스튜디오가 아닌 이상, 하나의 도시를 게임 안에 그대로 구현하는 짓을 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인원이 40명 내외인 중소기업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설정상의 지역을 세세하게 구현해두긴 했지만, 그 모든 지역이 다 다닥다닥 붙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게임상에서 필요하거나 중요한 지역만 딱 골라서 구현해둔 수준이다. 거리로 치면 두세 블록 정도에 해당한다. 그런 지역 여덟 군데가 게임에 나온다.

        

       그 외에는 모두 도시 바깥의 전투 필드였고, 당연히 그 필드의 경우에 JRPG라는 특성상 몬스터도 나오고 보물 상자도 있어야 했기에 딱히 논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구성이었다. 오로지 던전으로서의 모습으로 만들어야 했으니, 이쪽 세계의 도시 바깥과는 완전히 달라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튼, 그렇게 도시 내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나는 지도나 표지판만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독도법에 통달하지는 못했다. 제도는 복잡한 곳이라고 몇 번이나 묘사된다. 길이 잘 정비된 대도시 쪽이면 모를까, 불법으로 건축된 판자촌과 지은 지 백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목조주택이 마구 뒤섞인 뒷골목은 지도에 자세하게 나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쭉 시간만 끌고 있는 것이다.

        

       “실비아 언니, 무슨 일 있어?”

        

       여기 아이들은 나를 은근히 잘 따랐다.

        

       어쩌면 이전 대장이었던 애가 주먹으로 애들을 다스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들이 사고를 치면 맞는 것은 자신이었으니 노파 대신 주먹을 휘둘러 조용하게 만든 것이다.

        

       그 와중에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예쁜 얼굴 때문인지도 모르지.

        

       ……어린아이의 얼굴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확실히 어린아이의 시야로 보기에는 예뻐 보일 만 한 얼굴이었다. 어른의 시야로 본다면 ‘장래가 기대되는’ 얼굴이고……

        

       아마도 범죄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곧장 가지고 싶은 얼굴이겠지.

        

       내가 어째서 이런 얼굴로 고아원에 나타나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웹소설이었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를 내가 구하게 되고, 그 이후에 본편의 이야기가 원래와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게 되겠지만—

        

       —대체 어떻게?

        

       나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일단 ‘상품’이니 다들 얼굴이 반반했다. 대체 뒷골목에서 어떻게 이런 애들만 다 골라두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어쩌면 ‘그냥 고아’는 아닐지도 모르지. 뭐, 지금 나로서는 어떻게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그래, 다른 세상에 태어난 것은 좋다. 어린 시절의 히로인과 마주치게 된 것도 좋다. 솔직히 처음 깨닫고 나서는 조금 감동했을 정도다. 마법이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함이니,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증기기관이 달린 수많은 장치니, 다들 로망을 자극하는 것들이 아닌가.

        

       문제는, 내가 그런 것들을 다 즐기기도 전에 팔려 가서 착취당하다가 죽을 운명인 것 같다는 거다.

        

       그래, 어쩌면 실비아 블랙이라는 캐릭터는 원래 있던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클레어가 황제의 딸이 되기 전에 알던 사이였다는 설정일지도 모르지. 그냥 본편 시작 전에 팔려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캐릭터라 등장하지 않았을 뿐.

        

       “…….”

        

       초조하게 머리를 굴려보아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상태 창도 나오지 않았고, 뜬금없이 나한테만 들리는 안내음이 들리지도 않았다. 머리를 뒤져보아도 뭔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언니?”

        

       “…….”

        

       분명히 영어 비슷한 언어인데도 일본 게임 특유의 어감이 느껴지는 건 아마 그냥 기분 탓만은 아닐 거다.

        

       사실 내 나이와 클레어의 나이는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많아 봐야 한 살 정도고, 아니면 몇 개월 정도의 차이겠지. 키가 비슷한 것을 보면 분명 그러리라.

        

       하지만 노파가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고 했던 것 때문인지, 여기 있는 아이들은 전부 나를 언니, 누나라고 불렀다.

        

       “……아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나는 기왕이면 그 애들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전부 공감해주면서 어떻게든 아이들을 도와주려는 선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멀찍이 떨어져서 그저 보고만 있을 방관자. 그게 내 위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끔찍한 미래가 예정된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상냥한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니까.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애들이 나를 잘 따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이별의 날은 금방 찾아왔다.

        

       “클레어!”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널 데려가 주시겠다는 분이 오셨다! 기쁘게 나와라!”

        

       “…….”

        

       원래대로라면 이곳을 떠나게 될 때 아이들은 조금 더 기뻐한다. 자길 때리고 괴롭히는 존재들밖에 없는 곳이니 벗어나는 것이 기쁜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기가 팔려 가는 줄도 모르니까.

        

       그저 유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따뜻하고 배부르게 자라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귀족이나 부르주아가 이런 꼬질꼬질한 곳에 있는 애들을 데려갈 리가 없다는 걸,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클레어는 그저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눈에는 두려움과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그 사이에 나에게 정이라도 들었던 걸까?

        

       “……앞까지 같이 가자.”

        

       나는 일단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듯, 클레어가 그런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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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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