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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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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온 백작가의 장남, 카일 벨라온.

       켈리드 공작가의 차남, 데론 켈리드.

       로스펠 후작가의 차남, 블런드 로스펠.

       라펠리온 백작가의 독자, 엘든 라펠리온.

       

       지금은 다소 쇠퇴한 라펠리온 백작가를 제외하고선 모두 윈터펠 북부령에서 입지가 탄탄한 가문의 후손들이었고, 르미앙 대공녀의 혼약전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었다.

       100인의 참가자들 중에 최종 후보에 오른 승리자들이기도 했고.

       용모면 용모, 문무면 문무, 재력이면 재력, 그리고 저마다 세운 공적들까지.

       보여지는 것과 드러난 것만 놓고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출중한 이들이었으며, 르미앙 제 3 대공녀와의 혼약 상대로써 손색이 없는 이들이었다.

       

       문제는.

       

       ‘…대체 왜 이런 자들만 선택하셨단 말인가.’

       

       표면적인 것들에서 시선을 돌려 그들의 속을 들여다본다면, 형편없고 후안무치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약자의 위에 군림하는 것을 즐기며, 그릇된 향락과 사치를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며, 성취를 위해 악행도 서슴치 않는 전형적인 악덕 귀족이 그들의 진가였다.

       그렇기에, 윈터펠 대공가의 중앙보좌관 겔우드는 그들이 본선을 통과한 10인이 되었을 때, 간절히 빌었었다.

       

       르미앙 아가씨께서 저 4명만큼은 선택하지 않기를.

       부디 이 간절한 바람이 아가씨께 닿기를.

       

       하지만 르미앙 아가씨는 그 바람을 고이 스쳐보내버린 건지, 노파심에 주제 넘은 첨언까지 남겼던 충심을 귀이개로 고스란히 파내어버린 건지, 정확히 그 4명을 최종 후보로 간택해버렸고 겔우드는 절망의 고배를 마셔야 했었다.

       

       그녀의 성품과 남다른 통찰력을 본다면 당최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일개 보좌관은 모시는 이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참담한 심정을 애써 숨기며 내일부터 진행될 합숙을 검토하고 있었다.

       1분 전만 해도 말이다.

       

       “…하하, 엘든 공자님께서 청탁이 아니라 농담을 건네러 귀한 걸음을 하셨나 보군요?”

       

       농담이리라.

       겔우드는 그리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세상에 사내라곤 최종 후보 4인방만 남았다면, 엘든 라펠리온을 선택할 그였으니까.

       최선이 아닌, 차악으로써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엘든 라펠리온이 다른 3인방보다 ‘그나마’, ‘덜’ 약았고 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본능에 충실한 짐승일 뿐, 다른 이들처럼 교활한 가면을 쓰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 그의 기권 선언에, 겔우드가 애써 웃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농담 같은 거와는 거리가 멉니다만.”

       

       눈동자는 진중한 빛을 비치고, 입술은 진실한 목소리를 전한다.

       그제야 상황을 직시한 겔우드가 표정을 굳히며 재차 물었다.

       

       “……진심이시군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제 3 북부대공녀님의 혼약 상대가 되기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달까요.”

       “예선과 본선 심사 모두 월등한 점수로 통과하셨고, 대공녀님께 선택까지 받으셨는데 어찌 자격이 부족하다 생각하시는지요.”

       “가당치도 않은 과분한 영광을 누렸다 생각합니다. 쥘 수 없는 것이 쥐어졌을 땐 놓아야 하는 법이지요.”

       “그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시겠다는 겁니까?”

       

       엘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늘어날 헛수고를 줄이는 것입니다.”

       “…엘든 공자님께서 계신 곳은 100명의 공자가 꿈꾸었던 자리입니다. 정녕 포기하시겠다는 겁니까?”

       “예.”

       

       짧은 만큼 단호한 대답.

       회유라곤 눈곱만큼도 통하지 않을 분위기에, 잠시 고민하던 겔우드가 결국 한 발 물러섰다.

       

       “최종 후보자 이탈은 혼약대전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대공각하께 아뢰어야 할 사안 같군요. 하루의 말미를 주신다면 조속히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엘든이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픈 그에게, 하루의 시간은 너무도 길었던 탓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후보자 이탈이 북부대공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중히 겔우드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전하께 말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탈주 좀 도와달라고.

       엘든이 전하는 속뜻을 알 리 없는 겔우드는 재차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마십시오. 후보자의 의견을 존중하실 겁니다.”

       “그럼.”

       

       엘든이 겔우드에게 가벼이 목례를 했다.

       법적인 계급도에선 엘든이 겔우드의 위에 있다지만, 북부령을 통치하는 대공가의 중앙보좌관은 사회적인 위치가 높았기에, 상호 존중을 표해야 했다.

       의무가 아닌 도리로써.

       물론, 그 도리를 만남 이래 처음 받은 겔우드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혼약전이 시작된지 보름이 지났고, 그간 수 차례 마주치고 대화를 나눴었지만 엘든 라펠리온의 고개는 한사코 뻣뻣했었다.

       아니, 뻣뻣하다 못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추켜올라가 있었다.

       또한 그의 주변을 휘감는 기류는 날이 서있었고, 붉은색 눈동자는 흉흉한 빛을 띄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르다.’

       

       정확히는 작금의 대면 직후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이 방금의 목례로써 정의된 것이다.

       눈동자는 봄처럼 평온했고, 기류는 산들바람처럼 포근하다.

       날것을 벼려내던 언행도 온화하며 정중하다.

       미묘한 변화이고 추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포착하고 대응하는 것이 보좌관이 가져야 할 덕목임을 알기에, 엘든의 변화가 의문스런 겔우드였다.

       우선은, 급히 목례를 하며 엘든에게 화답했다.

       

       “살펴가십시오. 엘든 공자님.”

       “예. 그럼 일 보십시오.”

       

       딸각.

       

       엘든이 집무실을 나갔고, 그가 남기고 간 기류를 곱씹어보던 겔우드가 곧장 가주의 서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당면한 문제는 엘든 라펠리온의 미묘한 변화보다, 혼약대전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될 최종 후보의 기권이었다.

       

       

       **

       

       

       “쯧.”

       

       보좌관의 집무실을 나온 난 혀를 차야 했다. 탈주가 미뤄졌다. 게다가 확답을 듣지도 못 했다.

       혹여 북부대공이 기권 선언을 무효화시킨다면 꽤나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물론 최종 후보들 중 가장 최약체 가문의 후손이 던진 기권표를 마다할 리는 없을 것 같다만.

       어쨌든, 지금으로썬 위대하신 북부대공께서 괘념치 않고 그저 승인해주길 고대하는 수밖에.

       

       “짐이나 싸둬야겠군.”

       

       혹여나 귀찮은 훼방을 놓을까 싶어 집사장을 심부름 보내놓은 터였다.

       프로이사러였던 내게 짐싸는 것쯤은 혼자서도 충분한 일이다.

       서둘러 방으로 돌아온 난,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한 데에 모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짐이 조촐하네.’

       

       필요한 물품들은 대공가에서 지급을 해준 덕에, 챙겨야 할 짐이 많지는 않았다.

       옷 몇 벌과 신발, 장신구, 그리고 고급 술병 몇 개가 끝.

       빈 병이 있는 걸로 보아 혼약대전 동안에도 음주를 즐겼던 모양이다.

       

       ‘악당과 술은 뗄 수 없는 조합이긴 하지.’

       

       여차하면 야반도주를 할 수 있게끔 짐을 꾸리고 있자, 노크와 함께 노년의 남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심부름을 보냈던 집사장 렌들러였다.

       

       “부탁하신 물건 챙겨왔습니다. 공자님.”

       

       의미없는 물건이다.

       대충 선반쪽으로 손짓을 하며 말했다.

       

       “저기 놔둬.”

       “…….”

       

       적당히 짐꾸러미를 꾸린 후 허리를 폈는데, 심부름 물건을 든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렌들러가 보였다.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것이, 못 볼 것이라도 본 표정이다.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뭐해? 저기 안 놓고.”

       “………지, 지금 무얼하고 계신 겁니까? 공자님…?”

       “아, 미처 얘기 못 했는데 방금 보좌관께 기권 선언하고 오는 길이야. 때 맞춰 출발할 수 있게 짐 좀 챙겨두려고.”

       “그러니까…… 지금 무얼하고 계신…?”

       

       흠, 말이 어려웠나.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쇠퇴한 가문의 망나니 공자가 최종 후보가 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일지언데, 설마 라펠리온 백작가의 집사장께선 그 망나니가 최종 우승하리란 헛된 꿈이라도 꾸셨던 걸까.

       그렇다면, 미안하게 됐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기적이야. 대공가의 혼약전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단 것만으로도 검증이 된 셈이니 숱한 가문에서 혼담 제의가 쏟아질 거라고. 구태여 승산 없는 싸움에 매달릴 필요 없어.”

       “…….”

       

       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했겠지 싶었는데, 희번득 뜬 렌들러의 눈이 좀체 가라앉지를 않는다.

       노집사께 과한 충격을 선사해버린 듯해 괜한 미안함을 느끼려던 찰나, 그가 짐꾸러미를 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그리고 그 한 마디는, 엘든 라펠리온이란 악질 캐릭터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고, 공자님께서 ‘직접’ 짐을… 싸셨단 말씀이옵니까…?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그러니까 노집사께선 쇠퇴한 가문을 일으킬 기회를 발로 걷어차버린 것보다, 엘든 라펠리온이란 망나니가 제 힘을 들여 손수 짐보따리를 싼 게 더욱 충격이라는 건가.

       그렇다는 건, 노집사께선 애당초 엘든 라펠리온이 최종 우승을 하게 되리란 기대를 개미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거겠군.

       

       

       ……

       

       

       ……

       

       

       엘든 라펠리온.

       

       대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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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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