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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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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지 세계에서 평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상태창을 외쳤지만 뜨는 건 없었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신분이 높았던 것도 아닌 터라, 부모님 따라서 감자 농사나 지으며 생을 마감하게 되려나 싶었더니만. 놀랍게도 내게 대마법사의 재능이 있었다.

       

       어쩐지 암산이 잘 되더라니.

       

       마탑이라는 곳으로 끌려가서 마탑주들로부터 무수한 러브콜을 받았다. 

       다음은 러브콜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네가 적색 마탑의 제자가 되어준다면 세계의 절반을 불태울 지혜를 주마!”

       

       “청색 마탑에 들어오면 후계자 자리를 보장하겠어요. 당신의 재능이라면⋯⋯ 심해의 청룡을 퇴치하고 잃어버린 고대 해저 도시 아틀란티스를 수복하는 것도 꿈이 아니에요!”

       

       “금색 마탑에서는 입주 즉시 많은 돈을 무료로 드립니다!”

       

       “자, 자색 마탑은 있는 게 없어서, 그, 환상 마법에 관심 있으면⋯⋯.”

       

       

       쟁쟁한 러브콜 사이에는 찐따가 하나 끼어 있었다.

       

       자색 마탑은 환상 마법을 연구하는 학파로, 쓸모가 없어서 인기도 예산도 없었다.

       냉혹한 판타지 세계에서는 살상력이야말로 마법사가 노려야 할 제 1 목표였다.

       

       환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 시간에 파이어볼을 박는 게 DPS가 높다.

       환상으로 헛것을 보여줘 방해한다? 커다란 개조 파이어볼의 광량은 약 100만 칸델라에 달한다. 방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마탑주들이 자신감 넘치게 영입료 보따리를 풀어낼 때, 자색 마탑주는 찐따같이 마법 홍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는 다른 마탑은 몰라도 자색 마탑만큼은 거들떠도 보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나머지 셋 중에서 아무거나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두 번째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그 중요한 순간에 전생의 마귀가 나를 방해했다.

       부처를 유혹하던 악마처럼 달콤한 말로 내 정신을 흔들어놓았다.

       

       

       ‘환상 마법? 이걸로 가상현실 만들어서 TRPG하면 개재밌겠다 진짜.’

       

       ‘문화산업 하나도 없어서 취미라고는 식도락이랑 결투 구경 뿐인 중세판타지에서 진짜 TRPG 포기함? 네 인생 취미 버림? 개노잼 오셀로 10만 년 동안 할 거임?’

       

       ‘오우거가 두툼한 몽둥이로 당신을 내리찍습니다! 라는 묘사 대신에 환상 마법으로 진짜 보여줄 수 있는데 진짜 참음? 님 티알피저 맞음?’

       

       ‘환상 마법 있으면 버튜버로 데뷔 가능한 거 아니냐?’

       

       

       “허억.”

       

       나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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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는 예산 부족으로 꼬질꼬질한 연구실에서 마법을 깎아가는 나날이었다.

       환상 마법으로 모델링을 가다듬고, 리깅 작업 하고⋯⋯. 고되지만 보람 가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끔 방해꾼이 들어오기도 했다.

       

       “저, 저기⋯⋯ 이번 지원금 밀어주면 지, 진짜로 쓸모 있는 거, 만들어 주는 거지?”

       

       “네.”

       

       “제, 제자들이 화를 내서⋯⋯ 굴러들어온 돌한테 언제까지 지원금 가져다 바칠 거냐구, 저, 저 녀석 돈 꿍쳐뒀다가 적색 마탑으로 도, 도망갈 거라고 막⋯⋯”

       

       “있어 봐요.”

       

       “으, 으응⋯⋯.”

       

       “됐다. 다 만들었어요.”

       

       “지, 진짜⋯⋯? 2, 2년간 지원금 타 간 마법, 와, 완성된 거야? 어, 어, 어떤, 마법인데⋯⋯? 저, 전쟁에 쓸 수 있는 거야? 우리 마탑, 떡상할 수 있는 거야⋯⋯?”

       

       “버추얼 아이돌 하트. 완성했음.”

       

       “?”

       

       

       까만색과 붉은색 투 컬러로 포인트를 준 드레스. 트럼프 카드 하트를 형상화한 아바타다.

       2D 화면 안의 3D와는 격조가 다르다. 환상 마법으로 구현해 낸 3D 모델링은 진짜 사람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홀로그램이었다.

       

       캉캉 댄스를 추게 시켜봤다.

       

       제대로 치마와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보는 사람이 즐거워지는 모핑도 완벽했다.

       구현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치마 아래까지 꼼꼼하게 체크해봤다.

       

       흡족했다.

       

       무릎이 살짝 튀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은 버그였다. 

       앉은 자리에서 뚝딱 고쳤다.

       

       “저, 그⋯⋯ 이게, 뭐⋯⋯.”

       

       자색 마탑주도 내 결과물에 감동했는지 말을 잇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는지, 마법의 디테일에 대해 물어오는 것이었다.

       

       “이거, 그, 무슨 효과가 있는 마법이야⋯⋯?”

       

       “움직이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요.”

       

       “대, 대규모 살상 기능이라던가는⋯⋯?”

       

       “없죠. 대신 팬티 모델링을 열 장이나 준비해 둠.”

       

       “꼬르륵.”

       

       

       자색 마탑주가 트윈테일을 팔랑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제자의 성취에 너무 감격해서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자색 마탑주가 ‘다음 분기 지원금은 다 망했다’ 며 잉잉 울면서 난장판을 벌였다. 환상 마법의 달인 아니랄까봐 눈물방울이 나비나 타조가 되어 사방을 날아다녔다.

       

       마탑의 등골을 실컷 빨아먹고는 있었지만, 내가 자색 마탑의 재정상황을 아예 신경 안 쓴 건 아니다.

       마탑주는 버추얼 아이돌 하트쨩에게 내재된 무시무시한 잠재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펑펑 울어댔지만, 내게는 밝은 미래가 보였다.

       

       중세. 

       

       즐길 거리 없음.

       

       평민들 최종 컨텐츠가 사형수 지켜보기인 시대에, 버튜버는 틀림없이 큰 힘이 되어 줄 것이었다.

       물론 안다. 버추얼 유튜버는 모델링보다도 안에 탑재된 사람의 매력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또, 인터넷 없는 이 세상에서 버튜버를 어떻게 써먹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차근차근 해결해보자. 안에 탑재될 사람이 필요하다.

       우선, 하트에게 탑승하는 건⋯⋯ 나다.

       

       “아. 아아. 흠흠.”

       

       환상 마법의 신묘함은 소리에도 닿는다. 사전에 수집해 둔 여성 10명의 목소리를 조합해서 TTS를 구현한다. 그러면 짜잔. 버추얼 아이돌 하트는 내가 생각한 대사를 그대로 뱉어내는 것이다.

       

       “꺄하핫☆”

       

       완벽해.

       

       TRPG의 진행자── GM은 현실감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낼 의무가 있다. 때로는 지나가던 상인이라던가, 습격해 오는 고블린 등을 맡아 연기하면서 플레이어들의 몰입감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히로인도 포함된다.

       

       성격이 드센 여기사를 연기하는 것도, 청초한 흑막 소녀를 연기하는 것도, 30대 무직 백수 고졸 니트녀를 연기하는 것도, 나다⋯⋯!

       

       전생에서는 물론 실제로 목소리를 냈던 건 아니었다. 걸걸한 남자 목소리로 “나, 당신을 줄곧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청초한 대사를 내뱉는 건 아무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그런 건 텍스트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돈이 정말 많았다면, 전문 성우라도 한 명 고용해서 시켜보고 싶다⋯⋯ 고. 

       아니면 괴물같은 성능의 TTS가 출시되어서 목소리를 입혀보고 싶다고.

       

       이제야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후후후⋯⋯ 아하하하하하핫!”

       

       하트를 조종해 악녀스러운 웃음을 내뱉으며, 나는 배부르게 미소지었다.

       나는 그녀로 이세계 버튜버의 정점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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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수호방위국 위험인물 보고서]

       

       이름 : 하트, 환상의 여인

       등급 : 2급 (잠적으로 인해 1단계 강등)

       활동 시기 : 사자력 445년 ~ 448년 (3년간)

       작성자 : C

       

       그녀는 반딧불처럼 돌연 나타났다가, 폭풍처럼 사라졌습니다.

       수많은 남성들과 일부 여성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말입니다.

       

       그녀는 독특한 마케팅으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유명한 창관 ‘로자리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오직 대화만’을 조건으로 자신의 시간을 팔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은 벌고 싶은데 몸을 팔 용기는 없는 거냐’며 코웃음을 쳤습니다만, 몇몇 용기 있는 신사들이 그녀와의 ‘대화’를 경험한 이후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를 찾기 위해 많은 남자들──심지어 작위 귀족까지도──이 줄을 지어 섰습니다.

       

       많은 분석관들이 그녀가 반제국주의자들의 손에 육성된 정예 요원일 가능성을 첫 번째로 두고 있지만, 저는 그 견해에 다소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다만 사랑을 가지고 놀았을 뿐,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예상되는 몫과 비교하면, 그녀가 받은 금품들은 ‘약간의 팁’에 가깝습니다.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언제나 ‘당신은 얼마나 부유한지, 당신이 준비해 온 선물은 전 재산의 몇 퍼센트인지’ 묻고, 1%가 넘는 금액은 사양해왔다고 합니다.

       

       아직도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한미한 남작가의 어느 젊은 직계가 전 재산을 들고 그녀에게 바쳤습니다. ‘이 정도의 재산으로는 당신을 갖기에 부족하다는 걸 아오. 다만 당신의 한 순간이라도 사고 싶소.’ 그러자 그녀는 재산을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금액은 남작님께 개인적으로 투자하죠. 좀 더 멋진 남자가 되어 오세요.’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 ‘관심 있는 남자가 건넨 선물은 다시 돌려주는’ 유행이 생긴 것은 이 일화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녀는 사랑으로 얻어 낸 권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교만하게 굴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당당한 태도를 취했으나 결코 오만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깔보거나 업신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녀와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 세간에서는 하트의 남자라고 불리우는 ── 현 북부 대공 율리우스가 ‘약혼녀가 생겨서 더 이상의 만남은 힘들 것 같다’ 고 말하자, 그녀는 질투보다도 격려의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나와 보냈던 시간을 오렌지처럼 기억해 줘요. 식사 중이 아닐 때만!’

       

       그녀에게서는 체취가 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향수의 냄새도, 인간 본연의 살결의 냄새도. 그녀를 만난 남자들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향기’ 라며 인상 깊게 기억했습니다. 모든 냄새를 지워주는 향수가 한 때 유행했던 것은 그녀의 모방입니다.

       

       그녀가 사라지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를 그리워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발자취를 쫒고 있습니다. 저는 그녀가 활동기에 지속적으로 보인 자유로운 태도와 겸허함을 믿습니다. 당시의 그녀는 제국의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타오르는 정열과 함께 춤추는 자는 언제나 화상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녀가 잠적한 것이 정말로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라면, 그녀가 돌아오는 날은 곧 진정한 사랑이 깨진 날일 것입니다. 실연의 아픔을 겪는 여인이 얼마나 표독스러워 질 수 있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공백을 깨고 돌아온 그녀가 한 때 거머쥐었던 신사의 마음을 휘두르겠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무제한적인 인력 투입을 통해 ‘환상의 여인’을 사살할 것을 제안합니다.

       

       물론 파견되는 모든 인원은 그녀의 시간을 1분이라도 산 적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잘 부탁드리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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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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