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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커버접기

     

    특별할 일도 없이 또 세상이 멸망했다.

     

     

    종종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싶다.

     

    잠에서 일어나고, 밥을 먹고,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다시 잠에 들고.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오늘이 언제지, 하고.

     

    날짜나 요일을 착각할 때가.

     

     

    내게는 세상의 멸망과 죽음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니 이번이 몇 번째 죽음인지, 몇 번째 멸망인지 헷갈리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지, 조금은 특별한데.”

     

    눈이 따갑다.

     

    태양이 배가 뚫려 내용물을 쏟아냈는지 하늘이 시뻘겋다.

     

    코로 들어오는 매캐한 냄새.

    나무나 돌, 살가죽, 온갖 것들이 타오르는 시꺼먼 향기다.

     

    튼튼한 벽돌로 빈틈없이 지어진 건물과 성벽엔 구멍이 숭숭 뚫려 무너진다.

     

    무엇보다 때아닌 까마귀 떼 마냥 하늘에 들어찬 마물의 무리.

     

    용군단이다.

     

     

    헛웃음만 나오네.

     

    “하하, 나 참.”

     

    용사파티가 마왕에게 몰살된 적도 있었고, 전 인류가 언데드화하는 역병에 걸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드래곤 무리에게 제도가 개박살나는 장면은 처음 봤다.

     

    “저딴 걸 어떻게 이기라고. 상태창.”

     

     

    ―――――――――――

     

    이름 : 라스

    성 : 없음 (고트베르크)

    나이 : 27

    직업 : 치유사

    계급 : 평민 (몰락귀족)

    소속 : 용사파티

    재능 : ■■■ (S)

                 ■■ (S)

     

    목표 : 배드엔딩을 회피하여 클리어.

    배드엔딩 발생 시 사망 (진행중)

    남은 시간 : 17분 42초

     

    ―――――――――――

     

     

    이번에야말로 마왕을 토벌하고 클리어하나 싶었는데 결국 이 꼴이다.

     

    이 같잖은 판타지 게임 세상에 빙의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음, 가물가물해.

     

    “시간이라도 많이 주든지.”

     

    원작 게임의 작중 배경 시간은 한 달.

    나는 똑같은 30일을 벌써 수백 번째 반복하고 있다.

     

    처음 클리어에 실패해서 죽고 회귀했을 때.

    죽을 수도 없게 됐단 걸 알았을 땐 소름이 목 뒤까지 끼쳤다.

     

    감옥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이후로 어떻게든 클리어해보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봤지만 전부 수포였다.

     

    이 조건으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

    배경도 하찮고 재능도 잠겨있는, 허접한 엑스트라 치유사 캐릭터로는.

     

     

    그래, 치유사.

     

    나는 땅바닥에 쓰러진 용사파티의 전사에게 치유주문을 넣어주던 중이었다.

     

    “아파, 아프다고! 잘 좀 해 봐!”

     

    “전신 4도 화상이니 아프지. 기다려, 쿨타임 돌고 있어.”

     

    전사는 상처가 쓰라려 죽겠는지 허리를 새우처럼 꺾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아악…! 라스, 너도 용사파티의 일원이면 책임감을 가져! 필사적으로 해보라고!”

     

    “치유술 효율이 쓰레기라 어쩔 수 없어. 대상 부위도 랜덤이지 속도도 느리지. 화상 입었으면 찬물로 식히고, 마취하고 피부 절제해야지. 난 성서나 읽고 있네.”

     

    이 세상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환자를 죽이려는 미친놈으로 비치겠지.

     

    여기선 다치면 대처법을 찾는 게 아니라 기도부터 올리는 게 상식이다.

     

    비바, 치유주문.

     

    내 친절한 설명에도 전사가 아득바득 이를 갈아왔다.

     

    “넌 치유사라는 놈이 항상 이해할 수 없는 소리나 하고! 실력이 좋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 인성 파탄자는 용사파티에 못 들어왔을 것을…!”

     

    내가 인성 파탄자는 아닌데.

    인성 파탄자에 빙의한 거지.

    뭐, 이쯤 시간이 지나면 슬슬 나도 잘 구분이 안 되긴 한다.

     

    “야, 새겨들어. 내가 이래봬도 빙의되기 전에는 나름 의학 쪽 공부했거든. 그땐 의사 되고 싶었지. 사짜 직업, 어? 멋있잖아. 돈도 잘 벌지, 신랑감 일 순위 아니냐.”

     

    꺼드럭거릴 정도로 잘한 건 아니었지만.

     

    그야 그렇지. 세상에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겠어.

    남들처럼 주변에 떠밀려서 했었지.

     

    “그래도 나중에는 꽤 진심이었는데. 실습 때 환자들 치료하면 나름 보람도 있었어.”

     

    지금처럼 치유술이 아니라 의학을 기반으로 한 치료였다.

     

    “그것도 부질없었지. 교통사고 당하고 신경이 맛탱이가 갔거든. 손 벌벌 떠는 의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비싼 수술 받고 재활하면 복귀할 수 있었겠지만 돈이 없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로 비싼 실력 좋은 치유사는 높으신 분들이 독점한다.

     

    하물며 용사파티에도 나같이 조금 급떨어지는 놈을 보낼 정도다.

     

    “나 고졸이야 고졸. 그 후로 폐인같이 게임만 하다가 여기에 재수 없게 끌려왔… 아, 쿨타임 됐다.”

     

    “치유, 치유를…!”

     

    전사 녀석의 숨이 멎어간다.

    어차피 곧 멸망할 세상이지만 눈앞의 환자를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의무를 다하기로 했다.

     

    성서를 펼쳐 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세상에 신 따위는 없기에 적당히 아무 문장이나 읊어도 그만이다.

     

    “전능하신 핑챙 여신님께 적당히 아뢰옵나니, 거지 같은 자비를 베푸시어 어린 양을 돌보시고….”

     

    전사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야 임마.”

     

    쯧, 그새를 못 버티고.

     

    나는 성서를 집어 던지고 즉시 CPR을 실시했다.

     

    심폐소생술이다. 아무 도구가 없을 때 위급한 환자에게 사용하는 응급처치다.

     

    전사의 심장을 강하게 마사지하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5분이 경과한다.

     

    골든타임이 지났다.

     

    “하아.”

     

    땀범벅이 되어 주변을 둘러본다.

     

    자랑스러운 용사파티께서는 전원 흙바닥에 코를 박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하신다.

     

    하긴, 마왕을 토벌하자마자 수백 마리의 용군단이 하늘에서 쏟아졌으니 안 죽고 버틸 재간이 없다.

     

     

    여기까지다.

     

    신성력도 바닥나서 머리가 어지럽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무심코 바닥에 떨어진 성서를 밟았다.

     

    “내가 의사 하고 싶댔지 치유사 한다고는 안 했잖아.”

     

    기왕이면 손맛이라도 보게 검술캐로 빙의시켜 줄 것이지.

     

    아니면 마법이라도 펑펑 쏴제끼게 해주든가.

     

    “현대의학이 그립다. 판타지 세상 주제에 포션도 없는 게 말이 되나.”

     

    여기서 진통제를 만들었으면 날개 돋친 듯이 팔렸을 텐데.

     

    그럼 이 거지 같은 장비도 조금은 좋은 놈으로 갈아 끼우지 않았겠어.

     

    “그래도 겨우 여기까지 왔건만.”

     

    이만한 악조건이다.

     

    빙의한 몸뚱아리는 뭘 처먹어왔는지 조금만 뛰어도 헉헉대고, 수면장애도 심하다.

     

    숨겨진 재능은 있는 것 같지만 잠겨있다. 한 달의 조건에서는 개방할 수도 없고, 도무지 실력을 기를 수가 없다.

     

    애초에 다짜고짜 마왕군과 싸우면서 본편이 시작해서 차분히 훈련할 시간도 없다.

     

    혐성인 인물이어서 주변의 눈총을 받으며 시작하는 점은 덤이다.

     

     

    그래도 수백 번 반복해서 경험을 쌓았다.

     

    빙의 전에는 한 번 플레이해본 게 전부라, 이 세상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했다.

     

    경험이 쌓인 지금은 등장인물들의 과거사, 마물 공략법 등 지식이 늘었다.

     

    죽음을 반복하다 보면 몸, 라스라는 인물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들어오기도 하고.

     

    아니, 지금은 내가 망나니 치유사 라스지.

     

    이제는 마왕까지 쓰러트린 경험도 꽤 있다.

     

    그럼 뭐 해.

     

    또 배드엔딩이다.

     

    나는 허망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어디 누워서 죽어 볼까.

     

    묫자리를 찾고 있으니 멀리 황궁 성벽에서 내게 까딱까딱 손짓하는 인물이 있었다.

     

    얼굴을 보니 속이 메슥거리네. 위장을 꺼내서 직접 내용물을 쥐어짜고 싶은 기분이다.

     

    뭐, 경험상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 편안한 최후를 본 적은 없다.

     

    용사파티조차 그녀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복종해야 하니까.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터덜터덜 성벽 계단을 오른다.

     

    이번에도 세상을 멸망시킨 건 저 여자일 게 뻔했음에도.

     

     

    그녀는 병사들의 시체가 잔뜩 널브러진 성벽 위,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허리를 넘게 내려오는 긴 장발은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다.

     

    강한 마녀의 상징인 은발에는 타고난 금빛이 희미하게 남아 감돈다.

     

    그녀가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하늘하늘 흔들었다. 가는 손가락 끝에는 피보다도 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들었다.

     

    긴 속눈썹 끝이 향하는 곳은 용군단이 파괴하는 제도 한복판.

    입가에는 슬그머니 미소를 걸어놨다.

     

    그 웃음을 보니 트라우마가 된 죽음의 공포와 함께, 깊은 증오가 피어오른다.

     

    이 여자만 없었어도 진즉 내 고난은 끝났을 테니.

     

    하지만 한두 번 경험한 감정도 아니었기에, 아지랑이처럼 금방 사라져간다.

     

    여기서 화를 내봤자 내 명줄만 재촉하는 거지 뭐.

     

    그녀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생각도 든다.

     

     

    제국의 13대 황제,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는 나를 향해 악마 같이 조소했다.

     

    “생각보다 절망하지 않아서 의외로구나. 용사파티의 무능한 치유사여.”

     

    나는 하늘을 뒤덮은 용군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폐하가 불러내셨습니까?”

     

    “후후, 그대는 여전히 어지간히 옹이눈이구나. 그러니 멸문하는 그 순간까지도 망나니짓이나 하고 다녔겠지만.”

     

    적당히 바닥의 벽돌을 발로 치운 후 아셀라의 옆에 털썩 앉았다.

    옆에 놓여있던 포도주를 가져가려 하니 그녀가 슥 병을 챙겼다.

     

    “어디서 감히 제국의 황제에게 바쳐진 공물을 손대려 하는가?”

     

    “그 제국 방금 멸망했잖습니까. 좀 나눠 주십쇼.”

     

    “무릎 꿇고 개처럼 빌어보아라. 그럼 조금은 고려해 보마.”

     

    “황량한 빈자에게 부디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폐하.”

     

    내가 정중히 예를 갖추가 아셀라가 만족하며 포도주를 하사했다.

     

    경험상 죽을 땐 취해있는 게 백 배 나았다.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거, 무릎 좀 내주고 술이나 얻는 게 이득이다.

     

    이 여자에게 개겨봤자 죽기 전까지 마법으로 고통받을 뿐이고.

     

    “경치 좋구만.”

     

    용들이 불을 뿜으며 제도를 불태우는 장면을 특등석에서 구경한다.

     

    “아름답지 않느냐. 저주가 끝나는 날이야.”

     

    아셀라는 광경이 마음에 든 듯 양팔을 쭉 뻗어 환희를 표현했다.

     

    “예에, 명화가 따로 없습니다요.”

     

    “희한하구나. 분노하며 당장에라도 짐에게 단검을 들이밀리라 생각했거늘.”

     

    “열 번도 넘게 달려들었습니다. 찔리지도 않더만요. 제 목만 날아갔죠.”

     

    병을 더 들이키며 대충 대꾸했다.

    황제의 물건답게 아셀라의 술은 맛있었다.

     

    “그대는 참 기묘한 소리를 자주 하는구나. 마치 미친 사람 같이.”

     

    “폐하만 하겠습니까.”

     

    제국의 13대 황제 아셀라는 미친 악녀다.

     

    이명으로 불리길, ‘황금의 마녀’.

     

    여태 내가 본 세상의 멸망 중 거의 반은 다 이 여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왕군과 싸우던 도중에도, 싸우고 난 후에도 정신 나간 짓거리를 벌여 지금처럼 세상을 파멸로 이끈다.

     

    권력을 이용하든, 마법을 사용하든.

     

    “그래도 전보다는 솔직하구나. 아, 오해하지 말아라. 마음에 들었단 소리는 아니니. 가문이 정한 그대와의 혼약이 성사되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지.”

     

    “원, 누가 할 소리인지. 제 가문이 같잖은 반역을 꾸미다 멸문해서 기쁘셨죠?”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단다.”

     

    아셀라가 후후, 웃으며 입바람을 흘렸다.

    북부의 차가운 밭에서 자란 포도향이 내 콧가를 간질였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혼약 관계였다.

    아셀라가 아직 황녀일 때 맺어졌던 계약이었다.

     

    나는 잘나가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어차피 이런 미친 여자와 결혼해서 제 명에 살았을 리도 없지.

     

    …아셀라가 자기가 원해서 미친 게 아니란 건 알지만.

     

    “많이 아프냐?”

     

    무심코 경어도 생략하고 질문해버렸다.

     

    내 물음에 아셀라는 대답하지 않고,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세상을 멸망시킨 악녀란 걸 알아도 홀려버릴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녀는 옛날이야기라도 떠올랐는지, 허공을 응시하며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황제로서의 권위를 조금은 어깨에서 덜어놓은 채, 천천히 조막만 한 성대를 떨었다.

     

    “…고트베르크의 공자. 난 그대가 평생 그렇게 미웠단다.”

     

    평생에 걸쳐 맺힌 한이라.

    뭐라 대답해줘야 할지.

     

    “기억하니? 우리는 너희 가문 저택 꽃밭에서 처음 만났지. 그날 나는 네가 털끝까지 미웠어.”

     

    “그렇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지.

    주마등을 되짚으면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용군단은 어떻게 소환했습니까?”

     

    “아, 모처럼이니 알려줄까? 8위계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자랑할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 게 아니겠니.”

     

    아셀라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공중에 마법진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마법 이야기를 할 때 참 즐거워했다.

     

    “보렴, 이게 기본이 될 주 마법진이야. 고위계의 마법은 고차원 공간에서 입체도형을 그리는 것과 같단다. 각 꼭지점에 주 진을 배치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니 술기운이 몰려오며 꾸벅꾸벅 잠이 왔다.

     

    아마 그때 즈음 용군단의 브레스가 우리를 덮쳤지 싶었다.

     

    고열과 함께 숨이 막히고 폐 안쪽부터 쪼그라드는 고통이 덮쳐왔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음, 까맣네.’

     

    회귀를 준비 중이라는 뜻이었다.

     

    여기도 지겹게 보는 장면이다. 곧 시스템에 알림이 뜨고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

     

    · 알림

     

    클리어 실패

     

    <배드엔딩 No.001 : 용군단> 을 수집했습니다.

     

    회귀를 시작합니다.

     

    ―――――――――――

     

     

     

    그래, 이렇게.

     

     

     

    ―――――――――――

     

    · 알림

     

    모든 배드엔딩을 수집하였습니다.

     

    클리어 도움을 위한 [특전]이 개방됩니다.

     

     

    · [엔딩리스트]가 개방됩니다.

     

    · 회귀 시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이건 뭐야?

     

    처음 보는 문구가 나왔다.

     

     

    [특전]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확 들었다.

     

    ‘아니,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좀.’

     

    내가 모든 배드엔딩을 봤다고?

     

    분명 배드엔딩이 101개인가 그랬지.

     

    어느새 그걸 다 본 거야? 내가 여태 그 몇 배는 죽어왔고?

     

    징하다, 징해.

     

     

    …희망이 보인다.

     

    이번 회귀는 조금 다르리란 직감이 들었다.

     

    다른 것보다 눈에 띄는 게 있다.

     

    ‘회귀 시점을 정할 수 있다니?’

     

    스크롤하여 돌아갈 수 있는 한계치가 어딘지, 끝까지 내려본다.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다.

     

    마침내 더 스크롤이 되지 않는 숫자에 도달하니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회귀 시점 : 10년 전]

     

     

    …한 달이 아니라 10년을 벌 수 있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회귀를 진행합니다.]

     

     

    시야가 빙글, 어둠 속에서도 회전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음.”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본다.

    처음 보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거울을 확인한다.

     

    아직 세상에 찌들지 않은 싱싱하고 어린 소년인 내가 있었다.

     

    “진짜 10년 전으로 돌아왔나.”

     

    상태창을 확인한다.

     

     

    ―――――――――――

     

    이름 : 라스

    성 : 고트베르크

    나이 : 17

    직업 : 없음

    계급 : 후작가 영식

    소속 : 치유사 육성소

    재능 : ■■■ (S)

                 ■■ (S)

     

    목표 : 배드엔딩을 회피하여 클리어.

    배드엔딩 발생 시 사망 (진행중)

    남은 시간 : 9년 364일 23시간

     

    ―――――――――――

     

     

    “진짜네.”

     

    온갖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가문도 아직 있고 몸도 젊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심지어 아직 특전은 더 있었다.

     

    “이건 클리어 정도가 아니라….”

     

    용사 파티 같은 위험한 곳에서 활동하는 미래도 바꿀 수 있다.

     

    뭐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단 한 가지만 해내면 된다.

     

    내가 죽는 배드엔딩만 회피한다면.

     

     

    무엇부터 할지 고민하는 찰나, 밖이 소란스러워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내 방은 별관 3층이었다.

    멀리 담장 너머 중앙 현관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귀빈이 영지 저택에 도착했는지 호위기사들이 가득하다.

    가주로 보이는 후작― 내 아버지가 그들을 마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황비로군. 후작가를 방문한 모양이야.’

     

    그럼 그녀도 여기에 있을까.

     

    자리를 옮겨 저택 뒤로 시선을 옮겼다.

     

     

    녹음이 가득한 깔끔히 관리된 정원.

     

    노란 장미가 만개한 꽃밭 사이.

     

    풍성한 금발을 가진, 한 가냘픈 소녀가 꽃들을 음미하며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열네 살의 아셀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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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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