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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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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불명의 폭발로 죽고, 남녀역전 세상에 떨어졌다.

       

       …그리고 도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조졌네.”

       

       날 가둬둔 철창을 통통 두드리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너무 오만했고, 동시에 부주의했기 때문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평범한 남녀역전 세계가 아니거든. 설정뿐이라지만 내가 구상했던 세계다.

       

       세상 모든 보물과 기적이 잠든 대미궁. 이를 탐험하며 고대의 신비를 발굴하고 스스로의 격을 성장시키는 모험가. 그리고 뒤바뀐 남녀의 정조 관념.

       

       비록 쥐뿔도 없는 고아의 몸에 빙의했지만 내겐 평범한 고아는 모르는 지식이 있었다.

       

       예를 들면 주 3회있는 신전의 배식때 교단에 관한 보편적인 설정을 읊어주고, 신앙심 깊은척 빵 한조각 더 얻어먹는다거나.

       

       남녀역전 세계의 어린 남자아이라는 점을 이용해 취한 누님들 상대로 재롱좀 부리고 팁을 받는식으로 말이다.

       

       …솔직히 자괴감 들긴 하지만, 배가 고픈데 그깟 자존심이 대수인가. 전생의 내가 뭘 좋아했을지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 외에도 도움이 될만한 설정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으나…문제는 그게 전부 대미궁과 관련된 설정이라는 점이다.

       

       특정 몬스터의 약점. 조건을 만족하면 드러나는 기믹. 미궁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자 등등.

       

       내가 모험가라면 당연히 알뜰히 써먹을 수 있는 정보지만, 지금의 나는 어디까지나 힘없는 고아.

       

       직접 대미궁을 탐험하는 것도 위험하고, 정보만 파는 건 그 이상으로 위험하다.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서러운 일이더라.

       

       뭐, 대충 그런 느낌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연명하던 어느날. 돌연 눈앞에 반투명한 스크린이 떴다.

       

       띠링!

       

       [생존 1주년 특전! 무료 뽑기 10회 티켓 증정!]

       

       “그땐 진짜 깜짝 놀랐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을 외쳐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길래 단념했는데…사실 육성 시스템이 아니라 가챠 시스템이었다니.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돌린 가챠에서 나온 건 대부분 미묘한 물건들이었다.

       

       영약이라고는 하지만 보약에 가까운 최하급품. 마찬가지로 상비약으로나 쓰이는 최하급 포션. 대장간에서 많이 사면 덤으로 주는 단검이나 화살 한 묶음 등등….

       

       그냥 싹다 팔아버리고 겨울 옷이랑 호신용 무기 하나 장만 하는데 써버렸다. 집이 없으면 옷이라도 따뜻해야하고, 힘이 없으면 무기라도 날카로워야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영약은 팔지 말고 먹어둘 걸 그랬네.”

       

       만약 그랬다면 슬금슬금 감옥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뼈속까지 시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치사한 놈들. 무기야 그렇다 쳐도 옷을 벗겨갔으면 뭐라도 입혀주는 게 도리 아닌가.

       

       거적떼기 하나 던져놓고 이렇게 방치하다니. 이러다가 노예상에 팔기 전에 얼어죽으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속으로 혀를 차는 것도 잠시. 애초에 내가 이렇게 된 건 자업자득이었기에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 대체 확률이 어찌된 건지 10번중 9번은 1성따리가 나왔지만 마지막 하나는 무려 3성 스킬이 떴거든.

       

       스킬은 게임에서처럼 버튼 하나로 사용 가능한 편리한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머릿속에 사용 설명서와 실사용을 위한 최소한의 자원을 때려박았다고 해야하나?

       

       내 설정에 시스템은 없었기에 직접 시험해보며 유추한 바로는 그랬다.

       

       만약 내가 뽑은 스킬이 파이어볼이었다면 나는 턱걸이 수준이나마 마법사로 불릴 정도의 마력을 얻었겠지.

       

       마찬가지로 검술을 얻었다면 몸이 성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인해졌을 것이며, 신성술을 얻었다면 신성력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뽑은 스킬은….

       

       “소매치기였지.”

       

       좀 더 정확히는 ‘눈보다 빠른 소매치기’라는 이름이었지.

       

       겨우 지갑 슬쩍하는 잔재주가 어떻게 3성인가 했더니 생각보다 엄청난 손기술이라 그랬다. 지금껏 한 번도 들킨적 없을 정도니 말 다했지.

       

       …그게 문제였다.

       

       지식은 있어도 이를 써먹을 능력이 없던 내게 어중간한 힘이 주어지니 조금 절제가 안 됐달까.

       

       그래. 무엇을 숨기랴. 나는 지난 몇 달 사이에 소매치기계의 전설이 되어있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의 지갑을 슬쩍하는 건 양심이 찔리기도 하고, 의외로 수익이 미묘하기도 해서 양아치들이나 범죄 클랜 놈들을 마구 털었더니 어느 순간 유명해져있더라고.

       

       뭐, 그러다 결국 꼬리가 길어 이렇게 잡힌 것이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단순한 소매치기 기술이라기엔 과할 정도로 은밀하고 재빠른 기술이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에게 증거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나름 험한 직종인 모험가들이 바글바글 몰려드는 미궁 도시. 그 안에서 범죄조직을 자처하는 놈들은 훨씬 위험한 놈들일 수밖에.

       

       증거고 나발이고 심증만으로 일단 납치부터 하고 보더라.

       

       ‘네가 진짜 요즘 우리 애들을 털고다니던 소매치기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냐. 의심스러운 놈들을 전부 잡고 보면 그중 하나는 얻어걸리겠지. …뭐, 아니어도 쓸데는 많으니 걱정 말고.’

       

       히죽이며 내 얼굴을 만지작대던 중년 아줌마. 온갖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다녀 심히 졸부스러운 그녀는 자기 계획을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내가 그 소매치기면 당연히 좋고, 아니어도 자기 조직의 죄를 뒤집어 씌워 노예로 만들어 팔면 그만이라나.

       

       어리긴 하지만 이 몸뚱이의 외모는 상당하니 지금껏 털린 푼돈 정도는 메꿀 수 있다며, 설령 안 팔리더라도 자기가 본전을 뽑을 때까지 사용하면 그만이라며 실실대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렇다. 여긴 남녀역전이기 이전에 중세에 가까운 세상.

       

       마음만 먹으면 무고한 사람 하나 담가버리기 충분한 곳이다. …내 경우에는 진짜 소매치기가 맞으니 무고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에휴.”

       

       안 잡힐 줄 알았고, 잡혀도 증거 없이 생사람 잡을 줄은 몰랐다.

       

       손과 발은 꽁꽁 묶여있고,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가챠 시스템은 돌릴 재화가 부족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소매치기에 열중했던 건 전부 가챠 때문이거든. 현금이나 몬스터의 마석을 뽑기 티켓으로 교환해주더라고.

       

       그간 훔친 돈은 진작에 가챠에 때려박아 폭사했고, 생활비 겸 비상금으로 남겨둔 돈은 붙잡힐때 뺏겼다.

       

       즉, 이대로 얌전히 노예로 팔려가야 한다는 소리.

       

       “가능하면 예쁜 누나한테 팔려가고 싶다아….”

       

       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그래도 굶어죽으면 곤란한지 개밥그릇에 담아준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잔잔한 수면 위에 비친 내 모습은 두목 년이 말했던 대로 상당히 반반했다.

       

       집이 없어 하루 종일 밖을 쏘다녔는데도 새하얀 피부. 이목구비는 동글동글하니 나이에 맞게 귀여웠지만 분명 좀 더 성장하면 잘생겨질 것이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쓸데없이 화사한 분홍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정도려나?

       

       남자에게 핑발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조합인가 싶지만…머리색이 다양하다는 설정을 넣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서 할 말이 없다.

       

       거기에 남녀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얼추 이해는 되잖은가. 분홍 머리 히로인은 언제나 옳았으니까.

       

       나도 대충 그런 느낌이겠지. …아님 말구.

       

       아무튼 확실한 건 이 정도 외모의 노예는 결코 저렴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당연히 돈 많은 여자가 사갈 테고, 금수저나 장사의 천재쯤 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만한 부를 쌓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터.

       

       높은 확률로 중년 이상의 나이일 것이다. 부디 곱게 늙었기를, 이상한 취향이 없기를 바라는게 현실적이겠지.

       

       “흐어어.”

       

       다시 한번 흘러나오는 한숨. 사람이 갇혀서 처분될 날만을 기다리니 영 이상해지는 것 같네.

       

       차가운 돌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얼룩을 세며 시간을 죽이던 도중.

       

       쿵!

       

       “?”

       

       저 멀리서 들려오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이어서 소란스러운 고함이 드문드문 터져나온다.

       

       뭔가 싶어 벌떡 일어나 자세히 귀를 기울이자 그제야 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야 이 년은!”

       “여기가 쌍단검 클랜이라는 건 알고 쳐들어온……어?”

       “두목! 어디갔습니까 두목! 이 미친년 장난 아니게 강합니다!”

       

       “어라…?”

       

       이거 설마 그건가? 가끔가다 있는 모험가 길드의 범죄자 토벌.

       

       미궁에 들어간 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크건 작건 힘을 얻는다. 그런 녀석들이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잡으며 범죄를 저지르면 평범한 경비로는 감당하기 힘들겠지.

       

       그러니 미궁 도시는 정기적으로 모험가 길드와 연계해 범죄 조직을 소탕한다.

       

       바로 오늘처럼.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철창을 마구 두드리며 외쳤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내가 갇힌 곳은 지하감옥. 혹시라도 토벌팀이 모르고 지나치면 천천히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

       

       이는 탈출할 기회임과 동시에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러한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워지는 인기척. 굳게 닫힌 문이 부서질듯한 기세로 열렸다

       

       쿵!

       

       “젠장! 어디서 저런 괴물같은 년이….”

       

       다만 문 너머에서 들어온 이는 내가 기대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쌍단검 클랜…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도적 소굴인 이 곳의 주인. 동시에 나를 어떻게든 비싸게 팔 거라며 호언장담하던 두목.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졸부같은 녀석이 치사하게 싸우다 말고 도망쳐 온 것이다.

       

       음. 엿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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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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