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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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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 쉽게 바뀔 리가 없다는 것엔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언제나 벼락치기처럼 준비하던 시험 공부를 학기 초부터 미리 할 수 없는 것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가지볶음에 좀처럼 손을 댈 수 없는 것처럼.

       육체를 넘어 영혼에 새겨진 습관과 사고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건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이세계에 떨어진다 해도 마찬가지다.

       

       마법.

       

       불변하는 세계의 법칙과 천체의 운행을 탐구하여 작은 불씨를 낳는 지고의 학문.

       대륙 각지에서 퍼진 불씨는 이윽고 고고하게 타오르는 단 하나의 횃불로 바뀌었고.

       마침내 무지의 밤을 밝히며 하늘을 향해 솟으니 그것을 마탑이라 불렀다.

       

       이세계에 떨어져 전장을 구른 지 6년.

       그리고 진리의 울타리로 구축한 상아탑에 발을 내디딘 지 어언 4년으로 도합 10년이 흐른 현재.

       

       같이 입탑한 동기들과 다르게 단 한 계단도 오르지 못한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오래 전 지구에서와 똑같이 보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갤질이나 하면서.

       

       =====

       [오늘 ‘차원유리의 원리와 이해’ 과목 출첵 못했으면 개추]

       

       수업 시작 2분 전에 갑자기 위상 전이로 강의실 바꿔버린 교수 죽이고 싶으면 개추 ㅋㅋㅋ

       

       [추천 378 / 비추천 11]

       

       — 개추

       — 씹씹 개추

       — ㄹㅅㄹㅇ 학파 출신 맞지? 작년에 출석 미달로 절반은 F였다

       — 왜 시험보다 출석이 더 빡쎈 거냐고 ㅋㅋㅋ

       — 유급생 대거 양산중 ㅋㅋㅋㅋ 등록금 살살 녹는다 ㅋㅋㅋㅋ

       — 간단한 공간 마법 테스트 아닌가? 난 바로 강의실 위치 찾았는데 수업 못 들어온 애들은 어차피 평생 하층에서 못 벗어날듯

        ㄴ ㅈㄹㄴ

        ㄴ 님 그래서 위계가?

       =====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공책 사이즈의 마도구는 ‘위치 노트(Witch Note)’라 하는 물건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 마법사들 사이에서 마녀들의 농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실 출처는 나다.

       정확히는 전생하며 얻게 된 상태창의 일종이었는데, 마탑에 들어오기 전까진 제대로 쓰는 법도 몰랐다.

       지금도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

       [얼마 만에 받는 수습생인데 174기 부터는 환영회 좀 나오지 마라]

       

       파릇파릇한 영애들 모이는 자리에 틀딱들 끼면 분위기 곱창나는거 모르냐?

       

       특히 1년차에 10층 까지밖에 못 올랐으면서 작위도 남작인데 꼴에 귀족이랍시고 전투 마법사도 아닌 참모직으로 알카에라 제도에서 꿀빨다 온 새끼들이 젤 극혐임

       

       — 가셔도 됩니다 선배님

        ㄴ감사

       — 미친놈인가

       — 넌 나오지 마라 제발

       =====

       =====

       [지금 미티어 관 앞에 사교도들 돌아다니니 다들 조심하길]

       

       설문조사 하는거에 이름 적으면 밤마다 자동으로 마왕 숭배 동아리 가입돼서 꿈에 악신 나온다

       

       룸메이트 제물로 바칠 때까지 정신고문하니 가서 멍청하게 잡혀주지 마라

       

       — 아오, 또 시작이네 ㅋㅋㅋ

       — 오히려 이젠 없으면 허전한 느낌

       — 치안부에서는 저 개새끼들 안잡아가고 뭐하냐

        ㄴ 매년 뒷돈 받는 게 분명함

       — 제 룸메가 밤마다 코를 고는데 지금 어디로 가면 되나요?

       

       =====

       

       위치 노트는 마탑에 처음 들어오면 받게 되는 교칙 수첩 첫 페이지에 깃들게 된다.

       그렇기에 마법사가 되기 위해 입탑한 모든 수습생들은 갤러리에 접속할 수 있다.

       

       글 리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때는 주로 새로운 인원들이 들어오는 시기였다.

       그리고 가뜩이나 바쁜 내가 더욱 바빠지는 기간이기도 했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주딱 안 보이네]

       

       계단만 존나 오르다 결국 강의실 못 찾아서 짜증나는데…… 함 달려?

       

       — ㅅㅂ 이 새낀 또 뭐임

       — 고고혓

       — 공습경보! 공습경보! 공습경보!

       — 아오 주딱시치 ㅋㅋㅋㅋ

       =====

       

       바로 이 갤러리의 관리자, 즉 주딱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분탕도 늘기 마련.

       기습적으로 올라온 전술핵에 유저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쯧, 넌 나가라.”

       

       전생에 갤질을 아주 가볍게만 즐기던 나였지만 이때만큼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용자 대부분이 마법사인 이곳에서 저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군비경쟁이 심화되듯 처음에는 단순 험짤에 가까웠던 전술핵은 점점 진화를 거듭한다.

       초탄에 피격당해 학을 떼는 이가 있는 반면, 이를 갈고 반격을 준비하는 자 역시 있기 때문이다.

       

       상호확증파괴를 위시한 병기의 살상력은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강해져 더 이상 누가 정의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거꾸로 뒤집히거나 사진이 움직이는 것은 겨우 시작일 뿐.

       다른 게시물에 전이되고, 본 사람의 시신경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고, 최악의 경우 마력회로를 불태우기까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나이지만 이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다.

       글삭 및 ip 14일 벤.

       

       ====

       관리자

       [분탕 차단했습니다.]

       

       안심하고 갤질해주세요.

       ====

       

       늦지 않은 대처 덕에 핵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더불어 오랜만에 게시글까지 올려서인지 나를 찬양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 오 칼삭이네

       — 휴, 다행 ㅋㅋ

       — 우리 주딱이 일은 참 잘해 ㅋㅋㅋㅋ

       — 종신해라 ㅋㅋㅋ

       ====

       ====

       [저 새끼는 진짜 미친 놈인가 갤에 없는 시간을 못 봤음]

       

       사람은 맞나?

       

       — 대학원생 아님?

       — 누군 교수라던데

        ㄴ 그건 아닐걸 교수 회의 때 갤러리 폐쇄 안건 몇 번이나 올라옴

       — ㄹㅇ 뭐하는 새끼길래 하루 종일 관리하는 거임? 진짜 소문대로 상층에 있나?

       — 이런 거 만들어놓은 걸 보면 맞을지도 교수들도 못 잡는다며

       =====

       

       분명 혼자가 아니라느니, 금지된 시간 조작 마법을 쓴다느니, 칠현자 중 하나라느니…….

       전부 틀린 추측이었지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원활한 수면을 위해 매일 자기 전 5시간, 소화나 시킬 겸 식사 전후로 3시간 정도 가볍게 접속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수업 중 틈틈이 확인하는 정도인데 남들 눈엔 내가 부지런한 사람처럼 비춰지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갤러리는 안정되었고, 새벽이 깊어가며 ‘메테오는 과연 불 마법인가?’라는 잔잔한 떡밥이 흘러갔다.

       상대를 물어뜯기 위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유저들의 모습은 실로 내가 원하던 평화로운 갤 그 자체였다.

       

       “응?”

       

       그때, 내일을 위해 일찍 잘 준비를 하던 내 시야에 한 댓글이 보였다.

       딱 봐도 위치 노트를 처음 쓰는 어설픈 타이핑이었다.

       

       ====

       [메테오가 소환 마법이란 새끼들은 걍 아는게 없음]

       

       느그 마법진에서 튀어 나오는 돌덩어리는 조상님이 만들어주시냐?

       

       당연히 땅의 정령께 기도해서 생성하는 거지

       

       — 네 다음 정령 발깔개

       — 벌써 새벽 예배 시간임?

       — 유독 정령사들은 지들 소환수한테 쩔쩔 매더라

       — 7학파 중 해주 다음으로 인기 없는데는 이유가 있죠?

       — 마린이113 : 메테오는얼음마법임에요.

        ㄴ 이 참신한 개소리는 또 뭐냐?

        ㄴ 메테오는얼음마법이맞앗요.우박이랑비스ㅅ한 윈리에욧.

        ㄴ ㅅ키 고장남?

        ㄴ 윈리x 원리

        ㄴ 병먹금 ㄱ

       ====

       

       메테오가 얼음 마법이라는 신박한 논리를 들고 온 신입을 고일대로 고인 새벽반 유저들은 관망하며 지켜봤다.

       딱 봐도 이런 갤러리와는 연이 없는 듯 한데, 그냥 병먹금이나 하는 게 낫다는 식이었다.

       

       대부분 익명으로 활동하는 게시판 내에서 진지하게 학문적 지식을 설파하는 것은 신상이 밝혀질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유동 아이디 ‘마린이113’은 메테오가 왜 얼음마법인지에 대해 혼자 주절주절 설명했다.

       

       ====

       마린이113

       [메테오는 얼음마법인이유논리적으로설명이가]

       

       능해요 ..마력핵을중심으로한 빙정을고고공에서낙하시키면..충분한 마찰열과 운동에너지를 확보할수 어..천공에서 시전되는 마법은 위치 선정이 까다로운데 현상에불과한불과 다르게 증발하는.수증기를 이용해 좌표를 보정할 수이써요 궁금하면직 접보여드릴수도……

       ====

       

       아무도 자신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데도 계속 글을 작성하는 유동.

       나는 오랜만에 정의의 칼을 빼어들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주딱의 권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보기 싫은 것과 별개로 직권 남용으로 정지를 먹여서야 쓰겠는가.

       다른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얼마든지 익명으로 갤질에 참여할 수 있다.

       

       유동 1개, 그 유동을 실드치는 고닉 2개.

       그리고 다중이라는 의심을 살 때를 대비해 둘을 셀프 저격하는 또 다른 계정까지.

       

       ‘좀 부족한가?’

       

       남들처럼 인생을 갤질에 바치는 편이 아니었기에 살짝 어설퍼 보인다.

       그렇지만 고작 유저 하나와 다투는데 너무 진지해지는 것도 좋지 않았다.

       순수 원소 계열, 그것도 얼음 마법만 극단적으로 찬양하는 행보를 보면 대략 어떤 학파인지도 짐작이 갔다.

       

       준비를 끝낸 나는 마린이113의 글에 인사 겸 가벼운 댓글 하나를 달았다.

       

       ====

       — ㅇㅇ : 기숙사에 얼음 정수기 들어와서 일자리 뺏겼냐? 여까지 기어와서 똥글 찍찍 싸고 앉았네

        ㄴ ㄹㅇ 글레시아 학파 수준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벼운 갤러리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9금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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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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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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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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