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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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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운동장 안에 앉아있는 수많은 신입생.

       

       그 틈에 끼어있던 나는, 아주 편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너! 어서 일어나!”

       

       “아악!”

       

       “훈화가 졸린 건 알겠지만,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모범을 보여야지.”

       

       “네, 죄송합니다.”

       

       

       다들 교장의 훈화 말씀이 만들어 낸 광역 수면 공격에 당해버렸지만, 나는 문제 없었으니까.

       

       

       “···?”

       

       [앗. 선생님이 오고 있어요, 독자님!]

       

       “저 안 자요, 선생님.”

       

       “어, 그래···. 미안하다···.”

       

       

       내게 다가오던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고있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표정.

       

       이럴 때는 이 얼굴이 참 좋다니까.

       

       실눈이라 자는 건지 아닌지 판단이 안 되거든.

       

       헤헤.

       

       

       [···잘 기억하고 계신 거 맞죠?]

       

       “물론이죠, 작가님. 기억하고 있답니다.”

       

       

       당연히 자고 있지는 않았다.

       

       딴짓을 하고 있을 뿐.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간단하다.

       

       사람을 찾고 있다.

       

       

       [우으, 오늘 연재도 힘들었어요···. 독자님, 위로해주세요···!]

       

       “작가님밖에 없어요, 이런 세상을 만들어 낸 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너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강제로 소설 속에 처박아 넣은 건.

       

       도대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웹소설이나 쓰고 있는 거야?

       

       완결 났거나, 연중한 소설이라면 그렇다고 쳐. 그런 내용의 소설은 많았으니까.

       

       억지로라도 납득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써놓지도 않은 소설에다가 집어넣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냐고.

       

       남자는 또 왜 여캐한테 집어넣은 거야?

       

       

       [헤헤, 그런 칭찬을···.]

       

       

       칭찬 아니야.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마음속으로 작가를 탓하느라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바로잡았다.

       

       그래,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다.

       

       작가는 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연재를 시작했다.

       

       결국 웹소설은 주인공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나는 그의 주변에 있어야만 해.

       

       작가의 입맛에 맞게 이야기를 가공하기 위해서.

       

       만약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것에 질려 떠나버리거나, 유시우가 모종의 사태로 큰 부상을 입어 이야기 전개가 불가능해진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연약하다 못해 개복치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웹소설 작가를 데리고, 아직 성장하지도 못한 주인공을 지키며.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를, 아직 설정조차 짜여있지 않으리라 추정되는 악의 세력을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난이도 더럽게 높네.

       

       

       “···찾았다.”

       

       [앗, 정말요?! 진짜다. 저기 있네.]

       

       

       한참동안 아카데미 생도들의 뒤통수를 쳐다보던 와중에, 익숙한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 저 머리다.

       

       착각할 리가 없지.

       

       왜냐고? 뒤통수부터 잘생겨 보이거든. 젠장.

       

       왜 이렇게 잘생긴 녀석이 주인공이야? ···잘생겨서 주인공이겠지, 그래.

       

       세상은 부조리해.

       

       앗, 이쪽을 본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교장을 바라봤다.

       

       신입생들이 정신줄을 놓건 말건 상관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습이 한결같네.

       

       어느 세상이든 교장들은 다 저런 건가?

       

       

       [독자님, 다시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앞을 보고 있어요.]

       

       “고마워요, 작가님.”

       

       

       다시 유시우를 바라봤다.

       

       그래, 저 소년이 주인공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녀석만큼은 다쳐서는 안 돼.

       

       다친다 한들, 수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쳐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수상쩍은 얼굴로 들이대도 당연히 거부당할 뿐.

       

       

       [으음, 어떻게 할까···.]

       

       

       애초에 나는 다른 웹소설 주인공들처럼 행동할 수가 없다.

       

       기연 다 뺏어 먹고 강해지기?

       

       기연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마 설정도 없을걸?

       

       주요 등장인물?

       

       하, 며칠간 겪어본 작가님의 특징을 보아하니 그런 건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던데.

       

       이 소설의 스토리를 꿰뚫는 거대한 사건?

       

       ···주요 등장인물도 없고, 기연도 없는데 무슨.

       

       말 그대로 라이브 연재다.

       

       이 세계를 모티브로 작가님은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작가가 만든 세계인지, 만들어진 세계를 관음하는 중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어. 알아봐야 의미도 없고.

       

       

       [역시 이쪽? 으음, 이쪽도 마음에 드는데···.]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단 하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세계를, 최대한 멀쩡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배드 엔딩이 아니라 해피 엔딩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주인공을 관찰해야겠지.

       

       웹소설 주인공들이 부러워졌다.

       

       그 녀석들은 소설 내용 다 기억하고, 웬만한 기연들 다 훔쳐먹고 다니던데.

       

       등장인물들의 비밀을 다 꿰뚫어 보기도 한다.

       

       그걸 해결해줘서 순식간에 친해지며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소설 속에 떨어졌다는 결과는 똑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여자가 되어버린 채로 남정네 뒤통수나 쳐다보는 꼴이라니.

       

       

       [우으, 고민이네···. 좋아, 정했어!]

       

       “대체 뭘 정하시는 건데요?”

       

       

       짜증이 일어 작가님에게 대꾸했다.

       

       아까부터 혼잣말하길래 무시하려고 했더니 계속 중얼거리잖아.

       

       신경 쓰인다고.

       

       

       [그게요! 독자님은 아카데미 소설 초반부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아카데미 초반부? 갑자기요?”

       

       [네!]

       

       

       아카데미 소설 초반부?

       

       전개를 생각하고 있던 걸까. 도와달라는 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줄거리 몇 개를 추려 말해보았다.

       

       

       “으음, 무기 고르기? 대련?”

       

       [에헤헤, 그것도 좋지만요! 입학식부터 사건이 터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저도 한번 해볼까 해서요!]

       

       “···네?”

       

       

       잠깐.

       

       이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반응을 보지 못한 건지, 작가님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있죠, 입학식 습격에도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마수 출현이랑, 악의 조직 습격!]

       

       “자, 잠깐만요. 작가님. 저희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눠봅시다.”

       

       [생각해보니 첫 습격부터 악의 조직이 등장하면 너무 이르지 않나 싶어서, 마수를 출현시키기로 했어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큰일 났다.

       

       

       “저기, 혹시 마수가 언제쯤 나타나는지는···?”

       

       [임팩트 있게, 교장의 훈화가 끝나고 박수가 멎으면 천장이 부서지기로 했어요!]

       

       

       아, 진짜.

       

       제발 평범하게 좀 가면 안 되나?

       

       우리 소설 시작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잖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작가님께 대들듯이 물어보았다.

       

       

       “도시에 마수가 나타나는 게 가능하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아, 도시였지 참. ···으음, 그럼 악의 조직의 산하 조직의 하청을 받은 조직이 불법으로 기르던 마수가 우연히 탈출한 걸로!]

       

       “···.”

       

       

       말이 안 통하네.

       

       무슨 악의 조직이 대기업도 아니고.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야?

       

       아무래도 작가님은 입학식에 사건을 터트리고 싶은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교장의 훈화가 끝나고, 박수가 멎으면 마수가 천장 위에서 습격한다···.”

       

       [임팩트 있게 등장한 마수를, 주인공이 멋있게 쓰러트리는 걸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죠! 어때요?]

       

       “괘, 괜찮긴 한데···. 정말 하시려고요?”

       

       

       그래, 괜찮아.

       

       소설 내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지.

       

       주인공의 강함을 은연중에 드러낼 수 있는 장치니까.

       

       다른 학생들이 혼비백산 도망칠 때, 주인공이 멋있게 위협을 처리하는 것.

       

       그 사건으로 주인공이 또래보다 강하다는 걸 자연스레 설명할 수 있다.

       

       완벽한 플롯이다.

       

       내가 휘말리는 것만 아니면!

       

       

       “분명히 주인공은 회귀, 빙의, 환생은 아니라고 하셨죠?”

       

       [네. 요즘 그런 게 너무 많아서 정통 주인공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또 왜 이런 곳에서 괜히 힙스터 기질을 발휘하는 걸까, 이 사람은···!

       

       그냥 평범하게 회빙환 설정해서 날먹하면 좋잖아.

       

       굳이 말 안 해도 대충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 끝나는 아주 좋은 설정이라고!

       

       주인공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도망치면 어쩔 건데!

       

       

       “···를 끝으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마칩니다. 다들 박수!”

       

       

       이미 늦어버렸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곧 아수라장이 되겠지.

       

       내가 지금 마수가 오고 있다고 한들,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분명하다.

       

       미친년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지.

       

       어떻게든 주인공에게 이 사실을 넌지시 알려야···.

       

       

       [시작한다, 시작해! 두근두근!]

       

       “꺄아아아아아아악?!”

       

       “마, 마수다! 3급이야!”

       

       “3급 마수가 왜 학교에···!”

       

       “모두 대피해, 어서!”

       

       “···3급?”

       

       [어, 그냥 복선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중에 와, 저 녀석이 저렇게 셌어요! 하고 설명할 수 있잖아요.]

       

       

       그거참 쓸데없는 곳에서 꼼꼼하시네요.

       

       그렇게 비꼬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대충 만든 설정인 게 분명해 보이는 등급. 그러니 3급이 얼마나 센지는 모르겠다.

       

       아마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부여한, 어쩌고저쩌고하겠지.

       

       그래도 평범한 학생과 주인공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내세운 위협이라면, 분명 지금 단계에서 쉬운 적은 아닐···어이쿠.

       

       마구 날뛰는 마수 탓에 날아온 콘크리트 덩어리를 실로 두 동강 냈다.

       

       깜짝 놀랐네.

       

       

       [헉, 독자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이 장갑도 이제 못 쓰겠네.”

       

       

       벌써 실이 풀어져 너덜너덜해진 반장갑 한쪽을 집어던졌다.

       

       나중에 새 걸로 하나 구해야지.

       

       

       “그런 것보다, 주인공이 어디서 뭘 하는지 찾아야···.”

       

       

       쿠와아아아아아아!

       

       마치 영화 속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에 깜짝 놀라 마수를 바라보니,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뭐야, 주인공 언제 저기로 갔어?

       

       눈치채지도 못했네. 엄청나게 빠르잖아.

       

       어느새 입 주위가 베인 마수가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히, 히잉···. 독자님 보느라 주인공의 활약을 못 봤어요···.]

       

       

       근처의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합류한 선생님들이 마수를 쓰러트렸다.

       

       선생님들은 어디서 뭘 하나 싶었는데. 학생들 대피시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입학하는 학생이 선생보다 강하면 안 되지.

       

       아카데미 소설이라면 1년 만에 다 제낄 것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언제 저기까지 가 있던 거야?

       

       원래 있던 장소와는 한참 떨어진 장소에 서 있었다.

       

       마치 그곳에 마수가 온다는 걸 알았다는 듯.

       

       ···주인공 특유의 직감 같은 건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울지 마세요, 작가님. 제가 봤으니까요. 세세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정말요? 역시 독자님밖에 없어요!]

       

       

       하아.

       

       아이를 돌보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들 프롤로그밖에 없는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두려워져요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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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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