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얘야, 일어나. 움직여야 소화가 되지.”

       “뀨, 뀨우우….”

       “딱 5분만이다?”

       

       지금 당장은 못 일어나겠다는 듯 팔을 바동거리는 해츨링에게 나는 5분의 유예를 더 주었다. 

       

       ‘너무 많이 먹였나.’

       

       배가 빵빵한 게, 조금만 더 먹으면 아예 굴러 다닐 것 같다. 

       

       ‘근데 저렇게 복스럽게 먹는데 어떻게 그만 먹여.’

       

       감동에 젖은 눈을 하고 와구와구 생선을 먹어 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만 먹이기는커녕 자꾸만 옆에서 먹을 걸 주고 싶어지는데 말이다. 

       

       명절에 찾아온 손주들에게 진수성찬을 무한리필해 주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이런 걸까.

       

       “뀨….”

       

       해츨링은 나름 움직여 보려는 건지, 벌러덩 누운 채로 꼬리를 엉덩이 왼쪽으로 뻗었다가 뒤척여서 엉덩이 오른쪽으로 뻗기를 일정 주기로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은 저렇게 완전히 대 자로 누우면 꼬리가 배기겠구나.’

       

       꼬리가 없는 인간이야 완전히 평평하게 눕는 게 가능하지만, 드래곤은 누우려면 꼬리를 한쪽으로 빼야 하니….

       

       ‘약간 남자들의 왼쪽 수납 오른쪽 수납 비슷한 느낌인가.’

       

       배부르게 잘 먹어서 그런지 해츨링의 꼬리에도 뭔가 전보다 윤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좀 더 먹으면 꼬리에도 살이 찌겠네.’

       

       …그것도 나름 귀여울지도?

       

       여튼, 녀석이 저렇게 잘 먹고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드디어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허기를 채우고 나서 그래도 어떻게 굶어 죽진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기기도 했고.

       

       ‘뭘 하든 밥은 먹고 해야지.’

       

       한국인 출신으로서 누가 뭐라고 해도 밥심이 1순위다. 

       그 힘든 군대에서도 무조건 밥은 먹이고 한다고. 

       

       ‘흐음. 근데 앞으로도 삼시세끼 물고기만 먹고 살 순 없는데.’

       

       단순히 많이 먹으면 질린다거나, 영양 불균형이 온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가는 데만 해도 최소 3일 정도는 걸릴 거라는 게 문제지.’

       

       말을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완전 생 도보로 움직이는 거다. 

       게다가 어떤 변수라도 발생하면 최소가 3일이지 4일, 5일도 소요될 수 있다.

       

       ‘걸어 다니면 체력도 빠질 거고, 체력을 보충하려면 잠도 밤마다 충분히 자 둬야 하니 효율이 굉장히 안 좋지.’

       

       게임 할 때야 적당히 피로도 낮춰 주는 아이템 먹고 밤에도 길 외워서 막 돌아다니곤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다간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야생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 

       

       ‘그렇다고 이 호수 근처에서 먹고 자면서 마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고.’

       

       여기가 사람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아는 지름길 같은 곳이다.

       

       그래서 운에 좀 기대고 싶다면 아예 안전하게 이 호수 근처에서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확보하고 지내다가, 마을 쪽으로 가는 상인의 마차가 나타나면 히치하이킹을 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근데 만약 그 상인이 마음씨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놈이면, 그때 문제가 되는 거지.’

       

       마음씨 착한 상인일 경우 마차삯을 발광석으로 내고, 운이 좋으면 가지고 있는 나머지 발광석도 좋은 값에 팔아 넘겨 돈까지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상인이 나쁜 마음을 먹는 순간 무기라곤 땔감 및 생선꼬치용으로 가져다 놓은 나뭇가지밖에 없는 우리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발광석마저 모조리 뺏기고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이런 길을 지나가는 상인이면 용병 한두 명은 고용했을 테니…. 더 믿을 수가 없지.’

       

       내가 이 게임에서 용병이란 작자들을 얼마나 많이 겪어 봤는데.

       

       ‘물론 인성이 좋은 용병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용병이 훨씬 많으니까.’

       

       평소에는 용병 사무소에서 웃으며 술 한 잔 함께 걸치다가도 돈만 들어오면 뒤통수 치기를 망설이지 않는 놈들이 태반이다. 

       

       이런 최상급 발광석들을 보고도 눈이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도박.

       

       ‘그리고 무엇보다…. 최대한 이 해츨링은 사람들 눈에 안 띄게 하는 게 좋을 테니까.’

       

       나는 이제 슬슬 몸을 일으키려 하는 해츨링에게 다가가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쑥 넣어 잡고 일으켜 주었다.

       

       “쀼우!”

       

       그러자 해츨링은 고맙다는 듯 내 손을 잡고 꼼지락대더니, 곧 뒤뚱거리며 물가로 걸어가 얕은 곳에서 발로 물을 철벅이며 놀기 시작했다. 

       

       “쀼웃!”

       

       촤악!

       

       그러다가 자기 발 근처를 지나가는 쬐그만 물고기가 있으면 낚아채 보려 앞발을 휘두르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별 수확은 없었다.

       

       ‘아무리 저렇게 귀엽다곤 해도 만약 녀석이 드래곤이라는 게 밝혀지면 일이 골치아파질 수 있어.’

       

       사실 이 문제는 사람 사는 마을에 가기로 했을 때부터 쭉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였다. 

       

       어쨌거나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마물’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적대해야 할 대상이었다. 

       

       나야 빙의하기 전부터 워낙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여러 매체에서 접해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도 별 거부감이 없었기도 하고, 각종 동물 유튜브를 섭렵한 랜선 집사로서 갓 태어나서 저렇게 무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는 적개심을 품기가 더 힘들었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인간이라면 이 녀석이 드래곤의 새끼라는 걸 알았을 때 아무렇지 않게 귀여워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최선은 녀석의 존재 자체를 숨기는 거고.’

       

       가능하다면 메고 다닐 수 있는 가방 같은 걸 구해서 넣고 다녀 해츨링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게 베스트. 

       

       ‘그리고 차선은…. 와이번이라고 구라 치는 거?’

       

       나 역시 상태창에서 확실히 ‘해츨링’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와이번인가, 혹은 드레이크인가 생각했을 정도로 새끼 때의 용족은 외모만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까놓고 말해서, 드래곤의 새끼를 직접 본 사람이 대륙에 몇 명이나 있겠어?’

       

       성체 드래곤조차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고, 직접 봤다고 해도 그중 대다수는 그 자리에서 브레스 맞고 죽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드래곤의 레어에서 성체 드래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랄 해츨링 시절을 인간이 직접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레어까지 쳐들어가서 드래곤을 토벌할 힘이 있지 않은 한 말이지.’

       

       근데 아마 그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위치에 있을 테니, 그것에 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게임에는 테이머(Tamer)라는 직업도 특수 직업이긴 하지만 존재하니까. 여차하면 와이번 새끼를 사역마로 삼았다고 하면 될 거야.’

       

       좋아, 완벽한 변명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떤 눈썰미 좋은 사람이 자꾸 의심을 하면 ‘에이, 은색 비늘 가진 드래곤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라고 말해 주면 된다.

       

       십 년 동안 이 게임 한 나도 처음 보는데, 니들이 어떻게 알겠어?

       

       ‘아무튼 적어도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는 최대한 사람하고 안 마주치는 게 좋아.’

       

       3일이 걸리든 4일이 걸리든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게 낫다. 

       

       그럼 다시 식량 문제로 돌아와서.

       

       ‘역시 그게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나. 게임 내 시기랑 날씨를 보면 있을 것 같긴 한데.’

       

       대륙 서부 숲의 일부 지역에는 ‘옐로베리’라고 불리는 열매가 있다.

       

       대충 망고랑 딸기를 섞은 듯한 맛이 난다는데, 당연히 게임에서만 먹어 봤기 때문에 어떤 맛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게임 상에서 그 열매의 포만감 및 체력 회복 옵션이 꽤나 높아서 서부 숲을 지나갈 때 공짜로 채취할 수 있으면 채취해서 인벤토리에 쟁여 놓고 먹은 적이 꽤 있었다. 

       

       지금 게임 내 시기는 바냐스 마을이 습격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시점. 즉 주인공이 첫 파견을 나갔을 시기다.

       

       주인공으로 서부 파견 루트를 탔을 때 마침 옐로베리를 따먹은 기억이 있으니, 그것만 발견한다면 식량 문제를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옐로베리가 열리는 나무가 정확히 어디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건 운에 맡겨야 되는 부분이고.

       

       “쀼우우우!!!”

       

       내가 앞으로의 계획을 심각하게 점검하고 있는데, 저쪽 물가에서 힘찬 쀼 소리가 들려왔다. 

       

       “헐, 혹시 진짜로 잡았니?”

       “쀼우우웃!”

       

       돌아보니 물가에서 열심히 팔을 휘적거리던 해츨링이 양손으로 조그만 물고기 하나를 잡아 올려 번쩍 들고 있었다. 

       

       물고기는 열심히 파닥였지만 해츨링의 야무진 발톱 탓에 벗어날 수 없었다.

       

       “쀼웃!”

       

       해츨링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에게 물고기를 가져왔다.

       

       “그래, 그래. 아유, 잘했네. 장하다.”

       “쀼우우우!!”

       

       나는 해츨링을 몇 번 쓰다듬어 주고, 녀석이 직접 잡은 생선을 꼬치에 꽂아 구워 주었다. 

       

       “뀨우우…!”

       

       비록 커다란 물고기는 아니었지만, 해츨링은 자기가 직접 잡은 물고기라 그런지 기분이 꽤나 좋은 듯 맛있게, 꼼꼼하게 살을 발라 먹었다. 

       

       그리고….

       

       “뀨웅….”

       “또 배부르니…?”

       

       배가 꺼지자마자 생선 하나를 더 해치운 해츨링은 또다시 잠시 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

       

       배부르게 먹고 소화도 어느 정도 시킨 우리는 불을 끄고 잘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

       

       조금 무게가 늘어난 해츨링을 어깨에 얹고 얼마나 걸었을까.

       

       “아, 저기다. 저쪽 근처에 흙동굴이 하나 있을 거거든? 우린 오늘 거기서 잘 거야.”

       “쀼우!”

       

       해가 질 무렵에 아슬아슬하게 바위산 근처의 흙동굴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살핀 뒤 해츨링과 흙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역시 아무것도 없군.’

       

       주인공이 쪼렙 시절에 서부 파견을 나올 경우 이 바위산 너머에 서식하는 마물인 ‘커먼 울프’를 소탕하는 의뢰를 맡게 되는데, 그때 밤에 들러서 휴식하기 좋은 장소라 기억하고 있었다.

       

       생긴 걸 보면 원래 다른 동물이 살던 굴 같은데, 적어도 내가 게임을 하면서는 한 번도 동물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은신처였다.

       

       ‘적어도 바깥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근처에 옐로베리 나무가 없는 건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옐로베리는 내일 날이 밝으면 찾아 보는 수밖에.

       

       나는 해츨링을 굴 안쪽에 내려 주고, 밖에서 떨어진 나뭇잎을 긁어모아 왔다.

       

       “요만큼은 땅에 깔고, 나머지는 덮고 자면 되겠다.”

       

       나는 땅에 깐 나뭇잎 위에 시험 삼아 누워 보았다.

       

       “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딱딱한 암석 동굴이 아닌, 땅이 살짝 습기를 머금은 푹신한 흙으로 되어 있는 흙동굴이었기에 생각보다 등이 배기지 않았다. 

       

       푹신한 침대가 그립긴 했지만, 어쩌랴. 이게 최선인 것을.

       

       “뀨우우….”

       “왜? 어두워져서 무서워? 불 좀 켜 줄까?”

       “뀨우…!”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해츨링은 내가 잘 보이지 않아 무서웠는지 살짝 떨며 내 품에 폭 안겨 옷자락을 꼬옥 잡았다. 

       

       주머니에서 발광석을 꺼내 동굴 벽에 꽂자 은은한 빛이 무드등처럼 우릴 비춰 주었고, 해츨링도 조금 안심했는지 떨림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큐우우…. 큐우….”

       

       나는 내 품에서 잠든 해츨링을 그대로 안고 누워 나뭇잎을 덮었다.

       

       ‘따뜻하네.’

       

       안고 있는 조그만 해츨링의 온기가 느껴졌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일정한 진동이 옷 너머로 전달됐다. 

       

       ‘…나도 슬슬 졸리네.’

       

       쌓인 피로 때문인지, 긴장이 풀리자마자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잔바람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해츨링을 품에 꼭 안고 웅크린 채 오래간만의 고요 속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

       

       시간을 알 수 없는 한밤, 굴 바깥에서 들린 무언가의 포효 소리에 눈을 떴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