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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드디어 기다리던 프란체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흐트러진 제복을 정갈하게 맞추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질했다. 보급으로 받은 검을 허리춤에 매달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거울을 바라보니 나름 정돈된 모습이다. 그런데 목을 전부 가리는 제복도 있었구나.

         

       “이제 슬슬 나가볼까.”

         

       방문을 열고 나섰다. 연무장을 지나쳐 공작저의 대문으로 향하니 화려한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멀뚱멀뚱 서서 잠시 기다리니 프란체가 걸어 나왔다.

         

       평소보다 더 새하얀 피부. 귀와 목에는 가지각색의 장신구가 달려있다. 드레스는 그녀의 머리 색과 어울리는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곳곳에 보석들이 박혀 화려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꾸미니 예쁘긴 하네.’

         

       뭐, 그 전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프란체가 말했다.

         

       “에스코트.”

       “아, 예.”

         

       ……나 에스코트해본 적 없는데.

         

       그냥 적당히 마차 옆으로 가서 손을 잡아주면 되겠지. 나는 서둘러 마차 옆으로 자리를 옮겨 계단의 옆에 섰다. 프란체는 내 손을 잡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근데 나는 어떻게 이동하지?’

         

       진 바렌베르크였다면 당연히 말을 탈 줄 알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면허도 없었는데 말을 어떻게 타.

         

       ‘진의 감각이 남아있으니 가능하려나?’

         

       내가 고민하던 그때였다.

         

       “안 타고 뭐하니?”

       “…예?”

       “어서 타렴.”

       “저도 주인님과 같은 마차로 갑니까?”

       “그럼 내 호위기사인데 따로 이동하겠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얼떨떨하게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의 문이 닫혔다. 주변에는 기사들이 잔뜩 무장한 채 말을 타고 있다. 마차를 이끄는 마부는 기사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출발하겠습니다!”

         

       덜컹. 잠깐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푹신한 의자 덕분에 엉덩이가 아프진 않았다.

         

       그런데.

         

       “…….”

       “…….”

         

       어색하다. 고요한 정적. 고개를 올려보니 프란체가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녀의 반응은 없었다. 어색하게 지은 미소가 표현할 길 없는 침묵으로 바뀌어 다가온다.

         

       ‘불편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굴을 구기면 안 되겠지. 프란체는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으니까. 나는 애써 표정을 굳힌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그때. 문득 프란체가 말을 걸어왔다.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니?”

       “예?”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거지.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도 봤다시피 공작가에서의 내 취급을 봤잖니? 왜 이렇게 된 건지 궁금하지 않니?”

         

       음. 궁금하긴 한데, 괜히 분위기가 무거워질 것 같아서 꺼려지기도 하고.

         

       “저는 그저 주인님의 뜻대로 따를 뿐입니다.”

         

       말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어차피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래… 내가 생각하기에 네가 궁금해할 것 같으니 말해줄게.”

         

       흐읍.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듯, 프란체가 길게 심호흡했다.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래서요.

         

       “…소 공작님과 라인 공자님은 당시에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했나 봐.”

         

       그건 또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에 내 눈썹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완전히 어렸던 시절에는 그냥 무시만 당했으니 문제는 없었지만… 시작은 8살 때부터였어.”

         

       나는 프란체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그 사람들은 내게 말했어. 네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나는 그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

         

       프란체가 턱을 괴며 마차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권태로움이 가득한 눈빛.

         

       “그때부터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되었어. 소 공작님은 나를 볼 때마다 험담하는 건 기본이었고 폭행을 일삼았지.”

         

       와, 에덴 그거 완전히 미친놈이었네. 8살짜리 여동생을…….

         

       “라인은 내 방에 동물의 사체를 넣어두거나, 강제로 독방에 감금했어. 시종들에게 시켜 썩은 음식을 보내오기도 했지.”

         

       시종들이 무시하는 건 라인 데카르트 때문이었구나. 이 집안 놈들은 왜 이렇게 개념이 없냐. 듣는 내가 미쳐버리겠다.

         

       “아버님… 공작님께도 말씀을 드려봤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말이었지.”

         

       그 아들에 그 아버지. 공작도 미친놈이었다. 한국에서 이랬으면 가정폭력으로 진작에 잡혀갔다.

         

       “듣고 있니?”

       “듣고 있습니다.”

       “고개라도 끄덕이렴. 혼자 벽보고 말하는 거 같아서 이상하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프란체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나는 8살 때부터 공작가의 모두에게 미움받기 시작했지. 그나마 집사장이 나를 존중해주긴 했는데… 그것도 잠깐이고, 지금은 방관하고 있어.”

         

       그 노인네, 내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인생 자체가 웃기지 않니?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머니를 죽이면서까지 이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모두가 내 탓을 하고 있어.”

         

       프란체의 눈물샘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던 서글픔이었다.

         

       “너무 억울해…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 그 누구도 나의 아군이 되어주지 않아. 아군은커녕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 누구나 할 수 있는 값싼 동정, 공감으로 인한 슬픔, 자비 없는 그들에게 향한 분노.

         

       나는 애써 마음을 삭히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도 괴롭힘은 점점 심해져 갔어. 정상적인 밥을 먹을 수 있던 건 공작님이 계시는 아침 식사뿐이었지. 하지만 그마저도 허용할 수 없었는지 내 음식에 장난을 치더라고.”

         

       내가 물었다.

         

       “장난이라 하시면?”

         

       프란체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 음식에만 소금을 과도하게 넣거나, 이상한 향유를 섞어 냄새를 역하게 만들거나, 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뭐, 그런 일들이었지.”

         

       단체로 미친놈들뿐이었군. 먹을 거로 장난치는 것들이 가장 악질인 법인데…….

         

       이 공작가에는 악질 가득한 놈들 태반이었구나. 그들의 사악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는 참지 못했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미친년이라는 걸 각인시켜 주고 싶었지. 그래서 공작님에게 부탁했어. 내게도 활동비를 배정해달라고. 그랬더니 의외로 허용은 해주더라. 기대 따윈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음. 공작이 그냥 무관심할 뿐이지, 돈을 쓰는 건 허락해줬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아까 말한 걸 보면 나쁜 놈이 맞는 거 같은데.

         

       “그때부터 나는 사치를 즐기기 시작했어. 온갖 드레스를 구매하고, 장신구를 모아서 파티에 나가 그것들을 자랑했지. 적어도 밖에서는 나를 건들지 못하도록.”

         

       나는 딱히 반응하지 않고 프란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내게 단순한 위로나 동정을 받고 싶어서 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과거였겠지.

         

       그러니 나는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마음으로 공명하고, 그녀에게 공감해주는 거다.

         

       현재 프란체에게 있어 가장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나 뿐이기에.

         

       “그렇게 계속 파티에 계속 참석하고, 내 위치를 바꾸어가니 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공작가를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어. 페르시아 소 공작님이야.”

         

       ……이런 말을 하긴 미안하지만, 그게 네가 했던 최악의 선택이었을 거다. 프란체 데카르트.

         

       원작을 알고, 숨겨진 루트를 제외하면 모든 엔딩을 다 봤던 나는 모든 루트의 공통점을 알고 있다.

         

       그것은 파티에 가면 두 눈으로 볼 수 있겠지.

         

       “이번 파티에서 페르시아 소 공작을 만날 거야. 데카르트 공작님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그와 약혼시켜 달라고 고집을 좀 부렸거든. 그 탓에 다소 비난을 받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는 내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니까.”

         

       싱긋. 프란체가 미소를 지었다. 아까의 권태로움이 가득했던 표정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말의 희망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다시 한번 가슴이 답답해졌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표정이 좋지 않은데. 설마 나를 동정이라도 하는 거니?”

         

       프란체가 불쾌하다는 듯 노려봤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동정.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죠. 그런 값싼 감정도 제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공감으로 인한 슬픔이 더 큽니다.”

       “…….”

       “그리고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들에게 향한 분노도 있습니다.”

         

       프란체가 미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에선 의아함이 느껴졌다.

         

       “…동정이나 분노는 그렇다 해도, 네가 내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니?”

         

       나는 애써 온화한 얼굴을 만들었다.

         

       “무작정 할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러한 인생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제 감정이 움직였으니 이건 공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란체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 같긴 한데, 쉽게 꺼낼 수 없는 듯 많은 고민을 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온 한 마디.

         

       “말은 잘 하는구나.”

         

       그럼. 100만 뮤튜버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교류의 장과 사교계에 자주 얼굴을 비췄던 왕족이라 그런가? 조금은 위로를 받았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시무룩했던 그녀의 표정에 드디어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 그것은 보호 본능일 수도 있고, 이 상황 자체를 현대인이 가진 도덕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단순히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이용하려 했던 프란체가 다르게 보였다.

         

       나에게는 더이상 그녀가 단순한 악역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저 이야기가 만들어낸 피해자.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이 열렸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님의 편일 겁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 마디. 그냥 왠지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지금껏 그녀에겐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잠시 멍을 때리던 프란체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래, 그래야지. 그게 내 명령이니까.”

         

       그녀가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방금 한 말에 의미는 있었다.

         

       “제가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프란체는 다시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아까와는 달리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꼬리는 호선을 그렸으며 눈빛에 조금 생기가 돈 것이, 내 마음에 뿌듯함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계속해서 뭔가 이질감이 들고 있다.

         

       ‘진 바렌베르크의 영향인가?’

         

       내가 고뇌하며 가만히 프란체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습격이다!!

         

       쐐애액!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프란체를 끌어안았다. 쨍그랑! 화살 하나가 마차의 창문을 관통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습격인 것 같습니다.”

       “귀족의 마차를 습격한다고?”

       “단순한 도적 떼는 아닌 것 같습니다.”

         

       프란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안에 계세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게 잘 풀릴 테니까.”

         

       나는 마차 밖으로 나갔다. 공작가의 기사들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암살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음.

         

       이런 정보는 없었는데.

         

       뭐, 악역의 시점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는 멸망해버린 망국의 왕자.

         

       노예로 전락한 소드 마스터의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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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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