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아.

         

        갑자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랑 몸이 덜 아팠다.

         

        또.

         

        그 사람이구나.

         

        맨날 나 도와주는.

         

        착한 사람.

         

        헤헤.

         

        [세, 세상에… 오늘도 얼마나 맞았으면…!]

         

        머리에 씌워진 포대가 벗겨졌다.

         

        답답한 공기 대신 시원한 바깥의 공기가 나를 반겼다.

         

        흐릿해진 왼쪽 눈으로 내 포대를 벗겨준 사람을 바라봤다.

         

        실루엣만 겨우 보이지만 그래도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이세린.

         

        그녀는 참 착했다.

         

        마음씨가 고운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고왔다.

         

        [아니… 나쁜 사람이라곤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하잖아…!]

         

        그녀는 나를 걱정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너무 고마웠다.

         

        근데.

         

        나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그래도 왜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 거지?

         

        어…

         

        음…

         

        잘 모르겠다.

         

        [일단 조금만 치료하고…]

         

        아.

         

        다시 따뜻해지는 느낌.

         

        입을 다시 움직여 보니 어느 정도 퉁퉁 불어있던 입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빨이 빠진 건 여전하지만.

         

        아하하.

         

        [일단 빵 조금이랑… 여기 물…]

         

        내 앞에 들이밀어진 음식.

         

        겨우 손가락 하나 정도 되는 작은 빵조각, 그리고 소량의 물.

         

        너무나도 적은 양이었지만, 그녀 덕분에 나는 굶주림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2일 정도의 간격으로 찾아왔는데, 좀 더 자주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방금도 빠진 이빨을 씹어 먹고 있었으니까.

         

        음.

         

        음.

         

        맛있다.

         

        빵.

         

        이렇게 맛있는 건 줄 처음 알았다.

         

        그리 생각하니 그녀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서아부터 살펴보더니.

         

        정말로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 틀림없었다.

         

        나 같은 사람도 챙겨주니까 말이야.

         

        히히.

         

        [아… 스트레스… 이제 좀 쉬어야 되는데…]

         

        어.

         

        그녀가 나에게 포대 자루를 씌웠다.

         

        이제 가는 거구나.

         

        아쉬웠다.

         

        그녀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치료해 주고, 먹을 걸 주고 그랬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속마음을 읽는 것 뿐.

         

        그것 만으로.

         

        나는 그녀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떠나는 건 아쉬웠다.

         

        그녀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나를 때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

         

        쉘터에 도착한 지 벌써 8일 차.

         

        그러니까 튜토리얼에 오게 된 지 9일 차.

         

        이시현은 팀을 꾸렸다.

         

        20레벨.

         

        드디어 이 튜토리얼을 안정적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레벨이자, 튜토리얼에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몬스터를 그녀가 독식했기에 가능했던 일.

         

        그렇기에 그녀의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탐사대를 하나 만들었다.

         

        쉘터 바깥에서 오랫동안 버틸 탐사대 말이다.

         

        그리고 그 탐사의 인원은 자신을 포함해 총 69명.

         

       쉘터 전원이었다.

         

        목표는 튜토리얼의 클리어.

         

        사전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함으로써 이곳에서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30일 차가 되는 날에는.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하니까.

         

        30일 차에는 몬스터 웨이브가 극단적으로 크게 발생해 버리기 때문에, 이 미로에서 살아남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종의 방법으로 이 튜토리얼을 끝내야 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유능한 강아현이 이곳의 대부분을 설득한 덕분에 무난하게 준비가 완료되었다.

         

        ‘전부 이동할 준비는 됐고… 이제 남은 건…’

         

        그녀는 마지막 점검을 시작하며 쉘터의 한구석.

         

        모두가 스트레스를 푸는 숨겨진 그곳을 응시했다.

         

        ***

         

        어.

         

        아.

         

        뭐지.

         

        왜지.

         

        왜 나 끌려가고 있지?

         

        왜지?

         

        어어?

         

        화악!

         

        포대가 벗겨졌다.

         

        어어.

         

        나 풀어주려는 건가?

         

        “허… 세린 씨가 일은 잘했나 보네요… 얼굴을 이 정도까지 회복시켜 놓다니…”

         

        “저도 동의합니다… 일단 저놈의 포대는 벗긴 채 이동하겠습니다.”

         

        “탐사에서 짐이 될까봐 그러시는 거죠?”

         

        “정확합니다.”

         

        검은 단발 머리 여자와 붉은 머리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서운.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나저나 어디 가나?

         

        밖에는 괴물 많을 것 같은데…

         

        다들 안 다치려나?

         

        아니, 다쳐도 세린… 씨가 치료해 주려나?

         

        잘 모르겠다.

         

        “야. 일어서.”

         

        “네, 넷!!”

         

        뒤에서 들려오는 무서운 남자의 목소리.

         

        처음 나를 묶고 데려왔던 남자 중 하나였다.

         

        이름이… 강원이라고 했나?

         

        아무튼 그 사람의 목소리는 제법 무서웠다.

         

        애초에 나를 때릴 때도 유일하게 포대를 벗기고 때리던 사람이었다.

         

        정말.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말을 들을 수 있는 거겠지.

         

        일주일이 넘게 맞으면서 여러 번 부러진 다리가 후들거렸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가, 힘이 없었다.

         

        그래도.

         

        인형에서 벗어난 건가?

         

        ***

         

        전혀 아니었다.

         

        퍼억!!

         

        퍽!

         

        “께흑!!”

         

        퍽!!

         

        이틀.

         

        이틀 동안 더 맞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곤, 이제 맞아도 쉴 수는 없다는 것일까?

         

        계속 걸어야 했다.

         

        계속.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아니, 실제로 나왔었나?

         

        아아.

         

        생각해 보니 더럽다고 맞았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나았다.

         

        이 탐사에서 2명 정도가 죽었다고 한다.

         

        밤에 괴물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고 했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포대가 없어서 이전보다는 괜찮았다.

         

        뭔가 얼굴을 맞을 때 더 아픈 것 같지만, 그래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아이들은….

         

        아.

         

        다행이네.

         

        다들 눈을 가리고 있구나.

         

        그래.

         

        이런 걸 보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겠지.

         

        하하.

         

        퍽!

         

        퍽!

         

        그렇게 신명나게 쳐맞고 밤이 되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고마웠다.

         

        […]

         

        이세린.

         

        왜인지 오늘 그녀의 생각은 잘 들려오지 않았다.

         

        [… 씨발…]

         

        가끔 그녀의 생각 속에서 욕만 들릴 뿐, 잘 읽히지 않았다.

         

        오늘 유독 더 많이 맞아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세린 씨는 이렇게 생겼구나.

         

        맨날 흐릿하게 실루엣만 봤는데.

         

        이렇게 직접 눈 바로 앞에서 선명하게 보니 참 예쁘게 생겼다.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잘 모르겠다.

         

        키도 나보다는 크지만 아담했다.

         

        강아지같은 얼굴.

         

        정말로 예뻤다.

         

        그에 비례해 성격도 예쁜 것 같지만.

         

        히히.

         

        밥도 챙겨주고.

         

        날 때리지도 않고.

         

        너무 친절하다.

         

        히히.

         

        같이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내 기분은 완벽하게 박살났다.

         

        꽈악-!

         

        “케흑…! 켁! 케헥…!”

         

        어?

         

        뭐지?

         

        어?

         

        어?

         

        나 목 졸리고 있는 건가?

         

        갑자기?

         

        “조, 조용히 해애… 사람들 자잖아…!”

         

        누구한테?

         

        세린 씨?

         

        하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하하.

         

        “조용히 하라고…! 이 씨발 좆 같은 강간범 새끼야…!”

         

        세린… 씨?

         

        “케헥… 끅…! 끄으윽…!”

         

        아.

         

        어.

         

        아?

         

        ***

         

        이세린은 오늘도 힘들었다.

         

        단체로 탐사를 나가며 이동하느라 더욱 힘들었다.

       

       

       

        달려드는 몬스터는 많지, 그래서 많이 다치지.

         

        유일한 힐러인 그녀는 정말로 바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취급은 여전했다.

         

        남자 쪽에서는 호구 같아서 쉬운 년.

         

        여자 쪽에서는 처나 코스프레 하는 걸레년.

         

        어째서 이 정도 수준까지 인식이 쳐박혔는지를 모르겠다.

         

        왜 나한테 그러지?

         

        왜?

         

        왜?

         

        당장이라도 치료 안 해주면 가서 아무도 모르게 뒤져버릴 것들이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러는 지 모르겠다.

         

        인간이란.

         

        정말로.

         

        정말로 간사한 존재였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자기 위로를 했다.

         

        아니야.

         

        저 사람들은 힘들어서 그런 거야.

         

        상황이 상황이니 당연한 거겠지.

         

        그래서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을 향해 욕정의 시선을 보내와도 가만히 있었다.

         

        남자들이 은근슬쩍 스킨쉽을 유도해도 이해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외모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그래서 여자보다 성욕이 강한 남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선의를 배풀었다.

         

        그리고 탐사가 시작된 그날 밤.

         

        이 설에게 밥을 주고 치료를 끝냈을 때.

         

        일이 발생했다.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강간하려고 했다.

         

        한 명이 입을 막고.

         

        한 명이 옷을 벗기려고 했다.

         

        그 더러운 손으로 옷을 벗기고 몸을 더듬었다.

         

        더러웠다.

         

        역겨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야… 진짜 괜찮은 거 맞겠지?”

         

        “걱정 마라… 이 년 아무 말도 못할 걸? 존나 멍청해서 호구처럼 그냥 당해줄 걸?”

         

        인간이길 그만둔 그들.

         

        짐승의 욕망에 지배 되어버린 두 원숭이들.

         

        그 원숭이들은 그녀의 옷을 속옷만 빼고 전부 벗겨버렸다.

         

        그들은 그녀를 외진 곳으로 끌고 와, 보는 이들도 없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괴물이 몰려올까 소리치지도 못했다.

         

        그렇게 속옷마저 벗겨지며 강간 당하기 직전의 순간.

         

        서걱!

         

        옷을 벗기려던 남자의 머리가 날아갔다.

         

        말 그대로.

         

        붉은 피를 흩뿌리며 머리와 목이 분리되었다.

         

        몸에 피가 튀었다.

         

        비린내.

         

        역겨움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잠시, 그녀의 뒤를 잡고 있던 남자 역시 그녀에게 피를 뿌리며 머리가 날아갔다.

         

        순식간에 두 명이 죽었다.

         

        밤 귀가 소름 돋을 정도로 밝은 회귀자가 벌인 짓이었다.

         

        “시현… 씨…?”

         

        그녀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회귀자를 올려다봤다.

         

        울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토가 나올 것 같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더러워 지셨군요… 일단 여분의 물이 있으니 그걸로 몸부터 씻으세요…”

         

        이시현은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냈다간 필시 더 고통스러울 것이 뻔한 이세린을 위한, 그녀만의 배려였다.

         

        그날 새벽.

         

        이세린은 몰래 외진 곳으로 가서 홀로 토를 하며 조용히 울부짖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은 충격.

         

        그리고 그 죽은 남자들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공포.

         

        그것이 그녀를 괴롭혔다.

         

        남자.

         

        남자가 무서웠다.

         

        무서워졌다.

         

        너무.

         

        스트레스가.

         

        쌓였다.

         

        “씨발… 개같은 강간마 새끼들… 그렇게 죽이면 안 됐었는데…”

         

        그리고 회귀자는 그 모습을 보며 몰래 욕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침.

         

        이세린은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자들은 되도 않는 모함을 해댔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였다.

         

        무서웠다.

         

        공포스러웠다.

         

        역으로.

         

        짜증났다.

         

        화가 났다.

         

        그럼에도.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나는 착한 사람.

         

        나는 친절한 사람.

         

        나는.

         

        나는.

       

       

       ‘착한 아이니까.’

         

        참아야 한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날 밤.

         

        그녀는 이 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강간마.

         

        나를 강간하려고 했던 이들보다 더 더럽고 잔인한 남자.

         

        나보다도 어린아이를 강간하고 시체를 토막 내 유기한 남자.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가 무서웠다.

         

        나를 호감을 가지고 쳐다보는 남자가 무서웠다.

         

        그 호감 뒤에 숨겨진 더러운 의도가 무서웠다.

         

        그 공포를.

         

        나는 이겨야 했다.

         

        작다.

         

        정말 작다.

         

        정말 작은.

         

        그 흉악 범죄자.

         

        이 설은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설의 목을 졸랐다.

         

        죽이지는 않았다.

         

        아직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니까.

         

        그래도.

         

        계속.

         

        계속 반복하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죽기 직전까지 목을 조르고 다시 때고, 다시 조르고, 다시 때고.

         

        다들 자니까.

         

        몬스터가 올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이겨내는 거야.

         

        내 트라우마.

         

        히히히.

         

        “께헥… 끄긁…! 학…! 븍…!”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

         

        언제나 손바닥을 뒤집듯 자신의 행동을 180도 바꿀 수 있는 존재.

         

        순식간에 인간을 그만두고 짐승으로 전락할 수 있는 존재.

         

        그녀는.

         

        인간이길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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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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