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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오늘도… 무사히 눈을 떴다.

         

         내가 생각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는 하지만, 네오 헤이븐의 메인 흑막 중 하나인 에나마 코퍼레이션 정도라면 어떻게든 쫓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메가 코프여도, 어비스 다이버가 작정하고 독립 연구소 전체의 데이터를 날려버린 건 별 수 없었나 보다.

         

         덕분에. 손에 권총을 쥔 채로, 불안에 떨면서 잠들고 일어나는 매일매일도 금세 종료.

         …한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라면, 긴장이 풀어진 이 몸이 제시간에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는 것 정도…? 분명 7시에 알람을 맞춰 놓는데, 막상 일어나서 보면 귀신같이 9시로 바뀌어 있으니… 너무 사이버웨어 적합도가 높은 것도 문제다.

         

         무의식의 극의…! 알람 끄고 자버리기…!!

         

         “흐아앗……!”

         

         최대한 소리를 죽이면서 화장실로 향해봤지만. 이 좁은 주상 복합 주택에서, 먼저 기상을 마친 동거인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다.

         

         “허허…. 아가씨는 아침에 정말 약하구만?”

         

         “……원래는 안 이랬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네….”

         

         “그런 기운 빠지는 말은, 나 같은 늙은이나 하는걸세! 자고로 성장기엔 든든하게 먹고, 푹 자는게 최선이니.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네이~ 네이….”

         

         건성인 대답과 함께, 드르륵! 하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태연하게 준비된 내 몫의 인조육과 합성 음료가, 식탁 빈자리에 세팅 되어 있는 게 문을 닫기 전에 얼핏 보였다. 대체 합의 당시에 ‘서로의 생활엔 어디까지나 불간섭!’ 이라고 강조하던 철혈의 노익장은 어디로 사라지고, 남의 발육까지 걱정하는 팔불출 할배가 나타났는지….

         

         ‘……나도, 아나스타샤도 당연히 성인인데 어떻게 더 크냐고요…!’

         

         찌이익…!

         

         오염 물질도 저절로 흘러내리는 최고의 슈트를 벗어 놓고, 세정용 젤을 쭈욱 짜낸다.

         

         팔에. 다리에. 속옷위에. ……그 안쪽 민감한 부위에도 꼼꼼하게 바른 뒤, 에어 클리너에서 분사된 압축 공기로 단번에 젤을 씻어낸다. 고를 수 있는 음료수는 몇만 종류가 넘으면서, 정작 몸 씻는데 쓸 깨끗한 물은 사치품이라니… 정말 미친 세상이 따로 없다.

         

         “으으……!”

         

         깨끗해졌다는 걸 머리는 이해했지만… 몸은 전혀 개운하지 못했다. 오히려 끔찍했지.

         사람은 누리던 걸 빼앗겼을 때 가장 좆같아 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역시 이 분노와 괴리감을 잠재울 방법은, 오직 두툼한 크레딧뿐이다. 근로 욕구가 마구 치솟는다…!

         

         드르륵!!

         

         “오? 정신은 좀 들었나?”

         

         “…네. 빨리 식사하시고, 영업. 시작하시죠…!”

         

         소년 만화의 주인공 마냥, 사뭇 비장한 내 태도를 본 할배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핫!! 고놈 자존심하고는…! 어쩜 이리도 우리 손녀딸을 닮았을까, 모르겠구먼…!”

         

         …흥!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 두시죠! 오늘에야말로 기필코, 혼신의 힘을 다한 접객술로 값비싼 서비스 의뢰를 잔뜩 받고 말 테니까!

         

         

         ….

         …….

         ……….

         

         

         [ 금일 변동 크레딧 : + 5,000 C ]

         

         “…….”

         

         “크흐음…! 그… 오늘은 이쯤 하지….”

         

         멍하니 앉아, 망막에 표시된 홀로그램만을 응시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그는 서둘러 가게 문을 잠그고 영업을 마감했다.

         

         최고의 해커 겸 아키텍트가 사이버웨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면 뭐하나? 상황과 장소가 안 맞으니, 수입이 가히 절망적이다.

         

         나에게 하루 종일 찾아온 손님이라고는 정착지 주민 한 분뿐.

         그 마저도 첫날에 찾아와서 검사를 받았던 사람인 걸 생각하면, 파리 날리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메카닉 할아버지가 몰래 연락한 게 아닐까… 솔직히 의심된다.

         

         메트로폴리스 안이라면 줄을 서서 받았을 사이버웨어 관련 서비스는, 모래 먼지 흩날리는 이런 외부 정착지에서는 저어어어언혀 인기가 없었다. …하긴 그런 걸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애당초 장벽 바깥에서 살 리가 만무했다.

         

         오늘 머시너리 샵을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전부 고장 난 기계 수리가 목적. 즉, 메카닉의 손님이다. 그나마 개업 초기에는 흥미 본위나, 진짜 사이버웨어 점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손님이라도 좀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어쩌다 찾아오는 외부손님 말고는 없네…? 망했네…? 방세는커녕 식비도 아슬아슬하네……?

         …억울해 죽을 것 같다.

         

         “근면성실은 개뿔…!!”

         

         연구소를 무사히 탈출했으니, 금방이라도 도시에 입성해서 차근차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벌써 열흘 가까이 제자리 걸음이다.

         

         “……이익!”

         

         몸이 또 말썽이다. 조금 화나거나 슬프다고 눈가가 축축 해지는 건 절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거면 모를까. 크레딧이 생긴다면 꼭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임플란트도 설치해야겠다.

         

         “자네, 정말 괜찮나……?”

         

         “……네.”

         

         “그것 참 다행이군. 그럼 조금 이르지만, 일단 저녁이라도 사오도록….”

         

         삐빅!

         

         누구인지도 모를 여자애가 좀 울먹거린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인으로부터 무슨 말이 나오기전에 재빨리, 오늘 번 크레딧에 여태 얻어먹은 음식값까지 대충 더해 모조리 그에게 송금해버렸다.

         

         “…….”

         

         “으음…….”

         

         침묵이 무겁다.

         내 신경질적인 행동을 할배가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던지 간에. 성별이 뒤바뀌고, 힘 좀 약해지고, 키 좀… 많이 작아졌다고. 쉽게 값싼 동정을 받는 건 절대 사양이다.

         

         제 한 목숨 건사하기도 힘든 세계에서, 마음대로 남의 보호자를 자청하고 책임지는 건 무덤을 파고 드러눕는 꼴이나 다름없다.

         

         내가 과연 네오 헤이븐 프라임이라는 의심스러운 게임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좋아하고, 사랑하고, 응원했던 캐릭터들을 구하면 구했지. 스스로 걸어 다니는 사망 플래그 덩어리가 되어서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람 좋은 호인을 상처 입힐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죄송해요.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좀… 익숙하지가 않아서….”

         

         …병신. 사과를 할 거라면 제대로 하지, 변명은 쓸데없이 왜 덧붙이냐…?

         이것도 몸 탓이 분명하다. 아무튼 몸뚱어리 탓이다. 나는 그렇게 치졸하지 않다…!

         

         “허허…… 당황해서 사과하는 건, 그녀와 별로 닮지 않았구먼.”

         

         “…?”

         

         스르륵….

         

         투박하고 거친 손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이 노망난 늙은이가.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아가씨에게 충고 하나 하지. 자네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던 관계없이, 다른 놈팽이들은 멋대로 자네를 평가할 것이니. 적에게 약점이, 자네에게 이점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용하게. 그리고…….”

         

         빡!!

         

         “?!!??!?”

         

         갑자기 공격당했다. 아니, 공격은 너무 거창한 과장이고… 실상은 단순한 꿀밤이긴 한데, 눈앞이 하얘지고 나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아팠다…! 손 존나 매우시네요!

         

         “어른이 사주는 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냉큼 받는 게 예의란다. 욘석아…!! 알겠느냐?”

         

         “네… 넵!! 알겠습니닷…!”

         

         떼굴떼굴. 본인이 때려 놓고는 행여 혹이라도 날까, 거칠게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겨우 벗어났다. 어안이 벙벙한 내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할배는 전처럼 호탕하게 웃으면서 저녁거리를 포장해온다며 휑하고 나가버렸다.

         

         “……하.”

         

         대인 관계의 주도권이란 건… 이렇게 순식간에 뺏길 수도 있었다. 지식이 늘었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 그저 우연히 마주친, 요상한 메카닉 인줄로만 알았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이 동네에선 그냥 노인도 보기 드문데, 저렇게 정정한 할아버지가 비장의 한수도 없는 무력한 일반인일리가 없었다.

         

         그러니 알듯 말듯 한 조언도… 일단은 가슴 한구석에 새겨 두도록 하자.

         

         “……읏쌰!”

         

         우선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를 완전히 의문의 손녀딸 취급하는 건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룸메이트가 밥 사오겠다고 나갔는데, 그동안 기본적인 식사준비도 안 해 놓을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았다.

         

         달그락…!

         

         찬장에서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꺼내 식탁에 세팅한다. 치우는 보람없게, 가게 문이 여닫힐 때마다 굴러들어오는 모래도 또 쓸어 놓는다. 어질러진 부품과 공구들도 다시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먼저 암묵적인 선을 넘은 건 저쪽이니까,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름부터 물어보고…. 혹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시민권을 얻기 전까지의 짧은 인연에 불과하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건설적인 윈윈(Win-Win) 관계를 구축하도록 노력해보자.

         

         그렇게… 정착지에 몇 없는 식료품점으로부터 그가 돌아오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변은 갑자기 찾아왔다. 형형하게 빛나던 천장 조명, 무수한 조작용 패널, 온갖 전자기기들의 불빛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가게 내부는 어둠에 휩싸였다.

         

         “…어?”

         

         [ 경고…! 통상 전력망 차단 확인, 비상 발전기 가동. ]

         

         

         …아무래도 주인이 나가길 기다렸던 밤손님이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빨갛고… 수염이 멋진 할아버지가 문득 생각나서, ‘나에게 비록 훌륭한 낫과 망치는 없을지 언정, 빈약한 총과 정상급 해킹 기술은 있었으니. 기업들에게 혁명의 매운 맛을 보여주기엔 충분하리라. 만국 프롤레타리아의 의지여, 여기에 단결…!’ 까지 정신 놓고 적었다가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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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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