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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다행히 마리아의 전면포위로부터는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었다.

        ​

        심상찮은 분위기를 뿜는 마리아였지만,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보상을 떠올린 덕분이었다.

        ​

        ‘화, 황실에 무구를 납품하는 대장장이에게 검 제작 의뢰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칫,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군요.’

        ​

        억만금을 가져간다 하더라도 개인 자격으로는 의뢰가 불가능한 황실 대장장이에게 나를 대신해 그녀가 직접 의뢰를 넣어주는 것. 그게 내가 그녀에게 요구한 ‘선물’이었다.

        ​

        ‘확실히, 제가 아니면 드릴 수 없으면서도 가치는 충분한 선물이네요. …정말 아쉽게도.’

        ​

        그녀는 굉장히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 부탁을 받아들였다.

        ​

        덕분에 무사히 위기를 모면한 뒤로, 나는 최대한 마리아와 단둘이 남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그녀를 피해 다녔다.

        ​

        “식사나 같이하시죠?”

        ​

        “미안, 조금 전에 샌드위치를 먹어서.”

        ​

        어째선지 황궁치고는 굉장히 작은 식탁에 양옆에 딱 붙어있다시피 한 자리에서 단둘이 남아 벌이는 식사 자리는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피했다.

        ​

        “오랜만에 제 침실을 지켜주지 않으실래요?”

        ​

        “…네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니?”

        ​

        “혹시 모르죠. 암살자가 들어올지.”

        ​

        “황궁 기사단에 네 호위 기사들이 삼중으로 경계를 서는 곳에 침입할 암살자면 애초에 나도 못 막는데?!”

        ​

        이 사람이 대체 제정신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잠자리를 지켜달라고 하는 부탁도 있었지만 이건 당연히 거절했다.

        ​

        사실 굳이 지키겠다고 그녀의 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바로 옆방이라 무슨 사고가 난다 하면 바로 달려갈 수 있긴 했다. 어째선지 방의 벽이 굉장히 얇아서 누가 사일런스 마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알아차릴 수 있기도 했고.

        ​

        “풋.”

        ​

        하지만 그게 며칠이고 반복되자 마리아는 살풋 미소를 지었다.

        ​

        “왜, 또 뭔데?”

        ​

        “아뇨.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

        그렇게 말하는 마리아의 얼굴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눈빛에 나는 뱀 앞에 놓인 참새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으, 으흠. 내가 언제 도망쳤다고 그래?”

        ​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그래도 인정했다간 위험할 것 같았기에 일단 발뺌했다. 마리아는 내 말에 오히려 피식 웃었다.

        ​

        “뭐, 상관없어요.”

        ​

        이미 절반 정도 계획은 성공했으니까.

        ​

        알 수 없는 혼잣말과 함께 그녀는 외투를 챙겼다.

        ​

        “폐하와 알현하는 날까지 앞으로 사흘 정도가 남았었죠? 저는 당신이 부탁한 무기를 의뢰하러 다녀오느라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그분은 절대로 수도에 들어오지 않는 분이라 아마 내일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호위는 안 해도 괜찮겠어?”

        ​

        “호위로 붙여주신 기사단이 꽤 실력이 좋아서. 적어도 팔츠 인근에서는 안전하답니다.”

        ​

        아니, 그럼 왜 나한테 침실을 지켜달라고 한 거야?

        ​

        의아해하고 있으니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

        “전에도 말했지만, 황궁은 수도 거리와는 상황이 좀 다르니까요. 다른 이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공간인지라.”

        ​

        그것도 그런가.

        ​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마리아가 내게 말했다.

        ​

        “아무튼, 다녀올게요.”

        ​

        “어, 몸 조심히 다녀와.”

        ​

        “당신도, 집 잘 지키고 있어야 해요?”

        ​

        …음, 뭔가 상황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

        이거 완전 결혼한 사이에서나 할 법한-

        ​

        “그럼 저는 이만!”

        ​

        마리아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문을 나섰다.

        ​

        어머, 어머.

        ​

        시녀들이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렸다.

        ​

        그들의 반응에 내 얼굴이 다 홧홧해졌다.

        ​

        이거, 분명 일부러였다.

        ​

        -―

        ​

        마리아도 외출했겠다, 마틸다를 비롯한 시녀들이 은근히 날 놀리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나도 밖으로 나왔다.

        ​

        그런데 어디로 가지?

        ​

        물론 수도에 내가 아는 귀족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내가 그들이 어디 사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뭐, 물어물어 어떻게 찾아갈 수야 있겠지만, 언질도 없이 대뜸 찾아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

        결국 내가 찾아갈 수 있는 건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무례를 저질러도 상관없는 가문뿐이었다.

        ​

        “어라.”

        ​

        생각해보니, 그런 곳이 하나 있었다.

        ​

        그래서 찾아갔다.

        ​

        “안녕.”

        ​

        “…무슨 생각으로 찾아온 겁니까?”

        ​

        뷔르템부르크 후작가였다.

        ​

        나를 환영해주는 욤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

        “아니, 나가라고 하는 말을 못 들었습니까?”

        ​

        “괜찮아, 괜찮아~”

        ​

        “집주인은 접니다!”

        ​

        “여장 취미 귀족이 집주인이라니, 뷔르템부르크 후작가도 인물이 없나 보네.”

        ​

        “크아악!”

        ​

        여장 취미자가 열불을 내는 동안 시녀가 나와 나를 안내했다. 응접실에서 사용인들이 대접해준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으니 얼굴에 심술이 가득한 욤이 옷을 갈아입고 들어왔다.

        ​

        “후작 각하께서는 안 계셔?”

        ​

        “아버지께서는 잠시 영지의 일 때문에 내려가 계십니다.”

        ​

        “그럼 아직 네 소식은 못 들으셨겠네.”

        ​

        “…뭡니까, 놀리려 온 겁니까?”

        ​

        “그런 건 아니고.”

        ​

        이왕 찾아온 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

        “네가 저번에 쓴 그 각성제, 그거 어디서 구한 거야?”

        ​

        그는 내 질문에 되물었다.

        ​

        “왜, 혹시 당신도 구해 쓰려는 겁니까?”

        ​

        “미쳤냐?”

        ​

        진심으로 불쾌한 표정으로 답하자 오히려 그가 당황했다.

        ​

        “애초에 그 약물의 제작법이 처음 만들어진 게 우리 구역이야. 재료도 이쪽에서 나는 것들이고.”

        ​

        “아, 그, 그렇습니까?”

        ​

        똑같은 약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부작용이 워낙 심해 내가 쓰는 건 그 성능을 좀 낮춘 대신 부작용도 약간의 탈력감이 드는 정도에서 억제한 물건이었다.

        ​

        이걸 굳이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

        “이거, 원액은 그 위험성 때문에 우리 쪽에서 제국에 유입되는 물량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단 말이지. 주변 왕국들과도 협력해서 재료의 생산부터 아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물량은 없을 텐데, 대체 그걸 어디서 구한 거야?”

        ​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 약이 불법 약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요?”

        ​

        “알고 있어. 단지 우리 몰래 이걸 유통하는 놈들은 대부분 인신매매나 마약 유통 같은 불법에 손대는 놈들이라 확인하려는 것뿐이야.”

        ​

        이름만 올려둔 부단장이라지만, 나 또한 우리 영지를 아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런 곳에 불법 조직이 설치는 꼴을 두고 볼 생각 따위는 없었다.

        ​

        “그런 이유라면야.”

        ​

        욤도 내 명분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자고로, 어지간히 뒤가 구린 놈들이 아닌 이상에야 귀족들은 어지간하면 자기네 지역에 불법 조직이 자리 잡는 건 싫어하는 법이었다. 그런 놈들은 보통 세금도 안 내는 주제에 영지에서 깽판이나 치고 다니는 놈들이니 좋아하는 사람이 적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잠시 기다리십시오.”

        ​

        그는 응접실에서 나가 어디론가 향하더니, 잠시 후 영수증을 들고 돌아왔다.

        ​

        “거래 명세서입니다.”

        ​

        그가 건넨 영수증을 받아들고 거래 상대의 이름을 확인했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조직들과 관련된 이름은 없었다.

        ​

        “상단들은 다 신원 확실하지?”

        ​

        “조부님 대부터 거래하던 이들입니다.”

        ​

        “가장 믿음직한 답변이네.”

        ​

        나라에서 금하지 않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물건까지 내가 따질 권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이미 사간 사람 중에 리셀로 꿀을 빠는 놈들이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이런 부분을 확인해보라고 편지를 써놔야 하려나.

        ​

        “그럼 용무는 다 끝난 겁니까?”

        ​

        “설마.”

        ​

        빨리 날 내보내려 하는 욤의 태도에 오히려 그를 골려주고 싶은 심보가 차올랐다.

        ​

        일부러 시녀들이 다과를 가져다주러 들어온 때에 맞춰 그에게 물었다.

        ​

        “그래서, 여장할 옷은 누굴 시켜서 사 온 거야?”

        ​

        푸흡!

        ​

        황급히 고개를 돌려 찻물을 뿜은 욤이 사레가 걸린 듯 기침을 해댔다.

        ​

        “케흑, 콜록! 이런 씨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

        “아니, 너 여장하고 다닌다며.”

        ​

        “그건 네가 멋대로 내뱉은 헛소문이잖나!”

        ​

        “헉, 지금 주님의 이름 아래 진실로 판결난 일에 의문을 갖는 거임?”

        ​

        “젠장! 그런 소리가 아니라…! -으이익!”

        ​

        쾅!

        ​

        말투까지 달라진 욤이 탁자를 손으로 쾅 내리쳤다. 물론 그래 놓고 제 손이 아픈지 슬쩍 손을 빼 잠시 손을 털었지만.

        ​

        시녀들은 그의 고함에 서둘러 다과만 놓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

        “빌어먹을.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내가 뭘 잘못했다고?”

        ​

        “나한테 먼저 누명을 씌우려 한 게 누구였지?”

        ​

        “…미안하다.”

        ​

        그는 내 말에 머리를 막 털며 한숨을 내뱉었다.

        ​

        “젠장, 내가 그때는 너무 흥분해 앞뒤 없이 막 들이박았다. 아무래도 잠시 질투심에 눈이 멀었던 것 같군.”

        ​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역시 나와 성격이 맞지 않을 뿐, 사람이 못된 건 아닌지라 이런 부분에서는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

        어차피 이미 여장남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걸로 크게 한 방 먹여주었기에 이쯤에서 사과를 받아주었다.

        ​

        “앞으로 조심하라고.”

        ​

        “알겠습니다.”

        ​

        굳이 뷔르템부르크 가와 친분을 맺을 필요도 없다지만, 반대로 굳이 적으로 돌릴 필요도 없었다. 이쯤에서 적당히 갈등을 끝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제일 베스트였다.

        ​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니, 뭔가 보상이라도 해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

        “뭘 원하십니까?”

        ​

        깔끔하게 인정하며 수긍하는 그의 태도에서 진심을 보았다. 뭐, 내가 졌으면 아마 그도 이렇게 순순히 나오지 않았겠지만, 결투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꼬우면 이기면 되는 거고, 난 이겼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거지.

        ​

        나는 적당히 손으로 고리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

        “적당히, 성의를 담아서, 눈치껏. 이해했지?”

        ​

        “음, 이해했습니다. 혹시 상인 길드에 개인 금고 만들어 둔 것 있습니까?”

        ​

        “당연히 있지.”

        ​

        “그쪽의 번호를 알려주시지요. 그쪽으로 넣어둘 테니.”

        ​

        “알았어.”

        ​

        은행은 없지만, 마법이 존재했기에 예금 통장과 같은 것들은 이미 등장해 있었다. 심지어 상인 길드 간에는 서로 마법을 통해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방법도 존재했기에 제국 내 어느 곳에서든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

        그쪽으로 알아서 돈을 넣어준다면 나야 귀찮음도 덜고 좋은 일이었기에 번호를 적어주었다.

        ​

        어차피 돈을 찾는 건 마법으로 개인 인증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했기에 보안 걱정은 없었다.

        ​

        “그럼, 이제 정말 볼일은 끝난 겁니까?”

        ​

        희미한 기대를 보이는 그에게는 안타깝지만, 나는 여기서 장난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

        “그럴 리가.”

        ​

        바삭.

        ​

        갓 구운 건지 아직 따끈따끈한 크래커를 씹어 넘기고 그에게 또 물었다.

        ​

        “그래서, 여장할 옷은 대체 어디서 사온 거야?”

        ​

        “크아아악!”

        ​

        역시, 반응이 재밌으니 놀리는 맛이 있었다.

        ​

        -―

        “이젠 진짜 썩 꺼져…!”

        ​

        “아, 알았어. 알았다고.”

        ​

        한참을 더 그렇게 놀리니 욤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내게 삿대질까지 해대며 소리쳤다.

        ​

        이제 슬슬 재미를 볼 만큼 봤다 싶었기에 나도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은 다 봤으니, 이제 슬슬 나도 돌아가 봐야지.

        ​

        벗어둔 외투를 챙겨 입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던 욤이 문득 궁금해졌는지 내게 물었다.

        ​

        “그런데,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묵고 있는 겁니까? 이 주변에서 당신을 봤다는 소문이 들린 적은 없는데.”

        ​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답해주었다.

        ​

        “마리아가 머무는 별궁에 같이 묵고 있어.”

        ​

        “그렇군요.”

        ​

        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대로 굳었다.

        ​

        “…뭐라고요?”

        ​

        그는 내 어깨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며 물었다.

        ​

        “지, 지금 대체 뭐라고 하신 겁니까? 별궁? 별궁이라 하셨습니까?”

        ​

        “어, 어어, 그렇지? 거긴 손님이 묵는 곳이라고 하던데.”

        ​

        “정확히 말씀해 주시지요. 별궁 어디에 묵고 있습니까? 외궁? 외궁이겠지요? 외궁이어야만 합니다!”

        ​

        그의 격렬한 태도에, 나는 의아해하며 답했다.

        ​

        “아니, 내궁에서 묵고 있는데?”

        ​

        내 대답에, 욤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휘청거렸다.

        ​

        “세, 세상에.”

        ​

        “왜 그래? 혹시 거기는 내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인가?”

        ​

        그 반응에 오히려 내가 불안해져서 물었다.

        ​

        “그, 그곳은 황제 폐하나 그 직계 자손들이 외부의 시선 몰래 정부(情夫)를 들일 때 사용하는 궁전이란 말입니다!”

        ​

        “뭣.”

        ​

        나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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