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후웅! 후우웅!

         

       살벌하게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

       철봉 끝에 약 50kg 철환을 끼워 고정시킨 후 그대로 검을 휘두르듯 동작을 펼치니 묵직하면서도 살벌한 소리가 났다.

       저것에 맞으면 멧돼지도 한 방에 즉사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얼핏 굉장해 보이는 이 수련에는 크나큰 단점이 존재했다.

         

       꾸득, 꽈드득!

         

       손목과 팔꿈치, 어깨, 허리 등등 몸이 남아나지 않는 단련법이란 거다.

       웬만한 도검류의 무게가 1kg-1.5kg

       무거운 도검류의 경우 5kg 이상 나가는 것도 있다만, 그걸 제외하곤 웬만하면 너무 무거운 검을 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칫 쓰다가 온몸이 작살나니까.

       휘두르다 그대로 불구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천천히 휘두른다 한들 아차 하면 불구가 될 가능성이 90% 이상인 단련법.

         

       이한이 일명 금강불괴 단련법이라 이름 붙인 극한 단련법 중 하나였다.

         

       “후우우!”

         

       처음 이 단련법을 실천했을 때 진짜 반병신이 될 뻔했었다.

       무게에 한 번 놀라고, 이걸 휘두른다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깨달은 것이다.

       허나 이한은 포기하지 않았고, 처음엔 5kg로 시작하여 차츰 무게를 늘려갔고, 서서히 무게와 단련에 적응해갔다.

         

       현재에 이르러 철봉과 철환을 합친 무게 60kg을 감당하는 경지까지 왔으니.

       그야말로 인간 승리였음이다.

         

       …뭐.

         

       뽀각.

         

       “아, 또 꺾이네.”

         

       가끔 이렇게 팔꿈치든 손목이든 아작 나는 경우가 있지만.

         

       전신 파괴운동.

         

       이한이 붙인 이 무식한 트레이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곧장 영양분을 대량으로 섭취, 휴식 과정을 거치고 나니 드디어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됐다.

       뼈나 근육은 회복이 빠른데, 힘줄이나 관절 부위가 다치면 트롤의 회복력으로도 고쳐지는 데 2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러한 훈련을 본 사람은 기사단의 유일무이한 지인인 제이크밖에 없는데, 제이크가 그러더라.

         

       ‘너 자살하려고 그러는 거야? 뭐 이런 미친 수련을…?’

       -라는 상처 입을 만한 제스처와 공포감을 보였다.

         

       이게 그 정도인가?

         

       ‘…그 정도 맞겠지.’

         

       확실히 자기가 생각해도 이 훈련법은 좀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트롤의 회복력만 믿고 하기엔, 자칫 불구가 될 만한 단련법이니까.

       그러나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이 훈련을 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이 훈련을 통해 근질과 골격 등이 눈에 띄도록 강화됨이 보여서다.

         

       예시를 들자면 전날 붙은 요르드란 놈.

       화려하고도 재빠른 검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그놈을 상대하려면 검으로 공격을 흘리거나 빗겨낼 필요가 있었으나, 이한에게 그 정도로 좋은 재주는 없다.

       그저 무식하게 보고 막을 뿐.

       한데도 이한은 정면으로 공격을 받는데도 아무런 데미지도 없을뿐더러, 손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단련이 도움이 된다는 거지.’

         

       어떠한 묵직한 공격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그의 근육과 뼈는 충격을 모조리 흘려보낼 정도로 탄력 있고 단단해졌단 의미.

         

       전신이 방탄복일지도 모를 몸.

       실제로 최근 들어 발타르와 대련했을 때, 전에는 열 대도 못 견뎠던 것을, 스무 대는 견딜 수 있게 됐다.

       획기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

         

       “성과는 개뿔…. 여전히 처 맞는데.”

         

       이제 어느 정도 회복한 몸을 풀어주며 이한은 인상을 팍 썼다.

       여전히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는 발타르를 떠올리니 성질부터 나는 거다.

         

       뭐라더라?

         

       [호오, 좀 더 찰진 샌드백이 됐구나. 기특한 놈. 나에게 손맛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이러는 것이냐? 허허.]

         

       이게 조롱이 아니면 뭐겠는가?

       요괴 같은 늙은이…!

         

       “슬슬 무게를 늘릴까?”

         

       철봉의 무게를 늘릴까, 그도 아니면 다른 단련법 시간을 늘릴까?

       고민이 깊어진다.

       그 양반을 이길 그림은 여전히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무엇 하나라도 그 양반보다 앞서는 게 있다면 크게 한 방 먹일 가능성은 있다.

         

       맷집.

       원래도 강했던 맷집이 더욱 강해진다면, 맞고도 온몸에 힘이 풀리지 않고 끝까지 달려든다면 그나마 일격을…!

         

       “아이코!”

         

       콰당

         

       “…….”

       “힝, 죄송해요. 방해 안 하려고 했는데, 넘어졌어요.”

       “…시녀님이야말로 무릎은, 아니 안면은 괜찮습니까?”

       “헤헤, 네 괜찮아요, 기사님. 다행히 몸 하나는 튼튼하거든요. 전에 철퇴도 맞아본 적이 있는데, 멀쩡하더라고요, 히히.”

       “…아, 그러시구나.”

         

       …뭐부터 태클을 걸어야 하는 걸까?

       철퇴를 맞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 건지, 아니면 맞아도 살아남은 비법을 물어봐야 하나?

       이한은 본의 아니게 받아들인 객식구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

       *

         

       전날, 아이시스 왕태녀는 말했다.

       부탁이 있다고, 사실 말만 부탁이지 명령이나 다름없다.

       다만 이한은.

         

       “거절합니다. 내가 당신네 같은 귀족이랑 안 엮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왜 누님이랑 엮여야 합니까?”

       “…매몰차구나. 여의 ‘부탁’이라면 목숨조차 바치는 이들이 수두룩하거늘.”

       “그럼 그 인간들에게 부탁하쇼. 난 목숨 안 바칠 거니까.”

         

       매몰차다 못해 건방진 태도.

       허나 이한은 단호했고, 보기 드물게 강경하면서도 차가웠다.

         

       “한 번 사람을 이용해먹었으면 됐지. 누굴 진짜 사냥개로 아는 것도 아니고.”

         

       이건 경고였다.

       비록 상대가 일국의 후계자고, 설사 밖에는 실력자가 우글거리더라도 날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경고.

       이한이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굽히지 않기 위해, 전생처럼 살지 않기 위함이다.

         

       “누님, 아니 왕태녀 전하. 당신이 날 의동생이 아니라 써먹으려는 개로 생각하는 거라면 잘못 찾아왔습니다. 난 말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기사든 뭐든 그만두고 싶은 사람입니다. 지금이야 당신을 따르는 건 당신의 권력이 무섭고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을 넘으면 권력이고 인연이고 뭐고 없습니다. 다 때려 부술 거니 그렇게 아십쇼.”

       “…….”

         

       진심이었고, 이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겠다는 결의였다.

       이를 느꼈기에 아이시스의 고운 미간이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렸다.

         

       “고얀 놈. 누이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누이가 누이 다워야지.”

       “…여인에게 말로 이기려고 하면 좋더냐?”

       “전 성차별을 혐오합니다. 남녀평등 좋죠, 예에.”

       “……막돼먹은 놈.”

         

       기어이 먼저 기가 꺾인 건 아이시스였다.

       태어날 적부터 비범한 재능을 갖췄으며, 연륜을 쌓아 위에 군림하는 자로 산 지 어언 40년.

       이토록 저 앞에서 막돼먹게 행동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래도.

         

       “그래, 사내가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

         

       어쩐지 그녀는 이한을 기특해 하는 것 같았다.

         

       “자고로 기사란 자, 권력에 굽히지 아니하고. 위정자와 싸워 정도(正道)를 걷는 자라 하였다. 역시 여의 의동생다운 멋진 자세이니라, 호호.”

       “……이거 혹시 시험 같은 거였습니까?”

       “아무렴.”

       “…….”

       “그리 보지 마라. 여의 위치라면 항상 타인을 시험해야 하는 법이니, 설사 상대가 의동생이 아니라 혈연이나 수족이라 할지언정.”

       “…힘들게도 사십니다, 진짜.”

       “군주의 숙명이지.”

         

       지금 아이시스는 이한을 시험한 거다.

       만약 아이시스의 부탁을, 아니 명령을 이한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아이시스는 그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권력에 알랑방귀를 뀌는 저열한 자로 여겨졌을 테니까.

       물론 저열한 자로 낙인 찍혔다 해도 그녀는 이한을 버리지 않았으리라.

       방금 전 이한이 말한 대로 사냥개로 삼아 잘 싸먹었겠지.

         

       훗날 토사구팽 당하는 사냥개로.

         

       ‘살벌한 미년 같으니.’

         

       “여의 흉은 그만 보거라. 귀가 가렵구나.”

       “미년이라고 했습니다, 미년이라고. 미인인 여자란 칭찬입니다.”

       “글쎄, 여가 봤을 때 그 중간에 ‘친’이 들어갈 것 같다만.”

       “착각이에요, 착각.”

       “뻔뻔하도다.”

         

       대놓고 왕족의 욕을 했지만, 아이시스는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군주로 살려는 자, 백성의 비판과 경멸은 숨 쉬는 것처럼 가볍게 넘겨야 할지니.

         

       그래도.

         

       따악.

         

       “기사 되는 자. 레이디를 모욕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이것아.”

       “손목 스냅 좋으시네.”

         

       의동생에게 이 정도 꿀밤을 괜찮겠지.

       아이시스의 표정은 분명 엄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오늘 본 것 중 가장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가 그럼 다시 말하마. 이건 명령이 아닌 정말 [제안]에 불과하며, 여는 이것을 꼭 네가 들어줬으면 한다.”

       “…일단 들어는 보죠.”

         

       재차 이어지는 부탁.

       이번에는 저게 명령이 아님을 알기에 이한은 순순히 들어주기로 했다.

         

       이 사람이 자존심을 굽힌다는 건 이탈리아인에게 파인애플 피자가 최고의 피자라고 인정하게 하는 것과 동일한 격이니.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게 상리란 거다.

         

       “부탁이 두 가지라 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여가 할 의뢰는 모두 비슷한 면이 있느니라.”

         

       타악.

         

       “…왜 내일 나와야 할 신문이 여기 있대요.”

       “권력의 힘이지.”

       “참, 권력자란 인간들은.”

         

       촤악.

         

       이한은 그녀가 건넨 신문을 펼쳤다.

       여타의 물음 없이 펼치며 읽어가는 행동은 아이시스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우둔한 자보다 싫은 건 눈치 없는 자인 법.

         

       그는 이런 면에서 확실히 눈치도 있고 우둔하지도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한은 신문의 어느 장에서 멈칫거렸다.

       원래는 대서특필되어 앞장을 크게 차지하여야 할 소식임이 분명하나, 열 번째 장에 걸려 있는 뉴스.

       왕가의 힘이 작용했을 것임이 분명한 장을 향해 그가 손가락질했다.

         

       “…방금 말했던 부탁이 혹시 이 아가씨나 건방지게 생긴 도련님과 관계있는 게 맞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누님이 건드리기 힘든 위치에 있는 인간들은 얘들밖에 없으니까.”

       “정확하다. 다만 정정하자면 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들의 목은 칠 수 있다. 단지 조금 귀찮아질 뿐.”

       “예예, 대단하십니다.”

         

       따악!

         

       불똥이 튀듯 부채가 정수리에 작열했지만 이한은 덤덤했다.

       오러 유저에게 맞아도 멀쩡한 그가 부채 따위가 아플까.

         

       대신 그는 신문을 읽으며 그들의 이름을 읊조렸다.

         

       “아이린 윈들러, 로엔 드미트리 드 라이오넬.”

         

       아이린 윈들러는 꽃다운 19세의 하층민 출신 마법사 아가씨였으나, 최근 아카데미 마법학부를 수석으로 입학한 재녀였고, 추가로 갈라하드 공작이 입양을 표방했다고 한다.

       로엔인지 뭔지 하는 자식은 북방의 왕이라 칭해지는 라이오넬 대공 가문에 막내아들이지만, 서자인지라 후계 가능성은 지극히 낮으며, 최근 아카데미 검술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팬드래건 소속이지만, 왕가와 극도로 험악한 관계를 유지 중인 갈라하드 공작과 라이오넬 대공.

       한데 그들의 수양녀와 서자가 팬드래건의 심장부인 수도에 입성하다 못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건 수도를 뒤흔들 빅뉴스였다.

         

       신문 제일 앞면을 차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왕가가 이들을 거슬려 한다는 의미도 되리라.

         

       아니나 다를까.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을 따름이다.”

       “…내가 알기로 갈라하드나 라이오넬이나, 하나같이 왕가의 핏줄이 다 섞이지 않았던가?”

       “여의 사촌 동생, 혹은 외사촌이 되겠지.”

       “그런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요?”

       “부탁하면 들어줄 것이냐?”

       “……아니요.”

       “흥, 아쉽구나.”

         

       …미년.

         

       따악.

         

       그는 다시금 험담했고, 부채가 그의 정수리에 작열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