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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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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볼을 긁적이며 미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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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더 모이기 전에 갈까요?”
    “예, 그러는 게 좋겠네요. 슬슬 벌레가 꼬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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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독 벌레라는 말에 혐오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머리가 롤빵 모양으로 말린 여학생의 의자로 사용되고 있는 내 친구가 들었다면 ‘헤으응’거릴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그 정도로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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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같이 갈 사람은 가까이 모이세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팔이나 다리가 떨어질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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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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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어진 팔은 어떻게 되나요? 여기에 남나요?”
    “아뇨, 차원의 중간에 버려져서 그대로 소멸합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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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몸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면 회복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어제 사라졌던 제 팔이 야구장 배트로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간에 없어진 팔은 소멸한다고 하니 다음날 바로 회복될 터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 후 아이들을 끌고 와 가운데로 모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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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끌어당길 때마다 아이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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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냄새가 심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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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말하며 손을 떼자 방금까지 내가 붙잡고 있던 아이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그보다 미아가 입을 열어 주문을 외우는 게 더 빨랐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미아와 가까워지도록 서게 한 후 가장 끝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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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닥에 검붉은 마법진이 그려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는 듯 마법진을 내려다보던 그때,슥. 누군가 내 바지 자락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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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
    ​
    ​
    어느새 다가온 제스가 내 바지자락을 잡은 채 울망거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가 축 늘어져 있고 꼬리가 다리 사이로 둥글게 말려있었다. 제스에게 무어라 말을 붙이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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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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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붉은 빛이 시야를 가리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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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그들이 도착한 곳은 미아의 연구소였다. 오딜의 실험실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다. 미아는 커다란 숙소와 식당 등 다양한 장소를 통 크게 내어주었다. 
   
   
   그녀는 애초에 실험체를 들여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부분의 구역이 비어져있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활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어느새 미아의 연구소 생활에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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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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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아가 손을 들기 무섭게 그녀가 찾을 것 같은 자료를 내밀었다. 그러자 미아가 익숙하게 자료를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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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르륵.
    ​
    ​
    그녀가 마시다 만 차를 수거하고 새로운 차를 따라 그녀의 곁에 뒀다. 그러자 미아가 익숙하게 차로 입을 축였다. 누군가는 진짜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별거 아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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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크, 이 정도는 껌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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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은 커녕 집에만 오면 축 늘어져 칭얼거리기 바쁜 어머니를 챙긴 경력이 무려 10년이 넘었다. 그런 나에게 까탈스럽지 않은 미아를 챙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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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러고 보니 재료가 떨어졌었지?”
    “외출 준비할까요?”
    “응,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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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는 차를 내려놓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내 부탁으로 미아가 만들어준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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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으, 이거지!’
    ​
    ​
    안에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온갖 냄새와 먼지를 싹 털어주고 깔끔하게 다리미질까지 끝내주는 최고의 기계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옷을 가져와 그녀에게 건넸다. 미아는 한쪽에 세워진 가림막 안쪽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안쪽에 조명이 켜져 새카만 그림자가 최고의 명작을 그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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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가 윗옷을 벗을 때 출렁이는 그림자를 보며 나는 헤벌쭉 웃음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가림막 안쪽에서 걸어 나오자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괜히 변태로 찍혀서 편한 생활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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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겉옷이에요. 그리고 이건 아공간 가방이구요.”
    “그럼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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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익숙하게 손바닥만 한 가방을 허리춤에 달고 남색의 케이프를 걸쳐 입고 연구실 한쪽에 놓인 거울로 향했다. 특정 좌표를 등록해두고 사용하는 포탈용 거울이었다. 미아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자 거울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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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거울 너머로 사라지자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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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남은 집안일이나 하러 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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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가 변했을 뿐, 내가 하는 일은 별 변화가 없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문득 떠오른 사실에 몸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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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내가 미아쪽으로 오게 되면 아이리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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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얼굴 위로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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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한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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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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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뭘 사야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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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방금 산 재료를 포켓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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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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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에서 손을 빼려는 순간 종이 하나가 만져졌다. 별생각 없이 종이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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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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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야 할 물건 ]
    [ *말린 모타스의 풀 ]
    [ *로티코라 가루 45g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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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만한 메모지에 적힌 건 미아가 구매하려던 것과 같았다. 미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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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준비해줬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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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자신이 사지 않은 물건을 체크하며 야시장 같은 분위기의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쇼핑이 끝났다. 별생각 없이 돌아가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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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궁,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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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덩치의 마족이 짐마차를 질질 끌고 와 한쪽에 자리 잡았다. 마차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손잡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바위를 던진 것 같은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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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흥, 지켈산 야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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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대를 펼 생각은 없는지 그대로 장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가 파는 건 싱싱한 야채들이었다. 마족이나 흑마법사 같은 이들이 주로 찾는 장소다 보니 무시무시한 물건을 많이 팔긴 하지만 저런 야채도 흔하게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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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는 길에 사갈까? 이번에는 무슨 요리를 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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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리안이 해줄 요리를 떠올리며 답지 않게 야채를 몇 개 구매했다. 기분 좋게 웃으며 진짜 돌아가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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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 서리의 마녀가 요리도 하나 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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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굵으면서도 높은 목소리. 마치 남자가 억지로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는 듯한 듣기 불편한 목소리 들려왔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남자가 세모 모양의 눈을 번뜩이며 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
    ​
    “흐흥, 요리까지 잘하다니 -… 역시 준비된 신부네.”
    “헛소리는 잘도 하네.”
    “농담이야. 농담.”
    “하아…그냥 너 볼일 보고 꺼져.”
    “이잉, 친구한테 너무하네.”
    ​
    ​
    의외로 미아는 그와 친분이 있었다. 애초에 흑마법사 중 정상적인 인간들이 현저히 적었기에 그 정도면 말이 통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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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 나도 그리 한가하진 않으니까 이만 헤어지자고.”
    “…? 그래.”
    ​
    ​
    평소라면 2시간은 붙잡고 늘어졌을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선뜻 떠나자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가볍게 생각을 털어냈다.
    ​
    ​
    “오늘은 따뜻한 국물이 땡기네.”
    ​
    ​
    미아는 더 이상 리안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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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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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흐…이렇게 좋은 물건을 얻게 될 줄이야. 빨리 돌아가서 사용해봐야지.”
    ​
    ​
    빼빼 마른 몸, 두드러진 광대뼈, 홀쭉한 엉덩이 그에 비해 부푼 팔뚝을 가진 남자는 조금 전 미아와 헤어졌던 남자였다. 그는 히죽거리며 제 연구소로 돌아왔다.
    ​
    ​
    잘그락.
    ​
    ​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
    ​
    그가 도착하자 목과 발목에 족쇄를 찬 이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치 몸을 이것저것과 엮은 듯 피부색이 얼룩덜룩했고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
    ​
    “실험체는?”
   “얌전해진 상태입니다.”
    “실험대로 옮겨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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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느릿하게 실험실로 향했다. 창백한 색의 딱딱한 테이블 위에 아름다운 소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묶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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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훗..역시 아름다워.”
    ​
    ​
    그가 웃음 짓자 광대뼈 위 피부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양팔과 다리가 묶인 소녀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헛숨을 삼키는 듯한 소리만 뱉어질 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
    ​
    “목소리도 아름다웠다면 참 좋았을 텐데. 뭐, 그래도 이 ‘도반님’의 걸작이 될 테니 상관없겠지.”
    ​
    ​
    그가 기괴하게 웃으며 트롤리를 끌고 왔다.
    ​
    ​
    “걱정하지 마. 오늘은 그저 확인하려는 것뿐이니까. 흠결이 있는 곳을 잘라내야 하니까 말이야.”
    ​
    ​
    도반이 흐트러진 새하얀 머리카락을 잡아들며 히죽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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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 정말 부드러워. 이러면 굳이 머리가죽을 벗길 필요는 없겠어.”
    ​
    ​
    도반은 트롤리 위에서 날 선 단검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휘저으며 말했다.
    ​
    ​
    “자, 그럼 너의 피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까?”
    ​
    ​
    소녀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정처 없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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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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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아..”
    ​
    ​
    나는 한숨을 쉬며 빵을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씹고 있자니 옆에 앉아있던 릴리가 말을 걸어왔다.
    ​
    ​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응..? 있지…무슨 일..”
    ​
    ​
    차마 원작이 170도 정도 틀어졌다는 걸 ‘아무 일 아니다.’로 퉁칠 수 없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너…정말 괜찮아?”
    ​
    ​
    노아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했다. 나는 슬쩍 얼굴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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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아까 흘린 땀이 그대로 남아있네. 아닌가? 지금도 흐르는 건가?’
    ​
    ​
    원작이 틀어졌단 생각에 식은땀이 끝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아지가 물기를 털어내듯 털 수 있었지만, 옆에 앉은 릴리에게 튈 수 있기에 소매로 대충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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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 냄새났지? 앞으로는 조심할게.”
    ​
    ​
    노아는 할 말이 많다는 얼굴로 날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 내 옆으로 붉은 머리가 후다닥 달려왔다.
    ​
    ​
    “쮠님. 어디 아파?”
    “으응?”
    ​
    ​
    아프다는 얘기가 지금 왜 나오지?
    ​
    ​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내 얼굴이 갸웃거렸다. 그러자 제스가 울상이 된 채 내 다리에 매달렸다.
    ​
    ​
    “쮠님 아파 보여.”
    “아냐, 하나도 안 아파.”
    “쮠님, 무서운 거 해.”
    “무서운 거?”
    ​
    ​
    순간, 식사 소리가 이어지던 식당 안이 고요해졌다. 
    ​
    ​
    “쮠님 이렇게 막 아픈 거 해?”
    ​
    ​
    제스가 내 배 위를 문지르며 귀를 축 늘어뜨렸다. 나는 그제야 제스가 말하는 게 ‘실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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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지씨님! 후원 감사합니다! (*ˊᵕˋo💐o

미아는 알고있을까요…? 더이상 그녀는 리안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간다는 걸… 키움 당하고 있는 미아.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나는 볼을 긁적이며 미아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더 모이기 전에 갈까요?”

“예, 그러는 게 좋겠네요. 슬슬 벌레가 꼬이고 있네요.”

유독 벌레라는 말에 혐오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머리가 롤빵 모양으로 말린 여학생의 의자로 사용되고 있는 내 친구가 들었다면 ‘헤으응’거릴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그 정도로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벌레
벌레

“자, 같이 갈 사람은 가까이 모이세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팔이나 다리가 떨어질지도 몰라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없어진 팔은 어떻게 되나요? 여기에 남나요?”

“아뇨, 차원의 중간에 버려져서 그대로 소멸합니다.”

“아아..”

보통 몸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면 회복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어제 사라졌던 제 팔이 야구장 배트로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간에 없어진 팔은 소멸한다고 하니 다음날 바로 회복될 터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 후 아이들을 끌고 와 가운데로 모이게 했다.

내가 끌어당길 때마다 아이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냄새가 심하지?”

그리 말하며 손을 떼자 방금까지 내가 붙잡고 있던 아이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그보다 미아가 입을 열어 주문을 외우는 게 더 빨랐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미아와 가까워지도록 서게 한 후 가장 끝에 섰다.

바닥에 검붉은 마법진이 그려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는 듯 마법진을 내려다보던 그때,슥. 누군가 내 바지 자락을 잡아당겼다.

“응?”

“..”

어느새 다가온 제스가 내 바지자락을 잡은 채 울망거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가 축 늘어져 있고 꼬리가 다리 사이로 둥글게 말려있었다. 제스에게 무어라 말을 붙이려는 순간.

파아앗!

검붉은 빛이 시야를 가리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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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도착한 곳은 미아의 연구소였다. 오딜의 실험실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다. 미아는 커다란 숙소와 식당 등 다양한 장소를 통 크게 내어주었다.

그녀는 애초에 실험체를 들여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부분의 구역이 비어져있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활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어느새 미아의 연구소 생활에 익숙해졌다.

“리안?”

“여기 있습니다.”

나는 미아가 손을 들기 무섭게 그녀가 찾을 것 같은 자료를 내밀었다. 그러자 미아가 익숙하게 자료를 읽어내렸다.

쪼르륵.

그녀가 마시다 만 차를 수거하고 새로운 차를 따라 그녀의 곁에 뒀다. 그러자 미아가 익숙하게 차로 입을 축였다. 누군가는 진짜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별거 아닌 일이었다.

‘크크, 이 정도는 껌이지.’

집안일은 커녕 집에만 오면 축 늘어져 칭얼거리기 바쁜 어머니를 챙긴 경력이 무려 10년이 넘었다. 그런 나에게 까탈스럽지 않은 미아를 챙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아, 그러고 보니 재료가 떨어졌었지?”

“외출 준비할까요?”

“응, 부탁해.”

미아는 차를 내려놓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내 부탁으로 미아가 만들어준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크으, 이거지!’

안에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온갖 냄새와 먼지를 싹 털어주고 깔끔하게 다리미질까지 끝내주는 최고의 기계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옷을 가져와 그녀에게 건넸다. 미아는 한쪽에 세워진 가림막 안쪽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안쪽에 조명이 켜져 새카만 그림자가 최고의 명작을 그려주었다.

미아가 윗옷을 벗을 때 출렁이는 그림자를 보며 나는 헤벌쭉 웃음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가림막 안쪽에서 걸어 나오자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괜히 변태로 찍혀서 편한 생활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 겉옷이에요. 그리고 이건 아공간 가방이구요.”

“그럼 다녀올게.”

그녀는 익숙하게 손바닥만 한 가방을 허리춤에 달고 남색의 케이프를 걸쳐 입고 연구실 한쪽에 놓인 거울로 향했다. 특정 좌표를 등록해두고 사용하는 포탈용 거울이었다. 미아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자 거울이 울렁거렸다.

미아가 거울 너머로 사라지자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그럼 남은 집안일이나 하러 갈까?”

장소가 변했을 뿐, 내가 하는 일은 별 변화가 없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문득 떠오른 사실에 몸을 굳혔다.

‘잠깐…내가 미아쪽으로 오게 되면 아이리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순식간에 얼굴 위로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망…한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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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뭘 사야 했더라?”

미아는 방금 산 재료를 포켓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응?”

포켓에서 손을 빼려는 순간 종이 하나가 만져졌다. 별생각 없이 종이를 꺼냈다.

“이건…”

[ 사야 할 물건 ]

[ *말린 모타스의 풀 ]

[ *로티코라 가루 45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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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메모지에 적힌 건 미아가 구매하려던 것과 같았다. 미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리안이 준비해줬나 보네.’

그녀는 자신이 사지 않은 물건을 체크하며 야시장 같은 분위기의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쇼핑이 끝났다. 별생각 없이 돌아가려던 순간.

구구궁,쿵!

거대한 덩치의 마족이 짐마차를 질질 끌고 와 한쪽에 자리 잡았다. 마차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손잡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바위를 던진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쿠흥, 지켈산 야채 팝니다!”

매대를 펼 생각은 없는지 그대로 장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가 파는 건 싱싱한 야채들이었다. 마족이나 흑마법사 같은 이들이 주로 찾는 장소다 보니 무시무시한 물건을 많이 팔긴 하지만 저런 야채도 흔하게 팔았다.

‘가는 길에 사갈까? 이번에는 무슨 요리를 해주려나?’

그녀는 리안이 해줄 요리를 떠올리며 답지 않게 야채를 몇 개 구매했다. 기분 좋게 웃으며 진짜 돌아가려는 순간.

“허? 서리의 마녀가 요리도 하나 보지?”

“…?”

굵으면서도 높은 목소리. 마치 남자가 억지로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는 듯한 듣기 불편한 목소리 들려왔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남자가 세모 모양의 눈을 번뜩이며 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흥, 요리까지 잘하다니 -… 역시 준비된 신부네.”

“헛소리는 잘도 하네.”

“농담이야. 농담.”

“하아…그냥 너 볼일 보고 꺼져.”

“이잉, 친구한테 너무하네.”

의외로 미아는 그와 친분이 있었다. 애초에 흑마법사 중 정상적인 인간들이 현저히 적었기에 그 정도면 말이 통하는 정도였다.

“뭐, 나도 그리 한가하진 않으니까 이만 헤어지자고.”

“…? 그래.”

평소라면 2시간은 붙잡고 늘어졌을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선뜻 떠나자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가볍게 생각을 털어냈다.

“오늘은 따뜻한 국물이 땡기네.”

미아는 더 이상 리안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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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흐…이렇게 좋은 물건을 얻게 될 줄이야. 빨리 돌아가서 사용해봐야지.”

빼빼 마른 몸, 두드러진 광대뼈, 홀쭉한 엉덩이 그에 비해 부푼 팔뚝을 가진 남자는 조금 전 미아와 헤어졌던 남자였다. 그는 히죽거리며 제 연구소로 돌아왔다.

잘그락.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그가 도착하자 목과 발목에 족쇄를 찬 이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치 몸을 이것저것과 엮은 듯 피부색이 얼룩덜룩했고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실험체는?”

“얌전해진 상태입니다.”

“실험대로 옮겨놔.”

“예.”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느릿하게 실험실로 향했다. 창백한 색의 딱딱한 테이블 위에 아름다운 소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묶여있었다.

“우훗..역시 아름다워.”

그가 웃음 짓자 광대뼈 위 피부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양팔과 다리가 묶인 소녀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헛숨을 삼키는 듯한 소리만 뱉어질 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도 아름다웠다면 참 좋았을 텐데. 뭐, 그래도 이 ‘도반님’의 걸작이 될 테니 상관없겠지.”

그가 기괴하게 웃으며 트롤리를 끌고 왔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그저 확인하려는 것뿐이니까. 흠결이 있는 곳을 잘라내야 하니까 말이야.”

도반이 흐트러진 새하얀 머리카락을 잡아들며 히죽 웃음 지었다.

“아아 – 정말 부드러워. 이러면 굳이 머리가죽을 벗길 필요는 없겠어.”

도반은 트롤리 위에서 날 선 단검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휘저으며 말했다.

“자, 그럼 너의 피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까?”

소녀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정처 없이 떨렸다.

***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빵을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씹고 있자니 옆에 앉아있던 릴리가 말을 걸어왔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응..? 있지…무슨 일..”

차마 원작이 170도 정도 틀어졌다는 걸 ‘아무 일 아니다.’로 퉁칠 수 없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정말 괜찮아?”

노아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했다. 나는 슬쩍 얼굴을 더듬었다.

‘아, 아까 흘린 땀이 그대로 남아있네. 아닌가? 지금도 흐르는 건가?’

원작이 틀어졌단 생각에 식은땀이 끝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아지가 물기를 털어내듯 털 수 있었지만, 옆에 앉은 릴리에게 튈 수 있기에 소매로 대충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미안 냄새났지? 앞으로는 조심할게.”

노아는 할 말이 많다는 얼굴로 날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 내 옆으로 붉은 머리가 후다닥 달려왔다.

“쮠님. 어디 아파?”

“으응?”

아프다는 얘기가 지금 왜 나오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내 얼굴이 갸웃거렸다. 그러자 제스가 울상이 된 채 내 다리에 매달렸다.

“쮠님 아파 보여.”

“아냐, 하나도 안 아파.”

“쮠님, 무서운 거 해.”

“무서운 거?”

순간, 식사 소리가 이어지던 식당 안이 고요해졌다.

“쮠님 이렇게 막 아픈 거 해?”

제스가 내 배 위를 문지르며 귀를 축 늘어뜨렸다. 나는 그제야 제스가 말하는 게 ‘실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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