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간부 회의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나는 보스가 내게 임무를 내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휴가를 준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나 한가해도 되는 걸까?’

     

   애들 장난감을 만들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걱정은 대체 뭘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떨어진 다음 날 눈치챘듯이, 이 세계 어린아이들의 감성은 지구 어린이와 180도 달랐다.

     

   당장 여자아이인 보스가 로봇을 가장 아끼는 장난감으로 갖고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구 어린이들의 생각도 맞추지 못 하는데, 완전 다른 세계인 이곳 어린이들의 취향을 대체 어떻게 알아맞추란 말인가? 이 고민을 보스에게 털어놓자 보스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애니메이션 BOX를 내밀었다.

     

   “─보고 오게나.”

   “넵.”

     

   보스가 건네준 건 이 세계에서 히트친 애니메이션 블루레이 박스였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어린아이들 부모님의 등골과 지갑을 뽑아내던 상업 애니메이션의 정점.

     

   물론 그 내용물이 보스의 취향쪽으로 치우치기는 했다만, 어쨌건 명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보스는 이것들중 아무거나 장난감으로 만들어도 좋다고 말했다.

     

   판권 따위는 사오면 그만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과학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사 1위를 아직 어린 보스가 어찌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지가 의문이었다.

     

   [합체다-! 근성이다-!]

   [우오오오오오-! 변신!]

     

   ‘……의외로 재밌네.’

     

   하기야 세상이 다르다고 해서 재미라는 개념마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시대마저 달랐더라면 모를까 이쪽 세계와 내가 살던 세계의 시대는 크게 차이나지는 않았다. 조금 낙후된 거 같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만 하더라도 감지덕지지. 적어도 이거하라 저거하라 갈구던 담당 교수 밑에서 지낼 때보다는 나았다. 

     

   “아, 쟤 마음에 드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던 나는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발견한 뒤 그 캐릭터의 특성을 메모했다. 위키에 들어가서 추가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뒤, 어떻게 만들지 대강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떨어진 첫 날 보스가 보여주었던 빔 나가는 로봇 수준의 장난감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애시당초 그건 과학이 아니라 초능력의 영역이었다. 에너지원부터가 결정 에너지라는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걸로 장난감을 만들었다간 단가가 억에서 시작…… 아예 안 팔린다고는 안 하겠지만 애들용 장난감이라고는 못 하지.’

     

   물론 성능이 성능이다보니 수요는 있겠지만, 그런 물건을 장난감 가게에서 태연하게 판매할 수 없을 뿐더러 애들용 장난감을 만든다는 기획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게 된다.

     

   보스도 그런 걸 만들어서 가져갔다간 무진장 화를 내겠지. 얌전히 애들 장난감이나 만들라고 했더니 애들용 병기를 만들어서 가져왔다고.

     

   ‘적당적당히 만들어야지. 장난감에 그렇게 많은 기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껏해봐야 스스로 움직이는 구동 기능, 목소리가 나오게 하는 기능, 팔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는 기능 정도다.

     

   그리 어려울 건 없었으므로, 나는 순식간에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안에 넣을 기능보다 겉을 꾸미는 게 더더욱 오래 걸렸다.

     

   “─완성.”

     

   하루 종일 로봇 만들기에 매달린 나는 기어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이걸 가지고 보스에게 통과를 받는 것뿐이었다…….

     

   뭐, 딱히 문제는 없으리라.

   이번엔 특별할 거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 * *

     

     

   “─이게 완성품이라고?”

   “예, 보스.”

     

   레갈리아는 과학자가 만들어 온 로봇을 바라보았다. 애들에게 곧장 팔아재낄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만들어오라고 보냈더니, 나온 건 인기 없는 빌런 로봇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주인공 로봇이나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레갈리아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로봇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특이하게 태엽을 달았군. 건전지로 하는 게 편하지 않겠나?”

   “원작에도 태엽이 달려 있더군요. 원작 고증과 아날로그 감성을 노렸습니다. 건전지로 해도 되긴 하는데, 그리 대단한 기능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지라….”

   “하긴. 원작에서도 크게 별 볼 일 없는 빌런이었지.”

     

   레갈리아는 그리 말하며 로봇의 등에 달린 태엽을 촥촥 감기 시작했다. 태엽을 다 감은 로봇을 탁상 위에 내려놓자, 로봇은 제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였다. 목소리를 내거나 달리거나 눈에서 빔을 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허나 레갈리아는 여러 경험으로 인해 학습한 상태였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과학자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여가 모르는 기능 같은 건 넣지 않았겠지? 갑자기 로켓을 분사하며 하늘을 난다거나…….”

   “에이, 보스. 그거 제작비가 얼마인지 아세요? 애들 과자 사먹을 돈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그런 걸 어떻게 만듭니까?”

   “……그러니까 없다는 거지? 나중에 또 이상한 기능이 나와서 여를 놀라게 하거나 하지 않을 거란 소리지?”

   “걱정도 심하시네. 그런 거 없습니다.”

     

   과학자는 자신만만하게 답했지만, 레갈리아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이 과학자를 길바닥에서 주운 건 정말 최고의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최악의 불안이기도 했다. 

     

   하기야, 그가 하고 있는 짓은 보물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서 폭탄 위를 걷는 꼴이었다. 재수가 좋다면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까딱하면 보물째 폭탄으로 날아가 버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레갈리아 입장에선 참으로 애가 타는 모습이었다. 본인은 정작 본인이 지뢰밭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게 더더욱 그녀를 애타게 만들었다.

     

   “그래, 뭐…… 이상한 게 없다 하니 여가 막을 이유는 없겠지. 좋네. 허가하지. 출시하게나.”

   “예. 설계도는 기업 쪽으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이블스 기업에서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유명 애니메이션에서 짤막하게 등장했던 빌런 로봇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별다른 기능이 없다고 판단한 이블스 기업은 이 장난감을 무척이나 싼 가격에 판매했다. 일종의 미끼 상품이었다. 아이들은 빌런 로봇 하나로 만족하지 않을 테니까. 이 장난감을 기반으로 값비싼 다른 로봇들. 주로 주인공 기체를 구매하기를 유도했다.

     

   그러나 레갈리아가 인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로봇은 의외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였다. 남자아이들에게 이상하리 만치 수요를 가진…….

     

   “아빠! 저거 사줘!”

   “저게 뭔데?”

   “저것도 몰라? 네모버스터잖아!”

     

   애가 갖고 싶어 하겠다. 가격도 싸서 용돈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블스에서 낸 신작 장난감은 순식간에 각 가정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일단 이블스 기업에서 나온 거라면 무작정 구매하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블스 기업에서 나온 거라고? 그럼 하나 사야지.”

   “장난감이…… 9.99 달러? 싼데?”

     

   그 대부분이 이블스 기업의 직장인이거나 산하 기업의 직원이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덕택에 새 상품은 이블스 기업이 있는 E 시에서는 무척이나 잘 팔리는 효자 상품이 되었으며, 다른 도시에서는 그럭저럭 팔리는 수준이었다.

     

   어느 날 영상 하나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슈슈숙!]

     

   이블스에서 새로이 낸 장난감, 네모버스터를 갖고 노는 아이가 찍힌 홈캠. 영상 속 아이는 네모버스터의 태엽을 감은 뒤 다른 로봇 장난감을 손에 들고 네모버스터를 공격하고 있었다.

     

   앞으로 뒤뚱뒤뚱 움직이던 네모버스터는 몇 번의 공격을 받고선 그대로 고꾸라졌다. 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잠시, 아이 주변을 지나가던 고양이가 무언가를 건드리자 가득 쌓여 있던 물건탑이 아이를 향해 무너져내렸다. 그대로 깔렸다간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태엽 로봇이 잽싸게 몸을 일으켜 제 몸으로 무너져내리는 물건을 쳐냈다.

     

   [아우-?]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는 듯 고개만 연달아 갸웃거렸고, 뒤늦게 큰 소리를 듣고 달려온 부모가 아이를 감싸며 영상은 끝이 났다.

     

   1분 짜리 짧은 SNS 영상.

   이 영상이 네모버스터의 판매량에 파격적인 변화를 주었다.

     

     

   * * *

     

     

   【요즘 화제인 이블스 사社의 신작 장난감 리뷰!】

   조회수 561만

   【네모버스터로 D○○M을 돌려보았다!】

   조회수 3.5만

   【최신 그래픽카드보다 성능이 좋다!? 네모버스터 100대로 최신 게임 돌리기】

   조회수 110만

     

   “……분명 아무것도 안 들어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레갈리아는 그리 말하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나는 모니터에 띄워진 영상 제목과 그 조회수,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장난감의 판매량 그래프를 보면서 침묵에 잠겼다.

     

   “음…… 이상한 건 안 넣었는데요.”

   “그럼 대체 뭘 넣었길래 태엽 감는 로봇이 제 스스로 움직이는 건가!?”

   “아니, 간단한 회로를…….”

   “전지도 없이 어떻게 움직이는데!”

   “그야, 태엽이 있으니까. 그 동력으로…….”

   “그깟 태엽 감아서 나오는 동력이 얼마나 된다고!”

     

   레갈리아는 정말 속이 다 터진다는 듯 퍽퍽 가슴을 후려쳤다. 그러나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소리를 들을 만한 일인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그 정도 회로도 넣으면 안 되는 건지 몰랐지.

     

   “장난감을 만들랬더니, 저런 걸 만들다니!”

   “장난감 수준인데요…….”

   “그야 자네 기준에선 그렇겠지만-!”

     

   고작 이 정도로 저렇게나 열불을 내는 레갈리아를 본 나는 슬며시 연구실 한쪽에 짱 박아둔 로봇 하나를 떠올렸다. 초능력을 이용해 반 영구동력을 완성한 그 로봇을.

     

   만일 레갈리아가 그런 로봇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안 들켜서 다행이다.’

     

   끝까지 숨겨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레갈리아를 향해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음화 보기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