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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야, 춘봉아.”

    “…왜.”

   

    춘봉이의 안색이 파리하다. 쬐깐한 게 저러고 있으니 불쌍해서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수준이다.

   

    “밥 가져올 테니까 쉬고 있으라고.”

    “…응.”

   

    춘봉이가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간다.

   

    서준은 검을 허리춤에 매달고 집을 나섰다. 신검금가의 독문무공 중 하나인 황룡도하黃龍渡霞를 펼쳐 은밀하게 거리로 나오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영약이라….’

   

    어디서 구할 방법이 없나 고민하며 시장에서 만두를 샀다. 당연히 고기 만두다. 한창 성장할 나이인 춘봉이는 좀 잘 먹을 필요가 있었다.

   

    “슬슬 돈도 구해야겠네.”

   

    가끔 인적 드문 데서 흑도 놈들을 마주치면 그만한 횡재가 없다. 대부분 빈털털이지만 위치가 좀 있는 놈들은 주머니가 꽤 부유하다.

   

    때마침 저기 골목 쪽에 누가 봐도 흑도처럼 생긴 놈 하나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흠….”

   

    그 모습이 수상쩍기 그지없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니 어울리지도 않게 행인 행세를 하는 놈들도 보였다.

   

    “알 바 아니긴 하지.”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으슥한 곳에서 흑도 놈과 눈이 마주쳤다.

   

    “아재요, 돈 좀 있나?”

    “멍청한 놈.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살귀!”

   

    행인인 척을 하고 있던 놈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주변을 에워쌌다. 서준은 픽 웃었다.

   

    “거참, 이래서 살려두면 안 된다니까.”

   

    춘봉이가 하도 피에는 마성이 있다, 살인에 맛이 들리면 큰일난다 잔소리를 해대서 몇 대 쥐어패고 보냈더니 이 꼴이 나지 않았는가.

   

    “근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쳐라!”

   

    좁은 골목길. 나란히 줄 선 사내놈들이 칼을 들고 덤벼든다.

   

    “언제 봐도 멍청한 친구들이야.”

   

    이러면 앞에 둘, 뒤에 둘, 네 명씩만 상대하면 그만 아닌가.

   

    서준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당황한 사내 둘이 박도를 크게 휘두른다.

   

    카앙-!

   

    불꽃이 튀며 검과 칼이 맞물렸다. 사내들과 눈이 마주친 서준이 히죽 웃었다.

   

    “안녕.”

   

    왼손이 굽어진다. 검지와 중지로 딱밤을 때리듯 손가락들을 단숨에 펼쳤다.

   

    퓨퓩-

   

    미간에 구멍이 뚫린 사내 둘이 허물어진다. 서준은 그 중 한 놈의 멱살을 잡고 뒤로 집어던졌다.

   

    “어어…!”

   

    시체와 부딪힌 흑도 놈들이 얼을 탄다. 그 틈에 남은 시체 하나를 방패 삼아 움켜쥔 서준이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퍼버벅-

   

    잔인무도한 흑도 놈들답게 동료의 시체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선두의 사내가 시체에 깊숙히 찔러넣은 칼을 비틀며 웃었다.

   

    “죽어라!”

   

    이 좁은 골목에서 피할 틈이 있을 리도 없다. 살귀 역시 꿰뚫렸다 생각한 사내가 시체를 발로 걷어차 칼을 뽑아냈다.

   

    “어?”

   

    쓰러진 시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그의 다리 밑에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아악────

   

    “끄아아악…!”

    “내, 내 다리!”

   

    다리 사이로 기어가듯 몸을 날린 서준이 넓게 휘두른 검에 사내들의 다리가 잘려나갔다. 몸을 튕겨 일어난 서준이 그들의 목숨을 거두며 웃었다.

   

    “한동안 풍족하겠구만.”

   

    뒷골목이 피로 얼룩졌다.

   

   

    *

   

   

    “끄응….”

   

    홀로 선 서준이 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좀 격하게 움직였더니 삭신이 쑤신다.

   

    “좀 많긴 했지.”

   

    서준은 툴툴대면서도 알뜰하게 놈들의 주머니를 털어 재산을 불렸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다들 주머니 사정이 얄팍했다. 수익이 기대 이하다.

   

    서준은 혀를 차며 피에 젖은 만두를 땅에 내다버렸다. 

   

    “허탕이네.”

   

    전신이 피로 젖은 채 거리로 나서자 사람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만두를 파는 상인도 몸을 벌벌 떨어댔다.

   

    묵묵하게 다시 만두를 산 서준은 은밀하게 집으로 복귀했다.

   

    “여, 춘봉이. 오빠 왔다.”

    “왔…, 야 이 새끼야! 너 또 뭐 하고 왔어!”

    “난 잘못한 거 없어.”

    “아이고…!”

   

    이마를 탁 친 춘봉이가 짧은 다리로 바쁘게 움직여 물에 적신 천을 준비했다.

   

    “가루 떨어지니까 빨리 씻어!”

   

    갈색으로 굳은 피를 대충 씻어내고 옷까지 갈아입자 춘봉이가 심각한 낯으로 앉아 제 앞자리를 가리켰다.

   

    “야, 앉아봐.”

    “왜.”

    “앉으라면 좀 앉아!”

   

    서준이 자리에 앉았다. 춘봉이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 기 전에 입에 만두를 쑤셔박았다.

   

    “으브븝…!”

    “우리 먹고 하자, 먹고.”

   

    입에 있는 만두를 뱉을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춘봉이가 열심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한다.

   

    “어이구 잘 먹네. 이대로 쑥쑥 건강하게만 자라주렴.”

   

    만두를 꿀떡 삼킨 춘봉이가 눈을 부라렸다.

   

    “너 내가 지랄 좀 하지 말랬지.”

    “힝.”

   

    깊디깊은 한숨을 내쉰 춘봉이 입을 열었다.

   

    “슬슬 뜨자.”

    “여기를? 갑자기 왜.”

    “오늘 이러고 와서도 모르겠냐? 이대로면 너 칼 맞아 죽을 일만 남았어.”

   

    그녀의 말에 서준이 씩 웃으며 허리춤의 검을 두드렸다.

   

    “에이, 내가 다 조지고 여기 먹을 수도 있지.”

    “안 돼. 도대체 몇 명을 죽이려고.”

    “명이라니. 내가 봤을 때 흑도 친구들은 마리로 세도 돼.”

   

    그러면 살인이 아니라 도축이 된다. 도축 좀 한다고 정신 건강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러니 좀 많이 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삼단논법을 완성한 서준이 가슴을 활짝 펼쳤다.

   

    “개똑똑하지.”

    “개병신새끼.”

   

    춘봉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내 장난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던 서준은 가만히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흑호문 정도 되는 놈들이면 영약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너….”

    “아닐 거 같긴 한데 혹시 모르잖아?”

   

    춘봉이가 질끈 눈을 감았다. 서준은 그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슬렁어슬렁 집밖으로 걸어나가자 뒤편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도 아니고.”

   

    파핫-! 서준이 웃었다.

   

    바보라니. 병신, 개새끼, 씨발새끼 하던 춘봉이가 바보 같은 말을 쓰니 괜히 웃기다.

   

    “마,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MUGONG 고수 이서준. 고작 흑도 놈들 칼에 맞아 뒤질 만큼 허접하진 않다.

   

    오늘도 그의 검이 부단히 허공을 갈랐다.

   

   

    *

   

   

    춘봉이 말하길, 나는 기를 다루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하였다.

   

    이대로 검만 죽어라 휘둘러도 흑도 놈들 상대하는 데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퓩-

   

    괜히 흙바닥에 지탄을 날려보던 서준이 턱을 긁적였다.

   

    ‘검에 기를 불어넣는 경지가 일류라….’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그 기가 외부로 드러나 검기劍氣가 된다.

   

    서준은 현재 이류와 일류 사이 그 어딘가의 경지에 있었다. 무공을 배우고 일 년만에 이룬 성취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빨랐다.

   

    하지만 서준은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기를 가지고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앞에 길을 두고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야, 서두르지 말랬지. 너 정도면 충분히 빠른 것도 아니고 그냥 존나 빠른 거야.”

   

    서준은 듣지 못한 듯 땅에다 지탄만 푝푝 날려댔다. 그런 서준을 보며 춘봉이 혀를 찼다.

   

    사실 경지를 올리는 데 집중했으면 진작 일류가 됐을 놈이긴 하다. 하지만 지난 일 년간 춘봉은 그에게 기초만을 때려박았다.

   

    당연한 일이다. 사파 놈들이면 몰라도 무의 끝을 목표로 한다면 기초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애초에 신공쯤 되는 무공은 어설프게 익히면 큰일난다. 주화입마로 광인이 되든 혈맥이 터져 죽든 할 테니까. 

   

    신공의 반열에 속하는 황운신공. 같은 깨달음을 통해 만들어진 황운신검과 황룡도하.

   

    황운신공은 심법이고, 황운신검은 검법이자 보법이다. 황룡도하는 신법이자 경공술이었다.

   

    그야말로 호화로운 무공들이다. 서준의 자질이라면 충분히 대성할 가능성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천하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리고도 남는다.

   

    “근데 뭐가 그렇게 급해?”

    “몰라서 묻냐?”

    “그럼 모르니까 물어보…, 쿨럭…!”

   

    한 번 시작한 기침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사지의 말단부터 서서히 음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대로면…, 반 년 정도일까.’

   

    입술을 깨문 춘봉이 서준을 노려봤다. 어차피 자신은 가망이 없다. 영약이 괜히 영약이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을 살며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니 서준이라도. 저 모자란 놈이나마 제대로 성장해 신검금가의 명맥을 이어줬으면 했다.

   

    “야, 안 되겠다.”

   

    그러니까 제발. 저런 무모한 짓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나 잠깐 나갔다 온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이서준. 거기 서.”

   

    서준의 걸음이 멎었다. 오늘따라 커보이는 등이 굳건하다. 불현듯 저 고집을 꺾는 건 힘들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붙잡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일 년이야. 일 년 본 애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뭐 하는 거야?”

    “…….”

    “그냥 얌전히 수련만 해. 십 년 정도면 무림에 나가서도 꿇리지 않을 거야. 그때 네가 신검금가의 이름을 알려. 중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게끔. 난 그거면 돼.”

   

    서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따라 더욱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춘봉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웬만하면 사람은 너무 믿지 말고. 신검금가를 멸한 놈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니까. 정파 놈들일 수도 있어. 애초에 그놈들도 죄다 속이 구린 놈들뿐이라.”

    “…….”

    “하긴 뭐. 너는 상관 없겠다. 들러붙는 여자도 후려패는 놈인데.”

   

    툭 던진 농담에 그제야 서준의 입술이 움직인다. 춘봉은 그 입술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야.”

    “…뭐.”

    “희야.”

    “뭐, 뭔데 갑자기.”

   

    춘봉의 눈이 당황스레 깜빡인다. 서준이 씩 웃었다.

   

    “희야. 금희 이 못난 동생아. 오빠를 너무 좆으로 보는 거 아니니? 내가 뭐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가 허리춤의 검을 쓰다듬었다. 얇은 손톱달이 구름에 가려 일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드리웠다. 그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오빠가 약 가져올 테니까.”

   

    달을 가린 구름이 흘러가고, 옅은 빛이 내리운 곳에 서준의 모습은 없었다.

   

    “…오빠는 지랄.”

   

    희가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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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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