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튜토리얼 존.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모종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의 마스터가 되는 스킬.

이 안에서라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전능감이 샘솟았다.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초보 마스터로서 잊지 않고 우선적으로 한 것은 출입구 봉쇄.

요즘은 숙련자들을 고려해서 스킵 기능도 넣어두는 추세지만, 자고로 모든 과정을 완료해야만 본게임이 가능한 구조야말로 근본.

중간 탈주는 안 될 말씀이다.

[이하 항목들을 설정하여 주십시오.]

– 장르

– 진행 절차 (*실시간 자율 진행도 가능합니다.)

– 클리어 조건

다음은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로 상태창이 떠올라 안내해 왔다.

말하자면 튜토리얼을 위한 튜토리얼인 셈이다.

‘장르는 게임 장르를 말하는 거겠지.’

FPS, 호러 등 여러 항목들을 지나. 눈에 띈 캐주얼 액션 장르를 선택했다.

마리아만 있었으면 모를까. 온실 속 화초로 자랐을 게 뻔한 료나 황녀에게 이 이상 피 튀기는 경험을 시킬 수는 

없었기에.

어차피 튜토리얼 존 안에서는 죽어도 되살아나는지라 적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진행은 내가 알아서 하는 걸로 하고···클리어 조건은 반드시 있어야 해?’

[해당 스킬은 ‘개연성’의 영향을 받습니다.]

[형평성에 맞는 클리어 조건을 설정해 주십시오.]

거 같은 편끼리 깐깐하게 굴기는.

형평성 얘기까지 하는 걸 보면 불합리한 조건을 내세우는 것도 안 되려나 보다.

‘참고로, 클리어 조건을 시간 경과로 할 경우 가능한 최대 길이는?’

[현재 해당 스킬의 최대 유지 시간은 ‘30분’입니다.]

‘클리어 조건을 떠나서 애초에 리미트 자체가 30분이었나. 그럼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걸로.’

[모든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튜토리얼 종료까지 28분 47초 남았습니다.]

이것으로 운명의 주사위는 내 손에 의해 굴려졌다.

남은 건 주어진 시간과 조건을 십분 활용하는 것뿐.

[아아, 잘 들리십니까?]

눈으로만 보던 상태창을 직접 띄우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여기에 아까까지의 강적을 한낱 ‘요소’로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진행을 위한 열의로 이어진다.

[그럼 지금부터! 어···그 뭐냐, 허수아비 RPG의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안전한 곳에 고이 모셔뒀던 소녀들을 다시 불러냈다.

이에 도적놈이 움직이려던 것을, 강제로 정자세로 만들어 그대로 굳혀버렸다.

“뭐, 뭐야 이게···!”

[지금부터 당신은 플레이어들의 연습을 위한 ‘허수아비’입니다.]

“오.”

“으음···갑자기 막 풀리고 그런 건 아니겠지···?”

료나 황녀는 아직 경계 어린 기색.

반면 우리의 용감한 마리아는 신기하다는 듯이 다가가 톡톡 건드려도 보았다.

[자, 플레이어 여러분! 여러분 앞에 각각 뿅망치 하나씩을 놔드렸습니다.]

[근처로 가서 Z키···가 아니라, 주워서 사용해 보세요!]

바닥에서 생성되는 뿅망치 2개. 간택된 두 병아리는 아직 상황 파악이 채 안 됐을 거면서도 착실히 진행에 따라주었다.

마리아에 이르러선 기다렸다는 듯이 집어 들더니. 자세부터가 남다르게 표적에게로 휘둘렀다.

파바방-!!

“크헉-!!”

스윙에 맞춰 터져 나오는 화려한 이펙트.

우와아, 하는 반응과 함께 소녀들이 눈을 반짝인다. 애써 기억 속 캐시템들을 참고한 보람이 있었다.

나로서도 당하는 입장의 죽을 맛은 조금도 상관 않는 뽀짝함이, 특히 데미지를 나타내는 귀여운 폰트의 숫자가 퍽 만족스러웠다.

“허억···허억···.”

출력된 수는 3. 다시 말해 3 데미지란 뜻이다.

‘명목상’으로는.

실질적인 수치로는 방금 그걸로 일반 드래곤 1마리는 넉넉하게 잡았을 거다. 대충 내 마검사 캐릭터의 평타를 기준으로 삼았으니까.

[뿅망치를 이용해서 눈앞의 ‘허수아비’를 계속해서 공격해 보세요!]

알아서 잘하던 마리아는 판까지 깔아주자 더 신나서 날뛰었다. 아예 즉석에서 기술까지 만들어서 시연하고 난리도 아니다.

이쯤 되니 머뭇거리던 료나 황녀도 깨작깨작 뿅망치를 휘둘러보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기세에 편승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어느덧 스킬 유지 시간도 막바지에 가까워질 무렵. 두 플레이어는 여태 질리지도 않고 꾸준히 허수아비를 괴롭혔다.

“에잇, 에잇!”

정확히 말해서 어느 시점부턴 료나 황녀의 단독 무대였다.

한번 재미 붙이고 나서는 마리아보다도 적극적이게 되더라.

그녀는 마리아가 잠시 휴식할 동안에도 그런 거 없이 쉬지 않고 뿅망치를 휘둘렀다.

“마리아, 얼른 일어나. 아까 합동 기술 그거 다시 해보자!”

“넹.”

이를 계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기를.

황녀님은 또래 친구 생겨서 좋고, 우리는 황실 인맥 생겨서 좋고. 끝에는 웃음만 남는 깔끔한 마무리 아닌가.

“이번엔 내가 팔 각도를 좀 더 올려볼게! 마리아는 반 박자 정도 느리게!”

“넹.”

무엇보다 저렇게 꺄르르 어울리는 소녀들을 보자니 그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장르를 임의로 설정할 수 있던 게 참 다행이었다.

아무리 피해자들이 손수 가해자를 처벌하는 거라지만. 그 과정이 잔인했다면, 글쎄. 상상으로 통쾌한 것과 그걸 실제로 보는 건. 심지어 직접 행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그에 반해 이건 뭐 거의 마법 소녀 체험장이나 마찬가지고. 그나마의 비명도 데시벨을 반쯤 낮춰놨으니 애들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으리라.

“죽어라, 죽어!! 레이헴의 원수! 좀 더 고통에 울부짖으란 말야!!”

···아닌가?

“아아···복수란 건, 남을 괴롭히는 건 이렇게나 즐거운 거구나···. 나를 지켜봐 줘 레이헴···!”

···미안하다 제국민들. 아무래도 내가 그녀 안에 잠든 무언가를 깨워버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황족인 페 도로리콘 일가는 각자 확고한 성향들을 띠었었지.

누군가는 앞으로 저기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구출 과정에 생겨난 피치 못할 사고이니 이 부분은 참작해 줬으면 한다.

[저···황녀 전하?]

슬슬 말려야 할 것도 같고, 스킬이 끝난 이후 계획을 구성해야 하는 참.

도적 사내의 의식을 잠시 끊어놓은 채, 왜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지르냐며 흥분한 료나 황녀를 연호했다.

[전하···?]

“엇. 어···응! 무슨 일이야??”

세 번쯤 부르니 흘러내린 침을 닦아내며 응답하는 그녀.

마리아는 굳이 부르지 않아도 뭐가 있겠거니 알아서 집중해 주었다.

[그게, 이제 스킬의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죠.]

“그거참 아쉽···아니 큰일이네. 아직 안전이 확보된 게 아닌데···.”

“오빠가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지?”

[맞아.]

[그래서 말입니다만, 전하. 제가 전하께 감히 무언가를 청해도 괜찮을까요?]

“응. 얼마든지. 다 나를 지켜주기 위한 거잖아? 뭐든지 말해! 뭐가 필요한데?”

새로운 자극에 맛들려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애는 착하다.

함부로 ‘뭐든지’를 운운하는 건 미래가 살짝 걱정이 들긴 한다만. 당장에 나로서는 잘된 일.

황실의 부족한 안전교육에 감사하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제가 바라는 건···현재 전하께서 갖고 계신 가장 값진 것입니다.]

“내가 가진, 가장 값진 것···?”

료나 황녀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설명이 부족했으니 그럴 법도 하지. 대뜸 보상이나 내놓으란 것처럼 보였을 거다.

[제가 이걸 왜 필요로 하냐면···]

“그러니까 너는 내 몸···다시 말해 순결을 원하는 거지···?”

[네, 네에??]

“오빠 변태. 저질.”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범상치 않은 남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대놓고 황족의 몸을 원해올 줄이야···그것도 겨우 8살인 나를···. 그으···촉박한 건 나도 아는데, 그래도 조금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을래···?”

“오빠. 마리아도 그런 눈으로 봤어?”

[아냐, 아니라고!!! 전 그냥 현물 말한 거라고요! 현물! 스킬 사용에 필요해서어-!!]

“아···그, 그런 거였어? 에이, 진작에 그렇게 말을 하지···괜히 오해했잖아. 헤헤···.”

“까비.”

해명할 여유도 안 줬으면서. 목 밑까지 올라온 말은 또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 도로 집어삼켰다.

마리아의 발언은 잘못 들었겠거니 넘겼다.

“이거면 될까?”

그사이 진정한 료나 황녀는 브로치 하나를 꺼내었다. 내 기억에도 익은, 황실의 문양이 새겨진 붉은색 브로치.

[저···미리 말씀드리자면 터뜨릴 예정이라서요. 이건 아무래도 황실 모독이 아닐는지···.]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지 뭐. 그건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써버려. 이거면 충분하지?”

[네. 차고 넘칩니다.]

마지막 30초. 작전을 설명하며 마리아에게 황녀를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조심해야 돼.”

[괜찮아. 마리아. 다 잘될 거야.]

파츠츠츳- 튜토리얼 존이 마치 꺼져가는 홀로그램과 같이 흩어지다 사라졌다.

계획은 지체 없이 즉행. 상대가 정신을 추스르는 동안 일행들을 최대한 뒤로 물렸다.

“이, 건방진 새끼가아-!!”

A급 이상 가는 강자를 무력화하기엔 30분가량의 고문으로도 수 초가 고작.

금세 전의를 가다듬은 사내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뿅망치를 휘두른 소녀들보다도, 환경을 조성한 나를 향한 원한으로 그득했다.

푸욱-

브로치를 있는 힘껏 던지며 피하지 않고 단검에 맞았다.

심장을 노렸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곳에 급소는 없다. 어디에도.

‘머리를 노렸어야지.’

한 방에 끝내지 못한 것으로, 너의 패배다.

“너 이 새끼, 정체가···!”

[밸류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가치 측정 불가의 폭발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무의미한 발버둥이 보인다.

인형술사의 마나 실이 우리를 묶었다. 튼튼한 고기 방패를 얻었다.

* * *

어느 방송인의 꼬접 기념 장비 폭파 퍼포먼스, 그 이상 가는 불꽃이 지나간 현장.

직격당한 사내가 곡소리를 내면서도 제법 멀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름 세상에서 손에 꼽게 비싼 물건을 갖다 바친 건데. 입수 난이도 최하위의 스킬이라고 효율도 이 꼬라지다.

“하아, 하아···. 뭐야 저건, 허수아비?”

‘아, 로브는 날라갔나.’

사내의 상태는 흡사 광기. 이번에는 제대로 머리를 노리겠단 일념으로 통증도 마다 않고 질주했다.

뭐, 나는 숫자나 세면서 기다려볼까.

3, 2···

캉-!

조금 빨리 왔네.

“···어? 어어···?”

“이게 그 소녀가 말한 마수인가. 수고 많았다. 감사를 표하지. 그 폭발 덕에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무장한 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 이에 대비되는 귀여운 분홍 머리 포니테일의 소녀 기사.

순식간에 전장의 중심을 선점한 그녀는 눈앞의 적은 거들떠도 안 보며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많이 쳐줘도 중학생쯤이려나, 필리아 제국도 여전하네···.’

“뭐, 뭐야. 말도 안 돼···댁이, 기사단장이 왜 이런 곳에 있어···?!!”

“나는 황실 기사단 소속 제4 기사단장, 사성황로의 일각. 이즈리 파 체스트.”

아마 꿈에도 몰랐을 거다.

“황녀 전하를 모시러 왔다.”

본인들이 어떤 인물을 건드린 건지.

“끕, 끄흐흐···. 넌 이제, 뒤졌다···.”

“아, 아아아···.”

맥아리를 상실해 버린 그를 추모하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건만, 흙바닥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독자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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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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