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능력을 공개한 후.

        다들 기겁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의외로 별 반응 없었다.

        앨리스는 아예 최면 걸어달라고 계속 조르기까지.

        

        때문에, 입학식이 전부 끝난 후.

        난 동기들에게 에워싸여 장기자랑 시간을 가져야 했다.

        

        

        [대상이 ‘완벽하게’ 최면에 걸려듭니다.]

        

        “앨리스, 왼손 들어.”

        “오오!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요! 신기해요!”

        

        

        파트너는 앨리스.

        그녀가 손을 척 올리자, 주변에서 오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걸 진짜 당하네… 아, 유진. 혹시 어디까지 조종할 수 있는 거야?”

        “최면이 얼마나 세게 걸리냐에 따라 다른데, 지금은 아마 뭐든지.”

        “헤에, 대단해요! 유진!”

        “…….”

        

        

        이리 가볍게 여길 상황이 아닌데 말야.

        아까 못 봤나? 내가 음마랑 도플갱어 자멸시킨 거.

        그런 일이 자기한테 일어날 수도 있잖아.

        

        한데 이리 태평하다니.

        순수한 걸 넘어 안전불감증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앨리스, 네가 모르나 본데….”

        “———앨리스 리튼우드 생도. 그리고 서유진 생도.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음?”

        

        

        잔소리 좀 하려 했더니, 이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불쾌하다는 듯 잔뜩 눈살을 찌푸린.

        

        

        “우선, 앨리스 리튼우드. 뭘 믿고 처음 만난 이에게 능력을 허용한 거지?”

        “네? 아니, 그게… 궁금해서….”

        “지금 자네는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제 손으로 넘겼다. 각성자는커녕 일반인도 안 할 멍청한 짓이지.”

        “……?”

        

        

        내가 하려던 말을 그대로 하네.

        과연 전 세계에 7명밖에 없는 S급 각성자다운 일침이었다.

        

        

        “그리고 서유진 생도. 아무리 부탁 받았다 해도 그렇지, 동기에게 능력을 사용하다니. 제정신인가?”

        “……?”

        “안 되겠군. 이사장실로 따라오게.”

        ‘뭐야, 이 아줌마 왜 이래.’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 줄은 몰랐지만.

        

        

        * * *

        

        

        유진이 이사장에게 불려간 후.

        앨리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책감 섞인 한숨이었다.

        

        

        “저 때문에 유진이….”

        “그래. 너 때문이야.”

        “……유시아 양.”

        

        

        그런 그녀 옆, 꼴 좀 보라는 듯 입꼬리를 올린 유시아.

        

        

        “덕분에 걔, 이사장님한테 단단히 찍힌 모양인데. 그렇게 민폐를 끼쳐야 속이 시원했어?”

        

        

        아니꼽던 감정이 대폭발했다.

        

        앨리스만 아니었으면, 오늘 하루 유진은 그녀가 독점했을 거 아닌가.

        정작 둘만 같이 있을 땐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 했지만. 아무튼.

        

        그것만 해도 열받는데, 그동안 자신에게 대놓고 싸움을 걸어댔으니.

        기회를 잡은 그녀가 독설을 쏟아붓는 것도 당연했다.

        

        

        ‘무엇보다, 걔가 혼날 거 생각하니 엄청 짜증 난단 말이지.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조금 발언의 수위가 강했지만.

        아직 그녀로선 이유를 모를 일.

        

        강도 높은 비난 아래, 앨리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죄송해요.”

        “쯧.”

        ‘이 영악한 년. 마음 약해지게, 진짜.’

        

        

        덕분에 시아의 화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진심으로 풀 죽은 게, 유진에게 폐를 끼쳐 미안해하는 게 절절히 느껴졌으니까.

        

        분노가 약간 가신 후 찾아온 건 순수한 의문이었다.

        

        

        “그래서. 왜 최면 걸어달라 한 거야? 그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닌 듯한데.”

        

        

        최면이란 능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애초에 음마 자해시키는 걸 눈 앞에서 본 참이고.

        

        한데, 그걸 걸어달라고 떼를 써?

        꼬리를 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짓이냐.

        

        

        “전 그냥, 유진이랑 더 친해지고 싶었어요.”

        ‘……머릿속이 꽃밭인가?’

        

        

        지극히 순진한 동기.

        시아의 눈에 한심함이 자리 잡았다.

        

        차마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독설을 내뱉은 건 덤이었다.

        

        

        “겁대가리가 없구나? 걔가 죽으라 하면 죽어야 하는데, 그걸….”

        “아뇨. 유진이 그럴 리가요.”

        

        

        하지만, 이번엔 앨리스도 가만 있지 않았다.

        확신에 찬 눈이 시아에게 향했다.

        

        

        “유진은 저한테 절대 그런 짓 안 시킬 거예요.”

        “……그야, 죽으라고는 안 시키겠지만. 걔도 남자애니까 말야. 이것저것.”

        “그런 것도 안 할 거예요. 유진은 그런 사람이에요.”

        

        

        앨리스의 머릿속, 오늘의 기억이 되감겼다.

        

        자신이 바짝 붙자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대던 유진.

        살짝 야한 농담을 했을 때 기겁하던 반응.

        너무도 순진한 청년.

        

        그 정도로 순진한 애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

        하루 동안 그와 함께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순간 느껴졌거든요. 이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지켜주겠구나- 하는 게.’

        

        

        애초에 이유 따위 나중에 가져다 붙인 것.

        첫 만남부터 왜인지 확신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확실히. 걔가 못된 짓을 하는 이미지는 떠오르질 않네.’

       ​

        

        시아 역시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

        유진이, 가령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자신의 무의식이 그럴 리가 없다 항변하는 것처럼.

        

        

        ‘오히려 해달라 해도 절대 안 해서 속 터지게 만들 것 같아.’

        

        

        반대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걔랑 나중에 사귀게 될 여자가, 최면 써서 이런저런 일을 하자 한들.

        그는 한사코 미안해서 안 된다 손사래를 칠 거라고.

        건실하다 못해 속 터지게 굴 거라고.

        

        

        “하긴. 걔는 사귀는 애한테도 안 그럴 것 같으니까. 답답하게.”

        “…시아 양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라, 너도?”

        “예!! 제가 최면 걸고 장난 쳐도 된다 했는데 진심으로 질색하셔서…….”

        

        

        둘의 대화에 영문 모를 분노가 꾹꾹 들어찬 건, 결코 우연만은 아니었다.

        

        

        * * *

        

        

        한편, 자신이 답답한 청년 취급 받고 있다고는 꿈에도 모르는 유진.

        

        이사장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는 수십 가지의 변명을 생각했다.

        최면에 대한 변명이었다.

        

        

        ‘다시는 생도들에게 안 쓰겠다고 맹세… 아니, 쓰긴 써야 하는데. 이상한 데 안 쓸 거라 어떻게 납득시키지?’

        

        

        이사장의 교육 방침상 문제 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는가.

        최면 사용을 어떻게 둘러댈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걱정은 하등 쓸모 없었다.

        

        

        “…서유진 생도. 이거 받게.”

        “이건…?”

        “A급 각성자임을 증명하는 카드일세.”

        ‘갑자기? 아니, 왜 벌써 준대?’

        

        

        이사장실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내민 카드.

        그게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유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펼쳐진다.

        

        이 카드는 국가 공인 각성자의 증표.

        1회차에선 졸업하고 나서야 받았던 거니까

        

        그리고, 이걸 지금 준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생도 서유진이 아닌, 각성자 서유진에게 긴급히 부탁할 일이 있다.”

        

        

        그를 가르칠 대상. 생도가 아닌.

        동등한 각성자로서 대하겠다는 것.

        

        

        “최면 건을 혼내려는 게 아니었군요…?”

        “내가 그런 걸로 풋내기들 기 죽일까. 사고만 안 치면 상관 없어.”

        ‘역시, 1회차랑 똑같네.’

        

        

        유진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 아줌마는 효율충이니까, 분명 내 능력을 듣고 뭔가 시킬 게 생각난 거겠지.’

        “한국 각성자 협회 소속. A급, 서유진. 잘 부탁드립니다. 설하연 협회장님.”

        “…자네는 꼭 십 년은 굴러먹은 사람처럼 구는구먼. 빠릿빠릿해.”

        “드라마에서 워낙 많이 봐서요.”

        “허어.”

        

        

        약 11년 경력의 폼 잡기에 이사장 겸 각성자 협회 협회장, 설하연도 감탄.

        

        하지만 유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이건 폼 잡기가 아닌, 까라면 까야 하는 임무에 불과했으니까.

        

        갓 입학한 놈이 10년차는 된 것처럼 행세하는 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고 하는 짓이었다.

        

        

        “최면이 필요한 일, 맞습니까?”

        ‘눈치도 빠르고… 이 녀석, 키워볼 만하다!!’

        

        

        이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돈도 산더미처럼 벌었고, 관절도 슬슬 쑤시니. 

        이제 다 때려치우고 시골에서 농사나 짓는 삶을 살고 싶은데.

        한국 유일 S급 각성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늙어서까지 고생하는 그녀 아닌가.

        

        한데 눈 앞에 차기 S급이, 에이스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줘?

        힘만 강한 게 아니라 일머리까지 있다고?

        신입 주제에 건방지군. 대학원생… 아니, 내 후임으로 삼아야겠어.

        

        이런 생각에 군침이 싹 돈 그녀였다.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키워주마. 이 문란한 신입 같으니라고.’

        “그래. 실은….”

        “흠, 흠.”

        ‘좋아. 잘 하면 지원금 뜯어낼 수 있겠다.’

        

        

        하지만 유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집중했다.

        이 퀘스트만 잘 해결하면 그녀의 총애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만 모르는 비극이었다.

        

        

        * * *

        

        

        간단한 퀘스트 브리핑이 끝난 후.

        난 이사장 겸 협회장과 함께 건물 지하로 향했다.

        첫 임무를 위해서였다.

        

        

        『긴급 퀘스트 – 미등록 각성자 회유!』

        

        ‘게임이면 이런 창이라도 뜨지 않았을까?’

        

        

        그녀가 내린 임무는 간단했다.

        얼마 전, 아카데미를 습격한 빌런 집단.

        거기 가담한 미등록 각성자의 회유.

        

        별거 아닌 임무였지만, 여기엔 한국이 각성자 최강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의 편린이 숨어있었다.

        

        

        -빌런 아닌 게 확실합니까?

        -그래. 심지어 전과도 깨끗해. 습격 당시에도 기물이나 좀 부수다 잡혔으니 말이야. 

        -그런데 왜 협조 안 하는 겁니까?

        -그걸 모르니 자네에게 부탁하는 거다. 무저갱에 처박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라 말야.

        

        ‘애매하긴 하지만, 빌런만 아니라면야 뭐.’

        

        

        빌런.

        각성자들 중 드문 비율로 나타나는 돌연변이들.

        살육을 즐기고 테러를 일삼는 악惡.

       ​

        내 최면으로도 갱생이 불가능한 이들이었다.

        1회차 때 여러모로 시도해 봤는데, 진짜 답이 없더라고.

        죽는 것보다 착하게 사는 걸 더 싫어하냐. 어떻게.

        

        아무튼.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는 빌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다.

        평범한 각성자인 척 굴다, 제일 중요할 때 사고 치고 튀는 놈들 아닌가.

        각성자 사이 빌런이 숨어있을까 노심초사하는 것도 당연했다.

        

        반면, 한국은?

        

        

        『육감六感 (S Rank) – 감각에 한해 인간을 초월한다.』

        

        ‘저 아줌마 촉은 100퍼센트 맞는단 말이지.’

        

        

        게이트 사건 초창기 각성자이자, 현 S급 4위. 설하연.

        그녀만큼은 빌런을 한 눈에 구분 가능했다.

        

        한국이 각성자 최강국이 된 배경이자, 펜타곤 아카데미의 설립 이유 그 자체였다.

        각성자로 활동하려면 이사장인 그녀의 눈을 통과해야 하니, 빌런 걱정은 확실히 덜하지.

        

        물론 빌런 입장에선 아카데미에 안 가면 그만.

        평범한 각성자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으니 만능은 아니지만.

        

        

        ‘문제는, 빌런 무리에 끼어있을 정도면 멀쩡한 인간은 아니라는 건데….’

        

        

        내가 이번에 받은 임무가 특이한 이유 또한 이것이었다.

        

        멀쩡한 각성자가 그 사이코패스 집단에서 버티기 힘들거든.

        뭐만 하면 서로 죽여대는 놈들이니까 말야.

        

        그런데, 걔네랑 같이 아카데미를 습격해?

        그러면서도 사람은 안 죽이고 건물만 부숴?

        

        특이 케이스 중의 특이 케이스였다.

        어째서 1회차 때 내가 몰랐던 건가 싶을 정도로.

        

        

        ‘뭐, 잡힌 거 보면 기껏해야 B급이겠지만.’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첫 임무임에도 불구, 난 긴장 따위 하지 않았다.

        

        A급 상위권만 돼도 생포는 불가능에 가까운 게 각성자.

        그런데 멀쩡히 살아 잡혀있다는 건, 잘 쳐줘도 B급이란 거 아니겠는가.

        그 정도야 일천한 능력치로도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었다.

        

        

        ‘빨리 끝내고 체단실 가야지. 이 아줌마한테서 용돈도 좀 뜯고.’

        “도착했네.”

        ‘타이밍 좋고.’

        

        

        잡생각을 끝내갈 즈음 멈춘 발걸음.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자네가 회유해야 할 상대는….”

        

        -끼이익.

        

       ​

        “이 자일세.”

        ‘와, 눈이 맛이 갔네. 생각보다 간단하겠는….’

        “A급 중에서도 최상위 인재니 살살 다뤄주게.”

        “……!!!?”

        

        

        아니, 왜 여기서 A급이 나와요 아줌마.

        게다가 최상위?

        사실상 고위 클랜 간부 중에서도 구르고 구른 인선 아닙니까?

        

        아, 이건 좀.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불가능한가? 가능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는데.”

        “……하아.”

        ‘이 아줌마, 옛날부터 사람 부리는 게 거칠단 말이지. 잘못하면 죽던 초창기 시절 각성자라 그런가.’

        

        

        마음 같아선 거절하고 싶었다.

        지금 내 능력치로는 ‘딸깍’이 안 되니까.

        

        하지만…

        

        

        ‘눈 보면, 어떻게 틈이 보일 것도 같네.’

        “뭐, 까짓것 해보죠.”

        

        

        어떻게든 될지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10코인, 댓글요정람쥐 님 1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개쩌는 폭탄계란찜을 보글보글

    + 전 저런 캐릭터가 넘모 좋슴니다
    강한 여성… 올바른 성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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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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