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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하스펠트 교수가 없는 연구실은 적막 그 자체였다.

         

       그 마녀가 이 시간에 여기 없다니, 뭔가 이질적이면서도 해방감 가득한 것이 참 좋았다. 이 해방감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내일 컨디션 조절을 생각한다면 오늘은 일찍 자는 게 정답이었다. 그러나 내일로써 모든 게 결정난다고 생각한다면 도통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해가 떨어지고도 시간이 조금 지날 때쯤의 밤. 가벼운 불면에 시달리던 나는 하릴없이 축사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총총 박혀있는 별들과, 지상에 깔린 아크등이 교정을 밝혀주고 있는 탓에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보통 이 근처에서 폼 잡고 고백 갈기는 커플을 엿볼 수 있는데….

         

       그건 별로 재미없다. 이 주변 공간은 연인을 차는 장소로도 쓰이기 때문에 잘만 하면 퇴근길에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자극적인 문화컨텐츠가 없는 이 세상에선 남의 연애가 파토난 걸 보면서 흥미진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뭐, 그건 그렇고.

         

       내가 자정이 되도록 안 뻗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덴 나름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일 시험 당시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기 위함이다.

         

       [특수 이론 : 오일러-라그랑주 변분 이론]

         

       …시간 재는 데 굳이 이런 것까지 쓸 필요 있나. 내가 무슨 빗면 위에서 떨어지는 쇠공도 아니고.

         

       필기시험장은 루브테르 교양관에서 치러지고, 실기시험은 대운동장에서 치러진다.

         

       자, 생각해보자. 필기시험이 치러진 직후 식당을 거쳐 대운동장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각 시간을 체크해보았다. 지리를 잘 알고 있는 탓에 식당에서 들어가고 나가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시작점에서 목표점까지 6분 30초 내외로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정말 사람이 불안하니까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게 만드는구나. 내 성격이 이렇게 되어버린 건 하스펠트 교수 잘못도 분명 있으리라.

         

       뭐 하나 제대로 못 해오면 빠꾸를 먹였으니까. 완벽주의자적인 성향만 좀 고쳐도 사람이 괜찮아질 듯싶었다.

         

       어쨌거나 금화 3만 장에 변태 황자에게 팔려나가는 건 죽어도 싫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마법 연구가 지연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뿐더러, 매일 밤 남정네랑 침대에서 굴러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일 시험은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

         

       반드시.

         

       **

         

       북방 대륙으로 향하는 마차 안.

         

       “메리.”

       “왜.”

         

       클라이스는 수심에 잠기다가, 친구의 애칭을 넌지시 불렀다.

         

       “황실에서 갑자기 우릴 북방으로 호출한 이유가 뭘까요?”

       “나도 몰라.”

         

       메리가와 클라이스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은 북방 전선에서 유능한 전투마도사로 이름을 날린 동기였다. 비록 신분만큼은 달랐지만 입학 직후부터 친분을 유지하기 시작해 교수로 임용될 때까지 늘 우정을 유지해왔다.

         

       그것은 틸레트 아카데미가 학부생 시절만큼은 모든 학생이 평등 속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생겨난 성과였다.

         

       메리가는 원래 성씨도 없던 평민이었다. 어릴 적 마수에게 부모를 잃고 부랑아처럼 구걸하며 저자를 떠돌았다. 비록 노예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그 돈을 한 푼도 낭비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근방의 낙후된 촌락에서 숨어 지내다가,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날 재학생들이 버린 문제집이나 교과서 따위를 주워다가 미친 듯이 읽어댔던 기억은 이젠 메리가의 자랑거리와도 같았다.

         

       사대공작가의 후계자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 클라이스는 메리가의 그 노력을 똑같이 체감할 순 없었지만, 뛰어난 근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해 친구로 두게 되었다. 만일 틸레트 내부에서도 신분제가 유지됐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창밖에서 내리고 있던 진눈깨비는 어느덧 함박눈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싸락거리며 내리는 은가루를 응시하고 있던 클라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눈 안 아플 자신 있어요?”

         

       이번엔 분명 농담조였다.

         

       “벌써부터 아파. 저기 다시 간다고 생각하면 PTSD 올 정도라고.”

         

       메리가는 전역하기 직전 치렀던 전투에서 절멸급 마수에게 한쪽 눈을 잃었다. 다른 마도사라면 모르겠지만, 전장 전역을 넓게 봐야만 하는 지계마도사에겐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클라이스가 화계마도의 한계를 느낀 것도 그 즈음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군을 제대하고 자신들의 모교로 돌아와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제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군인은 으레 틸레트에 교수로 임명되어 후학을 양성하기 마련이었다.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요?”

       “몰라. 한 시간은 더 가야 하지 않을까.”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의미 없는 말이나 주고받으며 시간을 때웠다. 혹시 모를 전투상황에 대비해 마력초를 아껴두어야 했기 때문에 입을 달일 여유도 부족했다.

         

       정말이지, 지루한 시간이었다.

         

       **

         

       “도착했습니다. 북부 캠프입니다.”

         

       밖에서 골렘을 몰던 마부가 천막을 젖히며 들어왔다. 대화의 맥이 끊긴 두 사람은 몸을 비척거리며 설원 한가운데에 발을 내디뎠다.

         

       두꺼운 눈을 밟는 느낌은 오랜만이다.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와 혈향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질 않는다.

         

       “최전선까지 안내하지 않는 건가요?”

         

       클라이스가 알기로는, 여기서 전선까지는 1백 킬로미터를 더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마부는 중간지대에서 차량을 멈췄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사령관님께서 잠깐 저걸 보여주고 오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건….”

       “세상에. 저게 뭐야.”

         

       최전방까지의 거리는 이백 킬로미터 남짓할까. 그만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건 어떤 탑이었다.

         

       구름을 뚫고 하늘 끝까지 뻗어 최상층을 알 수 없는 철탑. 클라이스와 메리가 두 사람이 종군마도사 임무를 마치고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저런 건 보질 못했다.

         

       “얼마 전에 생긴 정체불명의 탑입니다. 재앙급 이상 마수들은 전부 저곳에서 쏟아져나오고 있죠. 군단장께서 추측하시건대, 저 탑의 꼭대기에선 절멸급이 똬리를 틀고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절멸급. 과거에 봉인된 마왕 직속에 해당하는 측근들을 가리키는 용어.

         

       절멸급 마수는 한 마리만 하더라도 전선을 뒤흔들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이들이 최전방에 그림자를 드러낼 때마다 제국에선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는 했다.

         

       “그럼 큰일이지 않아요? 왜 수도에 보고하지 않았어요!”

       “황제 폐하께서는 이미 저 소식을 접하셨습니다. 다만 사회적 동요를 염려하셔서 대중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엠바고를 걸 게 따로 있지…. 여기서 수도까진 불과 3백 킬로미터라고!”

         

       절멸급 마수가 최전방에 나타났다는 건, 수도가 단 하루 만에 함락될 수 있다는 말과 동치였다.

         

       현재 클라이스의 화염마도로는 절멸급을 막지 못한다. 헤를라인의 골렘 군세조차도 절멸급 앞에선 가루가 되어 바스러진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이었기에 감히 말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제1차 저지선을 넘어서던 그 날, 자신들 앞에 나타난 거대한 철갑 비행선을 어떻게 잊겠는가.

         

       “폐하께선 두 분에게 저 탑의 조사를 바라셨습니다. 우선 외관만이라도 보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을지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다행히도 안에 들어가 싸우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괜히 절멸급이 앉아 있는 곳을 들쑤셨다가 벌집에서 큰 놈이 튀어나오면 그날로 제국은 멸망할 테니까. 공세를 준비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법이었다.

         

       클라이스와 메리가는 각자 고개를 끄덕인 뒤 전방으로 이동했다. 다시 마차에서 내렸을 때 두 여인 앞으로 삼성 계급장을 단 사람이 나타났다.

         

       제3군단장인 케인스 중장. 두 사람에겐 익숙한 얼굴이었다.

         

       “음, 어서 오게. 둘 다 오랜만에 보니 좋군.”

         

       두 교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경례하며 관등성명을 댔다.

         

       “클라이스 하스펠트 대령, 황제 폐하로부터 철탑의 조사를 부탁받고 전선에 도착했습니다.”

       “메리가 헤를라인 대령, 마찬가지의 이유로 착임했습니다.”

       “전역한 몸인데 그리 딱딱하게 말하지는 말게나. 그래, 헤를라인. 자네 오른쪽 눈은 괜찮고?”

       “여기 있으니 더럽게 욱신거립니다.”

       “자넨 여전하군. 하지만 회포를 풀고 있을 시간이 없네. 당장 이 시간대면 마수가 범람하기 시작할 때야. 도착하자마자 미안하지만 날 따라와 줘야겠어.”

         

       곧장 군용장비와 스크롤을 보급받았다. 클라이스가 받은 스크롤 중엔 자신의 제자가 손수 빚어낸 것도 있었다. 확실히, 다른 곳에서 온 물품보다 성능과 품질이 압도적이다.

         

       세 사람은 어느 언덕에 도착했다. 불타 그을려 풀 한 포기 날 수 없는 잿빛 고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너머로 자리한 탑이 토해내듯 마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죄다 상급 아니면 재앙급 마수였다. 탑을 조사하려면 일단 길부터 뚫어야 했다.

         

       “적당히 싸우세요, 다른 쪽 눈도 잃기 싫으면.”

         

       클라이스의 충고에도 메리가는 쿡쿡대기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걱정을 귓등으로 들어먹는 건 여전한 모양이다. 대체 뭐가 재밌어서 저리 웃어대는 건지.

         

       “미안, 미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뭐가요?”

       “깊이 생각한 건 아니야. 아,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아카데미 입시도 끝났겠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눈앞의 적에 집중하세요. 감 아직 안 잃었죠?”

       “그럼.”

         

       클라이스는 스태프를, 헤를라인은 제 키만한 스크롤을 꺼내들었다.

         

       전방 마수의 숫자는 어림잡아 20만. 저만한 대군과 맞닥뜨리는 것조차도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종군마도사가 있을까.

         

       아무래도 피곤한 싸움이 될 듯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입시는 다음 편부터..

    2022/07/31 : 주인공 시점을 추가 서술했고, 두 교수의 초반부 대화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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