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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청이 눈을 끔벅거렸다.

         

       “우롱이요? 제가요?”

       

       “감히! 감히!”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보아하니 진심으로 화가 난 모양이다.

       아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화가 났지.

       설마, 변소가 그리도 더러웠던가?

         

       “돈만 날름 삼키고는 보란 듯이 또 꼬리를 쳐? 그 천박한 꼴값으로, 어떻게, 감히……!”

       

       “꼬리를 치다니요? 제가요?”

       

       “너 같은 천것이 감히 옥기린 공자님께! 감히!”

       

       “아. 이런.”

         

       아청이 제 오해를 깨달았다.

       그게 화장실 빠른 이용권에 대한 성의가 아니라, 재벌집 시어머니가 주는 봉투였을 줄이야.

       심지어 그런 것 치고는 약소했다!

         

       그러니 아청도 당연히 억울했다.

         

       당당한 대한민국 사나이가 우리 그이와 헤어져 하는 돈봉투를 어떻게 상상할 수가 있을까.

       상상의 영역 바깥에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었다.

         

       아청이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생산직 노동자가 아니라 천재 과학자로 초전도체를 굽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한 가지 확인부터 해요. 옥기린과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세요?”

       

       “오라,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겠다?”

       

       “아. 짝사랑이다? 아는 사이는 아니시고?”

         

       그러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였다.

       아청이 살살 시동을 걸었다.

         

       “그래서, 뭐, 우롱했다고 치고. 그래서 뭐 어쩔 건데요? 아씨가 뭘 할 수 있지? 부들부들 떨며 소리치기?”

         

       여인이 표독스러운 얼굴이 더욱 표독스러워졌다.

         

       “노갈, 막귀, 저년을 당장 내 앞에 꿇려놔.”

         

       좌우로 끼고 있던 건달들이 한 발짝 나섰다.

       아청이 급히 끼어들었다.

         

       “잠깐!”

       

       “이제서 용서라도 빌 테야? 좋은 말로 했을 때 들었어야지.”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그쪽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저 험악한 아저씨들이 날 꿇려놓고 나면요?”

       

       “팔다리 근맥을 자르고 창관에 던져놓을 거야. 동전 한 푼에 몸을 팔게 될 거고. 하루에 백 명쯤 받게 하면 글세, 얼마나 버틸 수 있겠니?”

         

       [돌발 임무 발생 – 순정과 투기 사이]

       [당신은 심각한 모욕을 받았다.]

       추가 자유 수련점 획득을 위한 행동

       선업)여인과 두 명의 호위를 처치하기

       선업)흑영회에 죄를 묻기

       선업)흑영회를 몰살시키기

       천살성)흑영회를 몰살시키기

         

       [돌발 임무 발생 – 여인 구출]

       [흑영회의 사악한 사업을 알게 되었다]

       추가 자유 수련점 획득을 위한 행동

       선업)흑영회의 사업장을 찾아 여인들을 구출하기

       선업)흑영회 사업장의 흑영회원들을 처치하기

       악업)흑영회와 거래하여 여인들을 제공하기

       천살성)흑영회 사업장의 모든 이를 처치하기

         

       눈 앞에 떠오르는 글귀들.

       아청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천살의 외로운 별이 세상 가장 불경한 색으로 빛을 발했다.

         

       그래, 그동안 너무 평화로웠다니까.

         

       “내가 알기로 산이가 좀 틱틱거리는 면이 있어도 나쁜 애는 아닌데, 댁처럼 나쁜 년이랑 애초에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까?”

       

       “……뭐라고?”

       

       “아니, 집안 좋지. 나보단 좀 못해도 무공도 좀 하지. 얼굴도 히야, 뭐 얼굴은 말해 뭐해. 성격이 좀 꿍하니 대인배는 못 되긴 해도. 여튼, 잘난 애가 좌우로 건달 끼고 다니는 년이랑 어울릴 일이 있을까?”

       

       “너, 지금 뭐라고……”

       

       “천지가 개벽해도 가능성이 없는데 따라다니면서 무슨 시어머니처럼 헤어져라마라. 그거 스토킹이야. 추잡한 범죄고. 아 영어 모르나? 두유 노우 잉글리시?”

         

       여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제는 홍인종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었다.

         

       “내가 산이 같았으면, 세상 사람 다 죽고 너랑 둘만 남아도 너한테는 안 박아. 차라리 나무구멍에 박고 말지.”

       

       “뭐, 뭐! 저 개 같은, 씨발, 씨발년. 뭐하냐고!”

         

       사람이 극도의 분노 속에 말문이 막힌 모습이다.

       여인의 뾰족한 외침에 노갈(오른쪽)과 막귀(왼쪽)이 땅을 박찼다.

         

       그래. 이거지.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질 듯한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아청이 호기롭게 소리를 질렀다.

         

       “와라! 내 월광검이 굶주. 아, 씨이.”

         

       아청의 손이 허리춤의 허공을 훑었다.

       월광검(6호)는 다탁 옆에 얌전히 기대 놓았다.

       그 때문에 공격을 받아칠 때를 놓쳤다.

         

       아청이 대신 경쾌하게 뛰어 거리를 벌렸다.

         

       월녀산보.

       춘추 후기 역사서의 기록은 이러했다.

       월녀는 마치 아이와 같은 천진한 움직임을 하고, 물속에 든 사람처럼 노닌다.

       그러나 둔하지 않고 광풍 속의 민들레 씨앗과도 같이 눈으로 잡을 수 없이 빠르다. 그럼에도 너울너울 흥을 잃는 법이 없어 마치 그 모습이 소녀와 같이 사랑스럽다.

         

       뒤로 한 걸음에 한 장을 뛰고, 이어진 두 걸음에 두 장을 뛰어넘으며, 가벼운 세 걸음에 세 장이 훌쩍 멀어졌다.

       그리고 네 걸음이 느닷없이 정면으로 향해 그 간격이 거의 지척에 이르렀다.

         

       선기를 놓친 탓에 놓인 후공을, 신법 한 수를 통해 도로 선공을 잡았다.

       강호에서 보법∊신법을 강조하는 이유였다.

       해당 기호는 ∊엘레멘트, 수학 기호이며 보법은 신법의 원소로 그 일부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 무슨……!”

         

       노갈은 흑영회 회주 고명딸의 호위다.

       아들이 연이어 넷 이후에 나온 막내딸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 호위가 일류 후기의 고수였다.

       그리고 일류 후기쯤 되면 아청의 신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예인지 알아볼 안목이 된다.

         

       빠른 신법은 방향의 전환이 어렵고, 변화무쌍해 그 방향이 혼란한 신법은 빠름에 문제가 있었다.

       한 발짝 만에 진행 방향을 뒤집을 수 있기만 해도 그 신법이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반대로 움직여 이전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천하에 고절한 신법으로 이름이 높았다.

         

       하물며 뒤로 물러나다 앞으로 뛰어오름에 외려 더 빨라지는 신법이란 들어본 적조차 없다.

       그 결과가 먼저 덤벼들어 나중에 도착하고 만 지금의 꼴이었다.

         

       노갈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도망치,”

       

       “어딜. 안 돼. 여물어.”

         

       아청이 노갈의 아가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완만한 곡선으로 뻗어나가는 주먹.

       원공권 일 초식 맹원탐과, 비급이 시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수준의 흔한 권법이다.

         

       노갈이 상박을 들어 주먹을 빗껴냈다.

       그러자 곧장 치들어오는 왼손!

       엉거주춤하게 펴지도 쥐지도 않은 모양. 당랑권 특유의 파지법 당랑수였다. 당랑수의 전개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당랑권 이 초 난아타.

       뒤이어 원앙각 자오철초, 단권 점삼출, 유가권술 곤전질입, 낭아권 낭아타……

         

       하나같이 저자에 흔한 권장법들이었다.

         

       하얀 테두리의 무공을 일 성으로 올리는 데에는 정말 하찮은 자유 수련점이 필요하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익힐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아청은 들르는 서점마다 만지작거리며 나오는 하얀색 무공들을 전부 익혀놓았다.

       보라색 무공 중에서도 사기급이라는 월녀검법을 놔두고 굳이 쓸 일이 없어 안 썼을 뿐이다.

         

       일 성의 성취는 기본 초식을 외웠다는 것이다.

       초식이 가지는 진의와 기세, 진기의 운용, 응용 등은 몰라도, 겉으로의 형태만 제대로 흉내 낼 수 있는 상태를 말했다.

         

       하지만 겉핥기에 불과한 흉내라도, 막대한 내기를 통한 속도와 힘으로 찍어누르면 강력한 무공이 될 수밖에는 없다.

       거기에 수십의 무공을 마구 뒤섞기까지 하면?

         

       아청이 지금 벌이고 있는 기예가 된다.

         

       노갈이 궁지에 몰렸다.

         

       “이년!”

         

       막귀가 아청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왔다.

       아청의 왼손이 움직였다.

       파리라도 쫓는 듯한 휘적임이었다.

         

       순간 울려퍼지는 중후한 범종 소리!

       두웅-!

         

       보이지 않는 기운이 2척(약 60cm)의 거리를 통과해 막귀의 가슴을 때렸다.

       먼 곳을 타격하는 수법으로 격공장이라 불렀다.

         

       막귀가 포탄처럼 날아 다원의 뒷벽에 부딪쳤다.

         

       순간, 아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공세를 거뒀다.

         

       일종의 허락으로 받아들인 노갈이 급히 제 후배에게 달려나갔다.

         

       “막귀! 정신 차려라!”

       

       “쿨럭.”

         

       완전히 함몰이 된 가슴. 흉강이 산산조각났다.

       뼛조각이 내부의 장기를 전부 찟어발긴 상태.

       피 끓는 기침은 그대로 막귀의 유언이 되었다.

         

       “막귀야!”

         

       노갈이 비통하게 외쳤다.

       사파라고 해서 전부 속고 속이며 뒤통수를 칠 궁리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타인에게 잔인해지는 만큼 저들끼리는 끈끈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청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아씨. 손맛이 영 안 사네…….”

         

       다른 거나 배울걸.

       여래신장에 대한 냉혹한 평가였다.

         

       아청은 검을 쓴다.

       근육과 뼈를 가르는 그 감각, 검을 쥔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 감촉은 차라리 황홀하기까지 했다.

         

       문화도 상식도 다른 타향에서 하는 생고생도.

       늘 일렁이는 대가리들 위의 숫자들도.

       볼 때마다 정신을 뒤흔드는 상태창도.

         

       전투로 달아오른 몸에 더 뜨거운 피를 끼얹는 그 상쾌함에 비하면 전부 하찮은 일이었다,

         

       권장술은 아무래도 그런 맛이 모자랐다.

       치고 부수는 것도 손맛이 영 없다고 할 것만은 아니지만, 당연히 검만은 못했다.

       무엇보다, 피를 못 보는 점이 불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래신장은 못 써먹겠다.

       겨우 1성 맛보기의 위력조차 강력하다.

       분명 강력한 무공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데 손맛이 없는걸.

       타격감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갑자기 갈증이 밀려들었다.

       피. 피를 봐야 한다. 피를 봐야 해.

         

       “야. 신파는 관심없으니까 스킵. 계속 하자구.”

         

       노갈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원수였다.

       그러나 상대는 격공장을 간단히 뿌리는 절세의 고수였다.

       물론, 아청이 그 정도의 고수는 아니었다.

       그저 게임 시스템의 보정을 받을 뿐임을 몰라서 하는 오해였다.

         

       게다가 노갈의 소명은 아씨의 호위였다.

         

       “고인을 몰라뵙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잡몹 따위가…… 말대꾸?”

       

       “제발,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노갈이 무릎을 꿇었다.

       아청이 코웃음을 쳤다.

         

       “왜,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 남의 피나 빨아먹고 사는 인생. 주제에 오래오래 살다 바글바글한 가족들 품에서 미소 지으며 떠날 줄 알았나 봐?”

       

       “그건.”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 맹자가 있으려나? 있겠지? 원시 중국이니까. 어쨌거나 그분이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단 말이야.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오해를 해. 무슨 누구라도 내면의 선을 품고 있으니 암만 악인이라도 교정을 할 수 있다느니.”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맹자의 성선설은 그런 뜻이 아니다.

       이 역시 양변을 역으로 성립하는 명제였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즉, 본성이 악한 것은 사람이 아니다.

         

       너희들의 윗사람이, 관리가, 심지어 나라의 군주라 할지라도 너희를 대함에 선하지 않으면 걔는 사람이 아닌 짐승에 불과하다.

       짐승의 지배를 받을 수 없으니 죽창을 들어라.

         

       맹자가 말씀하신 바가 이러한 것이었다.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민본주의를 주장한 위대한 사상가였다. (공자의 민본은 통치와 섬김에서 신의를 강조했기에 너무 미적지근했다.)

         

       그분 덕분에 아청은 한 점 거리낌 없이 취미를 즐길 수가 있었다.

         

       아청은 쓰레기들 쳐죽이며 즐겁고.

       쓰레기가 사라져 보다 좋은 세상, 모두가 이득을 보게 된다.

         

       그 누구도 상처 입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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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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