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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돌이켜보면, 특별히 대단할 게 없는 장면이었다.

       연화공주는 그저, 소년의 부름에 천천히 몸을 돌려 보았을 뿐이다.

       

       겨우 그뿐인 행동이었지만.

       

       ‘연기.’

       

       기획 프로듀서 하태오는 자연스레 그 말이 떠올랐다.

       연기란 단순히 대사를 내뱉는 게 아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

       얼굴 표정부터, 눈빛.

       몸의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이 연기라는 행위로 표현된다.

       

       「저를, 찾으셨군요.」

       

       아직 본격적인 대사는 나오지 않았다.

       허나, 조용히 몸을 돌린 연화공주의 존재감에 모두가 숨죽여 보았다.

       

       궁에서 나와 먼 곳으로 떠나는 연화공주.

       그녀를 연기한 이들은 비통함으로 그 감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조서희는 감정을 쏟아내어, 그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눈앞의 연화공주는 울지 않았다.

       비통함.

       물론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분노가 그 눈에 나타났다.

       노을과 같이 붉던 연화공주의 눈이 조금 더 짙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통함으로 묻을 수 없는 분노.

       내란으로부터 홀로 몸을 피하는 자신과 그 원흉.

       모든 것에 대한 분노가 절절히 담겨 있었다.

       

       그것을 정면에서 마주한 어린 윤서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어 말을 내뱉어야 하는데. 준비된 대사는 전부 외워뒀는데.

       그런 말만 머릿속에 멤돌 뿐이었다.

       

       「어째서, 말이 없으신지요.」

       

       보통이라면,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말이 없는 소년을 바라보던 연화공주의 입이 열렸다.

       

       「아니면, 저 같은 것에겐, 할 말조차 아깝다는 말씀입니까.」

       

       이는 화풀이에 가까웠다.

       홀로 비통함을 삼키던 연화공주를 불러세운 소년에 대한 화풀이였다.

       

       “……딸꾹.”

       

       그 칼날 같은 목소리에, 이윽고 어린 윤서일의 입에서 딸꾹질이 나왔다.

       자세히 보면 눈물마저 맺혀있었다.

       정말 왕족을 눈앞에 둔 느낌이었다.

       

       여기서 감히 말을 내뱉는 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커, 컷! 컷! 그 정도면 됐습니다. 연기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덕분에 정신을 차린 태숨달의 촬영 감독, 공정태의 외침에 사납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방금 모두의 앞에 있던 연화공주는, 멀뚱멀뚱 눈을 깜박이는 서연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서연의 태도를 전처럼 비웃지 못했다.

       

       ‘……낙하산이라며?’

       

       저게 낙하산인가?

       공수부대지.

       

       연화공주역을 노리던 아역들의 얼굴에 허탈함이 담겼다.

       조서희에 이어, 저정도 연기를 뽐내는 아이가 또 있을지 몰랐으니까.

       

       ‘말도 안 돼.’

       

       경악한 이들의 틈에서 가장 놀란 건, 단연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던 조서희였다.

       

       ‘광고나 찍었다고 했잖아.’

       

       저게 광고나 찍은 실력인가?

       분하지만, 정말 분하지만 방금 장면은 감히 조서희로서 생각도 못 한 해석이었다.

       

       ‘아니야, 저건 오답이야. 분명 대본에는 비통한 마음에 눈물짓는 연화공주라고 적혀있었어.’

       

       대본이 요구한 연기는 윤서일을 향해 눈물지으며, 그에게 위로 받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방금 서연의 연기는 애절함보다 서늘함이 더 와닿았다.

       그러니, 잘못된 연기다.

       

       조서희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아역들 연기가 무섭다고 듣기는 했는데.”

       “추천, 추천 받을만 하네요.”

       “다른 건 몰라도 감정 전달력은 진짜 상당한데요? 어지간한 배우보다 훨씬 나아요.”

       

       하태오는 힐끗, 촬영장에 찾아온 조민태를 보았다.

       조방우의 아들이라는 CF 감독.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보는 눈이 좋은 건지.’

       

       오디션을 심사하던 이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까 서연의 연기를 되짚었다.

       

       ‘처음에 분명,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어.’

       ‘정면에서 태양을 응시했으니,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 못했던 거야.’

       ‘거기에 윤서일의 부름에 몸을 돌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태양은 머리 위에 떠있었다.

       노을이 지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서연의 연기를 보면 마치 노을이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빛을 등지고 선 달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대본에 없었던 대사였죠.”

       “애드립이었습니다. 엄청 자연스러웠지만요.”

       “감정연기도 대본에서 요구한 것과는 좀 달랐네요. 공 감독님은 어떠셨습니까?”

       

       이건 촬영을 지휘하는 공 감독의 의사가 중요했다.

       그가 이 드라마의 연출, 그리고 연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니까.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만, 솔직히 예민한 감독이면 좋아하지 않겠어요. 연기에 너무 주관이 뚜렷이 들어가서.”

       “그건 그렇죠. 아역이 이런 경우는 제가 진짜 처음 봅니다. 보통은 시키는 대로 하거든요.”

       “네, 그렇죠. 그래야 하는데…….”

       

       자기 나름대로 대본을 해석하여 연기하는 건, 보통 경험이 있는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다.

       하지만 서연은 어린 나이에 자연스레 그것을 해냈다.

       이것이 재능인 걸까?

       

       “아, 잠시. 이거 혹시 원작대로 연기한 거 아닐까요?”

       

       그때, 누군가가 그런 말을 꺼냈다.

       원작.

       생각해보면 이 태숨달은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였다.

       

       “원작에서는 연화공주가 윤서일에게 화를 냅니다. 자기에 대한 연민과 분노에 휩싸여서 화풀이를 하죠.”

       

       하지만 드라마의 연화공주는 그런 드센 면모보단, 보다 정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그래야 이 장면에서 윤서일이 태가 살기 때문이다.

       

       “……원작을 보고 왔다면, 틀린 연기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

       “흐음.”

       

       물론 그걸 떠나 충분히 좋은 연기였다.

       자연스러운 애드리브.

       짙은 감정 연기까지.

       

       문제는, 대본에서 요구한 연기와 달랐다는 점.

       

       “조서희 양과 비교하면…….”

       

       일일 드라마의 공주님.

       모두가 조서희를 부르는 호칭이다.

       

       훗날 대배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의 재능을 찬사 하는 칭호.

       

       “사실, 연기만 보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감정 전달력이 한참 차이나죠. 실력은…… 분명 조서희 양도 대단했습니다. 아니, 더 좋은 부분도 많았죠.”

       

       연기만 보면 조서희는 우등생이다.

       모두 만점을 받은 우등생.

       

       하지만 서연은 야생마 같았다.

       본인 나름의 해석과, 자연스런 애드리브가 곁들여진 연기.

       이건 상대가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었다.

       

       상대 역이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방금처럼.

       

       ‘윤서일 역은 쉬운데…….’

       ‘이게 설마 이혜월 역에서 막힐 줄이야.’

       

       잠시 갈등하던 이들은, 이내 고개를 들어 서로를 살폈다.

       

       “음, 우선 준비된 장면은 이것만이 아니니 전부 보고 결정합시다.”

       “예. 굳이 성급할 필요 없죠.”

       

       그들은 그렇게 대화를 하며, 이어 오디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어차피 배역은 후에 회의에서 결정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연화공주, 이혜월을 맡을 아역이 누구인지.

       

       ***

       

       ‘너무 오버했나.’

       

       연기를 마치고 모두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쎄한 반응이 잊히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괜히 몸이 움찔거렸다.

       

       혹시 흑역사급 장면을 하나 적립한 게 아닐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눈앞에 이불이 있었다면, 그대로 걷어찼을 게 분명했다.

       

       “서연 양.”

       

       그런 생각을 하며 오디션 장을 나오는데, 조민태가 입을 열었다.

       

       “이거, 오늘 연기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네?”

       “솔직히 드라마는 처음이라 걱정했습니다만, 오히려 이쪽이 천성이네요. 저는 솔직히 연화공주가 진짜 눈앞에 있는 줄 알았을 정돕니다.”

       

       립서비스인가?

       아니 표정을 보면 진심인 것 같은데.

       

       ‘다행이다.’

       

       혹여 괜히 오버해서 흑역사를 하나 적립한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괜찮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자 마찬가지로 조용히 있던 엄마가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엄마도 정말 놀랐어. 엄마가 사극 자주 보잖니. 거기서 나오는 아역들과 비교해도, 서연이 연기는 전혀 손색이 없었어. 아니, 훨씬 나았던 것 같아.”

       “그으런가요?”

       “그럼! 역시 우리 딸은 천재가 맞아!”

       

       아무래도 오디션장에서는 눈치가 보여 말을 꺼내지 못했는지, 수아는 나를 꽉 껴안으며 그런 말을 했다.

       

       ‘수, 숨이.’

       

       역시 내 얼굴 뒤덮는 육중한 지방에 몸부림치던 그때.

       조민태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어, 만약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찍게 된다면. 그 첫 작품의 주연을 서연 양이 꼭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그럼요. 하지만, 그때가 되면 서연 양은 감히 말도 붙이기 힘들 대배우가 되었을 테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아, 아뇨. 기회가 된다면 꼭 할 수 있도록 할게요.”

       “오, 진짜죠? 나중에 무르기 없기입니다.”

       “물론이죠. 약속이에요.”

       

       나는 그렇게 답하며 번쩍 팔을 들어 움켜쥔 주먹에서 엄지를 쭉 폈다.

       그리곤 마치 도장을 찍듯, 서로의 엄지를 맞대며 장난 같은 계약을 끝냈다.

       

       “가끔 보면 서연 양, 꼭 남자애 같다니까. 이런 행동들이 아주 호쾌해요.”

       “그, 그래요?”

       

       남자 같다는 말에 순간 움찔했다.

       그야 남자 같겠지. 전생이 남자인데.

       

       행동은 많이 변했지만, 머릿속은 아직 크게 변한 구석이 없었다.

       

       ‘크흠, 아무튼.’

       

       아마 조민태는 이 계약이 장난이었겠지만, 나는 상당히 진지했다.

       

       ‘조민태 감독의 첫 작품이면, 「더 씨프」.’

       

       킬링 타임용 오락영화였다.

       천재 감독의 호쾌한 액션 영화!

       뭐 대충 이런 식으로 홍보했었지.

       

       거기에 주연으로 넣어준다면, 나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걸로 뜬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시, 고공행진 중이던 김정하를 우주까지 날려 보낸 영화가 아니던가.

       

       ‘아, 근데 버튜버도 해야하는데.’

       

       천만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야기는 차마 썰로 풀기도 어려웠다.

       엑스트라로 출연했다고 하기엔 맛이 없고.

       주연으로 출연했다고 하면 누군지 특정될 게 뻔했다.

       빨간약!

       이건 버튜버로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었다.

       

       ‘뭐, 어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자.

       오늘 연기는 그래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광고 때와는 전혀 다른, 나만의 연기.

       또 다른 내가 되는 순간.

       

       마치 버튜버와 같이.

       

       ‘붙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조서희는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내가 조금 무리수를 던진 것도, 조서희의 연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정석으로 연기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내세운 도박.

       그게 심사위원들에게 잘 먹혔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꼭.’

       

       그렇게, 일주일 후.

       태숨달 오디션의 결과가 발표됐다.

       

       메이킹 영상을 통해 공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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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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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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