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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 히어로 타워까지 90초. ]

       

        초조했다.

       

        학생회장, <재창조>의 한유리가 기상천외한 정보를 접한 것은 불과 십 여분 전의 일이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 <비를 내리는> 송수아.

        최근 알게된 <현상 거절> 임혜성.

       

        두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 

       

        어딘가 찜찜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최근 송수아의 행동이 수상하게 변해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히어로 타워 전망대, VIP룸의 CCTV 영상을 받은 한유리는 눈을 의심했다.

       

        싸늘하게 축 늘어진 그녀의 친구 송수아, 그녀를 향해 능력을 사용하는 임혜성.

       

        문제는 임혜성이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검붉은 피가 그의 입이나 코에서 쉬지 않고 흘렀다는 사실이다. 누가 보아도 생명이 위독할 수준의 출혈이었다.

       

        [ 히어로 아카데미 트라우마 팀 ]

       

        한유리는 랭커이자, 학생회장이라는 직권으로 트라우마 팀 헬기를 소환했고, 망설임 없이 탑승했다.

       

        목적지는 뻔했다. 송수아와 임혜성이 있는 히어로 타워, 최상층의 헬기 착륙장이다.

       

        헬기 안.

       

        멍하니 핸드폰의 영상을 보던 한유리가 손톱을 깨물었다. 

       

        송수아를 위해 능력을 발현하는 것처럼 보이던 임혜성이 쓰러진 것이다.

       

        까드득!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져 나온 그녀의 버릇이었다.

       

        영상 속에서 놀라운 일이 펼쳐진 것은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다.

       

        미동조차 없던 송수아가 슬며시 일어나더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쓰러진 임혜성을 끌어 안고 울먹이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뭘 하던 걸까.”

       

        아카데미 하늘, 크리스마스의 밤에 드리운 비와 눈.

       

        분명 송수아의 감정에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다. 친구에게 의지가 되기는 커녕, 날씨를 본 뒤에야 송수아의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 목적지 도착. 착륙하겠습니다. ]

       

        천천히 하강을 시작하는 헬기 안에서, 한유리는 쓰고 있던 비행용 헤드셋을 벗었다.

       

        그리고.

       

        쿵!

       

        “어, 어어! 위험합니다!”

       

        헬기의 문을 연다. 이어지는 승무원의 만류가 있었지만, 한유리는 대꾸조차 않고 곧장 몸을 하늘로 내던졌다.

       

        번쩍!

       

        <창조>의 힘이 빛을 발한다.

       

        곧장 그녀의 의지에 따라 허공에 생겨난 얼음. 그 얼음으로 이루어진 길은, 마치 미끄럼틀처럼 한유리를 안전하게 타워로 인도했다.

       

        “하앗!”

       

        망설일 시간조차 아까웠다.

       

        한유리는 곧장 다시 한번 <창조>의 능력을 발휘했다. 커다란 망치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걸 전력을 다해 전망대의 유리를 향해 내던졌다.

       

        쨍그랑!

       

        전망대의 통유리 한 칸이 무너졌고, 그 사이로 몸을 들이민 한유리는 볼 수 있었다.

       

        조금 전 영상에서 본 것처럼, 누군가의 피로 흠뻑 젖은 송수아와, 정신을 잃은 채로 쓰러진 임혜성을.

       

        “다, 당신들…….”

        “유리, 도와줘.”

       

        화가 치밀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친구의 처연한 얼굴,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D 등급’ 남성을 보니 도저히 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꾸욱!

       

        그 화가 향하는 곳은 송수아나 임혜성이 아니었다.

       

        <재창조>의 한유리, 바로 자신이다.

       

        Z급 랭커이자, 아카데미 학생회장. ‘일성’ 가문의 자랑. 창조의 힘을 가진 초능력자.

       

        그런 대단한 칭호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당장, 송수아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던 그녀인데.

       

        “도와줘. 유리! 혜성이가… 혜성이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아, 알았어요!”

       

        정신이 나간 듯한 송수아의 목소리에 한유리가 퍼뜩을 정신을 차렸다.

       

        그래, 지금은 급박한 상황이다. 도대체 그런 낯뜨거운 옷을 입고 뭘 했느냐고 묻기 보다는 환자를 이송해야 했다.

       

        콰앙!

       

        다행히 앞서 몸을 날린 그녀와 함께했던 ‘트라우마 팀’ 대원들이 잠긴 옥상 계단을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환자는 여기예요! 서두르세요!”

        “예!”

       

        대원들이 가져온 들것에 조심스레 임혜성을 눕힌다. 환자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한 대원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데.

       

        문제는 아직도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한 송수아다. 

       

        그녀는 트라우마 팀 대원들을 붙들고 애원하고 있었다.

       

        “조, 조금 전에 의식을 차렸는데, 다시 정신을 잃었어요. 어떡하죠? 네? 혜성이, 혜성이는 괜찮은 거죠?”

        “송수아!”

        “……에?”

        “진정하세요. 다행히 그의 생명엔 지장이 없어 보이니까. 도리어 그는 안정과 치료가 필요해요. 당신의 그런 반응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요!”

       

        한유리가 앙칼진 목소리로 송수아를 다그쳤다.

       

        “그,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말로.”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품 안에 갈무리하는 송수아. 촉촉한 그녀의 눈가를 본 한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

       

        “진정하고 말해주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죠?”

        “그, 그게…… 그러니까, 타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고, 혜성이는 나한테 마지막을 보여줄 거라고 막! 아, 마지막이라는 건…….”

       

        송수아의 설명은 상당히 난해했다. 

       

        말 그대로 횡설수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유리는 그 말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 당신이…… 마나 중독에?”

        “……혜성이한테 부탁했어. 유리가 슬퍼할 모습을 보이긴 싫으니까…… 내 마지막을 함께 해달라고.”

       

        송수아의 힘 없는 목소리에 숨이 턱 막혔다.

       

        마나 중독? 그 필연적으로 죽음이 예정된 질병을 송수아가 앓았고, 한유리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부들부들.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이…… 바보가!”

       

        괜히 눈물이 났다.

       

        온갖 복잡한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한유리 나름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한 방어적 행동이었다.

       

        “미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유리야.”

       

        송수아는 그런 한유리의 날 선 반응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할 뿐이었다.

       

        슥슥.

       

        눈물을 닦은 한유리는 똑바로 고개를 들어 송수아를 바라보았다.

       

        “…….”

       

        마치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처량한 친구의 모습을 보니 절로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면 결국, 당신을 마나 중독에서 구한 건…… 임혜성, 그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응. 예언자라고 하는데 신기해. 막 이상한 능력들을 써.”

        “……뭐라고요?”

       

        한유리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예언자?

       

        안타깝지만, 송수아는 착각을 하고 있다.

       

        임혜성. 그는 예언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니다. 적어도 한유리의 판단은 그러했다.

       

        “됐어요. 그 바보 얘기는 이제 그만해요. 자기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는 바보 같으니라고.”

       

        천천히 들것에 실려나가는 임혜성. 그의 축 처진 팔을 본 한유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적나라한 상황과, 송수아의 설명 덕분에 한유리는 이미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

       

        <현상 거절> 임혜성. 

       

        그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 송수아를 구한 것이다. 비록 자신이 큰 부상을 입었으나… 결국 그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런데.

       

        “바보 아니야.”

        “……?”

        “혜성이는 바보 아니야!”

        “뭐, 뭐에요?”

       

        송수아의 태도가 이상했다.

       

        한유리가 아는 송수아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어린 시절엔 고양이처럼 까칠했지만, 지금은 친근한 길냥이처럼 그녀에게 언제고 엉겨 붙던 송수아다.

       

        “혜성이는 바보가 아니야! 바보는 유리야! 바보! 멍청이!”

        “……허.”

       

        처음 보는, 송수아 나름의 과격한 반응. 한유리는 멍하니 송수아를 볼 수밖에 없었다.

       

        * * *

       

        아카데미의 중심부엔 거대한 신전이 존재한다.

       

        현대 양식의 건축물 사이에 존재하는 신전은 독특하게도 고대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상아빛의 장엄한 신전은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뒤틀렸어요.”

        “그, 그게 무슨 뜻입니까?”

        “놀랍게도, 예언이 틀어졌습니다. 경악스러운 사건입니다.”

        “맙소사 그 말은……!”

        “오오! 이럴수가!”

       

        바로 그런 신전의 심처. ‘신성 교단’의 회의실.

       

        긴급 회의를 주최한 <성녀> 안젤리카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신성하고, 고귀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사제들이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성녀 안젤리카의 예언은 신이 내리는 이정표다. ]

       

        그게 교단을 따르는 신도들, 더 나아가 이 세계의 상식이다.

       

        그런데.

       

        “운명이 틀어졌다는 건…… 설마?”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죽지 않았습니다. 필시 미지의 개입이 있던 겁니다.”

       

        무거운 <성녀> 안젤리카의 선언에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어느 누가, 감히, 위대한 신의 예언에 반하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단 말인가!

       

        “미지의 개입이라…… 그 자가 누구인지, 성녀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늙은 사제의 질문에 안젤리카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에 술렁이는 사제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예상이 가는 사람은 있습니다. 이미 ‘심판관’ 중 하나를 그에게 보냈습니다.”

        “오오! 다행입니다!”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놈을 지옥으로 이끌 사자가 움직인 거군요!”

        “…….”

       

        광신도의 반응이 퍽 우스웠다.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안젤리카는 어제의 만남을 떠올렸다.

       

        ‘안젤리카. <성녀>께서 나를 호출하다니. 내일은 해가 뜨지 않을 모양인가!’

        ‘……위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서줘야합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극히 드물어요.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위대한 신성 교단의 성녀, 안젤리카.

       

        신전 내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녀도 이 아카데미 내에는 껄끄러운 사람이 몇 존재한다.

       

        가장 먼저…… ‘랭커’들. 그들 대부분은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신앙을 혐오하고 거부하는 부류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모든 랭커가 교단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안젤리카 다음 가는 요직을 차지하고, ‘심판관’의 칭호를 가진 이도 존재한다.

       

        <성녀> 안젤리카와 대화를 나누는 건 바로 그 ‘심판관’이었다.

       

        ‘재밌군. 위험한 녀석이라, 누구지? 랭커인가? 아니면 S급?’

        ‘D 등급의 학생입니다. 당신이 그에게서 정보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D 등급……?’

       

        심판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가 가지 않겠지. 랭커인 그를 호출하더니, 대뜸 D 등급 학생의 뒷조사를 요청했으니까.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당신의 능력을 벗어날 경우엔, 도주하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 무시하는 것도 적당히 하지. <성녀>.’

       

        안젤리카는 그에게 무겁게 경고했다.

       

        그의 방식이 제법 거칠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고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D 등급의 학생이 교류하는 이들이다.

       

        <재창조>의 한유리와 <비를 내리는> 송수아. 말 그대로 아카데미의 거물들이다.

       

        필시 그의 힘은 D 등급을 가볍게 넘어설 것이다. 그건 세 살배기 어린 아이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실이었다.

       

        ‘당신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해 주십시오.’

        ‘알겠어, 알겠다고. 어차피 결국, 꼬리를 내리겠지만.’

        ‘…….’

       

        아카데미 3학년이자, S급의 초능력자.

       

        그를 움직였으나…… 안젤리카의 불안은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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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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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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