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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그래도 탈출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백작이 그대로 날아가 버리면서 백작령의 명령체계에 굉장한 혼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작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뒷세계 인간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었고, 폭탄이 터지며 시체가 산산이 조각나버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망’이 아니라 ‘실종’으로 받아들여졌다. 백작의 최측근들이야 백작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알 수 있었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백작령이 백작을 살해한 범인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것은 백작이 사망한 것이 확실하게 밝혀진, 그 폭발 사건이 있었던 날로부터 사흘 뒤였다.

        

       산산조각 난 시신과 함께 발견된 옷가지, 그리고 백작의 얼굴 피부 일부 등으로 겨우 유추했다던가.

        

       “…….”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신문으로 읽고 있었다.

        

       “아주 성대한 방법을 선택했어.”

        

       내가 무표정하게 신문을 한 페이지 넘기자, 옆자리의 루카스가 그렇게 말했다.

        

       당연하지만, 나는 백작이 사망하는 순간에 바로 옷을 갈아입은 뒤 백작령에서 벗어났다.

        

       영지가 넓으면 영지에서 사는 사람도 많고, 그만큼 생산력도 증대된다. 산업혁명 이후로 공장을 여기저기 지으며 대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지만, 그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노동자는 대부분 영지민이고.

        

       아무리 돈 많은 평민—그러니까,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공장을 짓고 사람들을 고용해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는 시대라지만, 결국 귀족과 평민은 그 시작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땅과 돈을 모두 가진 귀족들은 스스로 회사를 차리고 공장을 지었다. 설령 평민이 공장을 지으려고 해도 그 공장이 지어질 땅의 주인은 대부분 귀족이었고.

        

       그렇기에 백작처럼 영지가 많은 귀족은, 보통은 아무리 돈 많은 평민이라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떼부자인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도 아니고 마차의 연쇄 폭발이라니, 누가 봐도 살해당한 거잖아.”

        

       물론 그런 말을 건네는 루카스는 딱히 나를 탓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 미친놈은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죽이건 별로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물론 루카스가 사람을 죽인다면 거의 무조건 검으로 베는 것을 택하겠지만.

        

       백작씩이나 되는 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보통 그럴 경우 백작 정도 되는 인간의 가족들도 함부로 대들 수 없거나,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뒷배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백작보다 높은 이는 공작과 황제뿐이다.

        

       설령 공작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백작보다 정치적인 입지가 나은 것은 아니다. 공작과 백작을 나누는 기준은 그저 황가의 피를 잇고 잇지 않고의 차이일 뿐, 영지의 크기나 실질적인 권력에서 백작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공작의 권력이 훨씬 더 강하지만. 가끔 남작의 권력이 백작보다 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작이 백작을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결국 공작도 이 나라의 귀족일 뿐. 안 그래도 황제파와 귀족파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생각도 하지 않고 죽여버린다면, 반대파에 힘만 실어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 백작을 살해할 수 있는 자는 ‘정황상’ 황제뿐이다.

        

       문제는 그저 ‘정황상’ 그럴 뿐이고,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거지만.

        

       선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황제의 권력은 굳건하다. 이런 식으로 ‘나한테 반항하면 죽음뿐’이라고 드러내도 될 정도로.

        

       거기에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저 ‘그럴 것 같다’는 이유로 황제를 탓하기에는 황제파의 위치가 너무 확고하기도 했고.

        

       사실 믿어주는 자도 황제를 극도로 혐오하는 부류의 귀족들 뿐이리라.

        

       황제가 나에게 백작을 제거하라고 시켰을 때 이미 백작이 저지른 부정의 증거는 황제의 손에 있었을 거고, 그렇기에 백작의 측근들이 황제에게 따지러 오면 황제는 그 증거를 보여주면 그만이다. ‘죽음 이상으로 치욕스러운’ 상황이 되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최소 수 년간은 크로우필드 백작가는 조용히 입 닥치고 있어야 할 거다.

        

       그 백작의 딸조차도 자기 아비가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할 정도로.

        

       “보일러 폭발은 폭탄을 이용한 폭발과는 그 양상이 다릅니다. 설령 자동차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폭탄을 사용했다면 금방 들켰겠죠.”

        

       증기기관을 이용한 이동 수단은 모두 내부에 보일러가 탑재된다. 거기에 마력석을 섞은 석탄, 혹은 순수한 마력석이 잔뜩 실리기 때문에 언제나 폭발에 대한 위험성이 있었다. 실제로 종종 폭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나와 루카스가 타고 있는 이 자동차도 그런 폭발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보일러나 마력석 폭발과 일반적인 화약 폭탄의 폭발은 그 양상이 다르다. 뭐, 나도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내가 무심함을 가장해 대답하자, 루카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니, 뭐, 나는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뭐, 됐다. 아버지도 그런 식으로 ‘경고’가 될만한 일을 원했을 테니까. 제이든이 너를 왜 그렇게 귀여워하는지 알 것 같다니까. ……뭐, 그놈이 하는 말만 들어보면 좀 꺼림직하긴 하지만.”

        

       루카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올리길래 나는 얼른 탁 쳐내버렸다.

        

       *

        

       “훌륭하다.”

        

       나를 보며 황제가 그렇게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 의도대로 잘 움직여 주었다. 너라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죽이라고 했어도 그대로 따라 주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감사합니다.”

        

       황제의 말은 맞는 말이기도 했고, 틀린 말이기도 했다.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시도해서 결국 성공한 결괏값만 뽑아낼 수 있는 나의 능력을 생각하면 황제가 ‘어떤 방식으로’ 죽이라고 해도 이론적으로는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무사히 빠져나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할 수도 있겠지.

        

       “과연 내 딸이다. 이 아비는 자랑스럽구나.”

        

       “…….”

        

       열두 살짜리 애한테 사람을 죽이라는 일을 시켜두고, 그 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를 이렇게 칭찬한다.

        

       심지어 게임에서 본 황제라는 캐릭터를 떠올려보면, 저 말은 분명 진심일 거다. 황제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러니, 나는 그저 그 말에 감사 인사를 할 뿐이다.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상세한 보고는 네가 여독을 푼 뒤에 듣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다시 한번 깊게 숙여 보인 뒤, 몸을 뒤로 돌려 몇 번이나 연습했던 군인 같은 걸음걸이로 방을 나갔다.

        

       모든 몸동작은 절도 있고 우아하게. 말투는 언제나 높임말로. 얼굴은 무표정하게. 그게 내가 잡은 ‘캐릭터’였다. 주변에 사람 표정과 몸동작으로 무슨 머리 안쪽이라도 훤히 들여다보듯 감정을 읽어 대는 괴물들밖에 없었기에, 나 자신을 최대한 보호하고자 만들어낸 일종의 보호 수단이었다.

        

       그리고 처음 몇 년은 몰라도, 그래도 지난 몇 년 간은 그럭저럭해냈다고 확신했다.

        

       사실상 백작을 대놓고 죽여버린 황제였지만, 그렇다고 남들한테 직접 말로 떠들 생각은 아니었는지, 알현실에는 그 흔한 경비나 메이드조차 없었다.

        

       하긴, 이 제도 내에서 황제와 일 대 일로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서 이 ‘친족 전용’ 알현실을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우리는 스스로 문을 여닫는데 익숙했다.

        

       “아, 좀 비켜봐! 나는 아바마마를 뵈어야겠으니까.”

        

       “워, 진정하세요, 황녀님. 지금 실비아가 폐하와 독대하는 중이니까—”

        

       “나는 아바마마의 딸이잖아! 저 안에 누가 있던지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을 거 아냐!”

        

       “폐하께서는 다른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명하셨는데요?”

        

       “……아…….”

        

       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런 대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황녀님.”

        

       나는 곧장 눈앞의 ‘황녀’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리고 그 ‘황녀’도 나를 보고 조금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나도 루카스도 ‘황제의 아이들’이다. 당연히 공식적인 칭호는 황녀, 황자.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모두 진짜 황녀, 황자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공식적으로 입양된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제국을 이어받을 계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제국을 이어받은 진정한 계승권은, 진짜로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황제의 아이’, 즉,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진짜 ‘황녀’에게만 있다.

        

       나와 루카스 같은 ‘아이들’이야 뭐, 사실상 황제의 전속 암살단이나 다름없고. 뭐, 그거랑은 별개로 진짜 아들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용도가 다르다는 말이다.

        

       머리카락의 색깔도, 눈동자의 색깔도, 완전히 새까맣기에 빈말로라도 황제의 피가 섞였다고 할 수 없는 외모의 나와는 달리, 이 진짜 황녀는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끝부분에 살짝 펌을 넣은 귀족적인 모습이었다.

        

       아니, 뭐. 내 외모도 그럭저럭 귀족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태어날 때부터 황족이었던 황녀는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다섯 살 때부터 황제 아래 있었다지만 내용물은 성인 남성이나 다름없던 나는, 그나마 군대 훈련병 때의 기억을 끌어올려 간신히 군인 흉내나 내고 있을 뿐, 어린아이처럼 떼를 써도 황족티가 팍팍 나는 황녀와 비교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거기에 햇살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새하얀 피부와 맑고 깊은 푸른 눈동자를 보면 이 아이는 정말로 황제의 딸이 맞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

        

       일단 이 세계에서는 나와 동갑인 황녀, 앨리스 팬그리폰이 나를 노려보았다.

        

       질투심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아무리 황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

        

       아버지라는 양반이 사랑을 쏟아주어도 모자랄 나이에 피도 섞이지 않은 다른 애들을 잔뜩 ‘자식들’로 불러놓고는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오히려 이 나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암살하고 돌아오는 내가 비정상이지.

        

       “……이제 내가 들어가 봐도 되겠지? 독대도 끝났으니까.”

        

       그리고 그런 앨리스가 유독 날카롭게 구는 상대가 바로 나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성별도 같다. 하지만 하는 행동은 모조리 정반대인 데다가, 자기는 가끔 듣는 꾸중조차 전혀 듣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 충분히 질투가 날 법도 했다.

        

       ……그리고, 이건 원작의 클레어와 앨리스의 관계와도 비슷했다.

        

       음…….

        

       “예, 물론입니다.”

        

       나는 앨리스에게 공손하게 말하며 몸을 틀어 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비켜주는 김에 문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은 앨리스의 화를 더 돋운 것 같다. 하긴, 나는 열 내고 있는데 상대가 차분하면 오히려 기분이 나쁜 법이니까. 종종 서브컬쳐에 등장하는 여유로운 악당이 열받는 이유랑 비슷하다.

        

       따지자면 나도 지금은 악당 맞긴 했고.

        

       이랬던 애가 나중에는 커서 클레어와 화해하게 된다는 말이지.

        

       그런데 그게 클레어가 죽는 이벤트였고.

        

       …….

        

       설마 나도 죽는 건가?

        

       “…….”

        

       앨리스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노려보고, 턱을 치켜들고 내 옆을 지나갔다.

        

       앨리스가 들어간 뒤 천천히,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닫기 직전에 ‘아바마마!’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너는 다른 형제자매들한테 까칠하면서 쟤한테만 너무 무르더라.”

        

       루카스가 투덜거렸다.

        

       ……너는 이제 스물두 살인 놈이 어린 열두 살짜리 애한테 질투를 하냐.

        

       “가엾잖아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게 귀찮아서 나는 그냥 그렇게 말했다.

        

       “허…….”

        

       내 말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루카스는 그런 어이없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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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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