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

       당신은 어느 외딴 숲에서 눈을 떴습니다.

       

       “⋯⋯차원 이동에 성공한 건가?”

       

       확실치는 않았습니다. 여기는 그저 숲일 뿐이고, 당신이 살던 세계와 유의미한 차이점을 목격할 수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마법의 실패로, 그저 장거리 텔레포트가 시전된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법이 성공했더라도,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숲의 한가운데에 당신이 서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하네요. 주변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나요?

       

       “이 나무의 품종은 제국 수도 근방에서만 자생하는 종이다. 5대 황제의 생일을 기념하여 연금술사들에게 명령해 얻어 낸 것이지.”

       

       그렇습니다. 당신이 아는 지식에 따르면──

       이 숲은 제국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오지의 밀림에 떨어졌더라면 당장의 생존이 걱정이었을 테니.

       

       그러나 작은 숲도 헤메이기에는 충분한 크기입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정표나 사람이 닦은 길은 보이지 않고, 이따금씩 새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릴 뿐입니다.

       

       그때,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소음이 울려퍼집니다.

       

       부우우우우우웅──!

       

       “⋯⋯.”

       

       당신은 자세를 낮추고 소리의 진원지를 살폈습니다.

       

       하늘입니다. 진동이 느껴지는 이 소음은 하늘에서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타원형의 묘하게 생긴 ‘어떤 것’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그 ‘어떤 것’은 생명체보다도 건축물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태엽이 째깍이고, 증기를 힘차게 뿜어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태운 채로 태양이 지는 방향으로 날아갔습니다.

       

       “⋯⋯사람이 타고 있는 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구조물.

       

       고대 문명에는 그러한 유물이 있었다고들 하지만, 저것은 고대라기에는 디자인에 세련미가 엿보입니다. 요즈음 제국에서 유행하는 난간 모양을 쓰고 있기도 했고요.

       

       나중에 알게 될 사실이지만, 저것은 비공정이라고 불리우는 마도공학의 정수입니다.

       

       “숲을 무작정 헤메는 것 보다는, 사람이 타고 있는 저⋯⋯ 플라잉 골렘을 따라가는 게 좋겠지. 그 쪽이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거다.”

       

       당신은 비공정을 따라 숲을 헤쳐나갔습니다. 비공정의 이동 속도가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았으며, 소리가 워낙 큰 탓에 어떻게든 뒤를 쫒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이동했을까요? 높다란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제국의 수도 크라운홀의 성벽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억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이곳저곳이 금이 가 있고, 한 쪽 벽면은 무너져내리기도 했습니다. 보수의 흔적이 눈에 띕니다. 난공불락이라고 일컬어지던 크라운홀의 성벽에 손상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었습니다만.

       

       진짜로 놀라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깃발입니다.

       

       중앙의 높다란 성에 걸려 있는 깃발이, 황실의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문양이었죠. 

       당신도 알다시피, 제국 황실의 문장은 개국 이래로 지금까지 바뀌었던 적이 없습니다.

       

       “⋯⋯⋯⋯.”

       

       당신은 심상치 않음을 느낍니다.

       

       성문에는 도시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으며, 경비병들이 바쁘게 오가며 검문중이었습니다. 경비병의 갑옷 양식 또한 낮설게 느껴집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제국과는 무언가가 다릅니다.

       

       그러나 숲에서 야생인의 삶을 살다가 돌아갈 수도 없는 일.

       

       당신은 위협 앞에서 물러나기보다도 몸을 던지는 유형의 인간이었고, 이번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기줄에 합류합니다. 그러자, 당신에게 여러 시선이 쏟아집니다.

       

       특히, 당신의 머리카락에 시선이 쏠립니다.

       

       황실의 피를 의미하는 자랑스러운 금발에 시선이 닿고 나면, 사람들은 당신을 모멸, 비웃음, 분노 따위의 감정을 내비쳤습니다. 금방이라도 모욕을 줄 것 처럼요.

       

       사람들이 아직까지 함부로 굴지 않는 까닭은, 당신이 휘감고 있는 거물의 분위기 덕분일 것입니다.

       

       받아본 적 없던 멸시의 시선에 당신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고귀한 피를 갖고 태어나 평생을 존중받으며 살았는데, 멸시라니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관찰했습니다.

       

       탁한 금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예로 부려지고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이상한 일입니다. 색이 옅거나 진한 금발, 이는 황실의 혈통이 섞였다는 증거로── 금발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제국의 귀족들이었으니까요.

       

       그런 고귀한 피를 이은 사람들이 어째서 노예로 부려지고 있는가.

       

       이 미스테리의 정답은 경비병과의 문답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지. 신원을 밝혀라. 주인님은 어디 계시지?”

       

       “나는 노예가 아니다.”

       

       경비병은 다 들리도록 코웃음을 쳤습니다.

       

       “노예가 아니면, 뭐, 노리개라도 된다는 소린가? 더러운 금발을 갖고, 아직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는 새끼가 있다니.”

       

       “예의를 갖춰라.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노예 새끼가 재수없게⋯⋯. 네 주인의 권위가 네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냐?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는 몰라도, 너는, 그냥, 운 좋은 노예 새끼라고. 알아들어?”

       

       쿡. 쿡.

       건틀릿을 낀 손으로 이마를 눌러대자, 당신은 참지 못 하고 외쳤습니다.

       

       “예의를 갖춰라, 경비병! 나는 제국의 둘째 황자, 이리드 크라운이다-!”

       

       정적.

       

       소름끼치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신분에 위압당했기에 침묵이 맴돌았노라고 착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이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모욕의 전조였습니다.

       

       쩌억-!

       

       별이 튑니다. 당신은 뺨을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 끔찍할 정도의 모욕에 머리가 굳었다가, 저 빌어먹을 경비병의 목을 사지에서 분리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릴 때.

       

       당신은 믿기지 않는 말을 들어버렸습니다.

       

       “참칭을 해도 그 얼간이를 참칭하다니. 정신이 나가버린 거냐?”

       

       “뭐⋯⋯?”

       

       “가끔 망상 속에서 사는 놈들이 있지. 잘 들어라, 노예새끼야. 너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제국을 무너뜨리고, 너희 제국인들이 노예처럼 빌빌 기어가며 살게 된 원인이, 바로 영락제(零落帝) 이리드다!”

       

       제국인, 노예, 무너지다, 그리고 영락제(零落帝).

       당신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습니다. 

       

       금발, 황실의 혈통이 섞인 이들이 노예로 부려지는 이유.

       무너지고 엉성하게 복구된 제국의 성벽과, 사라진 황실 깃발.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기술의 결정체, 비공정.

       

       이곳은 미래였습니다.

       

       황제로 즉위한 자신이, 제국을 무너뜨린.

       

       

       당신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졌습니다. 우르르 몰려온 경비병들이 당신에게 몽둥이 찜질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건 고통이 아닌 수많은 ‘왜?’ 였습니다.

       

       왜, 그 강대하던 제국이 망해버렸으며.

       

       왜, 제국이 망하는 원인이 나라고 하는 것이며.

       

       왜, 내 이름 앞에 영락제(零落帝) 라는, 혀를 씹어 죽고 싶은 이름이 붙은 것이며.

       

       왜, 왜, 왜⋯⋯.

       

       당신은 너덜너덜한 채로 제국의 수도였던 크라운홀에 들어섰습니다. 

       비틀거리며 움직이던 당신은, 태엽과 증기로 가득한 미래의 크라운홀을 바라봅니다.

       

       시민들은 웃으면서 거리를 돌아다니지만, 금발 섞인 노예들은 비참한 몰골이었습니다.

       문명은 진보하여, 도로는 깔끔하고, 가로등이 깔려 있어 무척이나 밝았지만.

       

       그림자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어두웠습니다.

       

       충격에 빠진 당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위안은, 손목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시계 모양의 보라색 문신이었습니다. 마법사가 예고했던 대로⋯⋯ 시간이 다 되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

       

       지난 3일간은, 고귀한 피를 타고 태어난 2황자 이리드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나날이었다.

       

       미래의 크라운홀에서 자신의 신분은 가장 밑바닥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귀족이 아니라 노예로 보았고, 손찌검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길을 나다닐 때에는 거적때기로 금발을 감싸야만 했다. 간단한 보자기를 구할 돈도 없으니, 길바닥에 버려진 구린내 나는 천을 주워다가 썼다.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고급 기술을 어필해봐도, 상인들은 형편 없는 값을 제시할 뿐이었다.

       

       그러나 무의미한 3일간은 아니었다. 이리드는 귀동냥으로 여러 정보들을 얻었다. 

       

       세 왕국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왕국연맹’에게 제국은 패퇴, 점령당했다. 

       사로잡힌 황족과 귀족들은 모두 노예로 삼아졌고, 그 자식들 또한 노예가 되었다.

       

       ‘지금’은 이리드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100년 후이다.

       

       왕국연맹은 폭정으로 인해 민심이 좋지 않았다. 하류층 사이에서는 제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제국의 남은 잔당들은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

       

       이리드는 소매를 팔뚝까지 걷었다. 보라색 시계 문신이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시계는 0에서 3까지의 눈금이 있었고,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리드는 마법사의 말을 회상했다. 고작 3일 전이건만, 아주 멀게 느껴지는 과거였다.

       

       ‘현실 시간으로 3시간 후, 황자님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손목에 표식을 남겨 드릴 테니 귀환 시간을 알아볼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픽션이⋯⋯’

       

       현실 시간으로 3시간 후.

       

       미래와 현재는,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시계 문신의 눈금은 이제 막 2에 닿아 있었다.

       환산하면⋯⋯ 6일. 이 끔찍한 미래에서 6일만 버텨낸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제기랄, 젠장.”

       

       이리드는 골목길 벽면에 기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주저앉았다. 

       굶주림도, 육신의 아픔도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제국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제국을 따르고 섬기던 사람들이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는 사실도.

       

       

       황제의 자리를 노리려면, 이 미래의 크라운홀에서 값진 정보들을 얻어가야 할 것이다. 국가의 미래 동향에서부터 기후의 변화 등. 만약, 혹시라도 비공정의 설계도를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100년 후의 기술력을 얻어 돌아간다면, 누님과 동생이 아무리 날뛰어도 황제의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황제가 되면, 제국은 망해버릴 텐데.

       

       쥐 죽은 듯이 살 것이다. 돌아가면, 황제의 자리 따위는 넘보지 않고 조용히 살 것이다.

       그러니까⋯⋯.

       

       촤아아아악!

       

       “──프읍!”

       

       이리드의 정수리 위로 물벼락이 쏟아졌다. 고개를 올리자, 3층 창문 너머로 양동이를 기울이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놀라서 동그래진 새파란 눈도.

       

       “미, 미안해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라서⋯⋯.”

       

       “⋯⋯⋯⋯.”

       

       “잠시만요!”

       

       이리드는 거적때기를 푹 눌러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물벼락을 맞은 걸로는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귀찮은 일에 얽히느니 지금 바로 골목길을 빠져 나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흡!”

       

       촤아아앗-!

       

       소녀가 벽면의 배관을 한 손으로 잡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공기 저항에 소녀의 치마와 검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

       

       소녀는 순식간에 골목길로 내려와 착지했다. 그리고 뒤집힌 치맛자락을 툭툭 털어서 정리하고는, 이리드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통통 튀는 듯 탄력이 있었다.

       

       “으와, 흠뻑 젖었네. 잠깐 옷 말리고 가요. 스튜도 한 그릇 드릴 테니까!”

       

       “아니, 난 괜찮⋯⋯.”

       

       “날도 추운데 젖은 채로 있으면 감기 걸려요. 자자!”

       

       소녀는 이리드의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분명 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가 붙잡은 손을 끝끝내 풀어내지 못 한 것은, 3일만에 처음 받아보는 ‘친절’에 머리가 굳었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잔짜잔 여러분들은 25%에 당첨되셨습니다!’ 연출을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진짜로 75% 확률로 쉬려고 했는데요. 그래서 어제 새벽까지 히오스를 달렸건만.

    여러분들의 댓글을 보니까 뽕이 차올라서 이렇게 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익명으로 후원해주신 분에게는 이 장미를 바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