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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여기 상회에서 발행한 수표입니다. 그리고 이건 아까 찾아달라고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점심 무렵.

       괴물서커스단의 두 사람은 저택을 떠나기로 했다.

         

       저택 사람들은 그들을 며칠이고 대접하고 싶어 했으나, 단장이 그것을 거부했다.

       갈 길이 급하다고 하니, 사람들도 더는 설득하기 힘들었다.

         

       -주인님도 참 은인이 가시는데 나와보지도 않으시다니.

       -에이, 다 큰 처녀가 알몸을 보였는데 얼굴을 어떻게 봐.

       -난 저 정도 남자가 벗기고 주물러 주면 소원이 없겠는데.

       -쉿, 집사님 들으면 경을 칠라. 조용히 해.

         

       평소라면 주책없이 떠들어대는 하녀들을 보며 호되게 질책했을 늙은 집사.

         

       그러나 지금 그의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원더스타인을 만나고 방에 돌아와서 펑펑 눈물을 쏟던 주인님을 떠올렸다.

         

       자세한 내용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웅얼거림을 듣고서, 그녀가 차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집사는 숨이 턱 막혔다.

       어제 처음 본,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도 않은 남자에게 뭘 기대하셨던 걸까.

         

       바깥세상을 동경해왔던 주인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치료해줬으니, 당연히 극적인 사랑이 꽃피었을 거라는 환상.

         

       설마 설마 했는데 바로 그렇게 들이댔을 줄은 몰랐다.

       까일 줄은 더더욱 몰랐고!

       

       “하하,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자작님께는 안부 전해주시죠.”

         

       집사는 실실 웃어대는 마술사 놈의 멱살을 붙들고 우리 주인님이 뭐가 부족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노련한 집사답게 손님 앞에서 감정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욕만 퍼부을 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본도 알 수 없는 떠돌이와 아가씨가 정분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혈통을 중시하는 샤를로티아에서 그건 꽤 시끄러운 추문이 될 수 있었다.

         

       마차에는 자작이 챙겨준 선물이 가득 실렸다. 떠날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부단장만 오면 됐다.

         

       마침 정원 안쪽에서 엘라가 걸어왔다.

         

       “어딜 갔다 오셨습니까?”

       “그냥 뭐…… 정원 좀 구경하느라…….”

         

       엘라가 원더스타인의 시선을 피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그녀의 옷에 묻은 흙과 풀을 보면 단순히 정원을 구경한 것은 아님이 확실했다.

       원더스타인은 무슨 일인지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모쪼록 평안한 여행 되시길.”

         

       저택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는 떠났다.

         

       야영지로 복귀하는 동안, 마차 안은 조용했다.

         

       엘라는 무언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창문 너머로 자작의 저택을 자꾸 돌아봤다.

         

       “베르그송 자작이 많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아, 그래?”

       “이 지역 특산품도 몇 보따리 받았습니다. 돌아가면 단원들에게 풀어서 나눠 먹죠.”

       “어.”

       “저는 혼자 먹을게요. 아무래도 다른 단원들이 불편해할 테니.”

       “원래 그러잖아.”

       

       몇 마디 나누다 다시 조용해진 마차 안.

         

       엘라의 기분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원더스타인은 무성의하게 대꾸하는 그녀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는 품에서 꾸러미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까 집사가 챙겨준 물건이었다.

         

       “이거 받으세요.”

       “필요 없어.”

         

       엘라는 고개를 홱 돌렸다.

         

       내가 무슨 염치로.

       이 악마 놈에게 속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냈는데.

       그리고 지금 그딴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야.

       나는 그것보다……젠장.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원더스타인은 여전히 내민 선물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받을 때까지 계속 들고 있을 기세였다.

         

       징글징글한 악마 놈.

       엘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마지못해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매우 가벼웠다.

         

       “뭔데?”

       “열어보세요.”

         

       미심쩍은 눈으로 원더스타인을 노려보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꾸러미의 포장을 풀었다.

       가벼운 것으로 봐서 장신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은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아…….”

         

       수수한 장식이 수 놓인 천 쪼가리가 손가락 사이에 감겼다.

         

       손수건.

         

       엘라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건 어젯밤 그녀가 창밖에 던져버린 그 손수건이다.

         

       오늘 아침부터 정원을 뒤지며 그녀가 찾아다녔던 물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게 여기에……?

         

       “집사에게 부탁했어요. 정원에 떨어진 손수건 좀 찾아달라고.”

       “…….”

       “아까 그거 찾으러 간 거였죠?”

       

       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안의 손수건만 쓰다듬었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였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유품이었다.

         

       어제 원더스타인의 눈앞에서 던져버린 것은 그가 히죽대는 꼴을 보기 싫어서 오기를 부린 것이었다.

         

       나중에 찍순이나 구돌이를 시켜 주워와야지 했다.

         

       그런데 막상 오늘 정원을 뒤지러 갔을 때, 손수건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영영 못 찾는 줄 알았다.

       괜한 객기를 부렸다고 자책하며, 아침부터 눈물을 글썽이며 얼마나 후회했던가.

         

       그런데 어째서 그가 이 물건을……?

         

       “엘라 양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 같아서요.”

       “…….”

       “깨끗이 세탁해서 마법으로 건조 살균까지 했다고 하니 신경 쓰지 말고 쓰세요.”

         

       엘라는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할 말을 찾았다.

       하지만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되물을 뿐.

         

       “어째서……?”

       “네?”

       “어째서……당신이?”

         

       원더스타인은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웃어 보였다.

         

       “계약했잖아요.”

       “……뭐?”

       “저의 일을 도와주기로요. 엘라 양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제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

       

       엘라는 잠시 멍하니 손수건을 바라보더니 이를 꽉 악물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악마 주제에.

         

       “……쓸데없는 짓이었어.”

       “네?”

         

       엘라는 손수건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화난 듯하면서도 어딘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난 새나 쥐를 시켜서 그 정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그런데 왜 멋대로 나서서 일을 번거롭게 만든 거야. 아침부터 괜한 헛고생을 했잖아.”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후후, 죄송합니다.”

         

       원더스타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칫.”

         

       사과까지 한 마당에 엘라는 뭐라고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봤다.

         

       원더스타인도 반대 창가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는 풍경 따위를 보고 있지 않았다.

         

         

       [‘단원 퀘스트-손수건’을 완료하셨습니다.]

         

         

       어젯밤 그녀가 손수건을 창밖에 던지고 나서 활성화된 단원 퀘스트.

       그것이 달성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단원 퀘스트-손수건

       : 방금 던진 손수건은 엘라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달성조건

       : 손수건을 찾아 엘라에게 돌려주십시오.

         

       성공 시 보상

       : [데볼루트 +1]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단원 퀘스트는 게임의 ‘동료 퀘스트’랑 비슷한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데리고 다니는 6명의 서포트 캐릭터들은 주변 환경에 반응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하곤 하는데, 그것을 들어주면 호감도가 약간 오르거나 간단한 아이템을 주곤 했다.

         

       대개 뭐,

         

       -어이,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고.

       -너무 습한데 나 갑옷 좀 벗으면 안 되나?

       -저 자식이랑은 같이 못 다니겠어. 나나 저놈, 둘 중 하나를 바꿔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네만.

         

       이런 자잘한 요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단원 퀘스트도 그렇다.

       손수건을 주워다 주는, 별거 아닌 일에, 보상도 ‘데볼루트 +1’이 다였다.

         

       그래도 말이지. 사람 정성이라는 게 있는데 호감도가 1도 안 오르다니.

       혹시 이거 표기만 0이고 사실 마이너스에서 오르고 있는 거 아냐?

         

       정말 그랬다간 게임 끝날 때까지 호감도 0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끔찍하군.

         

       “단장님! 부단장님! 야영장에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는 대접받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트렁크에 실려 있는 그들의 짐조차 손가락 하나 못 대게 하고, 직접 내려주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이랴!”

         

       흙먼지를 뿌리며 마차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까지도 엘라는 여전히 원더스타인에게서 등을 돌린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엘라 양?”

         

       그의 부름에도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애꿎은 땅바닥만 발로 찼다.

         

       그러더니 잠시 후, 입을 살짝 열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워.”

       “네?”

         

       엘라는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휙 단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이제 사람 말도 씹어버리네. 귀엽게 봐줬더니, 저 망할 꼬맹이가…….

       계약만 없었다면 내가 아주 확 박살을……

       낼 능력이 없구나…….

         

       생각해보니 엘라가 없다면, 그는 서커스단을 운영할 방법도, 단원들이랑 소통할 방법도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짐을 들고 마차로 돌아가려는데,

         

       띠릭-

         

       갑자기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건……

         

         

       [엘라의 호감도가 3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3. (다음 보상: 호감도 15)]

         

         

        ***

         

         

       야영장에 돌아온 나는 또 외톨이가 되었다.

         

       우리는 내일 새벽에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캠프를 정리하고 단원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부단장인 엘라였다.

         

       나는 뒷방 늙은이처럼 내 마차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그편이 나도 편하고, 단원들도 일하기 편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자작의 하인이 다녀갔다.

       자작이 내게 편지를 썼다.

         

       -후원하겠다 약속했지만, 아직 당신을 믿을 순 없어요! 정말 제대로 치료한 것은 맞나요? 때때로 찾아가서 검사를 받아야겠어요! 그리고 매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곳에 돈을 썼는지 내역을 편지로 써서 보내세요! 후원을 받으려면 이 정도 성의는 보이셔야죠! 편지를 대충 썼단 봐요! 후원을 언제든 철회할 수 있어요!

         

       편지에 느낌표를 왜 이렇게 많이 써?

         

       나는 편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이 아가씨도 만만치 않네.

       매주 편지를 쓰라니.

       참나. 목숨을 구해줘, 병을 치료해줘.

       해줄 거 다 해줬는데,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겠다 해놓고, 언제든 후원을 철회하겠다는 건 뭐야.

       대단한 부자 아니었나? 쪼잔하기는.

         

       똑똑.

         

       아, 드디어 저녁 시간인가.

       아마 여느 때처럼 우몬이 내 식사를 가지고 왔을 것이다.

       

       “앞에 두고 가시죠.”

         

       하지만 상대는 가지 않았다.

       나는 차창으로 비치는 실루엣이 평소의 반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라 양입니까?”

         

       혼자 내 마차까지 올 사람은 우몬 아니면 엘라밖에 없다.

         

       “응.”

       “무슨 일이시죠? 떠날 준비는 다 끝났나요?”

       “그래. 내일 새벽에 출발하기만 하면 돼.”

       “그런데 왜?”

       “밥 먹으라고.”

       “엘라 양이 가져다주신 겁니까?”

         

       의외였다. 자존심 때문에 늘 우몬을 시키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웃기지 마. 내가 당신 시녀야? 그런 짓을 왜 해?”

       “그러면 왜 오신 거죠?”

       

       엘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냈다.

         

       “그냥 그 안에서 먹으면 답답하지 않아? 나와서 얘기나 좀 하면서 먹지.”

         

       이건 의외다.

       나는 문을 열었다.

       삐딱한, 조금은 어색한 자세로 엘라가 팔짱을 껸 채 서 있었다.

         

       엘라가 나와 겸상을 하려 하다니.

       ‘호감도 3’의 힘이 이 정도였나 싶었다.

       엘라는 눈썹을 치켜뜨며 나를 쏘아봤다.

         

       “착각하지마! 누가 당신 따위와 밥을 먹고 싶대?”

       “그럼 무슨 볼일이죠?”

       “앞으로의 계획 말이야. 당신 말대로 단원도 모았어. 후원도 받아냈고. 이제 뭘 할 건지 슬슬 밝힐 때도 됐잖아? 당장 내일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으음, 그게 그렇게 되는 이야기였나?

       모든 일정은 엘라가 알아서 조정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확실히 대화를 나눌 만한 사안은 맞았다.

         

       “좋습니다.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우리는 야영장 테이블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돼가자, 나는 본론을 꺼냈다.

         

       “엘라 양.”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을 위해 그녀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

       

       “서커스 그랑프리라고 들어보셨나요?”

         

         

         

         

         

         

         

         

         

       -후원자 아나이스 (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페포포 님! 첫 후원금 감사합니다!

    ㅎㅎ 엄청 기쁩니다!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챕터1이 끝났습니다!

    화수도 어느새 10화!

    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또 내일 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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